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1
오승은 지음,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실크로드로 여행가서 화염산을 목격한 후 부쩍 서유기에 마음이 끌렸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 그리고 삼장법사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만큼 우리에게 서유기의 세계는 어릴적부터 친숙한 존재이다. 몇년전에 인기를 끌었던 <날아라 수퍼보드>도 현대판 서유기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어린이용 축약본 이외에 서유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야 당연한게 원전의 완역본이 나온게 최근에 이르러서이니. 이제는 다행히 두 종류의 완연복이 나와 행복한 선택의 고민을 하게 만든다. 바라노니 제발 <홍루몽> 완역본이 서둘러 나와주었으면!

제1권은 손오공의 탄생과 하늘나라에서 난동을 부리고 결국은 석가모니에게 제압당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어 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서역으로 떠나게 되는 배경을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야 이미 빤히 알고 있으니 그다지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세부적인 면에 들어가서는 매우 놀라고 말았다. 우선 무슨 그리 시(詩)가 많은지. 여기서 시는 단순한 몇줄 끄적이는데 그리는게 아니라 인물과 장면의 묘사라던가 사건의 전개 등 빈도가 많은 만큼이나 역할도 중요하다. 역자의 언급대로 시를 제대로 번역하기는 어려워 뜻을 대강 알고 넘어가는데 그치는 형편이니 역시 제대로 서유기를 읽기는 쉽지 않은 듯싶다.

손오공이 법술을 배우는 과정은 처음 접해보는 내용이고,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십수년간을 대륙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에서 손오공은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역시 본성에서 법력을 갖출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늘에서 난동을 부려 제천대성이 되었다가 하늘나라 군대와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삼국지연의와 수호지에서 영웅들이 일기토를 벌이는 듯 흥미진진하다.

또하나 특이한 점은 삼장법사(원문에서는 현장)의 출신과 부모에 얽힌 이야기가 별도의 장을 이루고 있음이다. 이어 관세음보살이 당나라로 와서 입법구도하는 중을 찾는 도중 사오정과 저팔계, 손오공에 호위를 예비하는 것. 당태종이 염라대왕을 만나고 돌아오는 내용까지 제1권을 이루고 있다.

서유기는 단순한 요괴 무용담이 아니다. 주 스토리가 현장법사가 서역으로 가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쉽게 결론내 버리는데, 오히려 밑바탕에는 짙은 도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무수히 등장하는 도가적 민간신앙과 도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등이 그걸 입증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도교가 지배하는 세상에 불교를 전파하려는 노력의 하나이던가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임홍빈 번역본을 택하려고 하였다. 역자가 너무 젊은층이기에 고전의 묵직하고 중후한 멋을 제대로 그려낼까 의심스럽기도 했고, 또한 이야기 형식을 살린다고 "~했어요."든가 "~지요." 등의 말투가 내게는 썩 다가서지 않은데 연유한다. 계속 읽다보니 전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듯 싶지만 후자는 적응이 되기는 하지만서도 그래도 조금은 거슬림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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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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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지음, 김현철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200여 페이지의 얄팍한 양장본이다. 굳이 양장본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20여년전 러시아의 에르미타쥬박물관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책이다.

무엇이 한 천재 다 빈치의 은밀한 취미일까, '은밀한'이라는 어휘가 미묘한 어감을 자아낸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천재의 취미? 그것은 바로 '요리'이다. 다 빈치에게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우선 회화다. 서양 회화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가 떠오른다. 그리고 각종 과학적 아이디어의 발명가로서. 그런 그가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다는 것은 의외다.

전반부에서는 다 빈치와 요리에 관한 해설이 실려 있는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어려서부터 맛좋은 요리를 가까이하던 배경에서부터 음식점에서 일을 하던 사실, 친구와 주점을 인수하여 운영하다 쫄딱 망한 에피소드. 무엇보다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요리였고, 위대한 유산인 회화는 요리개혁가로서의 그가 실패할 때마다 쫓겨나서 빚을 갚는 차원에서 행하던 마지못한 행위일 따름이었다는 점이다. '최후의 만찬'조차도 만찬의 이미지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주어진 기간 3년동안 무려 2년9개월을 먹고 마시는데 소모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스파게티와 포크의 발명가가 다 빈치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로 놀랍기 그지없다!!!

후반부에서는 실제로 다 빈치의 수고가 실려 있다. 솔직히 그리 썩 재밌거나 흥미를 끄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어이없고 황당하기조차한 내용이 잔뜩 게재되어 있고, 그것이 천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라니 오히려 우습다. 그래도 군데군데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예컨대 빵 사이에 고기를 넣어서 만들어 보는 구상은 오늘날의 햄버거와 상통한다. 그리고 요리를 예술적으로 치장해서 내놓는 모습은 맛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즘의 요리 추세와도 어울린다.

물론 그의 아이디어가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호두깎는 작업을 개선하기 위하여 거대한 기계장치와 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히려 인력 한명 투자에 비해 지나치게 낭비적이다. 그가 절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오히려 기계화의 지나친 맹신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자그마한 책을 통해서 다 빈치 당시의 이탈리아 상류층의 식사 습관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현대의 서양요리와 식사예절과는 달리 그 당시는 참으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다 빈치는 이를 개선해보고자 불철주야 노력을 기울였다. 아울러 다 빈치의 관심의 폭이 참으로 넓다는 사실도. 범접할 수 없는 위인의 인간적이고 사소하면서도 생활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절로 미소를 띠게 되고 친근미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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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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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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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지영이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부터였다. 그럼에도 그 이름은 내게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TV에서 아무리 '봉순이 언니'를 외쳐도 내게는 그렇고 그런 작가에 지나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예전에 그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다가 중도에 멈춘 이후 나는 그를 '전투적 페미니스트'로 낙인찍고 있었다. 이 말은 내게는 커다란 부정적 표현이다. 비타협적이고 성마르며 협소한 등등.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도 적극적인 흥미가 생긴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 최근들어 상상력 빈곤을 느끼며 정서를 윤택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소설들을 읽고 있었다. 몇가지 분류의 도서를 구입하다가 마땅한 신작소설이 없나 조회해 보다가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던 것이다.

일단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난해한 표현이 난무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적당한 감성과 서정성을 담고 있는 문장이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해준다. 글의 주제와 소재를 감안한다면 부적절한 태도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각 장 앞부분에는 사형수가 남긴 수기가 배치되어 본문과 수기의 이중적 구성으로 이루어졌 있고, 수기는 본문을 이해하는데 바로미터가 될 정도로 중요성이 높다.

주인공 유정(여성)은 외관상 사회의 상류층에 속해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연달아 자살을 시도했고 삶에 애착과 의욕을 갖지 않는다. 마지못해 고모인 숙모를 따라서 교도소의 사형수를 찾아가고 거기서 점차 그동안 무관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진지함과 어두움, 비정함을 깨닫게 된다.

초반부에 주인공의 행동과 사고가 이해되지 않았다. 외모나 가족상황 등 당당한 외면에는 방탕하기조차한 삶의 그림자가 드리워졌 있다. 뭔가 특별한 사유가 있을텐데. 그러다가 차츰 어렴풋한 짐작이 떠오르며 점차 고개가 끄덕여졌고 중반부에 수면위로 떠올라 확실하게 되었다. 어린 소녀에게 그것은 더할 나위없는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감싸주리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의 무심한 외면, 그것은 더 큰 폭풍이 되었다.

그러면 사형수 윤수는 무슨 죄를 지었나 싶다. 태생적으로 범죄자가 되는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나 가정형편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구의 사랑과 애정도 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증오를 발산한다. 그렇게 볼때 윤수는 살인죄를 뒤집어 썼지만 담담히 감수한다. 어차피 지긋지긋한 세상과 삶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이렇게 염세적인 두 사람의 조우는 서로에게 은은한 자극을 준다. 그것은 위선적인 도덕가의 모습이 아닌 때로는 격정적이지만 솔직하기 그지없는 맨얼굴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새삼 삶에의 충동을 느끼게 되지만...여기서 사형수가 감면된다면 그것은 신파조로 흘러갈테고 그래서 작가는 윤수를 교수대로 보내는 용단을 내렸던 것이다.

살면서 제대로 된 행복한 시간을 갖지 못했던 두 사람은 비록 일주일에 하루, 그것도 짧은 시간을 만나는데 불과했지만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향유했던 것이다.

어렸을때 읽은 '탈무드'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인데 마침 여기서도 유사하게 등장하길래 기억에 남는다. 유대인에게서 '사랑하다'와 '알다'라는 것은 동일한 의미라고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새삼 나 자신은 어떤가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 내 주변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가? 너무나 모른다고 무관심하다고 가까운 사람에게 비난과 힐책을 자주 받고 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전투적 페미니스트 공지영은 초반부에 잠깐 그 면모를 살짝 비치지만 다행이도 중반 이후에는 본연의 작가적 자세로 되돌아간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작가에게 있어 수년만의 회심작인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성 면에서 크게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래도 내게는 멀어져 있던 한 작가를 가까이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새삼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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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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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출간되어 금년도 상반기까지 태풍처럼 출판계를 휩쓸었던 장편소설. 하지만 외국계 신작소설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난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빌려보게 되었다.

소설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고 믿는다. 전자는 순순한 문학적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소설. 불멸의 고전문학 작품들이 죄다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후자는 지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지식소설. 여기서는 가슴을 벅차게 하는 감흥 대신 미처 알지 못하였던 지식과 사실을 알게되어 호기심과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역사소설과 여기 이 책도 그러하다.

어차피 원문이 아닌 번역본의 경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언어의 한계, 번역자의 개인적 한계 등. 따라서 어구와 표현의 아름다움과 유려함 등은 그닥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렇다, 오로지 재미.

서양 종교사 내지 중세사, 특히 성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굉장한 구미를 당길 법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애나 존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재도 결국은 '성배'가 아니었던가?

루브르박물관장이 살해당하고 마침 강연차 파리에 머물렀던 랭던 교수가 살인범 용의자로 지목받는 가운데, 암호전문가인 박물관장의 손녀가 그를 도와 도주에 성공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갖고 궁극의 존재로 발걸음을 향한다는 플롯은 긴박감 넘치는 추리소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솔직히 내용 자체보다도 작가가 도처에 장식해 놓은 역사적 이야기가 보다 흥미진진하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기독교계의 갈등. 베드로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대립. 추방된 여성성과 시온수도회, 성당기사단의 존재. 가톨릭의 보수적 분파로서의 오푸스 데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술 작품에 숨겨진 반가톨릭적 상징. 시온수도회의 그랜드마스터의 명단이 주는 놀라움 등.

여기서 랭던이라는 기호학자를 통해 밝혀지는 무수한 기호와 상징의 세계는 우리가 무심히 넘기는 각종 기호들이 사실은 깊은 형이상학적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남성성의 칼과 여성성의 잔, 성배는 잔이 아니라 잔이 상징하는 여성성이며,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유한다는 것. 그리고 가톨릭이 마리아를 추방하기 위하여 얼마나 살륙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과 지금도 뿌리깊게 살아남은 그 상징. 루브르박물관의 최신 조형물의 의미마저도.

새삼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관심이 간다. 아울러 사해문서,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통칭되는 초기 기독교의 문서들. 확실히 당시는 지금보다는 종교에 대한 해석이 다양했음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잃어버린 인간성과 청년시절의 기록에 대하여 아직도 의론이 분분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품 자체로서의 이 소설은 어떠한가? 솔직히 평범하다. 독자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유인은 어디까지나 숨겨진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지 감동은 아니다. 특히 급작스러운 결말부, 레빙경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체포당하는 부분은 호화로운 진수성찬을 내놓다가 자신이 없어 다급히 회수하는 듯 당황스러움을 안겨준다. 역량의 한계인가 아니면 조급함의 증표일까.

이 시점에서 이 소설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서양문화에 친숙하게 노출되어 왔다. 우리 이웃과 자신의 뿌리에 대하여는 잘 모르더라도 그리스로마신화는 잘 알며 '로마인이야기'는 지식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전세계에서 보기 드물정도로 기독교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이기도 하다. 몸은 유색인종이나 정신세계의 상당한 부분은 백인종에 가깝다. 황인종을 우습게 보고, 흑인종을 경멸하며 백인종을 동경하는. 서구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보편적 문화적 타당성을 가진 것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우리문화는 이미 서양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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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10.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헬로우세븐 2014-07-0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 소설 모두 보고 읽었는데, 중후반까지는 재밌었지만 계속되는 실마리를 좇아다니는 게 지루해지기도 했습니다. '도처에 장식되어 있는 역사 이야기'가 재밌었죠, 분명.
 
아름다운 애정생활
팀 라하이 / 보이스사 / 1990년 5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 부부를 위한 올바른 성생활 지침서 - 비크리스천에게도 좋다]

사무실 동료가 한번 보라고 빌려 주었다. 원래 기독교적 냄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빌려준 성의를 봐서 대충이나마 한번 훑어봐야지 하던게 정독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확실히 참된 양서는 문화, 종교 등을 뛰어넘는다. 목사이기도 한 저자가 크리스천 예비부부나 기혼부부를 위하여 저술한 크리스천 관점에서 안내하는 성생활 지침서이다. 목사가 이와같은 유형의 책을 썼다는데서 우선적으로 놀라고, 더우기 그 내용이 어떻게 보면 매우 적나라하다는 데서 더욱 놀랍다. 1970년대 출간된 저서라 30년이 경과한 현시점과는 다소 부적합한 내용이 일부 있지만, 그 핵심 영역은 여전히 확고부동하다.

수십년간 각자의 삶을 영위하던 두 남녀가 사랑을 느끼고 함께 일생을 같이하기로 맹세하는 결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인류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결혼의 장점이야 무수히 많겠지만 점증하는 이혼률은 원만한 결혼생활의 유지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려주기도 한다.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그들에게 처음부터 찰떡궁합을 기대함은 잘못된 주문이다. 하지만 열에 서너쌍이 이혼하는 데 다수의 사유가 '성격차이'라고 한다. 성격상에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므로 그것이 어디 절대적 이혼사유가 되었을까 의심스럽다. 차라리 '성 격차'라고 솔직하게 토로한다면야 모르겠다.

1970년대 당시의 미국 사회도 한창 부부간의 성 문제가 심화되었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크리스천 부부들을 대상으로 부부간의 진실한 애정을 찾는 방법과 육체적 애정표현에 대하여 상세한 안내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목사답게 성경에서 주요 문구를 인용하고 하나님이 허용하고 승인하신 성적 표현에 대하여 알려준다. 매우 자세하고 직설적이어서 노골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출퇴근시에 전철에서 읽는데 옆사람의 눈을 절로 의식하게 된다.

어쨌든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은 신실한 부부에게 사랑과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정당한 성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부부간의 애정표현 수위와 방법에 크게 제약을 두지 않는다. 그것이 부부간의 대화와 합의를 통하여 도출된다는 전제아래.

오늘날 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성(sex) 문제를 지니고 있다, 비록 저자는 혼전 성관계를 매우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성의 범람 속에서 역설적으로 성의 가치는 점점 저하되고 있다. 성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옹호하는 사람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크게 공감을 살 만하다. 정당한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는 성은 결코 떳떳할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크리스천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 행위는 가장 신성해야 하며 생의 만족을 위해 가장 기교적이어야 하고 또 가장 축복을 가져올 수 있는 생의 절대의 기회이어야 한다."

한편, 번역된 용어는 현재 통상적인 어휘와는 사뭇 다르다. 일부러 비외설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한 것인지 의도는 모르겠지만, 조기사정(조루), 지체사정(지루), 구두섹스(구강성교, 오럴섹스) 등 비일상적인 용어의 사용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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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8.1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