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 생각하는 숲 5
셸 실버스타인 지음,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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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와 마을문고에 갔을 때, 역시 읽은 책이다. 작가는 꽤 유명한 사람이어서 (내게는 이름만 유명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단색의 펜으로 그린 삽화와 간명하지만 잠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로 인해 최소 초등학교 저학년 생에게 적합한 책이다.

 

애완동물이라면 강아지, 고양이 등의 전통 있는 유형에서 조류, 파충류, 곤충류와 같이 최신의 다양한 동물이 선택받지만 코뿔소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스럽다. 작가는 이런 선입견을 단호히 부인한다. 코뿔소가 얼마나 귀엽고 쓸모가 많은지 하나하나 예시를 들어 보여준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형편없는 성적표는 부모님이 보시기 전에 코뿔소가 씹어 먹어버릴 수 있다는 데 일단 환호할 것이다. 아빠에게 용돈 타내기를 하는데 한몫 보탤 수도 있다. 눈앞에서 험상궂은 인상만 한번 쓰면 충분하니까. 엄마가 때릴 때 막아 줄 수도 있다. 같이 노는 데도 유용하다. 해적놀이, 줄넘기 놀이, 뱃놀이, 술래잡기, 악당 놀이, 바닷가에서 상어 흉내 내기, 할로윈 축제 때 예쁜 소녀로 분장하기 등. 생각보다 가능한 놀이가 엄청 많다.

 

물론 사소한 불편사항도 존재한다. 문을 열기보다 부수기를 잘 하며, 걸어가다 가끔 내 발을 밟을 수도 있다. 목욕시키기 힘들며, 무릎에 앉혀서 놀려면 내가 납작해진다. 식성이 좋아서 식탁마저 씹어 먹을 정도다. 코뿔소만 그런 건 아니다. 애완동물도 다소간 불편한 점들은 다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실버스타인의 글은 어린이용 동화로 인식되지만 흑색 펜으로 쓱쓱 그린 단순한 삽화는 어린이의 눈을 사로잡는데 취약하다. 내용도 짤막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문장마다의 느낌과 전체를 읽고 난 후의 여운은 성인들이 곱씹기에 적당하다.

 

날카로운 뿔을 가진 육중한 코뿔소를 귀엽다 여길 사람이 몇 명 되겠는가. 작가는 겉모습과 선입견에 흔들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코뿔소는 왜 안 된단 말인가?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아이와 코뿔소의 표정 변화가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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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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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와 마을문고에 갔을 때, 짬을 내어 읽은 책이다. 칼데콧 상이라고 제법 권위 있는 동화상을 수상하였다. 동화책이 아닌 그림책으로 분류될만한 정도이니 사실 내용으로는 특별한 게 없다. 그림책답게 글보다 형형색색 그림의 비중이 더 높아서 글 잠깐 읽고, 그림 한참 바라보는 식으로 책장을 넘긴다.

 

아이들은 노는 게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놀기도 하지만 대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방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집안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뛰어다닌다. 어른들, 특히 주부 입장에서는 그대로 놓아둘 수가 없다. 여기에서 아이와 엄마 간 갈등이 비롯된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심지어 벌을 주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그리고 반발심.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어른의 간섭이 일체 없으며 내가 왕이 되어 무엇이든 마음대로 정말로 신나고 즐겁게 한없이 놀 수 있는 머나먼 섬으로. 어른이 있으면 안 되니까 사람이 사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무인도? 그건 또 재미없다. 그래, 괴물들이 사는 곳, 무섭고 험상궂고 잔인하며 덩치가 산만한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왕이 되고 싶다.

 

그림책 속의 괴물은 온갖 다양한 생김새와 동작으로 무섭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왠지 귀엽고 순진하며 심성이 착하게 생겼다. 아이의 고함소리 한 마디에 움찔한다. 그야말로 아이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괴물답다. 괴물들과 한바탕 맘껏 놀이를 즐기는 장면이 큼지막한 삽화로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아이와 괴물들의 신나는 표정도 드러난다.

 

그림책의 결말은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모습과 아이 방에 저녁밥이 차려져 있는 장면이다. 아무리 티격태격하더라도 아이는 부모 없이 살 수 없으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하늘이 내려준 준 것이다. 우리네나 서양이나 삶의 모습은 동일한 모양이다.

 

몇 세 정도의 아이들이 읽을 책인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글을 읽어야 하므로 제 힘으로 보려면 5~6세쯤이 제 나이로 생각된다. 일곱 살이 되는 둘째 아이가 옆에서 책을 보며 킥킥거린다. 슬쩍 제목을 보니 <초원에서 살아남기>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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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마운틴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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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에서 언급되어 비로소 존재를 알게 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무슨 책이기에 산악인들에 사이에서 무림비급처럼 전해 내려온단 말인지. 아무래도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결국 책장을 펼쳐들고 말았다.

 

어릴 때 세계의 불가사의를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중에 세계 최고봉이 에베레스트가 아니며, 중국에 있는 암네마친 산이 해발 9천 미터를 넘는데 다만 공인받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기억이 난다. 이후 냉전 시대를 맞이하여 중국 측에서 일체의 접근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은 신비는 사라졌지만 우주에 닿을 듯 우뚝 솟아있는 장엄한 산봉에 대한 환상은 여전하다.

 

요기스탄에 있는 해발 12,000미터가 넘는 최고봉 럼두들 산을 등정하기 위한 팀이 꾸려진다. 팀원 소개와 럼두들 산을 등반하기 위한 준비 작업, 등정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등반대장인 바인더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것이 이 책이다.

 

다소 간의 의아스러운 점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진지한 등반기에 가깝다. 물론 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특이한 행동, 요기스탄의 풍물과 포터들에서 영어식 해학을 시도하고 있지만 요절복통할 지경까지는 아니고 약간은 어이없고 황당한 감을 이끌어낼 뿐이다. 작가는 인물마다 개성적인 유머 장치를 설정한다. 길잡이 정글은 항상 길을 잃고 헤매며, 촬영기사인 셧은 불운과 사고로 촬영필름을 모두 못쓰게 되었다. 벌리는 항상 피로증에 걸려 있다. 바다 피로증, 열 피로증, 골짜기 피로증 등등 가는 곳마다 족족 피로증에 걸린다. 의사인 프로운은 어떤가. 그는 항상 뭔가 병에 걸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이다. 과학자 위시의 모든 측정 수치는 숫자 153과 관련된다. 언어학자인 콘스턴트의 잘못된 발음으로 포터의 숫자가 삼천 명(그것도 엄청난 숫자인데!)이 무려 삼만 명의 군중이 되어 대기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이야기의 축은 대원들과 대장 바인더의 속임 관계, 등반대와 요리사 퐁 간 갈등 관계로 이루어진다. 럼두들 등정은 퐁의 음식을 회피하려는 대원들의 처절한 진저리로 가속화된다. 바인더와 콘스턴트가 전진기지에서 제1캠프를 건너뛰고 단숨에 제2캠프를 설치할 고도에 다다른 것은 전적으로 퐁의 덕택이었다. 언제나 소화불량을 일으켜야 하는 이상한 음식을 감내해야 한다는 설정은 자못 비현실적임에도 그것이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편 들기도 한다.

 

한편 모두들 아는 사실을 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대장 바인더는 등반대의 축인 동시에 왕따라고 할 만하다. 대원들은 정상 등정에는 관심이 없다. 어떡하면 제 한 몸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 지에만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잔류하려고 애쓰며 의학용도로 가져간 샴페인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대원들을 신뢰하면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며 등반대의 목표 달성에 헌신하는 바인더, 그에 대한 대원들의 태도는 비웃음과 조롱에서 종내 자성과 존경으로 바뀐다. 바인더는 크레바스 속의 샴페인 사건과 제1캠프 발견 실패의 이유를 결코 알아내지 못하였음에도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바인더는 럼두들이 아닌 노스두들을 등정하였고, 엉뚱하게도 프로운이 포터에게 실려서 럼두들 정상에 올라선다. 누가 올랐던 어쨌든 성공이다.

 

산악인들이 이 소설을 애지중지한 연유는 일차적으로 희소성에서 기인하였으리라. 수많은 문학작품 중에서 산악, 특히 등반을 소재로 삼은 경우는 과문이지만 없는 듯하다. 자기네가 좋아하고 빠져있는 등산을 다루었으니만치 호기심과 친근감이 남다르지 않겠는가. 근엄하고 딱딱한 책이 아니라 가볍고 유쾌하며 해학적이고 흥미로우니 금상첨화다. 등반대가 들고 다니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 적합하다. 그리고 이 작품 의외로 진지하다. 산악인들이 높고 험준한 이역의 산을 등반할 때 갖게 되는 개인들의 심적 태도와 대원들 간의 역학 관계가 비교적 세밀한 등반 과정과 함께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실제 자신들의 체험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고지식하고 우직한 바인더는 허황한 이야기로 새기 쉬운 소설에 적당한 무게와 진실을 부여하여 독자의 지지를 받는다. 그는 항상 대원들 간 신뢰와 단결을 강조하는데 등반 같은 단체행동에 있어 최고의 금언이라 할 만하다. 그는 대장으로서 모래알 같은 등반대를 결속시켜 팀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팀원들의 개인사(그것이 꼭 약혼녀에 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헌신과 공감과 이해의 자세.

 

나는 진실과 직면하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삶 그 자체가 내게 보답할 것이다. (P.206)

 

책표지도 그러하고 코믹산악소설이라고 타이틀에 앞에 붙여져 있어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사실 그럭저럭 볼 만할 정도였다. 인수봉이나 울산바위 리지에서 읽다가는 추락할 수도 있으리라는 주의 문구는 아무래도 과장되었다고 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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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백만장자 삐삐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롤프 레티시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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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삐삐 시리즈가 우리들에게 여전히 친숙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하다. 단지 과거에 TV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 하면 본말이 전도된 해석이다. 이미 상당한 인기를 모은 작품이기에 TV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게 올바를 것이다.

 

어른 입장에서 삐삐는 불온한 아이다. 기존의 사회와 문화적 틀을 수용하길 거부하며 당돌하게도 어른들과 맞서 절대 지지 않는다. 역으로 보면 이런 점들이 또래의 아이들을 더욱 열광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후속 작에서도 삐삐의 그런 면이 여실하다.

 

삐삐는 부자다. 돈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가 사탕과 장난감 등을 사는데 금화를 거침없이 내민다. 해당 장의 표제도 도전적이다. ‘근검 절약은 나빠’. 사치와 낭비를 죄악시하고 근검과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언급할 것도 없고 대다수 서민들로서는 삐삐의 행동과 경제관념을 아이들이 모방할까 걱정될 뿐이다.

 

삐삐 역시 또래와 똑같은 아이다. 학교 소풍에 따라가서 아이들과 괴물 놀이를 하느라 온통 법석을 피우지만 즐겁기 이를 데 없다. 삐삐의 무한 매력은 가식 없는 순수함에 있다. 무거운 짐마차를 끄느라 허덕이는 지친 말에 인정사정 두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을 향한 삐삐의 분노는 고귀하기조차 하다. 잘난 척하는 이른바 어른의 몰인정성, 잔인성과 무자비함과 아이들의 순수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토미와 아니카가 삐삐와 어울려 노는 데 흠뻑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일탈의 즐거움에 있으리라. 부모를 포함한 가족과 사회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거의 무조건적인 금지와 일방적 지시를 퍼붓는다. 금지된 것일수록 더욱 재밌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른들만이 아니다. 그런데 삐삐는 이를 과감하게 깨뜨린다. 아이들에게 삐삐는 대리만족이자 영웅이다.

 

작고 약한 아이들의 시각에서 보면 덩치 큰 무뢰한을 가뿐하게 들어 올리고 공기놀이를 하듯 던질 수 있는 삐삐는 선망의 대상이다. 공부를 제외하면 삐삐가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천하장사의 힘은 기본이고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 공중제비, 큰 뱀과 호랑이를 제압할 용기와 담력 등.

 

어릴 적에 무인도에 표류하여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소망을 품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천국의 섬. 실제라면 무섭겠지만 삐삐와 함께라면 안심하고 무인도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15소년 못지않게.

 

아이들은 기쁘지만 어른들은 두렵다. 삐삐가 옳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실행할 용기가 없음을 자각해서다. 책을 통해서나마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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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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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과 여러모로 대비되면서 유사한 맥락을 지닌 작품이다. 표제 정크는 쓰레기라는 의미. 표준적 시각에서 볼 때 작가 김혜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의 쓰레기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쓰레기에 대응하는 손쉬운 방식은 우선 싹 쓸어버린 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묻거나 치워버린다. 시각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깔끔하고 상쾌하다. 쓰레기의 존재를 일체 거부한다. 반면 작가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쓰레기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사람과 사회가 존속하는 한 쓰레기의 완전 배제는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쓰레기를 인정하고 본질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엄마와 아버지 모두 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였다. 나에게는 늘, 무언가를 망쳐 버리는 힘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 필요도, 쓸모도 없이 인생을 망쳐 버리기만 하는 쓰레기 같은 새끼로 태어났으니까 말이다. (P.221)

 

전작의 이름 없는 지방야간대학의 여대생은 이제 성재라는 번듯한 이름의 젊은 남성으로 대치되었다. 전작에서 가족 관계의 부재는 여전하다. 성재의 어머니는 첩이고, 성재의 아버지는 성재를 글자그대로 결연하게 절대적으로 외면한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성재의 어머니와 성재는 단순한 동거인 이외에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그래도 성재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 면모를 보인다. 전작에서 음주와 피어싱, 그리고 섹스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인이었다면 여기서는 물뽕과 화장술, 그리고 다른 유형의 섹스가 동일한 역할을 맡는다.

 

작가는 사회적 일탈 내지 성적 소수자의 현상에 관심을 지닌 듯하다. 전작에서 여주인공과 노래방 남성도우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더니 여기서는 성재와 성재의 애인 민수 형이 작품 전체를 구성하는 골격을 형성한다. 그렇다, 남성 동성애 관계. 책을 읽다 보면 막연히 상상만 했던 그들의 구체적인 역할과 성행위, 관계망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의도치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성재의 민수 형에 대한 감정과 바램은 대상이 동성이란 점을 제외하면 이성에 대한 감정 못지않게 진지하고 열렬하다. 일찍부터 이성보다는 동성에 사랑과 성욕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을 비난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동성애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염두에 두면 자연현상은 다수의 정상 가운데 소수의 비정상 현상을 언제나 병치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동성애의 말초적 호기심 자극을 넘어서 인간 본질에 연관된 질문 제기다.

 

성재는 철저한 비주류다. 탄생의 비밀도, 가족 관계도 그러하며, 그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도 그러하다. 어디 그뿐이랴, 굳이 이성을 거부하고 동성에서만 욕정을 느낀다. 그가 세상에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자신의 표현 그대로 쓰레기 같은 존재다. 그가 이따금씩 약물을 흡입하는 이유 또한 친구 형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잊어야만,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쓰레기 같은 인생길 위에서 쓰레기처럼 살아가고 있는 거나, 쓰레기 같은 길바닥을 애써 외면한 채 화려하고 번듯하게 살아가는 거나 다 마찬가지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우리 모두가 다 쓰레기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P.112)

 

성재가 꿈꾸고 바라는 것은 언뜻 대단찮은 일이다. 독립을 할 수 있을만한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자 하는 것. 젊은 남성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자리는커녕 길거리 화장품가게의 아르바이트 점원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남자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아이까지 두고 있다. 어디에도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현상을 깨뜨리려는 시도는 헛된 실패만을 반복한다.

 

어디를 가도 다 마찬가지이고,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현실은 절대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마련이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달라지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었다. (P.77)

 

문득 성재와 민수의 관계가 궁금하다. 성재의 감정만큼 민수도 절실하게 성재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작중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헤어지자고 한 것도 다시 만나자고 한 것도 성재이다. 민수는 사회적 활동을 위해서 직업도, 가정도 정상적으로 유지한다. 성재가 없어도 별로 아쉬워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아니, 어쩌면 사회적 가면을 뒤집어써야 하므로 민수 자신도 성재 못지않게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성재와는 달리 민수는 포기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성재와 민수의 차이점일 수도. 여기에서 두 사람의 감정은 조금씩 엇갈리게 된다.

 

구질구질하고 외롭고 두려운 현실로부터 떠나고 벗어나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사랑과 구직의 뼈저린 실패를 겪은 성재는 현실로부터 안녕을 고할 수 있는 유일한 절대적 방법을 택한다. 죽음을 쉽게 결심한 사람은 없겠지만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는 것보다 어려운 게 죽는 일이다. 안 그렇다면 무수한 사람들이 손쉬운 길을 택하였을 것이므로. 죽음을 목전에서 경험하면 인생관이 뒤바뀐다고들 한다. 죽음 앞에서 하찮치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민수 형은, 어디에 있던 사람일까. 내가 사랑하던 그는 오로지 내 안에만 존재했던 환상이었다......그래, 그랬구나. 이제 진짜, 이별하는 거구나. 내 사랑과,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안의 당신과, 헤어지는 거구나. 눈물이 조금 흘렀지만, 아프고 괴롭기보다는 편하고 담담한 느낌이 들었다. (P.237)

 

작품의 마지막은 화장장이 배경이다. 성재는 사고로 죽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았고 소리 내지 않았던 말, 아빠, 아버지를 읊조리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상실한 부성과 성재 삶의 왜곡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한다. 그의 가슴 깊숙이 드리워진 원초적 슬픔과 그리움은 아버지의 부재와 불인정으로 기인한다. 여기서 성재와 아버지를 화해시킨다. 건전한 작별, 그래야 성재의 앞날은 정크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므로. 일말 아쉽기도 하다. 작가가 다소 서두르는 감이 들었다. 성재와 민수 형의 관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마저 조급하게 화해시키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오래전 아버지의 몸속에 있었고 탄생에 빚을 졌다는 사실이 이십년 간 남남으로 살아왔던 그들 부자지간이 일거에 회복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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