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의 살해 - 독일대표단편선
아르투어 슈니츨러 외 지음, 김재혁 편역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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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록작품>

어떤 이별 - 아르투어 슈니츨러

민들레꽃의 살해 - 알프레트 되블린

예기치 않았던 재회 - 요한 페터 헤벨

사랑 또는 타락 - 토마스 만

꿈의 노벨레 - 아르투어 슈니츨러

칠레의 지진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라라비아타 - 파울 하이제

 

책의 구성과는 무관하게 작품의 발표 연대순으로 읽었기에 그 순서에 따라 적는다.

 

<칠레의 지진>은 예전에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독서할 때 읽은 적 있으며, 최근에도 다른 독일단편문학선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읽었다. 인간 운명의 우연성과 아이러니가 냉엄하게 기술된다. 지진 같은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도 어리석은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인간의 삶은 기쁨과 고통이 혼재된 형태임을 보여준다.

 

<예기치 않았던 재회>는 짧은 분량으로 세월을 초월한 사랑의 힘을 상투적이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라라비아타>도 일전에 읽어본 기억이 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고집쟁이 처녀라는 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표면상 말괄량이처럼 구는 여주인공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뱃사공 안토니노에게 무심하게 굴다가 갑작스레 사랑을 고백하는 행복한 끝맺음이다. 그녀의 격렬한 고백이 워낙 급작스러운 데다, 높은 자존감을 내세우던 그녀의 비굴에 가까운 태도 전환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더욱이 그녀가 아픈 추억으로 갖게 된 결혼과 남자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일순간에 뒤바뀐다니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길 게 분명하다.

 

이제 아시겠죠, 신부님. 왜 제가 그냥 처녀로 살겠다고 하는 건지. 저를 마구 두들겨 패다가 애무를 퍼붓는 인간에게 예속되기 싫어서예요. [......]” (P.359)

 

<사랑 또는 타락>에서 토마스 만은 남녀의 순결 또는 정조에 대한 세간의 편향적 인식, 사랑의 순수성과 현실성에 대한 기대와 착각의 귀결을 그린다. 순진한 대학생과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랑은 순수성을 대변한다. 대학생은 이상 속을 살아가지만, 가난한 여배우는 현실 속을 걸어가야 한다. 배우로서, 여성으로서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필요를 그녀는 스폰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윤리적 기준으로 분명 타락이지만, 대학생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인 듯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는 애잔하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분노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당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는가. 작가는 이렇게 기술할 따름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와 절망과 슬픔에 겨워 라일락을 잡아뜯는 그의 거친 행동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좋은 녀석의 모습은 그에게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P.143)

 

이 책은 슈니츨러의 작품을 두 편이나 수록하고 있다. <어떤 이별>은 초기작이고, <꿈의 노벨레>는 후기작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이별>은 남성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는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는 중인데, 남편의 외출을 틈타 그녀가 뛰어 들어올 때만 사랑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은 의심할 수 없다. 작품은 그녀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요동친다. 그는 점점 초조해진다. 이건 필시 그녀가 병에 걸린 탓이라는 그의 짐작이 맞아떨어졌고 게다가 중병이란다. 그녀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의 시신 곁에는 애도하는 남편이 있다. 자신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함에도, 그는 당당하게 나설 수 없다. 죽은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 그의 사랑은 유효하지 않음을, 그가 사랑한 건 그녀의 살아있는 육신뿐이었음을.

 

그는 마음 깊이 수치심을 느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할 자격도 없었고, 또 죽은 애인이 그를 그곳에서 쫓아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를 부인했다고. (P.44)

 

작가는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불륜을 무릅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조차도 한 껍질 벗겨보면 얄팍하고 이기적인 감정에 불과함을.

 

<민들레꽃의 살해>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바 아니나 지나치다고 할까. 지팡이로 민들레꽃을 난도질한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죄책감에 절절매는 주인공. 어릴 적 괜스레 개미를 밟아 죽이고, 개미집에 물을 붓고,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려 꿈틀거리는 모습을 즐기던 나. 작중의 피셔 씨에 비하면 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자행한 셈이 아니겠는가.

 

몸통은 뻣뻣하게 굳어 하늘을 향해 있고, 목줄기에서는 하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P.53)

 

작가는 민들레꽃을 의인화하여 잘려 나간 모습을 사람의 그것으로 간주한다. 진동하는 시체 썩는 냄새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온 세상이 자신을 비난하는 양 양심에 괴로워한다. 이제 그는 과거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의 안팎에서 그 꽃이 양심의 화신인 것처럼 그를 엿보고 간섭하고 판결 내리므로.

 

그 꽃은 하나의 양심처럼 아주 중요한 일부터 일상의 자잘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66)

 

이 책에서 분량과 작품 밀도 면에서 단연 핵심적인 작품이 <꿈의 노벨레>. 모두가 단편 문학인데 이 작품만이 중편이니 일면 불공평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소설에서 슈니츨러는 작중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꿈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한다. 모범적인 가정, 이성적인 부부라는 외형에 숨겨진 무의식과 본능에의 충동, 그것은 낮이 아니라 밤에 꾸는 한 바탕 꿈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과 사회는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끝 대목은 따라서 상징적이다.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부부는 어떤 꿈을 꾸었는가. 알베르티네가 품은 욕망은 무엇이고, 프리돌린이 밤에 겪은 모험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게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다. 부부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마음속에 숨겨진 자신도 모르는 욕망들”(P.151)을 드러내는 순간 프리돌린은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알베르티네와 전혀 상반된 실체를 봐서다.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면-그건 내게 분명했어요-나는 거역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든 다 할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당신과 아이, 나의 미래까지도 희생할 결심을 거의 굳힌 것이나 다름없었죠. (P.153)

 

프리돌린도 숨은 욕망이 있지만 아내처럼 적극적이고 분명하지 못하였기에 이후 내내 배신감으로 귀가하여 아내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밤의 방황이 시작된 셈이다. 그의 방황은 아내의 솔직한 토로에서 자극받아 각성한 그의 내밀한 욕망이 불러온 것이기에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타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된다. 마리안네의 고백, 매춘부와의 만남, 가면 가게의 여자애, 그리고 나흐티갈을 통해 알게 된 비밀스러운 모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성적 욕망이 가면 아래 무자비하게 활개를 치는 세상. 여기서 가면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최후의 장치다. 정체가 탄로 난 프리돌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수녀의 선택은 그리하여 죽음을 감수하는 헌신이다. 프리돌린은 이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밀 모임의 세계로 들어간 건 무의식과 욕망의 강력하며 무한한 힘을 나타낸다. 그것이 비록 죽음을 가져올지라도.

 

가면무도회와 이어지는 부부간 대화 이전에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부부의 전형이었다. 그들에게 과연 부족한 점이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이제 프리돌린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의심한다. 겉보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의 얄팍한 껍질 아래 근간을 뒤흔드는 불안정한 욕망이 얼마나 잠재되어 있는지를.

 

계단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이 모든 질서와 이 모든 균형과 그의 삶의 이 모든 안정감이 가상이요 거짓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의식되었다. (P.274-275)

 

하지만 우리는 이를 거짓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무의식이 의식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은 그것이 의식으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무의식의 거리낌 없는 발현은 개인 스스로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지구가 지각과 맨틀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네 마음도 밑바닥에 꿈과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된다. 프리돌린은 잃어버린 가면을 통해 알베르티네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럼요 확실하게 믿어요. 하룻밤의 현실, 그래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도 그 사람의 가장 내면 깊은 곳에 담겨진 진리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으니까요.”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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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전쟁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미래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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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들의 전쟁><영혼의 기계적 조작에 관한 담론>은 앞서 읽은 <통 이야기>와 부분적으로 주장하려는 요지가 중첩한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종교 상황에 대한, <아일랜드의 현 상황에 대한 소고><겸손한 제안>은 정치 상황에 대한 풍자적 글이다. 스위프트의 처절한 상황 인식과, 좌절감과 아이러니가 수록 작품 전반에 걸쳐 배어 나온다.

 

<책들의 전쟁>

 

우화의 형식을 빌린 산문 작품이다. 주제 의식이 너무나 명료하여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리스·로마의 고전학문과 현대학문 간 우열 논쟁을 다룬다. 도서관에서 해당 책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당대로서는 현대학문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이들 또한 고전학문이다. 데카르트, 베이컨 같은 저자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제 이런 논쟁은 무용하다. 21세기의 현시점에서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지고의 선으로 인정받는다. 당장 국가와 사회의 경제발전과 개인의 부귀영화를 우선시하는 우리에게 현대학문은 무조건 우월하다. 물론 고전의 가르침과 재인식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게 현대학문을 대체하지 못하므로.

 

이 작품은 고전작가를 추켜세우고, 현대작가를 맹렬히 비판한다. 전자는 꿀을 모으는 벌이요, 후자는 독거미다. 전자는 머리가 아주 가벼운 사람이며, 비평이라고 불리는 악독한 여신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네들의 대변자인 워튼과 벤트리는 잡종 똥개로 묘사되며, 고전작가의 옹호자인 템플은 그리스 신들이 함께하는 당당한 기사로 묘사한다.

 

스위프트는 시류의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고전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작풍은 오히려 현대학문에 가깝다. 그런 그가 고전학문을 현대학문에 비해 우위를 둔다는 점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묘하다. 그렇게 열렬히 지키고자 하는 고전학문 자체에 대한 장점과 유익함을 설파하는 대목은 찾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현대작가들의 병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스위프트는 애초에 고전학문의 우열 또는 옹호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동시대 작가들의 지적 얕음과 가벼움, 비판만을 능사로 여기는 태도, 저작 관습의 타락 등을 풍자하려는 게 그의 원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접근하면 이 작품은 더욱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그곳에는 또한 그녀[비평]와 자매 사이인 평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을 가리고, 고집스럽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끊임없이 몸을 돌려대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의 자식들인 소음, 몰염치, 우둔, 허영, 현학, 무례가 놀고 있었다. (P.47)

 

<영혼의 기계적 조작에 관한 담론>

 

종교적 열광주의 혹은 광신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유사한 행태인 듯하다. 어쩌면 자체가 종교의 내재적 속성일지도. 종교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종교 간 갈등과 유혈 분쟁, 같은 종교 내에서 종파 간 다툼 등은 결국 특정 가르침을 절대 선으로 여기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나마 개인이 신앙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열광에 빠진다면 그것을 개인적 사안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이것이 누군가의 인위적 조작에 의한 결과라면 전혀 다르다.

 

이 유명한 기술(즉 종교적 열광을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기술)을 시행하는 업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일을 진행시켜 나간다. 우리 지각 기관들의 몰락이 성령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P.97)

 

스위프트는 영국 국교회 입장에서 열광적 행태를 보이는 청교도 등의 비국교도와 신비주의 종파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의 분석은 흥미롭다. 조작자들은 사람들의 이성과 지각을 서서히 마비시킴으로써 광신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내용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음성, 행동 모두가 한가지 목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숙련된 조작자라면, 고도의 이성을 지닌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이비종교에 무지각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의 예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단이 종교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신앙을 넘어 정치, 이념, 사회적 사안은 물론 학문적 영역까지도 효과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데, 조작을 통해 영혼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어서다. 나치와 파쇼를 용인하고 지지한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이 형편없이 무지몽매한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 갈등으로 혈연 간에 죽음이 난무했던 역사적 경험은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스위프트의 지적은 예사로 넘기기 어렵다.

 

성령이라는 선물을 팔아먹는 이 신비라는 것이 사실은 다른 여타 장사꾼들의 행위들과 똑같이 연습과 노력에 의해 숙달될 수 있고, 또 똑같은 훈련에 의해 습득될 수 있는 장사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P.107)

 

<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철폐론이 가당키나 한 주장인지 모르겠다. 합리와 이성의 인식이 성장하면서 기독교에서 불합리성과 신비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당대에 등장하여 제법 세력을 형성하였던 듯하다. 스위프트는 영국 국교회 사제이므로, 여기에 반대하는 논의를 전개하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산문 작품도 분위기가 묘하다. 정통주의라면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 기독교 교리의 본질과 요지,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피력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 저자의 진의가 표제 그대로 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인지 아니면 찬론인지 헷갈린다. 표피와 행간 사이의 엇박자와 묘한 긴장감은 스위프트 특유의 풍자와 아이러니로 인해 발생한다.

 

저자는 우선 자신의 글이 명목상의 기독교를 옹호하는 것이지, 진정한 기독교 옹호는 아니라고 선언한다. 진정한 기독교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하고 소박한 신앙을 가리키는데, 그게 아니라면 당대의 기독교는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모습의 초기 기독교는 이미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부와 권력의 구도들과 너무나도 맞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동의하에 이미 완전히 포기되어 버리고 말았다. (P.141-142)

 

이후 그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데, 기독교를 철폐할 경우 발생하는 실제적인 이익과 손해를 비교할 때 철폐에 반대한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일요일에 노동할 수 있으니 이익이라는 의견, 각종 파벌과 파당을 없앨 기회라는 점, 인간은 누구나 비난과 멸시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 등이 제기되고, 철폐할 때 교역과 주식의 경제적 측면에서 손해가 크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나아가 저자는 기독교 철폐를 확장하여 종교 철폐에 더 본질에 접근하는 용어라고 제안한다.

 

기독교를 철폐하자는 건가 아니가. 스위프트의 속내는 당대의 기독교는 초심을 잃은 명목상의 기독교로 악폐에 찌들어 있으니, 진정한 모습의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다. 열광에 빠져들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상 종교 자체를 없앨 수 없으므로 철폐론에 대한 반론으로 기독교 개혁론을 내세운 게 아니겠는가.

 

<아일랜드의 현 상황에 대한 소고>

<겸손한 제안>

 

이 두 산문은 한 쌍으로 간주하는 게 옳다. 영국인이지만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기에 스위프트는 비참하고 차별받는 아일랜드에 동정심을 품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온갖 불공평과 탄압에 신음하는 아일랜드의 상황에 대한 고찰과 함께 이 글에서 잔혹하면서 겸손한 제안을 아일랜드 당국과 영국에 제기한다.

 

아일랜드 사람은 나면서부터 가난과 기아, 탄압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굳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키울 필요가 없다. 아기들을 목장의 돼지와 소처럼 사육하고 도축하여 고가의 식용 고기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태어나느니 못할 불행한 운명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남은 가족의 삶이나 개선하고, 국가적으로도 효용성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지극히 잔인하며 냉소적인 주장인데 저자는 굉장히 담담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여 은근히 설득력 있는 게 아이러니다.

 

어떤 사람도 내게 이 방법 이외에, 우리 나라를 구제하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예를 들면, 우리의 부재 지주들에게 1파운드당 5실링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 [......] (P.206)

 

다른 개선 방안을 언급할까 봐, 저자는 사전에 차단한다. 보다 실천적이고 효과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을 죽 나열하면서 이따위 방법은 논외로 하라면서. 일견 허무적이기도 한데, 합리적 제안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통렬한 자기 인식의 반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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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평사리 클래식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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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를 포함한 풍자문학의 대가 스위프트가 만년에 수년에 걸쳐 쓴 글이다. 최종적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가난했던 작가는 먼 친척뻘인 귀족의 집에서 식객 겸 비서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눈칫밥 먹는 처지에서 목격했던 하인들의 행태, 훗날 그가 고용했던 하인들의 경험에서 이런 예리한 탐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글은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과 개별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들로 구성되었는데, 우선 18세기 하인들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놀랐다.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재산관리 집사, 문지기, 침실 담당 하녀, 몸종 하녀, 청소 담당 하녀, 버터 제조 담당 하녀, 보모, 유모, 세탁부, 하녀장, 여자 가정교사. 모든 귀족계층이나 중산층이 이들을 다 고용하지는 못하였을 테고, 부의 수준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만을 채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대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지닌 작가이니만치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안내가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단히 해학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으로 시종일관하는 그의 지침은 한마디로 최대한 주인의 등골을 빼먹고 철저히 이기적으로 되라는 것이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의 몇 대목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땐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가라. 그리고 마치 피해자인 양 행동하라. (P.9)

 

당신에게 특별히 할당된 고유 업무 외에는 그 어떤 업무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라. (P.14)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 우리네들의 조언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목소리 큰 게 임자라며, 자기 잘못을 무조건 부인하는 풍조와 유사하다. 내 업무와 타인의 업무는 칼같이 구분하여 절대로 맡고자 하지 않는 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이처럼 18세기라는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이 글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인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이기적인 하인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현명하지 못한 주인이다. 고용주로서 피고용인인 하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홀대하며, 그들이 눈치를 보며 행동을 정할 수 있도록 모범적인 언행을 갖추지 못한 주인들. 결국 하인은 주인의 눈에 들도록 애쓰기 마련이기에 사소한 말,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반응한다.

 

상전의 본을 따라 누구보다도 이런 자들은 더 홀대하는 것이 당신 같은 집사나 식탁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복 착용 하인의 임무다. (P.34, 집사)

 

마님께서 도박을 좋아하신다면 당신의 행운은 영원히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절한 도박은 당신에게 일주일에 10실링 정도의 부수입을 가져다 줄 테니까. 그런 집이라면 나는 가정목사나 재산관리인이 되는 것보다도 오히려 집사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 (P.53, 집사)

 

몸종 하녀 편에 이르러서는 주인의 성적 유혹을 조심하고 사리를 잘 살펴서 선택적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한다. 당시 하녀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사례가 빈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님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유독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지침은 하인들 간의 단결과 협력이다. 외란 중에는 내홍은 덮어두는 것처럼, 공공의 적인 주인으로부터 이익을 최대한 쟁취하고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단합하라는 의미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당신들끼리는 서로 싸워도 된다. 내 말은, 당신들에게는 공공의 적인 주인님과 마님이 있으며 공통으로 수호해야 할 공공의 목적이 있다는 걸 명심하란 소리다. (P.20,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그 내용을 엿들어라. 그리고 모든 하인들이 일치단결하여, 하인 사회를 해칠 수 있는 개혁조치들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라. (P.100, 정복 착용 하인)

 

이 작품은 여러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표제 그대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인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처신 요령의 집대성이라는. 역으로 주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볼 수 있다. 하인들의 다양하고 불합리한 행동의 현상과 원인을 간파하여 이들을 적절히 부리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이 글을 실용적인 지침서로 보지 않을 수 있다. 스위프트가 젊은 시절이 아닌 최만년에 이르러 쓴 글에서 굳이 실용성을 염두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그의 여타 작품처럼 이 또한 인간과 사회를 향한 우스꽝스러운 풍자가 본령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보면 18세기의 당대와 21세기의 현대에도 근본적인 인간 본성은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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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2
메리 셸리 지음, 정미현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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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집필한 해는 1820년이고, 아버지 고드윈에게 보낸 건 1821년이니 그의 나이 23, 24세 무렵이다. 아버지는 출간을 거부했고, 백 년 넘게 묻혀 있다가 1959년이 되어서야 출간이 이루어졌다.

 

마틸다가 남긴 수기 형식으로 작성된 작품의 서사는 외형상 단순하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틸다의 아버지는 출산 직후 사망한 아내를 못 잊어 가출한다. 마틸다는 외톨이가 되어 냉담한 고모와 시골에서 16세가 될 때까지 고독하고 적막하게 자란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와 재회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마틸다, 딸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감정에 번민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달라진 태도에 원인을 알고자 다그치는 마틸다와 그가 듣게 된 진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가출과 이어진 자살. 이중의 정신적 충격으로 오지에서 홀로 은둔의 삶을 꾸려가다 결국 병으로 죽게 되는 마틸다.

 

메리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작중에서 마틸다의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틸다 또한 사회적, 윤리적 금기를 저촉한 게 두려워 고립을 선택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 우드빌의 따스한 조언도 그녀를 절망에서 끌어내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잉글랜드의 사회 윤리적 기준으로서는 그들의 죽음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메리가 단지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사랑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위해 이 작품을, 그것도 자신의 처지와 흡사한 배경의,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쓴다면, 혹시 메리와 고드윈 사이의 감정이, 마틸다와 그의 아버지와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 게 아니었을까. 다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이성적 틀을 허물지 않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원하였듯이 시간이 해결해 준 지나간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 외면과 내면의 이야기는 전혀 상반된다.

 

그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던 모습에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눈부신 풍경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가 장담했던 기대치보다 훨씬 컸다. (P.32)

 

딸이 아버지에게 끌리는 감정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할 때, 대개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제2의 아내를 찾고자 한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훗날 거의 성인에 다다른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때 격렬한 감수성을 지닌 마틸다의 아버지는 딸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해 거부하려는 내적인 고뇌와 번민과 투쟁이 벌어진다. 마틸다는 아버지와 재회하기 전에는 철저한 고독자의 처지였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깊이와 강도는 독자가 섣불리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육받고 똑똑한 마틸다지만, 자신의 추궁으로 아버지를 상실하자 죄책감과 한편으로는 되돌릴 길 없는 그리움에 자신을 가두고 만다.

 

내 심장은 죽음의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로는 평온한 가운데에도 절망과 우울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무엇으로도 쫓아버리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웠다. 삶이 혐오스러웠다. 아름다운 것에 무심해졌다. (P.107)

 

마틸다는 끝내 죽음을 소망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드빌의 부드러운 위로와 친절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에서 오히려 기쁨과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죽은 아버지와 저승에서 재회하여 못다 한 사랑을 완성하려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마틸다의 글 속에서 죽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던 것이다.

 

수의가 나의 웨딩드레스 아니겠는가. 그것만이 아버지와 내가 영원히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때 우리를 결합시켜줄 것이다. (P.160)

 

이 중편소설을 읽고 나면 고드윈이 출간을 거부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마틸다와 작가 메리는 너무나 비슷하다. 작중 화자인 마틸다처럼 작가 메리도 탄생 직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버지 슬하에서 홀로 자랐다. 게다가 소설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다는 비도덕적인 근친상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자는 소설에서 작가의 삶을 비교하고 유추하기 마련이다. 고드윈으로서는 그런 불쾌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마틸다의 짙은 회한과 상념 속에 드리워진 어둡고 고통스러움이 독서를 어렵게 한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한 번에 쭉쭉 읽어 나가지 못하고 조금 읽다가 책장을 덮고 한참 후에 다시금 책을 펴 들기를 반복하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여성작가가 <프랑켄슈타인>과 더불어 이러한 소설을 썼다는 게 자못 대단함과 동시에 어쩌면 그 나이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지극히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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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명 :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기간 : 2025.11.8-2026.3.4

장소 : 더현대 서울 ALT.1


관람일자 : 2026년 1월 23일(금)


* 관람평

충동적으로 관람한 전시다. 알폰스 무하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코의 국보 11점을 포함하여 총 143점을 선보인다고 한다. 상업 포스터와 상품 디자인 등을 예술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높은 장벽을 세우지 않고 더불어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훌륭하다. <지스몽다>에서 시작하여 <사계>, <꽃>, <예술> 시리즈가 흥미로운 가운데 <백합의 성모>가 가슴 속을 휘젓는다. <슬라비아>를 비롯한 몇 편의 민속적 작품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유발한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촛불을 응시하는 여성>과 <희망의 빛>은 예언적이다.

이번 전시는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아 여유롭게 찬찬히 작품과 설명을 관람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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