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마야의 모험 비룡소 클래식 2
발데마르 본젤스 지음, 프란치스카 솅켈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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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우선 현상에 안주하지 않는 모험심과 도전정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일 것이다. 꿀벌 마야는 안온하고 평안한 벌집의 세계를 벗어나 빛나고 아름다운 바깥 세상에 과감히 뛰어든다. 화려함 못지않게 무수히 드리운 위험과 모험의 세계. 꿀벌 마야는 다른 여러 곤충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거미줄에 걸려 하마터면 거미 테클라의 먹이가 될 뻔한 철렁한 순간을 겪기도 한다.

 

작가는 여기에서 약육강식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촉구하기도 한다. 생명은 자신의 삶을 보전하고 생식하기 위해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육식인 경우 누군가 타 생명체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입장에 따라 불가피하게 보거나 정반대로 매우 잔인한 처사로 비치기도 한다. 특히 희생자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당사자가 그런 입장에 처하는 경우라면 특히 더할 것이다.

 

쇠파리 한스 크리스토프를 잡아먹는 잠자리 쉬누크에 대한 꿀벌의 충격과 비난은 곧바로 반박을 받는다. 값싼 인도주의적 동정이라고. 여름철에 벌집에서 수벌들이 학살당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거미 테클라의 입장에서 보면 거미줄에 걸려든 꿀벌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자신의 생존 연장이 가능하므로. 반면 꿀벌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수밖에 없다.

 

꿀벌 마야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태도와 함께 사랑의 가치도 인식하게 된다. 신비로운 존재였던 인간에 대한 환상이 꽃의 요정을 통해 실현하게 되고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목도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소년과 소녀, 두 연인이었다.

 

저 모습은 지금까지 내 눈으로 본 것 중 가장 멋진 것이었어. 사람들은 서로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 알았어.” (P.179)

 

동화답게 이 작품에는 어린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교훈이 들어있다.

 

경험이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노력해서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마야는 생각했습니다.” (P.56)

 

결과를 보지도 못하고 물러서는 것은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마야도 그런 경험은 하기 싫었지요.” (P.120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비웃을 때가 자주 있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스워 보였던 경우가 참 많아요.” (P.135)

 

겉보기에 아름다우면서도 재미있는 동화 이야기로 받아들이지만 곰곰이 반추해 볼 대목도 있다. 먼저 인간 예찬이다. 작가는 꿀벌 마야의 눈을 통해 인간이야말로 유일무이한 가장 힘세고 영리하고 숭고한 동물”(P.150)로 찬미한다. 인간의 시각에서 인간 자신이 자연과 우주를 통틀어 가장 소중한 존재임은 사실이지만 이를 자연계 전체로 확대한다면 다른 생물과 중요성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마야는 벌집으로의 복귀 염원과 여왕에 대한 측량할 길 없는 충성심을 표현한다. 이야기 속의 여왕벌은 침착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리분별이 흔들림 없으며 인정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지도자의 전형이다. 이런 여왕이라면 목숨을 내걸고도 헌신과 충성을 바칠 만하다. 문득 전체주의 뉘앙스가 연상되는 것은 억측으로 생각될 수 있으리라. 개인보다 집단 전체의 안녕과 생존을 중시하는 꿀벌과 개미는 전체주의에 찬동하는 대중에 비길 수 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살펴본다. 아직 제1차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제국주의 전성기 시절이며 작자의 모국인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를 쫓아낸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유효하던 시절이다.

 

꿀벌 종족은 강하고 여왕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마야는 적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깊이 느끼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동족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P.214)

 

이 작품은 곤충기와 교훈적 동화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선 교훈들 외에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꿀벌 마야는 꿀벌사회에 있어 사회부적응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의 범상한 대중들이라면 사회에서 일탈하는 꿀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 사회도 그렇지만 동물 사회에도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별난 성격의 곤충이나 동물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 곤충이나 동물에 대해서는 쉽게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태도가 언제나 게으름이나 아집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태도는 평범한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애타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P.148~149)

 

외톨이였던 마야가 실상 작가 본젤스 자신의 자화상이었음을 새삼 생각해 본다.

 

금년도에 꿀벌 마야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 영화화되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언제 짬을 내어 한번 비교 감상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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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태양꽃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6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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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의 유효성을 감히 평가하지 못한다. 정의상 모순되는 개념이지만 동화의 창작 목적을 감안하면 어른들도 간간이 동화 이야기를 읽으면 좋겠다. 재미와 아울러 생각지 못한 감성을 발견하는 때도 있다.

 

한강은 동화를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작가다. 그의 동화는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입담을 구사하지 않는다. 밝고 화려한 분위기도 없다. 동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작고 움츠린 소위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다. 사람이건 식물이건. 그들이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읊조리는 이야기는 가슴 한켠을 촉촉이 적신다.

 

이 작품에서도 담장 뒤 그늘에서 초라하게 자라는 꽃풀 한 줄기가 화자다. 음지에서 빛을 갈구하며 담장 너머 눈부신 세상을 동경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투명한 꽃잎. 소외감은 꽃잎의 아픔과 상처와 결부되어 화를 촉발한다. 그나마의 향기와 꿀마저 변질된다. 그는 그렇게 시나브로 시들어갈 운명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좋아.” (P.50)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얼굴모를 풀의 힘겨운 삶을 알지 못했더라면. 실패해도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희망의 씨앗을 간직한다. 성공하지 못해도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향해 쉼 없이 노력하는 마음자세. 불공평한 운명과 차가운 세상에 불평과 적대만 내비치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

 

““넌 더 강해져야 해. 더 씩씩하게 견뎌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풀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P.60)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볼품없는 꽃이 마음을 추스르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향기와 꿀이 원래 이상으로 회복되었다. 어느덧 투명한 꽃잎은 일찍이 없었던 아름다운 꽃으로 거듭났다.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꽃”(P.102)으로.

 

잠자리 날개처럼, 해파리처럼 아니면 말미잘 촉수마냥 이상한 모양의 투명한 꽃잎은 타인이 인지와 인정을 받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를 가리킨다. 투명함은 비어있음을 말하므로 채워지지 않은 빈 영혼을 의미할 수도 있다. 꽃잎이 투명하게 시들거나 황금빛으로 빛나든지 그것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산문에서는 운문의 향기가 풍긴다. 절제된 문체, 나직한 어조, 여운을 남기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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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다센카
카렐 차페크 지음 / 나제통문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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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차페크는 작가이면서 정원가이자 동물애호가였다. 순문학작품을 떠나서 이런 유형의 책자를 대하고 나면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가의 인간적이며 일상적인 면모에 친근감을 갖게 된다.

 

다센카의 품종은 와이어 헤어드 폭스테리어다. 삽화와 사진을 보면 털이 약간 복슬복슬하지만 날렵한 자태로 영리하게 생겼다. 다센카의 탄생, 성장, 그리고 장난에 이르는 일련의 생장과정을 보면 누구라도 귀엽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호감을 갖게 되는 다센카에게 더욱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은 차페크의 유머러스한 문체라고 하겠다. 다센카의 짓궂은 모든 장난에도 그는 줄곧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다센카의 입양 보내기로 전반부는 마감된다.

 

후반부는 다센카를 위한 8개의 옛날이야기로 작가가 다센카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자이저 장난꾸러기인 강아지를 진정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래야 사진 찍는데 움직이지 않고 잠시라도 멈춰있다고 하는데...

 

이야기 자체는 순전히 개의 자긍심을 돋워주는 내용이다. 다센카의 조상 포크시의 전설적 영웅담, 폭스테리어가 땅을 파헤치는 사유는 선조가 묻은 잘라진 꼬리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 천국에 살던 폭스테리어의 가장 선조인 폭스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쫓겨나게 된 이유 등. 폭스테리어와 다른 종의 개와 탄생 신화의 차이도.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것은 개를 따라했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인간과 개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자신이 개들에게 떳떳한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함께 생활하는 인간이 개들의 동료인 셈으로, 개들은 인간을 몹시 사랑하고 따르지.” (P.98)

 

인간과 너는 피보다 더 끈끈하고 강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것은 바로 신뢰와 애정이다.” (P.101)

 

부록으로 실려 있는 강아지 사진찍기와 다센카의 앨범은 별미다. 오래된 흑백사진들이지만, 대작가에게서 애정을 듬뿍 받고 동화책의 주인공 자리마저 차지한 장난꾸러기의 당당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덕택으로 다센카는 불후의 성명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를 알면 저승에서도 기뻐하리라.

 

* 이 책은 오래전에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제 용산도서관에서 간신히 찾아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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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 이야기 - 時設: 시적인 이야기
한강 지음, 우승우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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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부처를 믿으시기에 초파일에 몇 번 절집에 가본 적이 있다. 경내를 온통 둘러싼 연등 무리와 본전 내 천장에도 그득하게 널려 있는 무수한 연등. 한켠에서는 아기 부처를 목욕시킨다고 열심히 물을 끼얹는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연등이 점화되었을 때의 휘황한 정경이 어떠한 감상과 소회를 가져오는지. 절집 방문은 낮 동안에 잠시 한정될 뿐이므로.

 

작가 한강이 불교 소재의 글을 쓰다니 약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문학상을 수상한 중편도 불교 소설이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다루었으되 본격 구도 소설은 아니다. 차라리 일종의 성장소설로 이해하고 싶다. 백여 쪽 남짓한 얄팍한 분량의 작품이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생의 빛과 그늘의 폭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빛나는 유년시절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로 생의 굴곡과 애락을 겪지 않고 기쁨의 집에 사는 특혜를 누린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달픈 가계,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다툼. 무엇보다도 가까운 존재와의 영원한 작별이 주는 심리적 외상.

 

이승에서의 삶이 천국과도 같은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종교가 발붙일 여지는 없으리라.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견디거나 제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발현한다. 인간은 누구든지 종교적 성향을 일정부분 지니게 된다. 자신을 무신론자 내지 무교주의자라고 지칭하는 이들조차도 마음속에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인간이 곧 종교인이 되지는 않는다. 세속과 풍진의 삶을 버리고 탈속과 피안을 추구하는 일은 심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속계의 인연을 끊는 일은 그만큼 지난하기에 우리는 승려와 사제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게 아니겠는가.

 

시설(詩說)은 시적인 이야기다. 책표지에 따르면 시처럼 깊고 산뜻한 그림소설이란다. 일반적 소설의 절박한 다그침이 안보여 읽는데 편안하다. 선이의 생은 조용히 흘러간다. 흐르는 물결 속에 윤이의 죽음, 앞집 할머니와 어머니의 노쇠, 작은오빠의 투병, 그리고 자신의 입산이 스며든다. 큰오빠의 결혼과 임박한 출산도. 절집에서는 노스님의 입적과 다비식, 상행자의 환속과 자신의 수계가 이어진다. 선이를 불가로 이끈 것은 어릴 적 동생과의 일화였다. 흰 꽃과 붉은 꽃이 어우러진 연등. 동생 윤이가 가장 예쁘다고 가리킨 흰 꽃 영가등. 사미니가 인도하는 커다란 붉은 꽃에 홀린 선이. 이때 이미 생과 사의 인연 나뉨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작은오빠의 물감으로 그린 붉은 꽃, 화선지에 붉은 물감으로 그린 꽃, 학교를 떠날 때 뜨거운 아랫배에서 붉게 젖은 속옷, 그리고 산문 입구의 자목련 나무.

 

인생이란 마주침과 헤어짐의 인연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다. 다가오는 인연을 꺼리거나 피하지 않고 담담히 감내할 때, 빚어지는 상처와 치유로 우리는 성숙해진다. 그리고는 불현 듯 알게 된다. 지등 속의 불꽃이야말로 붉은 꽃의 실체이며, “어두우나 밝으나 오롯이 거기 있었던, 늘 거기 있었던 마음 한 자리”(P.100)이라는 사실을.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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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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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긴 현상을 설명하는 사유 중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눈물을 자주 흘린다는 의견이 있다.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눈물로 완화시켜 신체에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다. 이 의견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학창시절에 배운 기억을 되살려보면 비극의 효과는 카타르시스에 있는데, 곧 슬픔의 표출을 통한 감정의 배출이다. 비극을 보면서 관객은 심적인 정화를 얻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눈물은 감정의 모든 국면에 대응한다. 슬프거나 아플 때는 물론, 기쁘고 반가울 경우 화날 때도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 앞에서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물의 양도 중요하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남에게서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비인간적이라고. 눈물이 헤픈 사람도 좋은 평판은 얻지 못한다. 울보라고. 눈물은 연약함에 결부되기 쉽다. 그럼에도 꼭 맞는 상황에서 적절하게 흘리는 눈물은 고래로 칭송을 받는다. 이슬, 진주 등 고귀한 존재로 형용된다. 동양에서는 옥루(玉淚)란 표현도 사용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눈물만이 전부는 아니다. 속으로 흘리는 눈물이 더 뜨겁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눈앞이 뿌옇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그림자눈물이라고 일컫는다. 사람과 그림자가 함께 흘리는 눈물이 참다운 눈물이다. 그림자는 울지 않는데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거짓이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그림자눈물샘이 얼어붙어 있다. 작중의 할아버지는 눈물상자 아저씨와 눈물단지 아이의 덕택으로 잃어버린 눈물과 삶을 회복하였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눈물상자 아저씨는 여전히 울지 못하므로.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 (P.17)

 

가장 순수한 눈물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무색의 눈물이 아니라 희로애락과 존비와 청탁 등 모든 것이 혼융되어 정화된 투명한 눈물을 뜻한다. 눈물단지 아이의 눈물은 깨끗하지만 순수한 눈물은 아니다. 그는 자라고 인생을 겪어야 한다. 세상의 오탁에 물들 우려도 있으나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할 수 있어야 한다. 눈물을 잘 흘리지 못할 우려도 있지만 헤픈 것은 모자란 것만 같지 못한 법. 눈물단지 아이가 울음을 참는 것도 이 점을 깨달았음이리라.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눈물을 참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오는구나. 숨겨진 눈물을 그 가슴 가운데에서 점점 진해지고, 단단해지는구나.” (P.66)

 

어른을 위한 동화 시리즈. 관심 있는 작가에 좋아하는 장르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 은근하면서도 차분한 정조가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을 되돌아본다. 순수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게 언제였던가, 흘린 적은 과연 있었는지.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운다는 가정과 사회의 암묵적 억압이 여전히 수많은 남성을 옭아매고 있다. 눈물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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