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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살라메아 시장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9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지음, 김선욱 옮김 / 책세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칼데론 극작 세계의 한 중요한 축이었던 성찬신비극에 속한다. 성찬신비극이란 성서를 기반으로 인물과 의인화된 사물을 등장시켜 주의 영광을 칭송하고 가르침을 따를 것을 훈계하는 일종의 도덕극이다.
이 작품에서 칼데론은 창조주와 세상을 등장시켜 천지창조 부분을 극화하고 있다. 그런 후 부자, 농부, 왕, 거지, 지혜(사제), 아기, 미인 등을 세상에 나오게 하여 각자에게 지위와 신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후 세상에서의 공과로 사후세계에 천국과 연옥, 지옥에 영원한 자리를 배정한다. 지극히 상투적인 기독교적 가치관에 뿌리박고 있다고 하겠다.
주목할 장면은 상대적으로 나쁜 역을 맡는 데 대해 거지와 농부가 불만을 제기하자, 창조주가 설득하는 논리다.
“애정과 혼을 가지고
연극에서 거지 역을 훌륭히 연기해낸다면,
왕의 역할을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운 일이다.
...
모든 인생은
연극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여된 역을 제대로 한 사람은
연극이 끝나면
내게서 합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P.28)
여기서 두 가지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하나는 <인생은 꿈입니다>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인생은 꿈 또는 연극에 불과하며, 진정한 삶은 꿈 또는 연극이 끝난 후, 즉 사후세상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삶은 사후세상에서 천국과 지옥에 가기위한 사전 단계에 불과하다는 어찌 보면 염세적 가치도 다소 내포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기독교적 세계관을 현세에 정착시키려면 부득불 현세의 정치체제와 모종의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민평등은 이론적으로 그럴듯하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지극히 위험하다. 왕과 귀족, 평민, 천민은 어떤 식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계급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이 바로 인생은 연극이라는 논리다. 현세에서 맡은 역할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아기, 농부, 거지- 연극에서 자기역할을 기독교적 가치관에 부합하게 충실히 연기한다면 사후세계에서 창조주에 의하여 보답받을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부당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지극히 지배층의 논리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살라메아 시장>이 훨씬 더 흥미롭고 뛰어난 문학성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이 작품은 코메디아에 속하는데, 오늘날 희곡 개념에 보다 부합한다.
훗날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의 작품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평민이 귀족계급의 부정과 비리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페드로 크레스포와 미하엘 콜하스는 닮은꼴이다.
크레스포의 뛰어난 미모의 딸 이사벨을 두고 하급귀족 돈 멘도가 탐을 내던 중, 잠시 머무르던 군대의 돈 알바로 대위는 물리적 힘으로 크레스포를 감금하고 그녀를 납치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돈 알바로 대위는 귀족으로서 평민인 이사벨을 동등한 반려자로 맞아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단지 자신의 정욕 해소를 위해 평민 여성의 처녀성을 짓밟은 것이다.
크레스포-어떤 부모가 가만히 참고 있으랴!-는 분노에 치를 떨고, 복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이 시장에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장으로서의 권한은 십분 활용하여 대위를 체포하고 심문한 후 사형에 처한다. 사실 민간인이 군대 장교를 직접 처분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 것으로서 신분차이를 떠나 사이가 좋았던 지휘관 돈 로페 장군과 대립하게 된다. 이때 국왕이 나타나서 정의의 손을 들어준다.
크레스포는 부유한 농민으로, 자존심과 명예 관념이 매우 강한 인물이다. 군대가 오면 반드시 품행이 나쁜 장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딸을 다락방에 숨기는 예방책을 사용하지만, 열 장정이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속담은 여기도 적용된다.
사건이 발생한 후 크레스포는 돈 알바로 대위에게 자신과 딸의 명예 회복을 위하여 딸과 결혼하도록 간청하지만, 오히려 돈 알바로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귀족 신분인 자신이 평민과 결코 혼인할 수 없다는 돈 알바로의 사고는 당대 귀족들의 보편적 가치관의 반영에 다름 아닐 것이다. 평민 처녀는 그저 즐기고 버리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예우를 해주고 존중하는 것은 같은 신분에만 적용된다.
미하엘 콜하스처럼 크레스포도 복수를 이행한다. 콜하스가 법적 절차로 해결 안 되자 무력을 동원하여 올바른 법적 절차를 요구한 것처럼, 크레스포는 시장으로서 자신의 법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한다. 여기서 귀족에 대한 평민의 계급의식 타파 의식이 조금씩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왕에 의한 사태 해결은 결국 국왕이야말로 당대 사회질서와 정의 수호의 최고 판관임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연극관람자들에게 국왕에 대한 존경을 제고하는 목적이 배어있다. 일개 시장이 장교를 처단한 것은 비록 엄밀한 의미에서 위법이지만, 국왕은 부당한 처사에 반발한 시장과 평민들의 정의감에 힘을 실어준다. 이것은 일석이조이다. 귀족에게는 경고인 동시에, 평민에게는 충성 요구.
칼데론의 수백여 편의 극작품 중에 겨우 세 편을 통해 그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17세기 당대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그는 주로 왕실의 비호 아래 창작활동을 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에서 종교와 국왕에 대한 찬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더구나 극작품은 상연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글로만 이해하는 것은 명백한 태생적 한계를 내포한다. 그럼에도 <인생은 꿈> 및 <살라메아 시장>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조화롭게 모색하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