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지 십여년의 세월이 경과한 낡은 책이다. 책장을 뒤적거리다 보니 있길래 심심풀이 차원에서 읽기 시작하다. 작가 박상우, 잘 모르는 존재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작품명은 일찍이 들어보았긴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고백하듯이 이 소설은 순수한 동기에서 씌어진 듯 하지는 않다. 과거에 "본의 아니게 술에 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는 작가가 나름대로 고생하여 정리했던 자료를 묵히기 아까워 소설적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이 성공했냐고 내게 묻는다면 아마도 고개를 가로젓고 말 것이다. 목적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소설적 내용과 술에 관한 보고서가 융화되지 못하고 제갈길을 가고 만 것이다. 역시 예술작품은 순수한 의도를 지녀야 함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장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공감하는 듯 이 책은 절판되어 시중서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독자의 눈은 냉정하다.
일단 소설적 완성도를 제껴놓고 내용의 상당 분량을 점유하는 '술에 관한 일반학적 고찰'은 그래도 유익한 편이다. 사실 애주가와 혐주가를 불문하고 술 자체에 대하여 제대로 된 상식과 지식을 갖춘이가 얼마나 될지 의심스러운 형편이며, 이는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 없다.
술의 기원, 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술과 인간관계 등 각종 속설이 난무하다. 게다가 소위 '酒道'에 이르면 주도숭배파와 주도무시파로 양분되는 현실이다. 과연 주도라는 게 의미를 지니기는 하는지. 조지훈의 '酒道有段'에 따르면 나는 '不酒' 또는 '畏酒'에 해당될 듯 싶다. 그렇다고 몸에 받지도 않는 술의 정진에 힘써서 '열반주'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건 이미 저승의 세계이므로.
소설의 대미는 극적인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한대위에게 그리 동정이 가지 않는 이유는 그는 이미 인생을 술에 위탁하고 술잔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았음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연유한다.
소설제목이 참 특이하다 싶었다. 인터넷에서 이 소설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하여 조회하다 보니, 제목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한 구절임을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