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멜라 1 대산세계문학총서 79
새뮤얼 리처드슨 지음, 장은명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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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파멜라; 또는 미덕의 보답>이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다.

우선 서간체 소설이라는 점. 번역본 기준으로 9백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전부 편지 형식이다. 처음엔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치니 전개가 매우 흥미진진하여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다만 이 작품은 진정한 의미의 서간체는 아니고, 서간체 형식을 차용했을 뿐임이 금방 드러난다. 통상 서간체는 두 주인공 간의 주고받음을 포함하는데, 여기서는 오로지 파멜라의 일방적 글쓰기만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형식만 다를 뿐 자전적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일기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중반부터는 수신자가 표시되지 않고, 요일이 대신 표기되어 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표제는 이 소설의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 미덕의 보답이라고 하여 작가가 교훈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귀족 주인에게 순결을 위협받는 하녀가 현명한 처신으로 순결을 지킬뿐더러 주인과 결혼을 하게 되어 행복과 신분상승을 쟁취한다는 줄거리는 이를 명백히 한다. 전반부는 위협과 감금에도 정조를 지키려는 파멜라의 눈물겨운 사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면 후반부는 주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준 파멜라가 계급의 벽을 깨고 여주인으로 입신함으로써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일견 매우 통속적이지만 그만큼 대중의 정서에 잘 부합하는 것이어서 당대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여성심리에 대한 우아하고 섬세한 묘사에 있다. 편지를 쓰는 이가 파멜라이므로 관찰자는 자연스레 여성의 시각에서 인물과 주변을 조감하게 된다. 10대 후반의 소녀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력과 위험에 결연히 맞서지만 내심은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할 것인가. 우월한 신분과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그녀는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한없이 여리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녀는 부모님께 몰래 보내려는 편지에서 이 모든 것을 한 치도 숨김없이 진실 되게 토로한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기대와 낙담,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기술되어 있어 작가가 당연히 여성일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만큼 작가의 가면이 거의 완벽하다.

 

파멜라는 당대의 관점에서 이색적 존재이다. 그녀는 하녀라는 낮은 신분이므로 계급적 오만과 독선에 젖어있지 않으며, 부모의 교육과 신실한 종교적 감화로 고상한 도덕 기준을 갖추었으며, 돌아가신 주인마님의 교육으로 여느 숙녀 못지않은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을 바라보며 그녀의 가슴은 항상 따스함을 품고 있다.

 

풍요로우면서도 불의한 것보다는 가난과 정숙함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겠니?”(P.52)

 

한 시간 동안 순결하게 사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죄지으며 사는 것보다 나아요. 또 순결을 지키려다 제 생활이 아주 비참해진다 해도 정결을 지키는 저의 행복한 시간을 제가 만약이라도 최후의 일각까지 연장시키지 않는다면 전 제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P.249)

 

이렇게 그녀는 내내 한결같이 순결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며 정조와 재화의 타협적 거래를 단호히 거부한다. 이것이 작가가 세상에 전하는 중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당대의 도덕적 관념이 많이 흐트러졌음을 역으로 드러낸다.

 

18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 엄연히 신분과 계급의 차별이 공인되던 사회임을 감안하면 파멜라의 의식은 매우 선구적이다. 자신의 욕망 충족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록 하녀일지라도 물리적 위협과 신체적 감금을 마음대로 자행하고 이것이 용납되는 시절이다. 그녀가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주인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애원하는 역전된 현상,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강압적으로 순결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호소 등에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결국은 신 앞에 동등하다는 인식으로 확장된다.

 

파멜라의 고난은 이 1권에서 내내 계속된다. 그녀가 겪는 고통과 위험은 독자에게 공감대와 흥미를 불러일으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엇갈린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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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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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 작품은 매우 이색적인 걸작이다. 이색적이라 함은 그 제재와 기법 면에서 기존의 정통 문학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인간이 아닌 일개 도롱뇽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는 대담성은 물론이고 지능을 가진 도롱뇽이 인간의 진화과정을 답습하고 이내 이를 위협하는 단계는 비록 인간의 관점이긴 하지만 경이와 동시에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안드리우스 스케우크제리의 발견과 발전을 최대한 생생하게 기술하기 위하여 작가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언론보도, 보고서, 여행기, 표어, 전보 등은 기존 소설 서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창의적 접근 면에서는 오히려 현대 문학보다도 뛰어나다.

 

걸작이라 함은 통속의 함정을 용케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대중적 흥미와 신기함에의 호소에만 열을 올리다가 문득 단명에 그치고 마는 작품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고전 명작은 오히려 외양 면에서는 수수하다. 작품의 내적 본질을 밝히고 드러내는데 성공해야 불멸의 고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이다. 차페크 역시 인간이라는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도롱뇽에 빗대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서늘한 메시지가 가슴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작가와 작품의 문학적 역량이 탁월한 덕분이다.

 

차페크 최초의 성공작 희곡 을 읽은 이라면 이 소설이 주는 의미가 보다 명확히 다가온다. 1차 세계대전 종전의 혼란기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야의 혼란기에 작가는 소재와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과 주제의식 면에서 상당히 공통된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발명한 동기는 고귀한 동시에 불순하다. 노동의 고통에서 인간을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는 인간적 동기는 또한 인간에게 있어 노동은 삶의 본질적 요소임을 간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로봇에게 보다 지적인 노동을 시키기 위하여 부여한 지능은 결국 인간을 닮은 로봇을 낳게 되며, 이는 자연스레 로봇의 각성과 인간과의 대결로 이어지게 된다.

 

도롱뇽은 어떠한가? 진화단계에서 고립된 진귀한 생물체를 인간세계에 끌어낸 것은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진주채취 사업이 한계에 도달하자 이내 토목공사 동원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들을 잘 부려먹기 위해 역시 인간에 준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급속도(개체와 군집 모두)로 인간화 되어갔다. 그래서 유한한 지구를 둘러싸고 도롱뇽과 인간은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계인 로봇과 생명체인 도롱뇽에게 주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안티테제로 설정되어 있다. 차페크의 관심은 그들에 비추어 본 인간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소위 신대륙 발견과 산업혁명 이후 팽창되어 온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일대 극성기에 도달하였다. 정복과 개척, 그리고 상품과 시장이 그들의 좌우명이 되었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도롱뇽의 노동력을 활용한 간척사업과 지하개발이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도롱뇽 덕분에 비로소 만물의 영장이 되어간다는 장밋빛 전망에 젖어들었으니 이는 기계문명 예찬론과 흡사하다.

바르고 당당한 도롱뇽 시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사물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숫자와 대량 생산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다...도롱뇽들은 한마디로 <>을 의미한다.”(P.267)

 

노예제도는 인류 역사상 장기간 존속되어온 제도이다. 인간은 상품화하는 그 비인간성과 비윤리성을 이유로 근대들어 서서히 소멸되었다. 우리는 로봇과 도롱뇽에 재산적 가치를 부여하여 즉, 상품화하여 이를 거래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로봇과 도롱뇽이 지능을 갖게 되어 인간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때 그래도 역시 상품 거래가 타당할지와 그네들이 이를 계속 용인할지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의도적으로 집단 살육을 자행하는 종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여러 설명이 분분하다. 그 중에 하나, 인간이 먹이사슬에서 최상층이며, 인간을 견제할 다른 종이 부재한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부 견제가 불가능하다면 내부 견제가 자연스럽게 싹트는 것이다. 그래서 개별적 살인뿐만 아니라 집단적 살인이 그침 없이 발생하며, 이것이 중지될 것을 누구나 소망하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쟁의 불가피성은 전화에 휩쓸린 사람들의 비참과 고통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차페크는 16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세계정세는 나날이 암울해지고 인간성에 대한 신뢰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지난 시간동안 그가 찾고자 하고 나누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 회복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있어 인간의 가치는 거시적이고 영웅적이지 않다. 오히려 미시적이고 소시민적인 평범한 일상 속에 진리가 존재한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이렇게 위트 있고 산뜻하게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은 차페크 특유의 미덕이다. 그는 독자를 숨 막힐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다년간 언론 생활을 했던 데다 타고난 기질은 아마겟돈의 디스토피아에서도 미소를 자아낸다. 작품의 결말은 분명 비관적이지만 낙관적 요소를 숨기지 않는다. 솔직히 이 방대한 팩션 작업을 치밀하게 수행한 작가의 역량에 감탄과 질시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장 '작가, 혼잣말을 하다'는 <평범한 인생>을 상기시킨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아울러 이 멋진 작품을 아름다운 책으로 현재화시킨 공로는 옮긴이와 출판사에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책의 만듦새가 신통치 않으면 일단 책에 손이 가질 않으며, 읽기에도 힘들다. 영문학을 전공한 옮긴이는 무슨 계기로 차페크의 세계에 빠져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속적 관심과 세심한 노력으로 상당히 낯선 작품임에도 전혀 언어상의 곤란을 느끼지 않고 작품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어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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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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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

 

모름지기 동화는 읽을 때 다소 유치한 맛이 있어야 제격이다. 본격 성인 대상 문학인마냥 젠체하고 거들먹거리면 동화로서 미덕이 미흡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완연한 동화이다.

 

소위 생명장난감을 소재로 한 내용은 사실 좀 섬뜩하다. 생명을 지닌(또는 흉내 낸) 장난감이라니! 작가의 의도는 이해되지만 읽는 내내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는 게 또한 사실이다.

 

공언된 일차적 주제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가족 내 엄마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반성. 진정한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어주지 않고 물질적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은 참된 엄마가 아니다.

진짜 엄마이시군요. 생명장난감은 집안일은 잘 하지만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거든요.”(P.106)

 

한편 이차적 주제는 외형적 물질만능주의와 생명존중 부재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은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눈길을 오늘로 돌린다면 생명장난감은 바로 애완동물이 된다. 혹자에게는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받지만 여전히 단순한 장난감 취급받는 경우도 많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무수한 버림받은 개와 고양들이 존재하게 된다. 근본적인 고민은 생명을 지닌 존재가 장난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차원이 돼야 할 것이다.

 

작품 내에서 생명장난감 엄마가 고장 난 것으로 의심받는 대목은 현대인에게 있어 매우 시사적이다.

저거야! 저 장난감이 소리 내어 웃었어! 생명장난감은 마음이 없어야 해! 저건 불량품이야! 잡아가야 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P.87)

 

인간의 인간다움은 바로 마음에 있다. 희로애락을 느끼고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지닐 때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마음이 존재하는 탓에 불량품으로 분류되는 사회. 그것은 속도와 경쟁만이 찬양받고 승자가 독식하는 비정한 우리 사회를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음을 가지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뒤처지고 도태되어 패배하는 사회,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접어두고 냉혹해지기를 요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듯 하면서 실로 무시무시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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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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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동화치곤 특이하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석규가 파격적인 세종대왕 역할로 나와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다루는 것도 이채롭다.

 

세종대왕이 심심풀이로 또는 자기만족에 겨워서 한글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지 않았음은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익히 드러난다. 언문일치와 애민(愛民)이야말로 한글 창제의 기본 정신이다. 자신이 다년간 애써 만든 글자가 백성들에게 잘 수용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자신이 만든 글자를 어떻게 테스트하였기에 확신을 가졌을지 사뭇 궁금하다.

 

이 작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운과 세종의 만남은 그래서 작위적이지만 불가피하다. 세종 외에 반포 전에 장운에게 한글을 가르쳐 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이후 작품방향은 두 갈래로 전개된다. 장운으로부터 누이 덕이, 난이, 오복이로, 또한 석수장이들로 한글은 자연스레 확산된다. 이는 한글의 습득 용이성과 실용성을 웅변적으로 입증하는 셈이다. 아울러 글자는 지식의 권력화를 가능하게 한다. 한글은 양반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해왔던 지식 특권을 평민들이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한글 창제에 그토록 사대부들의 반대가 극심했음은 자명한 것이다. 즉 한글은 은연중에 계급의식을 표출하는 셈이다.

 

장운의 행장을 통해 한글의 보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작품의 날줄을 구성한다면, 계급 간 갈등과 피지배층의 곤궁의 묘사는 씨줄을 담당한다. 이것이 맞물려서 이야기의 사건과 갈등을 증폭하여 추진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야기에 흥미를 증폭시켜 준다.

 

작가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장운이 점밭과 석수장이들로부터 돌 깍는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스스로를 낮추면서 진정한 장인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낮은 곳으로, 아래로 임하는 것, 그것은 바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뜻이 아니겠는가.

 

물이 들어와 펑퍼짐한 연꽃 속에서 찰랑였다. 마치 온 세상을 연꽃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살짝 아래로 처진 꽃잎 하나가 물길을 터 주었다. 맑은 물이 연꽃에 감싸였다가 다시 흘러 내렸다.

아래로 죽 이어지는 물줄기가 작은 강 같았다.”(P.208)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화로서는 주제의식이 너무 진지하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과연 어린이들이 한글 창제의 깊은 함의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한편, 요즘 아이들은 상당히 지적 이해수준이 높으므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수용 여부는 그네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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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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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

 

동화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무대에 따라 현실 동화와 가상 동화로 구분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현실 동화는 현실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일상적 생활 속에서 인물과 사건을 서술한다. 반면 가상 동화는 가상의 시공간이 배경이 된다. 그것은 먼 과거나 미래가 될 수 있으며, 지상의 실재 공간이 아닌 지하, 해저 및 우주를 무대로 삼을 수 있다.

 

가상 동화는 독자에게 공상과 환상을 제공하기 용이하다. 독자는 제한된 현실을 떠나 무한한 상상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다. 게다가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좋다. 반면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 동화의 목적은 많이 상실된다. 이에 비해 현실 동화는 일단 생소함과 이질감을 주지 않아서 좋다. 독자는 친숙한 일상에서 간과하였던 생활을 재발견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 어찌 보면 가상 동화와 현실 동화는 양면성을 지닌 듯하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현실 동화다. 그리고 동화가 주는 정통적 재미와 교훈을 듬뿍 담고 있어 읽는 동안 미소는 물론 콧잔등을 짠하게 한다.

 

안공주가 맞이하는 현실은 행복하지 못하다. 엄마 없는 편부 슬하, 게다가 아빠는 알콜중독 재활원에 가있다. 생활비는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전부. 이 작품에는 이외에 청년실업, 집주인과 세입자 간 관계 등 평범한 소시민 사회의 일상과 갈등이 반영되어 있다.

 

정상적이지 못한 환경의 아이들은 자칫 비뚤어지기 십상이다. 어린 그네들이 감당하기에는 세상의 어둠과 시련은 혹독하다. 그래서 이 작품의 핵심적 사건은 안공주의 일순간의 비행에서 비롯한다. 탈탈 털어 560원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안공주 눈앞에 등장하는 해님마트에서 배달 온 수북한 장바구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며 사흘 굶어 남의 집 담벼락 안 넘는 이 없다는 속담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여기서 현실과 동화는 차이를 보인다. 현실 세상에서 그까짓 남의 장바구니에 손댔다고 두고두고 양심이 찔릴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안공주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안공주의 본성이 어려운 환경에도 선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럴듯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도 오히려 맛이 없고, 폭식증에 걸린 양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며, 그나마 먹은 게 체하여 몸이 온전치 못하여 쓰러지기조차 한다.

 

전형적인 동화답게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속물덩어리로 비쳤던 팽 여사는 의외로 가슴이 따뜻한 아이엄마이며, 해님마트의 사장 또한 돈에만 눈먼 장사꾼이 아니다. 안공주의 아빠 또한 반드시 알콜 중독을 극복할 것을 다짐한다.

 

이렇게 사건과 갈등은 해결된다.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도 어린 독자에게 남겨준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어른이라면 여기서 한걸음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의 자격과 마음가짐, 국가의 소년소녀가장에 사회복지 정책의 제고 필요성 등 거창한 구호는 생각하지 말자.

 

안공주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다. 따뜻한 가족, 소박한 밥상. 이런 자그마한 소망조차도 이루지 못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의 실현과 지원을 위한 개인을 물론 사회와 국가의 역할과 노력은 어떠한가. 여기에서 허울 좋은 정치 구호는 꼬리를 감춰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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