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
엘 피스곤 지음, 김명신 옮김 / 부광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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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떠돌이 마초로가 미국 국경을 넘는다.제 2의 빌게이츠가 꿈인 그가 사막을 건너 만난 곳은 직업 컨설던트 카산드라 카레라의 상담소.엘도라도를 꿈꾸는 그에게 카산드라의 컨설팅이 시작된다.본격적인 컨설팅에 앞서 카산드라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알려준다.

<마로초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는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 역사책이다.만화는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정치만평을 생각하면 된다.한 컷 한 컷이 자본주의의 폐부를 찌르는 의미심장한 만화들이다.분량의로 보면 절반 정도는 봉건주의 부터 자본주의 성장기까지 다루어진다. 나머지 절반은 현 체제로 불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탄생과 결과에 대해 그리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비교적 짧게 다루었다는 것은 저자의 눈이 현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부르주아는 구 체제를 전복할 진보 세력으로 존재하였다.그리고 그들은 다수의 평등과는 관련이 없이 일부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체제를 만든다.그게 바로 '자본주의' 라는 것이다.자본주의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하는 일관성을 갖고 있었다.부르주아 계급은 부가 두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노동과 천연자원이 그것이다.당연히 그들은 이 둘을 착취한다.거기에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기술혁명은 대량실업을 낳게되고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감수할 수 밖에 없게된다.자원확보를 위해 자본주의가 택한 방식은 식민화 경제이다.그들은 대포와 군화발을 앞세우고 아시아,아프리카 등을 새로운 천연자원의 획득 시장으로 또 상품의 판매시장으로 활용한다.19세기에 들어서면 새롭게 재편된 시장의 헤게모니를 두고 자본주의 국가간에 갈등이 생긴다.세계 전쟁이 발생한다...1917년 자본주의에 대한 민중의 두려움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소련의 사회주의는 인간의 진정한 해방을 이루어낼수 없었다.자본가들은 그 체제가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관여치 않는다.그들은 소련의 관료들과 결탁한다.사회주의 국가들에는 독재 체제가 들어선다.그러나 그건 기업가들에게 상관이 없다.

만화를 읽고 있으면 자본주의 역사를 상영하는 단편영화관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그리고 문득 현재 체제에 묻어 있는 피비린내와 탐욕의 냄새에 코를 막게 된다.만약  책상에 앉아 있다면 발 끝을 땅으로 부터 떼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지도 모른다.

소련의 사회주의가 국가사회주의로 변절되었을 지라도 저자는 사회주의의 정신이 2차 세계대전후 자본주의의 문제를 바로잡는데 기여했다고 말한다.복지국가의 담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복지국가의 담론도 채 50여년을 버티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기업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노동계급은 추락하고 빈곤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다국적 기업은 전방위 압박을 통해 '세계의 노동자여,포기해라'라고 말한다.미국은 터무니 없는 전쟁을 계속함으로써 자신의 경제를 끊임없이 돌아가게 만든다.

저자가 멕시코 출신이라는 것은 최근 한미FTA 협상을 멋드러지게 해치운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세계화라는 이름의 '야만적 자본주의'가 국민 경제와 그 영역 안의 사람들을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보여준다.세계화는 경제 식민화를 통해 국민국가의 틀을 흔드는 거대한 기획이다.그 흐름은 너무 거대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또 직접적이기 때문에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접근하다가는 함께 공멸의 수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물론 어찌 되도 기업가들과 일부 상류층은 문제 없다.)

저자는 '세계화가 두려운 사람들이여,단결하라' 라고 말한다.정말 궁금한게 이 점이다.한미 FTA 협상이 있을 때 나는 두려웠다.그 결과가 미칠 일상영역의 변화때문이다.심각하게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아니어도 자본의 힘의 논리에 질질 끌려다니며 회사가 시키는 데로 할 수 밖에 없는 강아지가 될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정부의 FTA 홍보가 성공적이어서 그럴 수 도 있다.하지만 그 보다 발등에 불 떨어진게 아니니까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정답처럼 보인다. 최근에 어떤 사람은 그런 말도 했다 .

'뭐 국가가 하는거에 그렇게 반대하지 맙시다.국가가 다 잘돼어야 우리도 잘 사는 거니까.그리고 실제 피해가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9를 위해 1이 희생되는건 어쩔 수 없지요.요즘 세상이 그렇잖아요.'  회의 중에 발끈해서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반FTA인데요...만약 5를 위해 5가 희생되는 상황이면 어떡하지요?(사실 1을 위해 9가 피해본다면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죽여서 이야기했다)' ..

'뭐 그렇게 본다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균형감각을 갖자구요.' 내가 보기에 이 친자본주의자이며 개발론자인 이 분은 사실 '신자유주의'가 뭔지 책 한권도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그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경전이 있다.그 경전의 십계명은 이렇다.

"1.시키는 대로 하자....2.시키는 대로 한다 ...3.시키는 대로 하는것이 좋다...4.시키는대로 다시 한다...."

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줄 서서 걷는데 머리는 필요 없다.그건 척추의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잘못 말했다.줄서서 걷는데도 머리는 필요하다.어떤 줄에 설 것이냐? 어떻게 따라가야 밉보이지 않고 오래 오래 충견이 될 것이냐? 대학 졸업후 회사 생활 10여년에 머릿 속에 고작 남은게 그것이라면 도대체 인생을 왜 사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줄서서 가는데만 익숙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어디 어제 오늘 일이냐만은 요즘은 그런 것들때문에 좀 지친다.(이것도 순환과정을 거쳐서 곧 회복될것이긴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했다는 '무사고는 죄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제발 제발...'왜 그렇지?' 라고 묻고 좀 살자.뭐든 좀 묻자.....WHY ?

<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쉬우면서도 핵심을 이야기하는 만화책이다.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단점은..자본가와 다국적기업,미국 등을 '악'으로만 묘사한다는 점이다.(삐라의 특성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똘이장군 생각난다.) 사실 '적'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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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4-30 22:49   좋아요 0 | URL
리뷰 참 좋아요. 드팀전님께서 추천하시는 책이라면, 당근 믿고 삽니다. 애들한테 읽혀도 좋을까요?

드팀전 2007-04-30 22:58   좋아요 0 | URL
ㅋㅋ..의식화 교육시킨다고 압박 받으실텐데...^^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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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처음 만난 것은 십 여년전이다. 학과 사무실에 서가가 하나 있었다.초등학교에 있는 학급 도서관 같은 성격의 것이다.전공서적들과 맑스,현대사에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루었다.<소비의 사회>는 마르크르,엥겔스,레닌 속에서 하얗게 할딱이고 있었다.

책의 표지가 그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표지가 그대로인 것 처럼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에 대한 나의 이해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발전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소비의 사회>는 보드리야르의 저서중에서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한다.(그러나 이 '쉽다와 어렵다'는 상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그건 보드리야르 전문가들의 입장에서이다.그래서 지금도 결코 쉽게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단지 십 여년전보다 두께가 두꺼워진 '지식의 먼지'로 인해 좀 더 뻔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점,또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소비'문제에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정도 일 것이다.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문장을 건너면서 보드리야르의 '전복적 사고'와 '혜안'에 감탄한다는 것이 그것이다.수 십년전에 만든 비틀즈의 앨범<페퍼상사의 고독씨 클럽밴드>을 지금 들으면서도 감탄할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1부 <사물의 형식적 의례>에서는 '사물의 풍부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관심이 간다.소비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는 당연히 '풍부함'이다.'사물이 풍부하다.'는 것은 언제나 자본주의의 미덕으로 칭송되어왔다.탈북자들이 바라보는 대형 할인 마트의 풍성함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의 승리였다.또한 그들의 벌어진 입을 바라보는 자본주의 시청자들에게 역시 승리의 도취감이 발라진 마취제를 쳐넣었다.자본주의가 승리 했는지 공산주의가 승리했는지 알 길 없지만 '풍부함'이 승리를 거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자본주의의 풍부함은 생산의 신화를 통해서 완성된다.갈브레이스의 주장을 빌어 보드리야르는 '생산된 것은 생산되는 순간 신화가 된다'는 '생산의 신화'를 맹렬히 비판한다.생산이라는 것은 통계적 장치를 통해 사회가 발전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그러나 실제 생산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파괴'가 선행되어야한다.즉 풍부함을 넘어서는 풍부함은 '낭비'라는 형태로 생산의 바퀴를 돌리고 있다.보드리야르는 교통사고를 소비사회의 가장 큰 해프닝으로 꼽고 있다.쉽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일게다.교통사고 나면 새롭게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참 많다.즉 교통사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란 것이다.교통경찰 먹고산다.렉카차 회사도 먹고산다.병원 응급실도 교통사고 없으면 쫄쫄 굶는다.또 재수없어 사망자 나오면 장례식 장도 좋은 일이다.자동차 회사는 좀 더 안전한 차를 만든다고 하고 가격을 높일 것이다.부품회사들도 더불어 좀 먹고 살만해진다.좀 극단적으로 말했지만 교통사고라는 단순한 파괴 행위는 사회의 부가가치를 여러측면에서 많이 높여준다.생산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통계상의 체계는 '사회적 비용'이란 것을 고민하지 않고 그저 GNP의 수치만으로 성장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과 파괴'의 직접적인 거래관계 한 가운데 '소비'가 위치한다.이러한 소비는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의 소비는 '유도된 소비'이며 '생산성의 명령'에 복종하는 소비라고 말한다.

2부 <소비의 이론>은 보드리야르의 소비론의 핵심이다.여러가지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득하다.먼저 '풍부함'에 대한 의견을 계속 이어간다.소비사회에서 '풍부함=행복'으로 이해된다.보드리야르는 이것이 평등의 신화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행복을 입증하기 위해 '계량화'를 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어째되었든 '행복'은 사물과 기호로 측정될 수 있는 복리,물질적 안락함으로 표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그래서 75평 사는 사람이 24평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해 보이거나 행복에 가까운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은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소비의 이상에서는 제외된다.청담동 뷰티크 샵에 가서 가난한 날의 행복에 대해 읆어?..매장 직원들이 안습할 것이며...그 분이 나가신 후에는 배를 잡고 웃을 것이다.소비의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배제된다.보드리야르는 '수치'에서 눈길을 거두고 '해석'하라고 주문한다.소비 사회가 풍부함으로 인해 평등을 주느냐 불평등을 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즉 성장을 통해 더많은 사람이 풍부함에 접근할 기회를 갖는 다는것은 거짓이라는 것이다.보드리야르는 경제성장의 중심에 자립잡는 것은 '왜곡의 과정이며 성장의 구조와 진정한 의미를 주는 것은 왜곡비율'이라고 말한다.부의 절대량에 상관없이 '성장은 불평등에 의존한다'.

흔히들 '소비'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한다.그러나 나의 욕구가 어떤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지 생각해보지 않는다.그냥 그게 좋아서...그냥 그게 예뻐서...그냥 믿음이 가서.... 이러한 욕구의 무의식화는 사실 '생산성의 욕구'이다.길게 말해 불필요할 만큼 단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욕구의 조건지어짐' 이 그말이다.이것은 '차이화'라고 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개성화'라고 하는 것들이 체제의 완벽한 그림 안에서는 조건지어진 욕망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리바이스 501을 입을지 '캘빈 클라인'을 입을지 고를 자유뿐이다.그래봐야 청바지인데 그걸 입고 스스로 개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개성을 사랑하는 젊은 층들이 거리에서 보면 전부 유사한 개성으로 몰개성화된다는 것은 '기성품 사회'의 증거이자 '욕구의 조건지어짐'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의 핵심 개념은 '사물의 기호와 차이'이다.포스트모던의 대표학자 보드리야르가  후기구조조의자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이다.현대 사회에서의 모든 것들은 '기호'로 교환된다.그냥 쉽게 이해하면 '타워펠리스'라는 말은 '기표'이고 '타워펠리스'라고 할 때 그걸로 상징되는 부가 '기의'가 된다.각그랜저는 과거 '부'의 상징이었고 요즘은 '깍두기'의 상징이다.이게 다 '기호'다.그 내용에 해당하는 기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움직인다.언어가 그렇지 않은가...소비 사회의 사물들 역시 사물의 사용가치는 점점 탈취되고 '기호'로서 작용한다.그런데 '기호' 놀이는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청춘의 기억을 함께 나눈 고물 티코 자동차가 있다고 치자.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자동차지만 '기호' 놀이에서 '티코'는 '싸구려 경차'이거나 '아줌마들 수퍼 갈 때 타는 차'이다.'기호'에는 '타인과의 공유'가 필요하다.그게 요즘 대통령도 좋아하는 '코드' 라는 것이다. 기호가 이해되려면 '코드'가  맞아야 되는 것이다.국내 명품들로 설명하면 아주 쉽다.국내에 명품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품목들은 대개 누구나 알만한 '대중명품'이다.왜 있지 않은가? 불가리,팬디,까르띠에 등등.... 진짜 소수만 아는 명품은 잘 팔리지 않는다.가격도 가격이지만 그걸 해도 아무도 모른다.코드의 확산이 안되있으니까 그게 짝퉁인지 명품인지 뭔지 알게 무엇인가.대한민국의 명품은 '대중명품'으로 '코드화'되어 있다.

재화와 차이화된 기호로서의 사물의 유통,구입,판매,취득은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활동이며 코드인데,그것에 의해서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말한다.이것이 소비의 구조이며 그 언어이다.

차이라는 것은 소비에 있어서 가장 큰 동력이다.부르디외는 차이를 '구별짓기'로 설명했다.하지만 차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보편화되는 경향이 있다.한때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개나 소나 다 하게된다.그렇게 되면 애초 그룹은 또다른 차이를 위해 다른 블루 오션으로 건너간다.즉 차이는 차이 상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부르디외는 차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차이화의 구조적 논리가 있으며 이 논리가 개인들을 개성화된 것으로 즉 서로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개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행위에서조차도 개개인이 순응하는 일반적인 모델과 하나의 코드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그는 차이화를 위한 경쟁을 '유희적인 추상경쟁'이라고 말한다.

3부 <대중매체,섹스 그리고 여가> 에서는 소비사회와 대중문화 사회의 상호관련성에 대해 설명한다.중요한 개념은 '르시클라주'이다. 재교육,재학습 등으로 번역된다.보드리야르가 제시하는 예를 들면 조금 더 쉽다.전원 형태의 자연이라는 것이 좋은 예가 될 듯하다.흔히들 전원주택으로 재개발된 자연을 실제의 자연과 구분하지 않는다.전원 생활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실제 자연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그럼에도 그 둘은 혼재되어 미디어 속에 비춰지고 또 인간의 무의식속에 교육된다.자연은 원래 본원적이고 특수하면 총체적이다.하지만 현대인의 의식 속에 자연은 부정적인 모습이 거세된 상태의 것이다.보드리야르는 '유통과정에 재투입된 자연의 기호의 소비된 모습'이 르시클라주된 자연이라고 명한다.유행은 문화의 르시클라주이며 건강검진은 의료의 그것이다.

이외에도 광고,키치,팝아트,매스 미디어 등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시선은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유효한 구석이 많다.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는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는 몇 년전부터 불기 시작한 몸짱신드롬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많은 문제를 던진다.관리된 나르시시즘과 기호와 유행의 피부를 입고 있는 현대인은 자신의 육체를 사물하하고 있다.실제 자본에 포섭되는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도 육체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이라는 이름을 쓰고 이용된다.육체와 관련된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본원적인 총체성을 읽은 성의 문제까지 확대된다.잘 먹고 잘 사는 법에 강박증 걸린 최근 TV 프로그램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면 <육체>와 관련된 장만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소비의 사회>는 결론에서 문학적이게도 부와 명예를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거울이미지를 판 <프라하의 학생>의 예를 든다.상품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둔 자아는 결국 자아에게서 소외되고 사물은 복수한다.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소외의 극복은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소외는 악마와의 거래의 구조 그 자체,상품사회의 구조 그 자체이기때문이다.<프라하의 학생>은 소비의 유희성이 점점 소비의 비극성으로 변해가는 소외를 보여준다.중세 사회가 신과 악마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었다면 소비의 사회는 소비와 그 저항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반소비주의 역시 소비사회에 포섭되는 것을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보드리야르는 예리한 분석에 비해 적절한 대안을 이야기 해주지 못한다.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답답해질 수도 있다.'소비의 하얀 미사를 걷어치워라' 라고 외친다고 소비사회로 부터 달아날 수 없다.하지만 보드리야르에게 모든 공을 넘길 수는 없다.학자의 몫은 거기까지 일 때가 많다.

진정한 고민은 지금부터이고 나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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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풍각쟁이야 - 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장유정 지음 / 민음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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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음악학자 강헌의 대중음악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강헌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었다.떡진 머리에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왔다, 전날밤 세게 돌렸던게 분명하다.그 정도 몰골이라면 경험상 새벽 3시는 넘겨야 나올 수 있는 자세였다.그런데 강의실에서는 별로 탓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그가 늦은 30분은 청강생들에게도 주독을 날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맨정신의 강사가 들어왔으면 강의실 내에서 나는 감냄새를 눈치챘을 것이다.하지만 강사와 학생들은 술 먹은 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침묵의 카르텔'로 지난 밤의 기억은 묻어두었다.

강헌의 이야기 중 핵심적인 것은 '대중음악 자생론'과 '대중음악 이식론'의 문제,그리고 '일제시기 대중가요에 나타난 친일성'등 이었다.강헌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는 술이 깰 때쯤 알콜기운과 함께 머릿속에서 증발해버려서 알 수가 없다.그 중 유독 기억나는 것은 '감격시대'( 거리는 부른다/환희에 빛나는...)의 친일성에 대한 강헌의 비판이었다.강헌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당시 일본군의 행진가와 비교하며 들려주었기 때문이다.그 때 까지만해도 '해방의 기쁨'을 표현한 노래로 알고 있던 가요가 '친일가요였'다니....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비분강개하다가  술기운에 또 졸았다.

가수가 되지 못한 한을 품은 저자 장유정은 <오빠는 풍각쟁이야>에서 1930년대 대중가요의 형식과 텍스트를 분석한다.(왜 1930년대냐? 전기녹음이 29년에 도입되고 음반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어필한 시기이다)강헌이 술 먹고한 강의에서 다루었던 주제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강헌이 어떤 입장이었는지는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다,다만 그가 김창남,노동은,이영미등과 비슷한 선상에 서 있다고 추론한다면 저자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대중가요를 바라본다.물론 위의 저자들 역시 조금씩 입장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 내용을 내가 잘 알지도 못한다.단 <대중가요 이식론>과 <대중가요 자생론>의 구분으로 거칠게 나누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먼저 <대중가요 이식론>은 일제 강점기의 대중가요가 전통과 단절된 채 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계보를 따져보면 '창가-유행창가-유행가'라는 도식을 그릴 수 있다.일본 번안 창가가 일본 자본과 손을 잡으며 유행가로 흡수된다.이 유행가는 왜곡된 현실 인식을 조장하고 현실 순응,현실 도피를 그 목적으로 삼는다.저자는 <대중가요 이식론>과 <대중가요 자생론>이 다른 층위를 서로 연구하고 있다고 전제한다.그리고 비판의 화살을 '이식론'쪽으로 던진다.우선 '이식론'은 대중을 단순히 수동적인 소비자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이식-주입'이라는 대중문화 접근에 대한 원론적인 지적이다.저자는 비판의 대상이 된 30년대 트로트를 분석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의 강화내지는 순응을 위해서만 작동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트로트 가사에 나타나는 애상미,허무감,상실감,수동성 등이 ('목포의 눈물', '황성의적' 등) 소극적 저항으로서 초극의 의지를 갖는 민요의 '한'의 정서와 연을 맺는 다고 말한다.또한 일제 강점기에 나타다는 '기쁨과 희망'의 정서 ( '감격시대' 등의 노래) 역시 일제를 칭송한다기 보다는 '좌절된 미래'에 대한 '웃음으로 눈물 닦아내기' '희망으로 삶을 버텨내기'라고 읽는다.저자는 대중 가요가 대중의 삶과 관계 맺는 진정성에 촛점을 맞춘다.

또한 저자는 <이식론>이 1920년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전통가요의 배제했다는 점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식론'은 1930년대 대중가요를 일본음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트로트'(유행가)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당시 대중들과 관계 맺고 있던 다앙한 장르의 '대중음악'의 면면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1920년대까지 지배적이었던 '전통가요'(가사,시조,민요 등등)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화와 접목되면서 '대중가요'에 그 주두권을 내주게 된다.저자는 '트로트'가 가장 많은 사람을 받았지만 '1930년대의 대중가요=트로트'라는 공식에는 부정적이다.저자는 '트로트' 역시 당시 '대중가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전통가요'가 밀려난 30년대 조선의 대중음악 시장은 '재즈송,신민요,만요,트로트'가 서로 각축을 벌이는 문화경쟁의 장이었다.

장르별로 보면 '재즈송'은 서구 팝음악에 영향을 받은 곡이다.주로 번안곡이 중심이된다.'재즈송'은 1930년대 도심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던보이/모던 걸 등으로 상징되는 '근대성'과 관련이 있다.주로 도시의 향락과 퇴폐적 정서가 주를 이룬다.이난영의 <다방의 푸른꿈>의 경우 직접 들어보면 블루노트계열이 쓰인 도시적 블루스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재즈송'은 1940년대 일본이 연합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적성국의 음악이라하여 금지된다.

'신민요'는 '대중가요의 자생론'에 가장 큰 힘이 될 만한 장르이다.('우리 것을 추구하던 생산자와 우리 것을 갈망하던 수용자가 만들어낸 자생적인 대중가요'라고 한다.)'신민요'는 말 그래도 민요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창작자가 있는 가요이다.(예를 들면 김세레나가 리메이크한 <갑돌이 갑순이>같은 노래다.)주로 경기소리의 영향을 받았으며 악기 편성에 있어서 과거보다 다양한 경향을 갖는다.대개  전통가요 창법을 연수받았던 기생들 음반 취입을 많이 했다고 한다.

'만요'는 '웃기는 노래'이다.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오빠는 풍각쟁이' 또는 서영춘이 리메이크해서 기억하고 있는 '서울구경' (시골 영감 처음타는 기차놀이에..차표파는 아가씨와 실랑이하네..) 등이다.(오빠는 풍각쟁이야도 개그맨 이성미가 개그 코너화 한 적이 있다.) '만요'는 '시대성'을 핵심으로 하여 '해학'과 '풍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김대행은 이 웃음이 '웃음으로 눈물닦기'라고 말하며 삶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언어적 해결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희망이 없는 시대에 웃음으로 카타르시스를 구한것이 '만요'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트로트'는 1930년대 최고의 인기장르였다.다른 모든 장르를 함한 것 만큼의 음반녹음이 남아있으며 위의 장르 중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르이다.트로트는 일본의 엔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저자는 일본음악 역시 서구 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으로 본다.그렇기 때문에 '트로트=왜색'이라고 쉽게 단언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그 기원에서는 일본의 영향이 있지만 오히려 '문화의 다양한 교류'에 의해 발생하고 토착화하여 성장한 장르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트로트의 발전과정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트로트의 가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하나는 '시대성'을 반영한 곡,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편성'을 반영한 곡이다.저자는 1930년대에 불려져서 아직도 애창되는 곡들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본다.'시대성'을 반영한 두 목숨의 저승길'(1930년대 사랑지상주의가 불러온 동반자살을 소재로 한 곡)등은 당시에는 인기를 끌 수 있었겠지만 그 시대가 바뀌면 보편적인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된다.'시대의 풍자'를 토대로 하는 '만요'가 수명이 짧은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반면 최초의 대중가요라고 할 만한 <황성의 적>(황성 옛 터에 달이...) <타향>(타향살이 몇 해 런가) <애수의 소야곡>(운다고 옛 사랑이..)등은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임의 부재에서 생기는 정서' 에 보편적으로 편승하기 때문에 현존할 수 있는 것이다.트로트가 현재까지 사랑을 받는 것을 설명하는데 유의미하다고 보여진다.물론 '임의 부재에서 생기는 정서'(김소원의 '진달래꽃'같은 정서이다.) 를 현 시대에도 우리민족의 '보편적 정서'라고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보편적인 정서'라는 것도 '문화교류'에 의해 어느정도 재편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또한 '보편적정서'라는 것의 실제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기기는 한다.(경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과거 대중가요 연구의 주를 이루어온 전통가요의 단절론에 대해 반기를 든다.즉 '우리나라의 음반사가 전통의 일방적 쇠퇴와 새로운 양식의 대체라는 비극적 성격을 띠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대중가요의 주요기능은 계몽이라기 보다는 삶의 위안이었다.이를 무시하고 대중가요에 진지함이 없다며 가벼운것 만을 비판하는 것은 대중문화의 속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본다.하지만 저자는 1930년대 트로트의 예를 들어서 대중가요가 '삶의 진정성'을 살피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만 한다고 본다.(현대 트로트는 진정성은 탈취되고 퇴폐,향락의 정신만 남았다.)그 근간에 민요가 가진 '건강성과 진정성' 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나를 하나로 묶어주는 대중가요만이 시대를 건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결론은 좀 모호하다.민요의 텍스트가 가진 장점을 대중가요에 반영하자는 취지이지만 저자의 전공을 너무 살려버린 느낌이 강하다.사이버 문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서 대중음악에서 민족음악의 성격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문제는 저자의 몫은 아닐게다.대중음악의 성공에 저자가 말하는 텍스트의 문제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대중음악의 성공은 곡이 가진 특성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윤도현의 <아리랑>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아리랑>을 락으로 편곡한 것 말이다.이것은 단지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민족적 정서가 과도하게 분출될 수 있는 장이 펼쳐져 있어서 가능한 성공이었다고 보여진다.텍스트에 '건강성과 진정성'을 찾는 노력은 현재 노래운동을 중심으로 했던 포크가수들이 그 맥을 있고 있다.(모던락 하는 친구들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병적인 우울이 선뜻 선뜻 보인다.)그렇지만 대중음악계에서의 위치는 미미하다.소수의 음악인 셈이다.(..이럴때면 김광석이 아쉽다.) 문제는 '건강성'을 담보한 음악이 어떤 실험과 혁신을 통해 대중들에게 회자되게 하느냐 하는 점이다.이것은 역시 가수가 되지못한 학자보다는 가수가 되어버린 딴따라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신나라에서 유성기로 듣는 가요사 라는 형태의 유성기 복각음반집을 발간했다.다행히 그 음반이 회사 자료실에 있어서 틈틈이 주요 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운이다.)30년대 가수들의 창법은 순수하다.꺽기가 트로트의 필수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지만 30년대 가수들은 지금 같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았다.이 책같은 경우 유성기 복각음반 컴필레이션CD같은 것이 하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이애리수의 <황성의적>은 어떠했는지...얼굴없는 가수 미스 리걸의 목청은 어떠했는지...기생가수 왕수복,선우일선은 또 어떠했는지.. 비용부담이 있었겠지만 그 정도 기획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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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4-09 11:58   좋아요 0 | URL
이식론 운운 하는 자들은 논리를 모르는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식민지라면 그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이 명백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 과거를 부정하는 것을 논리라고 하는 것이 웃길 따름이죠.
문학자들중에서도 7.5조를 부정하는 넘들이 많아요. 3음보라고 우기죠 ㅋㅋ
그게 그건데. 일본에 있다고 그게 싫다는 말은,
그럼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이란 말도 다 버려야 한다는 말인데... 우습죠. ㅎㅎㅎ
건강함은 딴따라의 몫일 수 있죠.

드팀전 2007-04-09 13:16   좋아요 0 | URL
여기서 비판이 되는 성공회대의 김창남교수나 이영미씨 등입니다....이들을 논리를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긴 좀 그렇구요.아무래도 '트로트'가 '전통가요'로서-요즘도 트로트가수들은 전통가요라고 부릅니다- 마치 우리 고유의 음악인것처럼 둔갑되는 상황에서 문제의식이 출발했겠지요.거기에 노래가 가진 사회적의미를 살펴서 '노래운동'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의 80년대 민족민중문화론의 의식성도 한몫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저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들은 1980년대 당시의 한국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진단을 내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래 운동을 강조한 결과,일제 강점기 대중가요를 '거짓의 노래'로만 바라보고 이후 대중가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마저 낳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그러나 198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진지한 고민은 분명히 의의를 지닌다고 본다."......이식론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흔히들 좌파 문화운동가였다는 점과 글샘님의 좌파적 지향사이에 딜레마가 생기네요.^^ 결국 선별적 수용이라는 답으로 나오겠지만.^^.....일단 거칠게 보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거짓'으로 보는 좌파문화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물론 이건 저자의 시각은 아니고 제 비약입니다만...과연 '체제'는 전부 '매트릭스'일까요? ...

글샘 2007-04-09 20:24   좋아요 0 | URL
과연 '우리만의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우리의 것은 아리랑 뿐인지... 운동가요만 긍정적인지... 그렇게 치자면, 유신시대의 건전가요(좋아졌네, 조국근대화의 기수... 같은) 들의 자리는 어딘지,
또 그렇게 치자면, 유치원에서 배웠던 숱한 노래들이 몽땅 일본 어린이 노래의 표절임이 분명한데,(나비야, 주먹쥐고 등등) ... 너무 우리것 아닌 것을 부정하는 시각이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좌파는 아닌 거 같애요. 기존 문화를 무시하는 민중문화론 이런 거 딱 싫어하거든요. 머리로는 따라가도 마음은 아닌... 운동가요도 물론 좋을 수도 있지만, '해골이 두쪽나도 죽는다' 이런 건 싫어하기도 합니다.
저는 남들 다 하면 싫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ㅋㅋ 지향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짱꿀라 2007-04-09 23:04   좋아요 0 | URL
어찌 드팀전님의 리뷰를 읽고 있자면 감탄에 감탄이 나옵니다. 부드러운 선율이 계속이어지듯 글의 흐림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분들 제가 몇 분 보지 못했는데 역시 드팀전님은 일품의 문장을 가지고 계십니다. 부럽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드팀전 2007-04-09 23:42   좋아요 0 | URL
글샘님>'우리만의 것'은 존재하지 않지요...저자의 주장 역시 그 선상에 있습니다.유신시대 건전가요는 프로파간다 송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의무적으로 삽입해야되었으니까요..'들국화'는 유신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잔존하던 의무적인 건전가요를 무반주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넣어서 예술적으로 들리게 만들었던 멋진 밴드였지요.^^
기존 문화를 거부하는 민중문화론은 저 역시 거부하지만 시대적 특수성을 반영해주면 이해도 가능합니다.기존의 대중문화가 실제 이데올로기적이면서 탈이데올로기적으로 작용했기때문에-사실 그게 이데올로기의 작용방식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의 요소가 컸다고 봅니다.글샘님이 예로 드신 <파업가>는 특정목적에 사용되는 특수한 노래로 봐야겠지요.'투쟁가'는 동일선상에 놓인 반대편 예를 들자면 '군가'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고 봅니다.리듬이나 멜로디 역시 비슷하지요.80년대 문화운동가들이 만들고자 했던 '노래운동'의 성격과는 조금 다른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노찾사'같은 경우가 김창남 등이 주도했던 '노래운동'의 예가 될 듯합니다.'노찾사'는 좋아하셨겠지요.^^
산타님>...** 민망하게 자꾸 ..쑥쓰....걍 대충씁니다.오늘 이 글은 아침 회의를 기다리다가 간부회의가 길어져서 쓴 글인데 ..ㅋㅋ 쓴 시간 보이시죠.아침 9시 18분...결국엔 아침 회의를 안했답니다.고맙죠 뭐.^^ 오늘 책을 몇 권 샀는데 출판사 돌베게 의 카탈로그가 들어있더군요.보관함에 몇 권 넣어둔 옛 선인들의 책들이 많았습니다.님이 생각나더군요.^^ 더운 여름에 보려고 꼽아놓고 있습니다.여름에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딱딱한 책은 피하는 편입니다.산문들이 좋더라구요.^^ 특히 옛분들의 여백있는 마음이 더위를 쫓는데 일품이었습니다.좋은 책있으면 여름용으로 추천해주세요.

점판 2007-10-19 18:35   좋아요 0 | URL
곡조풍(曲調風)을 보고('감격시대'를) '친일 가요'냐 아니냐 따지는 강 헌이라는 사람, 정말 딱하다. 일제 당국(총독부)의 검열을 피하자면 가사도 은유적으로 표현해야 하고 곡도 일부러 행진곡풍으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모른다면 그 시대에 무지하기 짝이 없는 것이거늘---. 비정상적인 시대에는 본의와는 다르게, 아니 정반대로 처신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도 단순 무지하게만 소설을 쓰는지---. 그리고, 무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도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그 당시, 바로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하자말자 조선 민중이 모두 일제의 패망을 확신에 가깝도록 점치던 때였고, 일제도 스스로 망조(亡兆)가 온 것을 의식했는지, 몽양 여운형을 화의(和議) 특사(特使)로 중국(장개성)에 두세 차례 파견한 숨은 역사도 있는데(결국 장개석이 만나 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제가 얼마나 다급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인데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 모여 참으로 별별 소리 다하고 있네! 그리고, 어느 나라나 민족의 역사를 봐도 시대가 불안하거나 전시에는 꼭 유언비어나 참요(讖謠)가 민중 사이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이런 이치를 모르다니! 또 하나, 중일전쟁 시기에는 가요계에서 '친일'이니 뭐니 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가요도 나오지 않고 있던 때인데(태평양전쟁 기간이 되어서야[1941년 후반쯤] 일제가 평상시에 눈엣가시 같은 '유행가'란 명칭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가요곡'이니 '신가요'니 하는 명칭으로 불렸다는 것도 좀 알아 주었으면='감격시대'는 '유행가'라고 음반에 적혀 있고=), 시대 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로고!그래, 역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요 연구가'라고 하니 ㅡ 이런 '절름발이'류도 다 있나, 그래?
 
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혁명을 팝니다>는 매력적이다.책에도 언급되는 단어를 빌자면 'cool' 하다.부제 부터 cool 하지 않은가? '스타벅스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체게바라..^^' (국내 출판사가 붙인 건지 원래 부터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책 속에 체게바라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으니 체 게바라가 어떤 커피를 좋아했는지 애써 찾을 필요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대중문화서 답게 '대중적' 이라는 것이다.'반문화에 대한 비판' 이라는 큰 목적하에 다양한 문화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이 예들은 커트 코베인부터 <매트릭스><반지의 제왕>까지 다양하기까지 하다.또 하나의 즐거움. '반문화'의 이념형을 제시한 유명한 분들이 모두 모두 도마 위에 올려져서 모듬회 취급을 당한다.물론 나는 그분들의 얼치기 문하생이다. 그들의 혜안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권위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왜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존경하는 선배라도 딴지 걸고 시비걸고 싶은 마음.<혁명을 팝니다>는 내 개김성에 대리만족을 준다.(그렇다고 내가 얼치기 문도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나는 여전히 얼치기 문화생일뿐 그들을 배반할 생각은 없다.)이 책에서 씹히는 사람들의 면면은 '반문화 지구방위대' 수준이다.반문화'의 교조라 일컬을 만한 맑스는 물론이고 프로이트,그람시,보드리야르,푸코,<노 로고>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과로하는 미국인>의 줄리엣 쇼어,<학교없는 사회>의 이반 일리히,<맥도날드 맥도날드화>의 조지 리처.....앨라니스 모리셋,제레미 톨킨,<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선불교,생태주의..<티벳 사자의 서><역경>....북미 인디언....종이봉투....

 저자들은 좌파 이론을 '반문화'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그들은 '반문화' 라는 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기 드보르가 말하는 자본의 스펙터클이라는 것은 애초 없으며 좌파가 상정하는 '체제=매트릭스'라는 관념 자체도 몽땅 몽땅 거짓말이라는 것이다.그럼에도 사회에 왜 '반문화'정서가 만연하는 것일까? 저자들은 그 연원을 밝히라는 호통에 두 명의 주범을 고백한다.맑스와 프로이트다.저자들은 니체를 거론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니체까지 더한다면 폴 리쾨르가 말한 '의심의 3인방'...고스톱으로 말하면 '의심의 3광'.. 3점이 딱모인다.결국 저자들은 ''의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매트릭스로 보고 있다.이 체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전복되어야 할 구태일뿐이다.그럼에도 혁명이라는 것이 왜 이리 더딜까? 맑스는 노동자들이 '상품물신주의'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데 혐의를 둔다.거기에 안토니오 그람시는 지배계급들이 도덕적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를 주도하는 '헤게모니'론을 들고 나온다.자본주의는 '저항'과 '포섭'을 통해 체제에 반대되는 것들의 정치성을 배제시키고 이미지만을 수용하여 '반대'를 체제 내로 수용발전 시킨다는 것이다.(대학 1학년때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저자들은 프로이트가 이론이 아니라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것부터 못마땅하다.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사회와 문화를 '억압'으로 파악한다.'반문화'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 외에 정치적으로는 나치즘의 획일성이 '반문화'를 부추겻다.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이 '반문화'담론이 커지는데 공여했다는 것이다.저자들은 책 중간 중간에 '파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또하나 꼽자면 유럽의 68혁명과 미국 민권시대의 급진적 자유주의가 '반문화'의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저자들은 68세대,민권 세대-베이비붐 세대-들이 60-70년대의 수혜를 입고 성장하여 현재 사회와 담론시장에서 좌파적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본다.우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월간조선 조갑제가 몇 년전에 30대들은 이제 40대 이상의 보수주의자와 20대의 신보수주의 사이에 포위되었다며 더 공세를 펴서 싹을 없애자 라고 했던 것과 유사하다.조갑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386세대들이 그다지 문화적을 급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의 '반문화'같은 것은 그닥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이제 386세대는 문화적으로 7080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트로트보다는 조금 낫고 젊은 애들이 듣는 락보다 후진 그런 음악이나 듣는 세대로 소비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반문화'의 오지랖은 상당히 넓다.책 초반부만 보면 흔히 말하는 대중문화에서 히피,펑크운동 정도를 생각하게 된다.흔히 말하는 '하위문화'정도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그러나 저자들의 '반문화' 개념은 더 멀리간다. '주류문화'에 반대/저항 하는 문화 전체를 '반문화'로 보고 있다.다.현재 '주류'문화가 '자본주의 문화'라고 본다면 그에 반대되는 문화들이 '반문화'의 자식들인 셈이다.그 안에는 반달리즘이나 사회적 일탈에서 반소비주의,반세계화,심층적 생태주의,형식화된 선문화,대체 의학까지 포함된다.

이 책에서 첫번째 비판되는 것은 '반문화의 급진주의'이다.'반문화'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순응' 아니면 '전복'으로 저자들은 규정한다.'체제' 가 은폐되어 있는 매트릭스이기 때문에 그냥 살던가 아니면 빨간약인지 파란약인지를 먹고 새로운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다.이런 급진주의는 개혁으로 체제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해봐야 오십보 백보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무시한다고 비판한다.특히 문화적 급진주의는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까지 백안시하기 때문에 치명적이라고 쓴소리를 한다.이 지점에서 '반문화'는 끊임없이 '자기급진화'경향을 갖는 것으로 묘사된다.'반문화'의 아이콘이 시장에서 소비되고 '지위 재화'로서의 위상이 떨어지면 다른 '아이콘/상품'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저자들은 '반문화'가 그 의도와 달리-의도 자체가 무의미하듯- 자본주의 시장에서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내는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체 게바라'가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저자들의 '반문화'의 상품화의 지적,체제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화와 급진성이 가진 문제의식등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가 크다.생태문제에만 놓고 봤을때, 일촉즉발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의식 변화'를 주장한다거나 일상에서의 실천적 과정에만 주안점을 두는 것이 가진 한계에 대해 일정 정도 같은 생각이다.물론 사회 속의 작은 개인의 실천적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생태주의는  도덕주의 운동의  느낌이 강하다.특히 개개인에게 부과하는 도덕율에만 너무 촛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순수한 윤리의식과 물아일체의 정신과 검소한 삶,공동체의 연대,의식의 계몽....(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말이다. ) 우리의 가치관에는 불교와 도교적인 사상이 서구인들과 다르게 몸에 박혀 있는 부분이 있다.이 세계로 들어가면 '훌륭한 개인'은 탄생하는데 '훌륭한 사회'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 요원하다. '개인의 의식 변화로 사회 전체를 바꾸자' 라는 말은 너무 지당하지만 텅빈 울림 밖에 되지 않는다.인류 역사가 쓰여지고 난 후 '의식변화'를 그렇게 외쳤는데 왜 아직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가? '의식변화' 가 애초부터 텅빈 목소리이거나 '의식변화'가 수 천년 동안 역사의 수레바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크게 다루어 지는 부분은 '반소비주의' 비판이다.'소비주의'는 엄격한 순응체계이다.이 책에서 여러번 씹히는 보드리야르는 소비주의를 '생산 기계의 필요조건에 맞추어 인간의 소비를 대량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과잉 생산은 필연적으로 소비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보드리야르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산업 체제는 대중들을 노동력으로 사회화했기 때문에 이 일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소비 세력으로 이들을 사회화,말하자면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불을 지르는것이 바로 광고이고 기업의 마케팅이다.저자들은 '총수요=총공급' 이라는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논리로 자본주의 잉여생산물이 소비사회를 강제했다는 주장에 반박한다.대신 이들은 제도학파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베블린'의 유한계급론을 인용해서 소비가 악이 아니며 현대의 소비는  '지위재화','방어적 소비' 등 '구별짓기'를 위한 자연스런 선택으로 본다.이 '구별짓기'는 '반문화의 지속적 상품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이에 대해 저자들은 '대중사회비판은 전체 문화를 억압과 순응의 체제로 취급하기 때문에 반란 스타일의 수는 잠정적으로 무한하다'라고 비웃는다.

반소비주의 문제에 있어 저자들의 시각은 지극히 시장중심적이다.그나마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광고 규제에는 동의하는 정도이다.광고나 마케팅 아니 소비사회 자체가 끊임없이 상품주기를 줄이고 지속적인 물량공세를 취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그저 소비자들의 본원적인 욕구가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자연스런 과정이라는 것만 강조한다.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거나 안이하다.산업체제 내에서 소비주의적 행위의 결과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지,체제 내에서 부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만 생각해 봐도 소비주의를 부추길 동인은 충분하다. 강준만 교수는 소비사회의 광고나 마케팅을 피하는 것을 '폭포수 아래서 우산을 들고 서있는 것'에 비유했다.엄청난 소비 자본주의의 물량공세를 그저 '유혹'정도로만 취급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편안하게 보는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에서 좌파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는 여러가지 공부거리를 남겨준다.그런점에서 이 책은 이들이 언급한 '반문화'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광범위한 주제를 이 정도로 풀어서 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친 비약이 발생하기도 한다.특히 몇 몇 좌파운동가들의 책을 비판할 때나 소비주의 문제와 관련된 예에서는 비약의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반소비주의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자전거 타기 모임에 갔더니 자기보다 비싼 자전거를 전부 타고 있더라....재개발을 반대하더니 결국 그 목적은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창고형 스튜디오가 엘리트적 지위재화로 작용하고 있더라...좀 유치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이들의 비약은 이런 뉘앙스일때가 있다. '당신 반소비주의자군.그렇다면 왜 돈주고 음악CD사서 들어.그것도 소비 잖아.라디오가 있잖아.공짜잖아.그게 반소비주의 아니야' '당신 빈민운동가라며...그런데 당신은 왜 자기집이 있어.당신 집 그닥 안하겠지만 그것을 팔면 대 여섯명의 홈리스들에게 집을 지어주겠구만' ....물론 이들이 이렇게 까지 말하지는 않았다만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한다.저자들은 '반문화'에 대해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사회가 어떻게 될 지 상상해봐' 라고 말한다.이 등식을 적용해보고 그 사회적 파장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물론 캐나다와 한국이 다르겠지만- '반문화' 세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담론 영역에서 '반문화'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현실의 '체제'에서 그들의 사상이 투영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그만큼 '체제'의 벽은 높고 사람들은 쉽게 '체제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단순비교를 해보아도 '생태주의자'가 세상에 많겠는가 '개발주의자'가 많겠는가? 담론 영역에서의 열세에 열이 받을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는 '문화'세력들이 훨씬 많으니 외로와할 필요는 없다.

또한 '반문화'세력이 모두 철없는 급진성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이론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이 상호관계를 갖지만 붕어빵처럼 동일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게 믿는 사람도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이 책에서 우호적으로 씹힌 줄리엣 쇼어가 그에 대한 답을 했다.'소비주의에 반대하는 길은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내일 당장 모든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잘라버리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다.그러니까 급격한 소비감소로 경제가 악화될 거라고 겁먹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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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3-31 09:08   좋아요 1 | URL
종잇장을 두고 화폐라 하고, 플라스틱 카드를 보고 신용카드라 믿는 현대의 신앙이 유일한 <문화>인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반문화'에 대해 상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겠지요... 정말 혁명에 대한 생각에 혁명을 일으켜야 했듯, 문화에 대한 인식에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애요. 문화 자체가 너무 비문화적이라서...
날이 흐린 토욜입니다.^^ 즐겁게 아기랑 아내랑 노세요~~

드팀전 2007-04-01 07:24   좋아요 1 | URL
^^..체제의 압박이 절대적이긴 한데요.이 책에서는 화폐나 신용카드의 역사성,현재성, 그를 지탱하는 경제체제들을 단순히 매트릭스라고 보고 무시하는 것은 그저 '반문화의 신화'라고 말합니다.제가 이 책의 주장과 저자들의 입장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하지만 공감하는 부분도 많습니다).자기의식의 강화도 좋지만 문제을 제기하고 내연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이 책은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유쾌한 대중문화서라고 생각합니다.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생각해볼 수있는 기회가 됩니다.바람구두님 페이퍼에 좋은 말이 있더군요.
적에게 얻을 것이 많다는...

Jade 2008-07-03 02:40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것보다 드팀전님 리뷰를 읽는게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듯....-_- 아직 제가 공부할 게 많다는 얘기겠죠? ㅋㅋ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 해냄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아이가 생기니 새로운 브랜드들을 알게된다.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맥클라랜,치코,베베카,브라이텍스 같은 상표가 요즘은 낯설지 않다.하지만 처음부터 그런것은 아니다. 몇 달 전 일이다. 아기 유모차를 사려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했다.나는 약간 놀랐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브랜드를 알고 있고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을지로의 '프린템스'백화점이 사실 라디오 광고로 많이 들었던 '쁘렝땅' 백화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 비슷했다.) 왠지 몰라도 아는척 해야 덜 쑥스러울 것 같은 묘한 감정이 일었다.미루어 생각컨데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새로운 브랜드들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줄리엣 B 쇼어의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우리의 아이들이 상품에 어떻게 포위되어 있는지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는 <나이키는 왜 짝퉁을 낳았는가?>가 청소년들의 소비주의 문화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면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조금 더 연령을 하향화 하여 '트윈세대' 라고 하는 4-12세 (우리로 치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아이들에게 만연된 소비주의문화의 본질을 읽어낸다.미국의 기업환경과 시장규모,관련 제도들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사례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 책에서 여러번 지적되고 있는 '어린이 광고'에 대한 규제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또한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상업화되고 있는 학교를 그리는 장은 미국에 비해 교육의 공적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강한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다.(미국의 경우 기업 스폰서가 수업 커리큘럼을 제공하기도 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기도 한단다.물론 해당 학교에 기부금이 들어간다.석유 메이저가 만든 환경관련 교재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함의할지는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마케팅의 천국이라는 미국의 상황이어서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미국화를 선진화로 믿는 나라이다보니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효한점이 상당히 많다.

우리의 아이들의 사회는 점점 더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2002년 미국을 기준으로 아이들의 구매력은 과거 10여년 전에 비해 약 400% 증가했다.또한 7살 정도의 아이들이면 300여개의 로고를 구분할 수 있다.아이들은 점점 더 광고에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브랜드 상품의 소유를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무슨 아이들이 벌써 그러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게다.사회학적으로 최근 트랜드를 못쫓아가고 있는 것이다.닐 포스트먼은 '유년기 소멸론'을 주장한다.텔레비전이 인쇄문화를 대체하면서 아무런 훈련없이 아이들을 성인용주제에 노출시켰고 문화적 트랜드 역시 유년기를 손상시켰다고 본다.또한 양육방식 역시 '게이트키퍼'에서 '평등'쪽으로 바뀐 점도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 세계로의 편입을 사고시켰다고 본다.

기업들은 아이들을 소비제국의 시민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한다.발달심리학을 이용해 '소비욕구의 자연화' (소비는 자연스렁 본능이라는 생각)을 퍼뜨린다.성별 고정관념 확산하는 성별구분 마케팅을 과학화한다.반기성세대 정서를 이용하기도 하며 차별성,가변성등을 특징으로 하는 '쿨'함을 이용한다.또한 이중메시지 전략을 이용하여 아이와 부모에게 다른 공략법을 개발하기도 한다.그리고 아이들의 '조르기'를  이용하여 부모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준다.

특히 텔레비전을 통한 광고는 이 분야의 꽃이다.한 광고인은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광고는 제품을 갖고 있지 않으면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광고이다.아이들은 특히 이 사실에 민감하다." 성인들의 경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정서적 안정성이 상품으로 인한 박탈감을 줄여 줄 수 있다.그러나 아이들의 경우는 직접적이다.컴퓨터게임 하나를 가지면 세상을 다 갖은 것 같고 그것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지는지 안다. 광고인들은 아이들이 가진 특성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마케팅에 활용한다.거기에 아이들이 가진 가치가 긍적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생각은 중요치 않다.광고는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일명 바이러스 광고가 그것이다.또한 또래집단의 중요성을 이용하여 입소문마케팅,알파키드(또래 집단내에 카리스마가 있으며 트랜드를 주도하는 아이,) 등을 활용한다.아이들에 대한 광고와 마케팅 전략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360도 세계를 창조하라' 즉 끊임없는 전면 공격을 통해 아이들의 요구로 부모의 지갑을 열게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문화가 아이들에게 주는 악영향은 무었일까? 줄리에 쇼어는 소비문화가 아이들에게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이미 많은 아이들이 상품의 소유를 가지고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물질주의에 물든 아이들은 끊임없는 부족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감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다.소비문화는 강한 불만,만족을 모르는 욕망,비교 의식등과 관련있다.또한 자부심의 결여는 그것이 약물이든 술,담배이든 의존성을 높인다. 식품,음료등 정크푸드에 대한 광고들은 아이들의 비만이라든가 각종 질병등을 유발하는 복지상태에도 직접적 결과를 낳는다.(대부분 슈퍼에서 파는 과자,빵 그리고 맥도널드 햄버거등은 쓰레기에 가깝다.물론 나 역시 가끔 쓰레기를 먹는다만..) 대부분의 소비문화 연구는 소비주의문화가 또다른 유의미한 활동등을 제한한다고 말한다.TV를 보거나 쇼핑하는 것 말고 할 것이 무척이나 많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 두가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책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소비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흥미롭다.반소비주의 트랜드에 기업이라고 가만히 있을리 없다.담론을 통해 이의 확산을 막는 것도 기업 마케팅의 몫이다.우선 광고가 어린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신어린이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상품구매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면 광고가 그 자부심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나이키를 신었는데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 에어를 신고 슬램덩크를 꽂았다면 뿌듯해진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앨런 캐너는 많은 청소년들이 소비문화를 따라가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기업측은 어린이들이 점점 영악해져서 광고를 선별적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이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아이들의 광고에 대한 판단력의 성장을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은 보류해놓아야한다.줄리엣 쇼어는 광고시장의 성장을 두고 광고의 직접적 효과의 예를 든다.그러나 <혁명을 팝니다>에서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트는 반소비주의에 반대하며 광고의 성장이 매출의 성장과 직접 관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광고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효과정도로 보는 것이다.가장 흥미로운 것이 기업이 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분이다.즉 나쁜 광고 나쁜 제품이면 아이들 사주지 말고 TV보지 못하게 부모가 할 일이지 왜 건전한 영업활동에 딴지를 거냐는 것이다.'부모책임론'이다. 줄리에 쇼어 역시 이 부문에 동의한다.그러나 전방위적 물량 공세 속에서 부모들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이는 문제를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소비문화와 키즈 마케팅의 도덕적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줄리엣 쇼어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우선 법과 제도의 정비이다.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와 마케팅,미디어에 보다 강한 규율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쇼어는 네델란드,스웨덴 등 유럽의 예를 든다.또한 대안적인 문화를 만들기를 권한다.대안문화라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을 뜻하는 바는 아니다.음식문화를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과외활동,실외활동의 확대 등을 위한 실천적 노력등이 이야기된다.(대안적 활동은 TV와의 거리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부모가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또한 TV를 끄라고 말한다.TV를 끄면 아이가 문화적으로 소외되거나 필요한 정보를 놓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쇼어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TV없는 가정에 대해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한다. 나 역시-아이에게 적용해보지는 않아지만- TV없이 살아보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서른 즈음에 약 2년정도 TV없이 살았던 기억은 내 인생에 보석같은 시간이었다.TV를 거의 안보는 것과 TV가 없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TV 없으면 다른 것들을 정말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재미삼아서라도 TV 끄고 한 달만 살아보면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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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3-20 19:52   좋아요 0 | URL
매번 드팀전님의 리뷰를 읽으면 너무 잘쓰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장문장마다 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읽으면서 감탄을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드팀전 2007-03-20 22:33   좋아요 0 | URL
ㅜㅜ...감사합니다.그런데 문장마다 정성은 절대 아닙니다.제가 글쓰는 걸 보시면 얼마나 성의없는지 놀라실지도 모릅니다.ㅜㅜ 한 번 쓰면 퇴고라는 것도 모릅니다.제 회사 컴퓨터는 '윈도우 98' 이어서 1분에 200타쯤 치는 제 워딩 스피드도 못따라갑니다.한줄 치고 나면 껌뻑 껌뻑거리다 한꺼번에 좌악 하고 뜹니다.글쓰는 데 정성이 들어가는게 아니라 컴퓨터 기다리는데 정성이 들어갑니다.예전에는 10편 쓰면 한편 정도 집에서 썻는데 요즘은 10편 중 10편 전부 회사에서 씁니다.ㅜㅜ 회사에서 쓰면 약간 눈치를 보기때문에 생각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쓰면서도 좀 짜증이 납니다.앞으로는 좀더 문장을 갈고 닦고 정성스럽게 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싶지만..아마 앞으로도 회사에서 두리번 거리며 쓸 가능성이 농후합니다.ㅜㅜ 대신 좀 더 생각하고 쓰긴 하겠습니다.진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