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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5년 9월
평점 :
자신의 삶을 작품의 기본 제재로 삼고 있는 아니 에르노는 다시 개인사로 돌아왔다. 등단 이후 개인(<빈 옷장>, <단순한 열정>)과 가족(<남자의 자리>, <한 여자>)을 오가며 글쓰기를 하였던 그는 <부끄러움>으로 개인과 가족을 결합하였다. <세월>은 에르노식 글쓰기가 추구하였던 개인사와 사회사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집대성이자 총결산이라고 칭할 만하다.
노년에 이른 누군가가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보면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갓난아기부터 꼬마, 청소년, 성년에 이르기까지 시절에 맞추어 달라지는 본인의 모습은 물론 가족과 친구들의 세월의 흐름도 찬찬히 눈여겨보게 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나는 몇 살쯤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의 자문이 보편적이라면, 화자는 한발 더 나아가 깊숙한 질문을 던진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어떠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개인의 삶과 생각이 사회와 세계사의 흐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그녀는 이 세계가 그녀 안에 새긴 것들과 그녀와 동시대를 사는 이들, 아주 오래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슬며시 미끄러져 온 시간을 공동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공동의 기억에 대한 기억을 개인의 기억 속에서 되찾으며, 역사를 경험한 측면에서 표현하기 위해. (P.319-320)
세계사란 원체 거시적이기에 민족과 국가 위주로 구성되기 마련이며, 여기에서 특출난 인물이 영웅처럼 등장한다. 평범한 개인은 세계사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보통의 개인의 삶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말인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화자 같은 소시민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삶을 회상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거시사 못지않은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억은 성적 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P.12)
에르노의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세월> 역시 회고적이며 기억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의미를 찾기에 이는 당연한 동시에 불가피하다. 다만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고 편향에 빠지기 쉽다. 화자가 기억의 오류 여부를 반복적으로 자문하는 것은 무오류성과 자기 객관화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함이다. 주관성이 두드러지면 개인사를 통한 글쓰기라는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며,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개인의 것이지만 세대의 변화가 녹아 있는 삶.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P.238)
처음에는 빛바랜 사진을 차례차례 들여다보면서 추억을 더듬는 화자는 중반부터는 사진과 영상을 함께 참조한다. 지난 세기 후반부터 대중화된 영상매체의 발달로 정적인 사진보다는 동적인 영상을 담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화자는 항상 과거를 현재화한다. 옛이야기를 과거형으로 표현하였다면 순전한 회고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는 과거의 사건과 사상을 끄집어내어 현재에도 유효하기를 바란다. 나의 과거사, 남의 과거사가 한데 모이고 현재적 관점에서 의미성을 지니면 그것이 사회사가 된다.
작가가 자서전을 썼다면 분명 이 작품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믿는다. 에르노식 자서전, “비개인적인 자서전”(P.321). 정확한 연대도, 실명도 드러내지 않지만 독자는 분명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빼먹거나 살짝 언급만 하면서 간단히 넘어간 시기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어서라는 것도.
<세월>에서 특징적인 점은 역사와의 연계다. 단순히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고 간단히 치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참여한 사회개혁과 정치 변혁의 당대적 사고와, 시간이 흘러 자식 세대의 의식과 빚어지는 두드러진 차이, 그리고 다소간의 실망감의 토로. 자본주의 문명의 고도화에 따른 대량 소비사회의 생소한 만남과 일말의 우려. <<9월 11일 이후>>(P.281)로 표출되는, 공산주의 몰락 이후 새롭게 발생한 국제적 긴장 관계의 현주소 등등.
젊은 초대 손님들은 우리가 세상에 등장한 거대서사를 캐내는 일에는 관심 밖이었으며, 전쟁과 사람들 사이의 미움은 그들만큼이나 우리들에게도 끔찍했다. 더 이상 알제리, 칠레 혹은 베트남을 언급하지 않았고, 68년 5월도, 자유로운 낙태를 위한 투쟁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시대만을 살았다. (P.200)
특이한 건 이 모든 기술이 지극히 담담하고 관조적이라는 데 있다. 개인의 감상과 판단은 객관성의 큰 기조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만 나타날 뿐이다. 작가는 철저히 ‘기록’하는 태도를 보인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시골에서 태어난 아니 에르노라는 한 여성의 생을, 담백하면서 솔직하게, 더하지도 않지만 덜하지도 않게끔. 그럼에도 결국 개인의 삶은 사회와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작가라고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글로 적나라하게 밝힌 내용이 결국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토로한 것이기에.
인간의 개별적 생은 죽음과 더불어 잊히고 소멸하는 운명이지만, 작가는 그것에 보편성과 영원성을 부여하였다. 이 작품은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이전의 어떤 작품도 <세월>이 성취한 지점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아니 에르노의 2022년 노벨문학상도 <세월>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작가의 문학 경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이후 여기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