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 소설선 - 한국문학과 관련있는
김종군 지음 / 박이정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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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중국 전기소설 모음집을 읽었는데, 번역과정에서 편집과 윤색이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원형에 가까운 번역집을 찾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전기소설 20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먼저 읽은 책과 중복되는 작품도 있는 반면 새로 실린 작품도 적지 않아 충분히 보완되는 장점도 있다. 이 책의 출간 의도는 표제(‘한국문학과 관련있는’) 및 옮긴이의 머리말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 책은 우리 고소설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하려고, 옛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어 고소설 작품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당대 소설 전기’ 20편을 엄선해 편찬하고, 해설을 붙여 번역 저술한 것이다. (<머리말>에서)

 

따라서 각 작품의 해설에 해당 작품이 영향을 미친 우리나라 고소설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어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왜전><이춘풍전>, <옥단춘전>과 관계가 있으며, <배항전><운영전>,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무래도 앞서 읽은 책과 중첩되는 작품은 특기할 사항이 아니면 생략하고, 새로 읽은 작품 위주로만 간략하게 평을 남긴다. 앞서의 책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됨은 어쩔 수 없다.

 

1장 애정(愛情) 소설류 : 이왜전, 곽소옥전, 앵앵전, 비연전, 장한가전, 유선굴, 이혼기

 

<이왜전>은 젊은이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한 극적인 인생 반전과, 개과천선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이왜의 변신이 결합하여 여전히 큰 재미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상투적인 교훈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젊은이를 죽을 지경까지 매질하고 버려두는 장면과, 훗날 아버지가 아들과 이왜의 결합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정식 혼인 절차를 밟게 하는 장면은 당대의 문화와 관습의 중요성을 짐작게 한다.

 

<곽소옥전>은 곽소옥을 배신하는 이생의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에 여전히 분개할 수밖에 없다. 곽소옥이 이생에게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닌데, 그렇게까지 냉정하고 잔인한 처사를 해야 했을 것인가? 곽소옥이 한을 품고 저주함은 당연하다. 다만 이생의 부인들이 덩달아 애꿎게 고초를 겪어야 하는 점에서 있어서는 지나친 감이 있다.

 

<앵앵전>은 먼저 유명한 회진시(會眞詩)’ 30운 전문이 수록하고 있어 앞서의 책과는 차별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장생의 초반부 호언장담이 훗날 자신의 행동과 자체 모순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나야말로 진정한 호색자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대저 모든 사물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것은 마음속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냉정하게 맺었던 정을 던져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P.57)

  

은나라 주왕과 주나라 유왕의 고사를 언급하는 대목은 확실히 비겁한 변명이다. 앵앵을 나라를 망친 여인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앵앵에 대한 장생의 변심 원인도 어렴풋이 찾을 수 있는데, 앵앵의 적극성이 당시는 좋았을지 몰라도 훗날 오히려 의구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앵앵도 이를 알아차린 듯하다. 어쨌든 인연이 아닌 남녀의 만남은 헤어짐이 불가피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예의와 존중은 필요하다.

 

어찌 기약했겠습니까? 군자를 보고 정감을 억제치 못해 스스로 남자에게 몸을 던져 맡겨버리는 부끄러움을 이루리라는 것을... 다시는 분명하게 받들어 모실 수 없게 된 것이 죽을 때까지 영원한 한이 되고 말았으니 한탄을 품은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P.67)

 

<비연전>에서 비연과 조상의 애정 행각은 윤리적 기준에서 보면 분명 불륜이고 잘못이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윤리의 틀에 좌우될 성질의 것인가를 보면 당대는 물론 현대에서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부정인 줄 알면서 원하는 남자,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 모든 비난과 피해는 유혹자가 아닌 피유혹자가 죽음으로 감내하게 되고 만다. 영혼이 된 비연의 말은 섣부른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말라는 경고다.

 

선비들의 행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당신의 행동은 완전무결한지요? 어찌 거만스럽게 한 마디 말로써 꾸짖고 비난하여 괴롭게 합니까?” (P.87)

 

<장한가전>은 백거이의 장한가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연을 장한가전문과 함께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이 또한 앞서의 책보다 나은 점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선굴(遊仙窟)>이다. 신선의 굴에서 노닌다는 표제처럼 주인공이 속세를 떠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하룻밤 사랑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다른 작품들보다 월등히 긴 분량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또한 매우 많은 시를 수록하고 있어 운문의 비중이 큰 작품이기도 하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라 당사자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사건 전개의 계기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시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음도 특기할 만하다.

 

선녀와도 같은 여인의 집에서 대접을 받으며 그녀와 올케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이 바라는 것은 그녀와의 뜨거운 하룻밤이다. 미모에 대한 낯간지러운 찬미는 유혹의 상투적인 필수 단계이리라. 올케언니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그녀에 대한 육체적 결합에 성공하는 여정을 점층적으로 전개하는 점과 은유적인 외설 시구를 보면 단순한 애정소설보다는 성애소설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애석한 것은 그 머리 뾰족한 것이, / 종일토록 하는 일없이 가죽 속에 박혔음이라. (P.133)

자주 드나들어 꺼풀이 응당 느슨해졌지만, / 빈번하게 문질러서 쾌감은 되레 더해졌도다. (P.134)

오직 다리를 위로 번쩍 추켜올리게 된다면, / 그놈은 스스로 두 눈을 번쩍 뜨겠구먼. (P.140-141)

배꼽 아래를 잡아당겨 들어가게 할 것 같으면, / 백발도 쏘게 되어 맞추는 수가 많아진다오. (P.146)

 

주인공과 십랑은 하룻밤 이후 작별을 하는데 곧 이별을 암시하고 있다. 십랑이 속계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다시 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정식 절차를 거친 당당한 만남이 아니라는 점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2장 별세계(別世界) 소설류 : 배항전, 보강총백원전, 침중기, 남가태수전, 유의전, 이위공전전, 이장무전, 정혼점

 

<배항전>은 우연한 인연으로 배항이 선녀와 혼인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그가 운영을 만나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선군, 선녀, 옥황상제 등 도가의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강총백원전>은 창작 의도가 여전히 구양순을 향한 비난과 예찬 중 어디에 해당할까 생각하게 한다. 다만 구양흘이 전쟁터에 아내를 동반한 점은 무리한 설정이다. 동료와 부하들이 전적으로 목숨을 거는 곳에 홀로 예쁜 아내를 데리고 간 그를 바라보면 어떤 심정일까?

 

<남가태수전>의 결론은 다소 허무주의적이다. 만사가 허황한 것이라면 인간은 이생에서 무슨 의미로 생을 꾸려나갈 것인가. 비록 높은 곳에서 보면 우글대는 개미들에 불과하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의전> 또한 도교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는 작품이다.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고자 하는 유의의 마음과 전당군의 위력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지조는 마침내 용녀 아내를 얻게 한다. 인간과 용의 결합이라고 해서 불가능하거나 전혀 해괴한 게 아님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의 결합을 넘어서 인간과 귀신의 교합을 보여주는 작품이 <이장무전>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은 한계를 모른다. 선녀, 변신한 동물에 이어 죽은 영혼까지도 욕망을 갈구하는 대상으로 변모시키다니. 하긴 요즘은 좀비물조차도 좀비와 연애하는 컨셉도 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는 없겠다.

 

<이위공정전>은 당나라 초기의 명장인 이정(李靖)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뛰어난 능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승상이 되지 못한 이유를 불가항력적인 데서 찾고 있다. 인간의 힘을 벗어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정혼점> 역시 비슷하다. 남녀의 혼인은 어릴 때 하늘이 맺어준 운명이므로 제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위고의 기이한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3장 호협(豪俠) 소설류 : 곤륜노전, 무쌍전, 홍선전, 섭은낭전, 사소아전

 

<곤륜노전>의 결말 대목은 앞서의 책과 차이가 있다. 앞서서는 권력자가 곤륜노의 능력에 감탄하여 자신의 부하로 삼고자 하는 의사를 비치지만, 여기서는 권력자가 곤륜노의 능력을 일종의 재앙으로 간주하고 그를 제거하려고 군사를 보낸다.

 

<무쌍전>의 결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 책에 따르면 협객 노인이 무쌍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본인을 포함하여 10여 명의 목숨을 해친다. 이는 구출 과정의 영원한 보안을 위한 나름의 불가피한 조치라고 협객은 밝히지만, 독자와 작가의 생각은 분명 다르다. 두 사람의 사랑 실현이 과연 많은 목숨을 억울하게 바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 앞서의 책에서 편역자가 임의로 윤색하여 희생자가 없도록 하고 있음은 이런 의문에 기인하여 나름대로 조처한 것으로 보인다.

 

무쌍이 난리를 만나 가정이 적몰되어 궁녀로 들어가고, 왕선객의 구출하려는 노력은 목숨을 걸었도다. 마침내 그 노인을 만나 기이한 방법을 통하여 무쌍을 구출했고, 이 과정에서 원통하게 목숨을 바친 자 10여 명에 달하였다. (P.294)

 

<섭은낭전>은 기이하다. 그녀가 무술에 정통하게 된 과정이 그러하고 유 절도사를 섬겨 암살에서 구해낸 점 등도 마찬가지다. 다만 과유불급이랄까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과장하여 그려내다 보니 일반의 사람답지 않은 점이 두드러진다. 은낭의 아버지가 그녀에 대해 놀라고 두려워하였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사소아전>은 부친과 남편의 원수를 갚는 여인의 사연을 나타낸다. 죽은 영혼이 꿈속에 나타나 범인의 이름을 수수께끼로 알려주며, 작가가 사건에 직접 개입하여 이를 해석하여 범인의 실체를 밝혀 주는 대목은 이채롭다.

 

이 책은 앞서의 책에 비하며 확연하게 원문에 충실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작중의 시는 번역문과 원문을 병기하고 있으며, 작품 원문 전체를 책 후반부에서 별도로 싣고 있어 원문 또는 한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비교하여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당대 전기소설을 감상하고 싶은 독자라면 두 책 중에서 이쪽을 더욱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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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괴담의 문화사
김지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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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搜神記)>는 중국 동진의 역사가인 간보가 쓴 지괴소설집이다. 표제 그대로 귀신 이야기 모음집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정사를 집필한 역사가이자 유학자가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을 썼다니 특이하면서도 이례적이다. 중국 소설사에서 보았을 때 위진남북조 시기의 지괴류 이야기는 소설로 간주하거나 소설이 아닌 단순히 설화 모음으로 판단하는 등 애매한 영역에 걸쳐 있다. 다만 중국 소설의 기원에 해당하는 점은 분명하다.

 

저자는 앞서 읽은 <신이경>의 옮긴이다. 후기에서 비주류의 지괴 장르를 전공한 애환을 밝혔듯이 보기 드문 지괴류 전공자로서 <수신기>의 내용을 통해 위진남북조의 귀신 이야기가 담고 있는 자유로운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소개하면서 그 이야기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당대인들의 현실과 원망을 담고 있음을 알려준다. 표제의 괴담의 문화사가 이를 의미한다.

 

귀신 이야기는 적어도 잠깐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종교적.민속적 맥락을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공포보다는 연민의 시선으로, 자극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귀신을 바라보고 타자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P.198)

 

자칫 이런 유형의 저작은 대중의 흥미에 영합하기에 십상이다. 선정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선별하고 흥분을 부추기는 쪽으로 해석을 덧붙이면서. 시종일관 저자의 어조는 차분하다. 이야기를 흥미 위주로만 가볍게 읽고 스쳐 지나가지 말 것을 독자에게 신신당부한다. 이야기에 담겨진 당대인들의 희로애락과 꿈을 놓친 게 있는지 천천히 음미해볼 것을 되풀이하여 권유한다.

 

<수신기>는 이렇듯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괴력난신의 이야기를 단지 호기심으로 접근하지 말고, 천천히 다양한 방법으로 읽고 음미해보라고 말이다. (P.61)

 

<수신기>에서의 신()은 포괄적 개념이다. 신성한 신보다는 신선, 도인, 귀신에 가깝고 신비, 신기, 기이와도 통한다. 보통 사람의 이해로 파악되지 않는 모든 것을 신()으로 간주한다.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다. 영험한 초능력을 지니고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에 우리는 경외감을 품는다. 천년 묵은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이나 홍콩 영화를 통해 이미 친숙하다. 우리를 소름 끼치게 만드는 귀신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 의의를 지닌다. 하찮은 벌레나 사물에도 영혼이 있고 신기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에 쉽사리 거부하지 못 한다.

 

왜 우리는 괴담에 끌림을 당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인 탓이다. 유한한 이해의 한계 내에서 유한한 삶을 살다가 우주 자연의 일부로 스러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에 있다. 제아무리 이승의 권세가 막강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다, 진시황도 한 무제의 바람도 헛될 뿐이다.

 

귀신이나 영혼은 저 너머의 세계, 죽음을 연상시킨다. 당연히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부적이나 주문 등으로 귀신을 제압하고 무덤 속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으며 죽은 혼을 불러들여 산 사람과 만나게 해주는 이야기는 일종의 위안이 된다. 이야기만으로도 인간은 죽음과 귀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P.35)

 

공포는 생소와 무지에서 비롯한다. 이미 알고 있는 현상과 존재라면 두려움을 극복할 여지가 생긴다. 게다가 무서운 이야기는 재밌기 마련이다. 무서워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쳐다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귀신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던 공자도 후대에 괴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판국이다. 금지한다고 외면한다고 B급 장르가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는 솔직해져야만 한다. 오랜 억압과 무시에도 질긴 생명력을 발휘한다면 존재 의의를 인정해야 함을. 인간이란 존재의 내면에 이것을 향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결코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장르가 여전히 쓰이고 읽히고 있는 데에는 문화사적.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 내면에는 너무도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 있어 기쁨과 슬픔, 감동 등과 마찬가지로 공포, 기괴함, 섬뜩함 등의 감정들을 즐기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P.194)

 

이러한 바탕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수 있다. 신기한 도술을 부리는 신선과 도사에 대해서는 범인의 유한한 능력을 초월하고자 하는 바람을, 남가일몽 같은 부질없는 꿈에서도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이상향을 소망하는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삶이, 현실이 힘겨울수록 사람은 꿈에 기대고자 한다. 저자는 오히려 더 많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부가 서로를 잡아먹는 이야기는 황당하고 기괴하다. 과연 사실일까 의심스럽다.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만약 그렇다면 왜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을까? 저자는 비참한 현실에 대한 풍자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목이 잘려나가도 굴하지 않는 형천 이야기와 적비 이야기는 기괴하고 끔찍함에 앞서 불굴의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구미호 하면 떠올리는 팜므 파탈이 사실은 여우의 여러 가지 변신 중의 하나임을 떠올리면 상상력을 구속할 필요가 없다.

 

소설, 영화, 만화, 게임 등의 다방면에서 지괴류의 괴담은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얄팍한 호기심과 욕망을 채워줌과 동시에 그것이 정형화된 인간과 사회의 틀을 벗어나고 자유롭고 무한한 사고와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해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괴함은 익숙한 질서를 교란하고, 폐쇄되어왔던 사유를 개방하게 한다. 정신의 해방, 그것이 우리가 판타지를 읽는 이유가 된다. (P.75)

 

열린 시선으로 이계를 바라보는 자만이 사유의 확장, 정신의 자유를 얻게 된다. (P.102)

 

간보는 <수신기>에 실린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를 따지지 말고 즐겁게 읽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가 사람의 확인 가능한 영역을 넘어서 있음을 인정하자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의 흥미성을 중시하자는 뜻이리라. , 더더욱 <수신기>를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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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
장기근 지음 / 명문당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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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와 중국소설과의 관련성을 다룬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지괴소설이나 전기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여태까지는 관심도 없었고 더욱이 그런 장르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이 책 <당대 전기소설의 여인상>은 표제에 현혹되기 쉬운데 솔직히 말해서 내용과 표제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 이 책은 당나라 전기소설의 대표작 18편을 편역한 작품집이다. 전기소설에 입문하기 적합한 책이라고 하겠는데 한가지 변수가 있다. 즉 원본 번역이 아니라 편역이라는 점이다. 읽어나갈수록 옮긴이의 주관과 윤색이 많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때로는 작품 내용조차도 임의로 짜깁기할 정도이므로 원전의 충실한 모습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추천하기 어렵다. 윤색의 정도가 가장 심한 게 <장한가전>이며, <무쌍전>의 결말은 원전과 전혀 다르기에 거의 각색 수준이라고 할 정도다.

 

1부 애절한 사랑 이야기 : 앵앵전, 곽소옥전, 이와전, 양창전, 장한가전

 

여성의 단심을 배반하는 무정한 남성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앵앵전><곽소옥전>이다. 장생과 앵앵이 결합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장생은 스스로 이를 피한다. 그의 변명은 구차하지만 앵앵은 담담하며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후에 장생이 만나보고자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만나서 무엇하겠는가? 그나마 여기서는 비극적 파탄으로 이어지지 않은 반면 곽소옥과 이익의 사연은 정염의 불꽃이 휘몰아치는 듯하다. 곽소옥이 이익에게 바라는 바는 크지 않다. 출세하면 첩실로라도 받아들여 달라는 것, 이익이 벼슬길에 올랐을 때 죄인처럼 곽소옥을 피해 다니는 몰골은 구질구질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 상면 대목에서 곽소옥의 부르짖음은 너무나 처절하다. 한 여인의 순정을 짓밟아 놓고 영혼마저 말라버리게 한 죄악에 대가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소첩이 박복하고 운수가 기구한들 남정네가 그렇듯이 박정하고 의리 없이 무고한 계집을 내팽개칠 수가 있습니까? 기진맥진한 소첩 이제는 욕할 기력조차 없으며 또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할 여력도 없습니다. 오직 남은 길은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갈 뿐이옵니다. (P.67)

 

양씨와 총관의 신분과 지위를 초월한 사랑이 불행한 결말로 이어짐은 안타깝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그저 운명일 뿐. 양귀비와 당 현종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네들이 평범한 촌민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행복한 사랑의 삶을 살아갔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나 지위와 신분이 높았다. 후대인은 인정에 약한 듯싶다. 나라를 망친 임금과 여인임에도 그네들의 사랑을 애절하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게다가 양귀비는 착한 신선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와전>이 내용과 구성의 조화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여주인공은 극과 극의 성격을 작중에서 보여주는데 공자를 파멸과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는 악역을 맡다가 돌연 그를 구원하고 입신출세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내조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이와의 눈부신 변신과 공자의 생사를 넘나드는 삶, 형양공의 비정과 온정을 넘나드는 부정이 매우 잘 짜여 있다.

 

2부 인간과 신괴와의 교감 : 고경기, 백원전, 임씨전, 유의전

 

전기소설은 기이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2부와 제3부가 전기소설의 본령에 어울리는 기이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옛이야기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다. 아무나 그런 게 아니라 오래 묵어 신통력을 지닌 동물이 그러한데, <고경기>의 너구리, <임씨전>의 여우가 이에 해당한다. 두 작품은 모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전자는 인간 세상의 추악함, 후자는 박정하고 표리부동한 여성들의 행태를 비난한다. 인간사회를 동경하던 너구리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인간세상이 화려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와서 직접 겪어보니 참으로 겁나고 추악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을 스스로 뉘우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P.131)

 

<고경기>에서 재앙의 원인을 악귀 망령들의 만행으로 이해하는 대목에서 시대적 관념을 떠올릴 수 있다. 한편 구양순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위한 창작이라고 평가받는 <백원전>은 정말로 비판인지 아니면 그의 위대함을 기이한 출생으로 미화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자신의 친부가 원숭이라면 응당 기분 나쁘겠지만, 고대의 제왕과 영웅들은 모두 기이한 출생을 하였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정호 용왕의 친동생이 전당강을 다스리는 전당군인데 <유의전>에서 매우 용맹한 장군으로 기술되고 있다. 전당강 물결의 사나움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니 흥미롭다. 용녀를 위기에서 구하였음에도 그녀와의 결혼을 올바르지 않다고 거부한 유의의 의연함과 지조는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으니 제2부 수록작 중 유일하게 긍정적 결말이다.

 

3부 환상과 영혼의 세계 : 두자춘전, 침중기, 남가태수전, 이혼기

 

현실은 행복보다 불행이 많다. 즐거운 일보다 고달픈 경우가 더 많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꿈과 상상의 세계를 동경한다. 만사가 내가 원하고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가닥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침중기><남가태수전>이 그러하다. 각각 노생지몽남가일몽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처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봄날의 덧없는 한줄기 꿈에 불과하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속으로는 그 꿈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모두가 꿈이었구나.”

도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인생의 부귀영화가 그렇듯이 덧없는 것이니라.” (222)

 

<두자춘전>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짙게 드러낸 작품이다. 불로불사의 선약을 완성하기 위해 완전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것을 요구하는 도사. 이것에 성공하면 두자춘은 신선이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적 욕망과 본성을 포기할 수 있다면. 자식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실패하고 만 선약 완성. 선약의 실패가 그에게는 행일까 불행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한다면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신선이 된다고 해서 무슨 행복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한 사람의 혼을 둘로 갈라지게 할 수 있다면 지극한 사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부모를 떠난 천낭 아씨와, 병들어 누워 있는 천낭 아씨. 두 사람은 수년간 독자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은 한 사람이었기에 하나가 됨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별개의 삶이 부정당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오직 현실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의 힘이므로.

 

4부 여협객 : 규염객전, 무쌍전, 유씨전, 곤륜노, 홍선전

 

일단 제4부가 왜 여협객인지 모르겠다. 수록작 중 여협객이 나오는 작품은 <홍선전> 하나뿐이다. 당대의 권세가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이정을 따르는 홍불의 대담함을 인정하지만 여협객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무쌍을 구해내는 이는 협객 고압아이고, 유씨를 구출했던 것은 군관 허준이다. 안타깝게도 왕선객과 한익은 연인을 구해낼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주인을 위해 홍초를 빼내온 영웅적 역할도 최생이 아니라 그의 검둥이 노복 곤륜노였다.

 

<규염객전>에서 주목할 점은 협객이 아니라 당 태종이 되는 이세민을 향한 예찬이다. 새로운 세상을 수립할 야망을 품은 규염객을 좌절시키는 이는 천명을 받은 이세민이다. 그가 있는 곳에는 왕기가 서리고 천명을 받았음을 규염객과 그의 스승 도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천명을 받은 이에 대항할 수 없기에 규염객은 모든 것을 이정에게 건네주고 남만으로 떠난다. 시대적 성격을 반영한 동시에 후대인들의 당 태종에 대한 존경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의외의 인물에게서 예상치 못한 뛰어난 능력을 발견하는 재미는 흥미진진하다. 곤륜노가 실은 누구도 상대 못 할 무예의 고수였다는 점은, 그러한 능력자가 왜 비천한 노비 생활을 살고 있는지 합리적 설명으로는 불가능하다. 곤륜노의 신출귀몰한 무술 솜씨와 아울러 당대에 남만의 검둥이 노복을 부리는 게 유행이었다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홍선전>의 주인공인 홍선이 기생 신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공중비행술과 은신술 같은 비범한 무술을 지녔음에도 천한 가기(家妓)의 삶을 감내한다. 두 세력 간의 전면전을 절묘한 솜씨로 막아낸 후 홀연히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그녀를 작가는 신선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전기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다. 저자는 서언에서 전기소설의 개론을 통해 정의와 특성, 배경 및 분류 등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결언에서는 수록작에 대한 작품 해설을 통해 역시 각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저자의 편역 의도를 밝히고 있다. 전기소설이 기이하고 비현실적 소재를 사용한 것이 단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다층성과 다면성,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모순과 악덕을 고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전기소설의 주인공은 왕후장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생, 노비, 상두꾼 같은 하층계급뿐만 아니라 동물도 당당한 한몫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자못 근대적이라고 할 만하다.

 

당대의 전기소설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보려던 의도는 저자의 과도한 윤색과 각색으로 온전하지 못하였다. 보다 원전에 가까운 내용을 알기 위해 부득불 다른 책을 추가로 집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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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 그리고 소설
이인택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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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신화와 전설을 다룬 책을 읽고, 중국 신화에 관한 MOOC 강의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강의자가 집필했던 이 책에 관심이 쏠렸다. 신화의 시각에서 중국소설을 조망한다니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적어도 내게는 무척 유용하면서도 흥미진진하였다고 하면 충분하리라.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3부가 핵심적 내용이다. 우선 제1부는 중국 신화에 대한 개론적 소개다. 2부는 간략한 중국 소설사에 해당한다. 4부는 중국 소수민족 신화를 다룬다.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구성에 짜임새가 있다고 하기 어렵고, 중국 신화와 소설의 관계를 다룬 글을 중심으로 관련 글들을 모아놓았기에 각 편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나쁘지 않다. 중국 신화에 문외한인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중국 신화와 중국소설의 이해라는 일거양득을 거둘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장일단이 있겠다.

 

1부 중국 신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 신화 개론이다. 여기서 저자는 신화의 정의와 특질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신화에 대한 이해와 고전문학의 깊은 상관성을 강조한다. 중국 신화가 대중적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친숙한 독자의 눈에는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비쳐지는 이유가 일관성 있는 신화 체계가 없다는 점도 언급한다. 확실히 중국 신화는 단편적으로 산재하기에 내용상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론에 이어서 대표적인 중국 신화와 고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천지와 인류 기원, 자연계, 영웅, 전쟁과 갈등, 재생과 변형, 그리고 원국이인. 마지막으로 기타 유형과 같이 유형별로 나누어 중국 신화 고사를 전반적으로 훑고 있어 중국 신화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한 독자라도 이후 전개되는 논의를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2부 중국소설도 역시 소설의 정의와 기원 등의 이론을 간단히 다루면서 출발한다. 이어서 개략적인 중국 소설사가 이어지는데, 육조의 지괴 고사, 당의 전기소설에서 근래 루쉰을 거쳐 현대 중국소설의 주요 작가에까지 죽 훑어나가고 있어 중국 고전소설이라면 4대기서 외에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중국소설의 문학적 전통과 유래가 매우 뿌리 깊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동시에 제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중국소설과 신화의 내용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달해 주고 있다. 한편 견우직녀 고사와 서왕모 고사의 문학적 변천을 별도의 장에서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3부 중국소설의 신화 운용 편은 핵심적 내용답게 분량 면에서도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한다.

 

중국신화와 소설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길며, 신화 자체의 내용과 모습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소설은 시종 자신의 특성을 지닌 채 신화를 운용해왔다. 소설가들은 신화를 소설의 소재로 하여 기교운용상의 도구로 삼거나 비유를 위해 쓰기도 하고, 때로는 신화 전체를 빌려 소설의 구성에 활용하기도 한다. 소설이 신화의 영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63)

 

이 편의 모두에서 저자가 선언 조로 주장한 의견이다. 저자의 이러한 의견을 염두에 두면서 이후 다루어지는 내용을 살펴보면 저작의 성격과 의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시기별로 선진, ..육조, , ., ., 현대 소설로 구분하고 있는데, 선진은 고사, ..육조는 신괴 소설, 당은 전기 소설, .원은 화본 소설, .청은 소설로 각기 시기별 소설의 특성을 핵심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명.청 시기로 접어들어 서유기, 홍루몽 등이 나오기 전까지는 생전 처음 듣는 작품명이 많이 나왔기에 저자의 친절한 풀이에도 불구하고 해당 소설이 신화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신화가 작품 속에서 운용되는 양태를 쉽사리 알아차리기는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후대보다는 육조 시기에 지인.지괴고사가 신화와 전설의 원형이랄까 변형 이전의 순수한 면모를 많이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당 시기의 전기 소설부터 소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신기하고 기이한 고사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 신화를 소재 또는 모티프로 삼아서 문학 창작이라는 적극적 행위에 반영하고 있다.

 

당 전기 소설 작가들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신화를 작품에 운용하여 창조적 문학을 만들어왔다.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신화 소재를 빌어 운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신화의 주제나 모티프를 반영하기도 한다. (P.224)

 

.원 시기에 이르러서는 신화 운용에서 변형이 발생하는데, 신화는 이제 종교적, 사상적 의의를 상실하고 오락적 목적의 도구로 전락한다. 신화의 드높은 지위가 바닥으로 추락한 셈이지만, 사회의 발전 차원에서 보면 이성의 확장을 뜻하므로 불가피한 셈이다.

 

, 청 시기에서 여러 작품을 소개하지만 <서유기>, <홍루몽>, <요재지이>를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화와의 깊은 연관성을 알 수 있게 한다. 서유기와 요재지이는 그렇다 하겠지만 홍루몽에서 신화적 요소를 많이 찾을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다면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소설의 신화 운용 편은 전적으로 루쉰의 <고사신편>을 분석하고 있다. 오래전에 읽어서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지만 새삼 저자의 충실한 풀이와 해석을 보자니 흥미롭게 되새겨 볼 수 있다.

 

4부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서는 타이완 원주민, 납서족[나시족], 묘족[먀오족]의 신화를 소개하고 있어 신화 애호가라면 흥미롭겠지만, 이 책의 전반적 기조, 즉 소설의 신화 운용이라는 주제로 볼 때 다소 곁가지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중국 소설사를 훑어볼 때 제법 많은 신화와 전설의 영향과 반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양 고전문학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르면 깊은 함의를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중국 고전문학에서도 시는 물론이고 소설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화의 신비성과 환상성, 신화 속 영웅의 강렬하고 숭고한 의지와 삶의 분투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심금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데 연유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현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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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경 - 지만지고전천줄 38
동방삭 지음, 김지선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얄팍한 이 책을 펼쳐 든다면 황당함을 느끼게 된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며 책장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언급하는 항목은 사실과 무관하며, 이성과 상식을 초월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이다. 오죽하면 책 제목도 신기하고 기이하다고 붙여놓았으니 말이다. 저자는 누군가? 장수의 대명사로 유명한 삼천갑자 동방삭이다. 해설에 따르면 원저자는 알지 못하며, 동방삭의 이름을 가탁한 것으로 간주한다.

 

<산해경>과 내용과 형식 면에서 유사하여 영향을 받았음이 인정된다. 곳곳에 보이는 도교적 색채는 이 책이 <산해경>과 차별되는 지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독자는 여기에 수록된 황당하고 기이한 인물과 사물, 현상을 진실로 수용할지 아니면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로 간주할지 궁금하다. 의도를 갖고 지어낸 이야기로 볼 만한 진술을 간혹 찾을 수 있다.

 

[선인(善人)]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하니 언뜻 그들을 보면 마치 바보와 같다. (P.24)

 

[불효조(不孝鳥)] 하늘이 이 기이한 새를 만든 것도 (이를 본보기로 하여) 충효를 보여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P.161)

 

선을 행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실, 충효의 미덕이 상실되는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늘날도 착한 사람은 바보로 불리게 마련이다.

 

<신이경>의 가치는 학술적으로 <산해경>과 더불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의 중요한 원전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현대에 와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문화콘텐츠의 원천이기도 하다.

 

서왕모(西王母)는 애초 성별도 불분명한 존재였는데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여성이며,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배우자를 갖게 되었다. 동왕공은 동황경 동왕공 편에 처음 나타나며, 중황경 곤륜천주 편에 희유(希有)라는 큰 새를 통해 서왕모가 남편을 만나러 이동한다고 풀이한다. 음양 사상과 부계사회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성인(聖人)] 사람들이 다니는 땅의 지리에 밝고 백 가지 곡식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분별해 내며 풀과 나무 중 어느 것이 짜고 쓴 것인지를 안다. 이름을 성()이라고 하며, 일명 철(), (), (), 무부달(無不達)이라고 한다. 세속의 사람들이 이들을 보면 절을 하는데 신령함과 지혜로움을 느끼게 된다. (P.79)

 

성인의 판단 기준이 매우 실용적임을 보게 된다. 유학 경전을 잘 외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에게 유용하고 삶을 풍족하게 하는 사람이 성인이다. 한대에 이미 교조화된 유학의 폐해가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산물이다. 승자의 관점에서 미화되고 보전되며 패자는 잊혀지거나 왜곡된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 황제의 후손인 전욱과 싸워 패한 염제의 후예 공공이 그러하다.

 

[공공(共工)] 오곡과 금수를 먹으며 음식을 탐내고 미련한데 이름을 공공이라고 한다. (P.113)

 

현재도 중국 소수민족으로 존재하는 묘족(苗族)에 관한 기록도 보인다. 요와 순에게 반기를 들었던 그들의 지위 전락이 참담하다.

 

[묘민(苗民)] 천성적으로 재물과 음식을 탐내며 음란하고 방종한데 이름을 묘민이라고 한다. (P.95)

 

혼돈(渾沌)이라는 짐승에 대한 서황경 혼돈 편의 소개는 독특하다. 인간의 지성이 있지만 덕을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는 천성이라고 하니 혼돈 자체에 대한 당대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주석에서는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며 동물보다 못한 비열한 인간에 대한 풍자라고 풀이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 고니에게 잡아먹히는 곡국인(鵠國人), 잡아먹으면 충치에 물리지 않는다는 주의소인(朱衣小人), 물고기와 사람으로 변신하는 횡공어(橫公魚) 등은 물론 암컷밖에 없어서 인간 남자와 교합해야 새끼를 밴다는 주수(綢獸)라는 동물이 그러하다.

 

저자는 옥계(玉鷄)와 천계(天鷄), 화서(火鼠), 박보(朴父) 같은 기이하고 상상력이 극대화된 존재들도 다루고 있지만, 사람과 동물의 선과 악에도 민감하다. 악독하고 간사한 존재인 환두(驩兜), 도철(饕餮), 혼돈, 궁기(窮奇)가 한편이라면 무로지인(無路之人), 해치수는 사람이나 만물을 해치지 않으며 정직한 존재이다. 세상에 악이 득세하지만 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이해하고 싶다.

 

[해치수(獬豸獸)] 천성적으로 충성스럽고 정직하다. 사람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잘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말싸움하는 것을 들으면 거짓말한 사람을 물어 씹는다. 이름을 해치라고 하고 일명 임법수(任法獸)라고도 한다. (P.169)

 

중국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기초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중국 신화와 전설의 원류를 확인할 수도 있다. 대중적으로 될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을 가진 책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일독한 가치는 충분하다.

 

옮긴이는 충실한 번역문, 원문, 꼼꼼한 주석의 형태로 독자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기에 완역을 하였으며, 산일 된 몇 편도 함께 수록하여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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