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 탓인지 다소 평면적으로 들리나 음악의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4악장 초반부에 바이올린 선율을 부각시켜 기분좋은 생경한 효과를 주고 있다. 성부 간 울림이 투명하며 전체적으로 극적인 효과보다는 말러 본연의 순음악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연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노이만과 안체를의 말러는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음향 구조에 열광하는 세태에 이들의 순음악적 접근방식은 귀에 차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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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즐겨듣는 음반의 하나이다. 그리고 피아노 연주의 바흐 쳄발로 협주곡 음반 중에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명곡이니만큼 섣부른 개성미 표출보다도 악보에 충실하더라도 뛰어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음을 입증한다.  

투명한 피아노의 터치, 오케스트라와의 절묘한 호흡,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서정성과 균형미. BWV 1052의 1악장의 독주부와 2악장을 한번 들어보라. 반복해서 감상하더라도 여전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무명의 반란으로 역시 무명 낙소스 시절의 대표 음반이다. 

이 음반이 마음에 든다면 이들 콤비에 의한 제2집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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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말로우[말로]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의 뛰어난 극작가이다. 그의 명성이 일반에게 많이 부각되지 못하는 연유는 그가 희대의 대문인의 동시대인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 서른 살도 안 되는 나이에 요절하여 창작기간이 짧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현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눈부신 빛으로도 가리지 못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문학사에 고고히 드리우고 있다.

셰익스피어 외에 말로우니 벤 존슨이니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조금씩이나마 소개되어 문학적 편식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 다행이다. 희곡은 소설류와는 다른 독특한 미감을 지닌다. 연극 상연을 전제로 하는 게 기본이지만 머릿속에서 무대와 배우의 동작을 상상하며 대사를 음미하는 것은 실제 연극과는 구별되는 자체의 맛이 있다. 마치 실연이 아니라 악보를 통해 음악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과도 같다.

말로우의 주요 작품으로는 <탬벌레인 대왕>, <몰타섬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 <에드워드 2세> 등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 편은 이 책의 일독 이후에 실제로 읽어볼 작품들이다. 미지의 작가에 곧바로 다가서기에는 약간 부담이 있어 간단한 해설서를 구한 것이 이 책이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적시하였듯이 순전한 해설서라기보다는 말로우의 작품들을 종교적 요소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말로우의 작품에서 다른 관점의 비평을 얻고자 한다면 다소간 실망하게 되고 만다. 나처럼 말이다.

말로우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므로 응당 종교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일정 부분 그의 작품에서는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 그리고 대륙에서 대두되고 있는 신교의 교리 등이 혼재할 수 있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종교성의 시각으로 말로우의 작품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면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처럼 르네상스인으로서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과 정신을 표출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히려 작가로서의 활동은 그가 셰익스피어보다 선배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말로우 작품집이 대산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출판된 것을 제외하면 말로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이 책의 존재는 감지덕지하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다채로운 시각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과욕일까. 하긴 본문이 채 백여 면도 되지 않는 손바닥만 한 책자에는 지나친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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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3대 교향곡의 연주는 누가 뭐래도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레닌그라드 필이 최고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딱 하나만을 택하라면 교향곡 제4번의 연주다. 이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흥분으로 전율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제5번의 연주는 그렇게 대단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며, 제6번은 훌륭하지만 아직 최고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제4번의 경우는 두말할 것 없이 제일이다. 1악장 서두부터 강렬하게 뿜어내는 금관악기의 포효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데, 그 울림은 서구 관현악단에서 들을 수 있는 자유롭게 쭉 뻗어 올라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거운 숙명의 압력에 억눌려 있어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억압을 뚫는 처절한 울림이 분출한다. 그리하여 4악장까지 단숨에 휘몰아치는 것이다.  

카라얀의 연주는 1악장에서 너무나 시원스레 장쾌함을 뿜어내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인다. 순음악적인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으나, 이 제4번에 있어서는 내게는 큰 느낌을 주지 못하는데 전체적으로도 므라빈스키와 같은 균형이 없고 4악장에서의 박력있는 표현도 그냥 겉도는 외향에 치우쳐 있다. 오히려 4악장에서는 솔티/시카고의 연주가 훨씬 뛰어나다. 솔티도 전 4악장을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역시 므라빈스키에는 따르지 못한다. 아마도 영원한 명반이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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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아르투르 토스카니니가 협연해서 1940년에 녹음한 연주가 있는데, 이는 참으로 무시무시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연주다. 이 작품이 이탈리아 여행 후의 즐거운 시기에 작곡된 것이라 하여,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터치를 가볍고 산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호로비츠는 강한 터치로 중후하게 울리고 있어서 우선 피아노의 웅장한 음에 압도되고 만다. 녹음 당시 36살, 젊었을 때부터 거장이라는 칭호를 가졌던 그가 적어도 힘과 기교란 면에서는 최고의 시기였다. 물론 음악성도 만개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3년 후에 역시 토스카니니와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통해 알 수 있다.  

토스카니니의 지휘도 오케스트라를 강하게 강하게 때로는 어둡게 울리면서 호로비츠의 피아노와 멋진 경연을 벌이고 있다. 최고의 거장들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은 듣는이로 하여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한다. 협주곡이라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교향곡'이라는 칭호가 더욱 잘 어울릴 것 같다.  

1악장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물결치는 음향에 몸이 떨리며, 4악장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한 곳 허술히 들을 수 없는 최고의 절대적인 명연주다. 이 곡의 대표적인 명연주로 손꼽히는 박하우스, 뵘의 1967년도 연주와는 가는 길이 정반대이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며, 개인적인 선호로는 가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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