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티치티 뱅뱅 -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이언 플레밍 지음, 존 버닝햄 그림, 김경미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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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읽었던 책 중 세부적인 스토리는 기억 안 나지만 굉장히 흥미진진하여 제목이 유달리 각인되었던 동화책이 있었다. <치티치티 빵빵>이라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갑자기 그 책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하여 열심히 검색해 보니 이것이 바로 그 책이란다.

 

솔직히 놀랐다. 명성이 자자한 007시리즈의 원작자가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 그것도 노년에 썼으니 자신의 원숙한 작가 역량을 단번에 발휘한 셈이다. 작가의 이력을 반영하듯 이 작품에도 첩보 소설과 같은 특성이 다수 반영되어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새삼 알아채게 된다. 특수기능이 장착된 차량, 범죄 집단, 주인공의 위기일발과 같은 흥미로운 극적 장치 말이다.

 

어른이 되면 한 가지 섭섭한 점은 어릴 적 읽었던 재밌는 동화책을 과거만큼 몰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순수성을 잃었고 작품의 내용에 끊임없는 비판과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앞으로 쑥쑥 나아가기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주력한다. 그럼에도 편린이나마 그때의 느낌을 되새겨줄 수 있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이 작품처럼.

 

이 동화의 주인공은 유감스럽지만 포트 가족이 아니다. 멋진 자동차, 치티치티 뱅뱅이야말로 단연 주인공이다. 생각해보라, 1960년대에 인공지능을 갖춘 자동차라. 도로에서는 달리고, 공중에서는 하늘을 날고, 바다에서는 물위를 쏜살같이 미끄러져 가는 차. 상황을 스스로 감지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운전자에게 선택하라고 지시하며, 빨리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주저 없이 바보라고 내뱉는 그런 차다. 외관은 어떠한가? 앞뒤 똑같은 검정색 딱정벌레와는 수준을 달리하는 초록색의 멋진 레이싱카.

 

포트 중령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며, 첩보원 같은 지식과 판단력을 겸비한다. 괴짜라는 점도 유사성이 있지 않을까? 제러미와 제미마 쌍둥이 남매의 용기와 재치도 빠뜨릴 수 없다. 무엇보다도 어리숙한 악당 몬스터 조 일행이다. 전설적인 은행 강도인 그네들이 꼬마들의 속임에 넘어가서 제대로 실력발휘도 못해보고 잡혀버리니 쌍둥이들을 잡아놓고 의기양양하게 온갖 젠체하던 장면이 오히려 우스워질 뿐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초콜릿을 빼놓을 수 없다. 몬스터 조와 포트 가족, 치티치티 뱅뱅이 조우하여 사건이 해결되는 장소가 파리의 유명한 초콜릿 가게라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게다가 봉봉 씨가 쌍둥이에게 안겨주는 어마어마한 사탕과 초콜릿 상자는 거의 어린이들의 로망이 아니겠는가!

 

여기서는 스토리 라인의 지나치게 단선적 구조, 우연성의 절묘한 결합 등 시시콜콜한 흠을 굳이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작품에서는 언급하였지만 단지 작가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멋진 자동차의 또 다른 모험이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오로지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이 절판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로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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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잡아먹히지 않는 빨간 모자 이야기
마이크 아르텔 지음, 짐 해리스 그림, 한강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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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 형제의 유명한 빨간 모자 이야기를 리메이크하였다. 원작에서는 늑대가 빨간 모자와 할머니를 잡아 먹지만, 사냥꾼이 이들을 구해내고 늑대는 물에 빠져 죽는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 듯하다. 주인공 빨간 모자는 너무 소극적이다. 사냥꾼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잡아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명색이 주인공인데 잡아먹히면 쓰나, 죽지 않고 살아서 오히려 신나게 골탕먹여야지.

 

그래서 미국 루이지애나판 빨간 모자가 등장하였다. 미시시피강 유역이라는 지역적 특성답게 늪을 배경으로 하여, 늑대는 악어로 대체되었다. 빨간 모자는 흠, 오리로! 동화에서 우화로 변신 완료! 원작의 늑대와 마찬가지로 악어 클로드도 음흉하지만 다소간 멍청한 캐릭터다. 빨간 모자의 막대기 한 방에 무서워서 늪에서 후퇴를 한 것이나, 매운 소스가 발라진 소시지를 오리 고기로 착각하여 다시는 오리 고기는 가까이 하지 않게 된 것들이 말이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빨간 모자를 돕는 똑똑한 고양이 티진. 갑작스레 장화신은 고양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기서 착안했는지 모르겠으나 빨간 모자가 위기를 탈출한 것은 전적으로 고양이 티진의 재치 덕택이다. , 그런데 실제로는 오리랑 고양이랑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나 모르겠다, 고양이가 가만 있으려나?

 

삽화는 큼지막하면서도 세밀하게 동화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인물들을 유머스럽고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동화책보다는 그림책에 가깝다. 악어 클로드는 커다란 덩치에 흉악함과 우둔함을 겸비할 수 있게 사실적이며, 특히 할머니 집의 액자에서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그림은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게 만든다.

 

삽화가의 유머 감각이 남다른 점은 이야기 중에 등장하지 않는 다섯 번째 캐릭터를 창안해낸 데 있다. 빨간 모자와 티진 일행과 모험을 함께 하는 생쥐를 눈여겨보자. 늪에서 고양이 꼬리에 매달려 목숨을 구한 장면은 오히려 약과다. 압권은 맨 뒤에 있다. 악어를 물리치고 빨간 모자와 할머니가 풍족한 만찬을 즐기는 식탁, 그 아래에 티진과 생쥐도 함께 만찬을 즐긴다. 커다란 치즈에 몸을 기대고 고양이와 마주 앉아 치즈를 음미하는 생쥐의 여유작작한 태도를 보라. 다음 모두가 오수를 누리는 시간. 생쥐는 친구를 불러와 남은 음식들을 접시째 날라간다. 한쪽 눈을 뜨고 의자 위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티진.

 

빨간 모자 이야기의 상투성에 싫증을 느끼거나 소극적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쨌든 빨간 모자는 악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용기와 재치로 가뿐하게 물리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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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꼬마 선녀 번개 꼬마 선녀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진태람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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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제법 많다. 크면서 점차 나아지지만 어릴 적에는 폭우가 퍼붓고 하늘에서 번쩍거리며 우르르 쾅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슬그머니 부모의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디 아이들뿐이겠는가? 어른들 중에서도 더구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체로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되려면 빨라도 유치원 또는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하니 일단 과학적 접근은 포기하자. 대신 여기 작가처럼 옛날이야기 형태로 꾸며서 천둥과 번개가 결코 무서워해야 할 존재가 아님을 아이들에게 각인시키는 방식은 어떨지. 이 정도라면 훗날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자신들을 속였다고 억울해하지는 않을 듯하다.

 

하늘나라에 선녀들이 살고 있다는 설정은 워낙 흔해서 평범하다. 반면 장난꾸러기 꼬마 선녀들과 옥황상제 대신 선녀 할머니의 존재는 신선하다. 선녀들의 역할은 열심히 구름을 만드는 일이다. 꼬마 선녀들이 날개옷이 거추장스럽다고 훌쩍 벗어던진 후 구름 위를 달려가면서 아래 세상 구경을 하는 대목은 일견 해학적이다. 아이들이 이야기에 쉽게 몰입하도록 동년배의 또래들을 일부러 설정한 게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세상 구경을 하는데 먹구름에서 비가 퍼붓는 바람에 심심해진 그들, 선녀 할머니가 준 은빛 창과 하늘빛 북의 우연한 효력에 열광할 수밖에. 한번 상상해본다. 정말 신나겠다. 한 명은 번개 창을 이리저리 집어던지며 다른 꼬마 선녀는 천둥 북을 쿵쾅쿵쾅 마음껏 두들겨댄다. 요즘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와는 달리 구름 위에서는 제아무리 시끄럽게 천방지축 뛰어다녀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다음부터는 비오고 천둥 번개 치는 날 하늘을 올려다보자. 사방을 제 맘대로 번쩍이고 쿵쾅거리는 현상을 꼬마 선녀들이 구름 위에서 신나서 춤추며 뛰어다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어느새 두려움과 무서움은 씻은 듯 자취를 감추고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뒤집어 쓴 이불을 박차고 유리창에 코를 박고 저 먼 위를 쳐다보며 말이다.

 

옛날이야기 풍의 느낌을 자아내도록 부드럽고 따뜻한 정감의 삽화가 분위기를 더욱 그럴듯하게 일조한다. 그림 속 꼬마 선녀들의 장난꾸러기다운 모습은 우리네 아이들과 흡사하여 친근감을 더해준다. 작가는 유명 소설가인 한강. 자신이 아이를 낳으면서 동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밝힌다. 본격 작가에게 더 많은 동화쓰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이 현재로서는 그가 쓴 마지막 동화다. 아이가 동화를 볼 연령이 지난 듯하다, 나중에 훗날 손주가 태어난다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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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의 크리스마스
아츠코 모로즈미 그림, 모 프라이스 글, 한강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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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연중 가장 고대하는 날은 자기 생일,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다른 날들이야 그렇다 치고 크리스천도 아닌데 크리스마스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오로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주고 갈 선물에 대한 기대감 탓이다. 그렇다, 산타클로스. 이 존재를 부분적으로라도 믿는가 아닌가에 따라 유아와 어린이가 구별된다는 전언도 있으니. 부모로서는 아이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산타클로스의 파트너는 유명한 루돌프다. 캐럴에서도 나오는 빨간 코의 사슴. 물론 썰매를 끄는 동물이 사슴이 아닌 순록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겠지만 아이들에게 사슴과 순록의 차이를 굳이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고 많은 동물들 중에서 하필 순록이 썰매를 끌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품을 수 있게 마련이니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 마음에 떠오르는 호기심은 재빨리 충족시켜 주어야 부모가 편안해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가 늘고 선물을 줄 아이들의 수도 늘어남에 따라 종래 두 발로 이동하여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도 더 이상 힘에 부치게 되었다.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산타 마을의 요정들이 썰매를 고안하였고 이를 끌 동물들을 공모하였지만 적합한 동물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계곡에서 다리를 다친 순록을 구하기 위해 친구 순록들이 썰매를 끌어서 산타는 무사히 다친 순록을 구조할 수 있었고 이후로는 순록이 계속 산타의 썰매를 끌게 되었다는 간략하지만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

 

유아 대상의 동화책이니만치 이야기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 글밥의 비중은 최대한 줄이고 시각적으로 상상력과 영감에 호소할 수 있는 큼지막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그림책이라고 해야 맞겠다. 말 그대로 동화풍의 인물과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아있는 듯한 삽화들은 독서에 관심 없는 아이들의 관심을 쏠리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유명 작가인 한강이다. 그는 동시대의 작가로서는 드물게 동화를 직접 쓰거나 번역한 경우가 제법 있다. 짤막한 동화 번역 책에서 그의 인간적 내음을 접하게 되니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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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귄트 밀레니엄 북스 66
헨릭 입센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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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의 전기와 중기, 후기의 작품시기별로 한 작품씩 수록한 모음집이다. 선곡이 절묘하다. 이 책과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 이렇게 두 권만 있으면 어지간한 입센의 주요 희곡은 모두 포괄한다.

 

1. 페르 귄트

 

오랜만에 <페르 귄트>를 다시 읽는다. 중학생 시절에 헌책방에서 구해 읽은 삼성출판사 문학전집에 들어 있던 희곡집.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하고도 웅대한 스케일의 대작이었다는 점 하나뿐이다. 여전히 이 희곡은 섣부른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내 삶의 세월은 작품에 대한 안계(眼界)를 넓히는 데 도움은 된 듯하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가와 인물들이 작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다. <페르 귄트>는 역설이지만 국내에서 비인기 작이다. 번역본도 달랑 이 책 한 편이다. 그의 이후 사회극들의 조명에 비춘다면. 반면 그리그의 덕택에 음악계에서는 인기목록에 들어가는 편이다. 입센의 여타 극작품 중에서 음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인 페르 귄트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할지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외부적으로 표상되는 그는 응당 나쁜 인물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가 과연 사악한 인물일까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는 북구적인 인물이다. 커다란 체구에 거칠면서도 현실보다 상상과 모험에 치중한다. 좌충우돌하지만 의외로 과단성은 부족(21장에서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젊은이를 숨어서 지켜보는 페르를 보라!)하다. 세속의 도덕적 허울은 가볍게 무시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모성과 신성에 호소하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인다. 생의 기쁨과 젊음의 활력을 사랑하고 갈구하는 페르(48). 반면 쉽게 속임을 당하는 어수룩함 역시 천진함과 아이 같음에 근접한다.

 

이 작품은 현실과 설화가 위화감 없이 혼재되어 있다. 페르가 지어낸 수사슴을 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허풍(11), 도브레 왕에서 벌어진 트롤 소동(16)도 론데 산을 중심으로 하는 스칸디나비아의 북구적 전승과 연결되어 있다. 트롤은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등 현대의 가장 인기 있는 판타지의 출연진이 아닌가.

 

특색 중 하나인 장대한 스케일은 주로 페르가 해외에서 떠돌이를 하는 과정을 알려준다. 영국에서의 노예무역, 모로코에서 배를 털리고 뜻하지 않게 예언자 행세를 하다가 아니트라에게 남은 보석마저 털려버린 페르. 이집트에서 정신병자들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는 귄트. 마지막에 나이든 페르 귄트는 귀향선이 난파하여 겨우 목숨을 구한다.

 

솔베이지는 페르에게 스쳐지나가는 여인이지만, 그녀의 도덕적인 청순미는 페르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페르는 그녀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이전에 저지른 죄악은 불가능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 늙은 페르와 솔베이지의 상면과 페르의 죽음은 앞서서 페르와 단추공 간의 실갱이 대목과 맞물려 종교적 참회와 반성을 유도한다. 단추공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페르 같은 인물이라면 악마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귀향선에서, 그리고 난파선에서 악마는 선객을 가장하여 그에게 제안을 던진다. 페르는 비종교적 인물로 비치지만 의외로 그는 참종교적이다. 그는 당대에 진실한 신앙과 기독교가 퇴락했음을 탄식(51)한다. 그리고 장례식 장면에서 참신앙의 존재를 찾고 자기의 길을 걷기로 결심(53)한다. 그리고 페르는 악마를 골탕 먹이기조차 한다(510).

 

단추공이 페르와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페르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 그는 항상 페르였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57). 도브레 왕은 1막 이후 페르의 삶이 인간이 아닌 충실한 트롤의 삶이었음을 선언한다(58). 페르를 구제한 것은 솔베이지의 신앙과 사랑의 힘 덕택이었으니 어머니, 아내의 모성과 순결성이 그를 지켜준 것이다(510).

 

입센은 이 작품을 운문으로 창작하였다. 즉 작품에 시적인 정서를 불어넣으려고 하여 여기서 후대의 사회극과 같은 현실적, 사회적 요소의 직접적 표출을 삼갔다. 작가가 묘사하고자 한 노르웨이인의 부정적 속성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전형적인 긍정적 성격이 찬양받게 되었다. 작가의 오단인가 아니면 작품 자체의 고유한 생명력이 현대에 맞게 변용한 것인지 궁금하다.

 

2. 헤다 가블레르

 

입센 작품의 주된 무대는 가정과 가족이다. 가정은 자아가 타아와 마주치는 접점인 동시에 사회관계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다. 입센이 무엇보다 중시한 진실성의 문제는 도처에 편재하지만 개인과 가정에서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회에서야 논의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른바 중기의 사회극은 기본적으로 가정 내에서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노력이며, 이 작품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정의 출발은 낯선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으로 성립한다. 결혼의 의미가 육체적, 물리적 결합을 넘어선 정신적 교감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입센 당대는 물론 현대도 마찬가지지만 결혼은 도피처이며, 사회와 관습의 많은 제약을 감내해야 하는 (사랑과는 별도의) 관계 형성이다.

 

주인공 헤다 가블레르는 방금 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테스만의 아내다. 독자는 그녀가 장군의 딸이자 과거 사교계의 총아로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자기중심적이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성격, 불안한 예감대로 그녀와 남편의 대화는 엇박자를 보인다.

 

(헤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단 한 사람과 그것도 늘 같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다는 사실이에요.

(헤다) 전 그 당시 완전히 지쳐 있었던 거예요. 제 시대는 이미 끝났었죠. (P.378~379)

 

그녀는 애정 없이 결혼 하였고, 결혼생활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남편이 자기의 명예를 빛내줄 것을 기대했으나 예상보다 지연되어 실망감마저 증폭되고 있다. 자신의 내심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블랙)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요.

(헤다) 따분하다고 했잖아요.

(헤다) 죽도록 따분한 것, 아시겠어요?

(헤다) 애정?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P.384~400)

 

헤다의 남편에 대한 태도는 경멸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작가는 이를 대화에 앞선 지문으로 표현한다. 대화가 싫증난 듯이, 경멸하듯이, 싸늘한 눈초리로, 흥미 없다는 듯이 등등. 우리라는 표현에서 자기를 빼달라는 대사나 남편 가족의 일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대사를 통해 독자는 헤다의 성격과 사랑 부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헤다와 로브보르크는 과거에 한때 연인이었다. 그와 테스만은 둘 다 문화사학자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테스만은 중세 가내수공업 연구라는 과거지향적인 반면 로브보르크는 미래학에 가까운 미래지향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들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헤다의 내면은 로브보르크를 향해 있어 자신의 임신을 혐오하는 동시에 그와 엘브스테트 부인 간의 아이(잃어버린 원고)를 불태워버린다.

 

(로브보르크) 자식을 죽이는 것은 아비로서 최대의 죄악은 아니야......그만 어린애를 잃어버리고 말았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단 말이야. (P.439)

(헤다) 자아, 테아, 당신의 아이를 태워줄게요. 당신의 아이, 그리고 에일레르트 로브보르크의 아이. 불태워 줄게요. (P.441)

 

헤다는 이십대 초반인 만큼 아직 세상의 간교와 술책에 미숙하다. 그녀의 닭장 속 단 한 마리의 수컷인 블랙에게 위협을 받자 견딜 수 없다. 애정 부재의 결혼, 인내하기 어려운 평범한 남편과 뱃속의 아기,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그리고 타의에 의해 강요받게 되는 불륜 등.

 

(헤다) 어쨌든 당신 손아귀에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당신 뜻대로 해야 한다면 그건 마치 노예와 같은 거죠. 정말이에요.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싫어요.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싫어요. (P.465)

 

유례가 드문 단호한 결단으로 막이 내리지만, 여운은 씁쓸하다. 입센의 전작에서는 불행의 원인을 귀인하기가 용이하였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남편 테스만에게 비난할 점을 찾기 어렵다. 정직하고 범상한 성격의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나름 노력하는 소심한 남편. 종래의 독단적이고 권위적 남편상과도 다르다.

 

헤다는 나쁜 여성으로 키워졌다. 부모 없이 재산마저 없고 생계가 막막한 혼기가 다가온 젊은 여성. 화려했던 과거 시절은 한때의 꿈으로 간직해야 한다. 차라리 독신이 그녀에게 어울리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성에게는 현대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작중에 헤다와 로브보르크 간에 수차에 걸쳐 반복적으로 형상화되는 머리에 포도잎사귀를 장식하고라는 구절의 의미를 살펴본다. 그것은 디오니스소 또는 바커스 신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두 사람 관계의 실체인 삶에 대한 열정”(P.404)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헤다의 표현에 따르면 열정과 광기의 질탕한 축제에서 자신을 방기하지 않고 당당히 돌아오는 장면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 경우 보다 성숙한 자아를 발현시킬 수 있지만, 로브보르크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헤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예요. 이제부터 평생 동안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P.413)

(헤다) 그 사람한테는 인생의 향연에서 벗어나려는 힘과 의지가 있었어요. (P.458)

 

3. 아기 에욜프

 

극중에서 아기 에욜프는 1막에서 잠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내 물에 빠져 익사한다. 극의 실제 주인공은 아기 에욜프의 엄마인 리타이다. 아기 에욜프는 불쌍한 에욜프이기도 하다. 어릴 적 테이블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면서부터. 아기 에욜프 외에 또 다른 작은 에욜프가 있는데 고모인 애스터의 어릴 적 애칭이다. 오빠인 앨마스가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에욜프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여동생의 애칭을 자신의 어린 아들의 이름으로 명명한 이유도.

 

작품 속 미스터리는 하나 더 있다. 난데없이 등장한 쥐 할머니와 에욜프의 죽음 사이의 연관성. 피리부는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쥐 할머니는 쥐들을 유인하여 물에 빠뜨려 죽인다. 두 인물 사이에 어떤 설화적 유사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쥐 할머니가 에욜프의 죽음을 초래한 이유도 확연하지 않다.

 

리타는 피가 뜨거운 여성으로 남편에 대한 열정적 애정을 품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독점할 수 없는 것이 불만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차지하고 싶어 하며, 남편이 여동생 애스터, 아기 에욜프 그리고 저술활동에 주의를 분산하는 걸 못견뎌한다. 한마디로 남편 욕심이 많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에게 열렬하지 않으면 밖으로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는다.

 

(리타) 저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당신 한 사람과만. 저는 에욜프의 엄마만으론 살아갈 수가 없어요.......저는 완전히 당신 것이고 싶은 거예요. 당신 한 사람만의 것이요, 알프레드! (P.252)

 

에욜프의 죽음으로 리타와 앨마스, 앨마스와 에스터의 관계는 변화의 법칙에 지배를 받게 된다. 리타와 앨마스는 부부 관계를 비탄과 비판의 시각에서 되돌아보며 자성하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비난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한다.

 

(앨마스) (물끄러미 아내의 얼굴을 보며) 이제부터 우리 두 사람 사이엔 벽이 존재하게 될 거야. (P.290)

 

앨마스와 애스터의 관계도 전환점에 처한다. 앨마스는 리타와 헤어지고 애스터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순수하고 신성한 혈연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시절로. 그에게 있어 이때가 아름다운 시절로 결혼 생활은 오히려 타락한 시절일 뿐이다.

 

(앨마스) 애스터, 내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곳은 바로 너한테야.

(앨마스) 좋아, 그렇다면 나는 네게로 돌아갈 거야. 그리운 내 동생에게로. 너에게로 돌아가서 결혼 생활의 때를 씻고 나 자신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돼... (P.295)

 

앨마스의 순수하고 신성한 남매 간 사랑에 대하여 애스터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들이 혈연적 남매 간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들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하고 신성할 수 없다는 점을. 앨마스의 긍정적 부인에 대하여 그녀는 변화의 법칙을 언급한다. 그들 사이를 막아주었던 혈연의 방패가 사라진 지금, 애스터는 근친상간적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의 사랑이 깊고 컸던 만큼 두려움 또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기 에욜프를 대신해서 작은 에욜프가 돼 달라는 리타와 앨마스의 요청을 거부하고 그녀가 도망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앨마스) (긴장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왜 그러는 거냐, 애스터. 마치 도망치는 것 같구나.

(애스터) (고뇌를 억누르며) 그래요, 알프레드! 도망치는 거예요.

(앨마스) 도망치는 거라고? 나한테서?

(애스터) (속삭이는 목소리로) 당신과 나 자신한테서.

(앨마스) (뒤로 주춤 물러서며) 아아! (P.313)

 

아기 에욜프는 죽고, 작은 에욜프는 떠났다. 앨마스마저 떠나려고 한다. 리타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토록 거부하던 변화의 법칙에 순응하기로 한다. 이기적이며 독점적인 사랑을 갈구하던 리타는 욕심 부리지 않고 책임 의식과 (에욜프와) 화해를 위하여 자선 사업을 할 결심을 품는다.

 

(앨마스) 당신이 그만한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에욜프가 태어난 것도 무의미한 일만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군.

(리타) 그 아이의 죽음 역시 무의미한 일만은 아닐 거예요. (P.325)

 

앨마스는 아내의 진심을 이해하고, 떠나기를 그만두고 리타를 돕기로 한다. 입센은 평범한 가정 비극을 인류애로 승화시킨다. 리타의 이타적 변모를 통해서. 앨마스의 고통스런 자각을 통해서. 이기적 사랑과 욕망은 사라지고 인류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 남는다. 두 에욜프의 떠남을 계기로. 작품의 끝대목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리타) 우린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까요?

(앨마스) (그윽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물론 위쪽이지. 산꼭대기, 별이 있는 쪽. 그리고 깊은 침묵이 흐르는 쪽.

(리타) (손을 내밀며) 고마워요!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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