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을 듣다 보면 내가 쇼팽의 야상곡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이반 모라베츠의 피아노 음색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만큼 이 음반은 음질이 매우 뛰어나다. 

여전히 내게 쇼팽의 음악은 병약한 낭만주의 감성이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다. 협주곡과 왈츠, 폴로네즈를 제외하면 그다지 손이 가지 않는다. 듣다보면 심신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따분한 음악. 몇번이나 본격적인 감상을 위해 노력했어도 거미줄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우연히 고클 게시판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고 이 음반을 구입하였는데, 이건 뭐랄까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듣는 느낌이다. 첫음부터 예사 연주가 아님을 너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음악에만 빠져들게 되었다. 피아노의 절묘한 뉘앙스. 야상곡답게 음폭이 넓지 않은데도 전혀 지루함을 자아내지 않는 터치와 템포. 거기다가 숨을 삼키게 하는 여리디 여린 약음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탁월한 녹음. 한 마디로 명연주 명반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연주자의 대중적 선호도가 높지 않다는 점과 음반사가 메이저 레이블이 아니라는 점이 결합하여 일반적인 음반추천서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매니아에게는 컬트적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후 나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당초 내가 구입했던 것은 오른쪽 음반인데 2 for 1으로 가격도 저렴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지 품절되고 이제는 왼쪽의 정상가 음반으로만 판매되고 있다.  

한밤중이나 새벽, 사위가 고요한 데 이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수선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아름다운 꿈속 세상을 거닐다가 도원경에 들어온 상념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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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듣는다. 역시 좋은 연주다. 루이 프레모는 사이먼 래틀이 맡기 전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오래 이끌며 기틀을 다진 실력이 다부진 지휘자다. 그의 대표적 명연 중에 하나가 이 포레의 레퀴엠이다. 인구에 회자 되지는 않지만 뭐 명성과 실력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으니까. 존 옥돈이 협연하는 발라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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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명장의 멋진 슈베르트. 초중기 교향곡의 싱그러움과 제9번의 당당함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의 명연만 알려진 페터 마크는 너무도 저평가된 지휘자다. 이 음반만 하더라도 이렇게 뛰어난 연주가 그동안 묻혀 있었다니 놀라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내게는 첫사랑과 같은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음반을 언제 다시 구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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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들어 뮬로바의 변신이 눈부시다. 전혀 과시적이지 않으며 차분하고 섬세한 음향이 매력적이다. 다만 샤콘느마저 밋밋하게 느껴지는 점은 청자에 따라 호오가 갈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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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시리즈가 있다. 당신이 무인도에 간다고 할 때 음반을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다. 많은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을 이것 저것 선택한다. 누구는 모차르트, 베토벤, 트렌드에 민감한 이는 말러, 쇼스타코비치, 브루크너 등.  

나라면 단연 바흐다. 여기서 약간은 고민이 된다. 평균율곡집,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푸가의 기법 중에서 무얼 골라야 되나. 하지만 잠시의 망설임 끝에 난 골드베르크에 한표 던진다. 다만 글렌 굴드의 1981년 연주라는 단서를 달고. 

데뷔 녹음을 골드베르크로 시작한 그의 최만년(?)의 녹음이 또한 골드베르크 임은 의미심장하다. 워낙 개성적이라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애칭마저 있을 정도이니. 그의 집안이 성을 바꾸지 않았다면 그대로 골드베르크에 부합되었을 것이다.  

그의 일생 자체가 하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아리아와 변주들, 그리고 다시 아리아로 돌아오는 방황과 탐색의 삶. 그의 음반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그 자체가 장식음으로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조차 흥미진진하게 들린다. 

나는 글렌 굴드를 통해 바흐 음악의 위대성과 재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바흐가 개성적이라서 초심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입문자에게 태산과 같은 바흐의 비경을 가장 친절하게 들려주는 이는 오직 굴드 뿐이다.  

작곡동기가 불면증 치료음악이지만 오늘 나는 아침 기상음악으로 듣는다. 그만큼 정과 동의 대비가 참으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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