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지기의 개 지만지 희곡선집
로페 데 베가 지음, 윤용욱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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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의 대가이자 국민연극의 창시자인 로페 데 베가의 국내 두 번째 번역본 출간이다. 외국문학의 다변화 측면에서 경하할 일이다.

일단 당대의 극작품들이 그러하듯 로페의 이 작품도 운문 희곡 또는 시극 형태를 갖추고 있어 번역에는 언어적 제약 외에 장르적 한계라는 이중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운문의 묘미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작품의 번역본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메시지 및 구성 등을 조금이나마 접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데 만족할 뿐이다.

이 극은 남녀 간의 사랑의 갈등과 결합을 다루고 있다. 사랑과 조건이 일치한다면 사랑의 결실에 방해 요소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과 조건이 불일치한다면? 특히 여성에 비해 남성의 조건이 월등히 뒤처진다면 그 사랑을 성사될 수 있을까? 역사적 경험이나 과학적 지식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개인적 자질이 우수한 여성(특히 외모)이 결혼을 통해 상위 계층에 편입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반면 우수한 남성이 상위 계층의 여성과 연을 맺는 것은 가족과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로페 데 베가는 바로 이런 경우를 그리고 있다. 젊은 여백작과 하인 신분인 그녀의 남자 비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백작이며, 그녀에게 구혼하는 귀족들이 끊이지 않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비서에게 마음을 애태운다.

비서 테오도로는 어떠한가? 그는 젊고 패기 있으며 자신만만하지만, 출세를 위해서 자신에게 헌신하는 여인을 거침없이 버리는 비정한 남성. 훗날 스탕달과 드라이저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유형의 선배 격에 해당한다. 테오도로의 여주인에 대한 감정은 당초 상하관계에 지나지 않았지만, 디아나의 눈과 말에서 감정을 알아채고는 일순간 삶의 목표가 달라졌다. 밀회를 위하여 심야에 방에 뛰어들던 그가 이제는 마르셀라를 외면한다. 그녀의 편지를 찢고는 스스로가 이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천명한다.

“마르셀라는 참 어리석은 여자입니다.” (P.63)
““나의 남편, 테오도로에게.” 뭐? 남편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나!” (P.77)
“진지하게든 장난으로든, 이제 내 이름을 당신 입에 올리지 말아요.” (P.110)

디아나 백작은 번민한다. 그녀의 내심에서 감정과 명예가 맹렬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귀족으로서의 명예심은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용납하지 않지만, 내면의 열정적 감정은 사랑을 최우선시 한다. 그래서 테오도로에 대한 그녀의 언행은 극과 극을 달리며, 냉탕과 온탕을 넘나든다. 일면 이해가 간다. 현대에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당대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귀족과 하인, 더구나 남성이 신분이 떨어지는 사례는 통상적으로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가 나와 같은 신분이었다면 그의 고상함과 우아함에 내 마음은 떨렸을 거야. 사랑은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나는 나의 명예가 더 소중해. 나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에 대해 존중해 주길 원해.” (P.35)

표제 ‘과수원지기의 개’는 테오도로에 대한 디아나의 태도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과수원지기의 개는 언제나 먹을 것이 넘쳐나 자신이 먹기는 싫지만, 누가 와서 가져가려면 사납게 짖어댄다. 디아나는 테오도로가 마르셀라와 사랑을 속삭이는 걸 견딜 수 없다. 맹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순간적 감정의 폭발과 차가운 이성의 자제. 곁에서 지켜보는 이에겐 영락없는 과수원지기의 개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시종 트리스탄의 기지로 신분을 위장한 테오도로. 더 이상 디아나가 명예심으로 고뇌할 필요가 없다. 테오도로와 결혼을 선언하는 디아나. 양심에 걸린 테오오도로가 진실을 토로하지만, 이미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격. 그녀에게 이제 명예심은 불 꺼진 재에 불과하다.

“당신은 참으로 현명한 동시에 어리석군요. 당신이 저에게 당신의 숭고함을 보여 준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저와의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저는 당신의 천한 사회적 신분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색깔을 찾았어요. 기쁨은 신분적 고귀함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원하는 영혼의 결합에 있는 거랍니다. 저는 당신과 결혼할 거랍니다.” (P.171)

작가는 사랑의 소중함을 강조할뿐더러 곁들여 세인들의 신분 지향적 태도변화를 꼬집고 있다. 테오도로가 하인이 아니라 백작의 자제라고 드러나자 모두들 앞 다투어 머리를 조아리기에 급급하다. 일순간의 태도 급변은 이전의 상황과 대비되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신분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하기사 이것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TV 드라마마다 넘쳐나는 소위 ‘출생의 비밀’을 보라.

모두가 해피엔딩은 아니다. 불쌍한 마르셀라. 그녀는 잘못은 테오도로를 사랑한 것 외에 없다. 그녀의 사랑은 배신으로 보답 받고 그녀는 강제로 파비오와 결혼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당대 사회에서 하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음을 알게 된다.

“당신이 나를 그와 결혼시키는 거예요. 나에 대한 당신의 경멸이 나를 이렇게 행동하도록 부추겼어요.” (P.156)

남녀 주인공의 진실한 결합이라는 해피엔딩에 열광의 박수갈채를 보내야 하지만, 마르셀라의 존재로 인하여 우리는 디아나와 테오도로에게 환호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의 귀중함만 알지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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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롱고스 지음, 김원중.최문희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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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세기 경에 롱고스(Longos)에 의해 씌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랑 이야기다. 전원을 무대로 한 산문 구성의 목가적 사랑 이야기의 고전으로서 후대 많은 작품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에 버려진 아기, 아기의 신표, 빼어난 외모, 순진하고 자연 순응적인 삶, 주인공의 고난과 사랑의 성취, 그리고 밝혀진 출생의 비밀, 행복한 결말 등. 과거나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고전적 사랑담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있다.

무대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여류시인 사포로 유명해진 곳이며, 레즈비언의 어원이 되기도 한 곳이다. 섬 주민들은 제우스 신을 비롯한 디오니소스, 판과 님프들을 공경하는 고대문화의 유습을 독실하게 지니고 있다. 아직 기독교의 세례가 미치지 않아 볼 수 있는 이러한 이교도적 문화는 친숙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진부함을 떨쳐내 작품에 소박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겨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다프니스는 염소를 치며, 클로에는 양을 돌본다. 그들은 한 곳에 양과 염소를 풀어놓고 나무 아래에 다정하게 앉아 다프니스의 팬파이프를 반주삼아 클로에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푸르르고 상쾌한 하늘, 새들은 지저귀고 샘물이 졸졸졸 흘러가는데 미풍은 귓가를 간지럽힌다. 상상만 하더라도 절로 가슴 속이 흐뭇하고 시원해지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천진무구 자체이다. 자연의 본능에 따라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며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서 행복함을 즐기나 아직 이성 간의 육체적 성 관계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뭔가 답답하고 미진함을 느끼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를 가르쳐주는 이는 없다. 이웃의 유부녀인 리카이니온의 사랑 수업으로 성교의 즐거움을 알게 된 다프니스, 하지만 그는 첫 성교가 클로에를 아프게 할까봐 그녀와 행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인위적 도덕률과 가식적 경건함의 외피를 두르지 않는다. 아직 문명의 위선이 들어오기 전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거리낌 없이 묘사한다. 이것은 인간이 문명화되면서 잃어버린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해적의 노략질과, 이웃 마을 메티나의 침공 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폭력과 전쟁의 그늘을 당대에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간난신고는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실에 필수적 통과의례이다.

롱고스의 글은 자체로서도 고전적 격조의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만,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화가 마르크 샤갈의 빼어난 그림의 역할이다. 20세기의 뛰어난 화가인 샤갈은 1961년에 롱고스의 작품에 삽입할 칼라 판화 작품을 완성하였다. 총 41편의 그림은 글을 읽지 않고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역시 글과 그림의 결합이 목가적 글에 환상적 분위기를 더해주어 글과 그림의 행복한 만남의 미덕을 가시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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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랑의 이야기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44
후안 루이스 지음, 안영옥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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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전반에 발간된 이 작품은 장편 운문 소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이 방대하고 수록한 내용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소실된 경우도 있어 체계적 이해가 어렵다는 평이 있다. 게다가 이 번역본은 원전에서 3분의 1 정도를 발췌하여 번역하고 있어 번역의 질을 떠나서 작품의 전체적 이해가 매우 곤란하다.

이타의 수석사제 신분인 작가는 이 작품의 의도를 ‘나쁜 사랑’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계도하는데 둔다. 여기서 나쁜 사랑은 속세의 미친 사랑을 지칭하며, 좋은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어서 작가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인간이란 존재의 속성 상 미친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미친 사랑의 이야기를 통하여 제대로 된 미친 사랑을 하는 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이 중에서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이 작품에서 표제[비록 작가가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와는 달리 좋은 사랑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화자인 작가가 사랑을 하고자 뭇 여성에게 구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사랑과 여성의 의의에 대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여인이 남자에게 나쁜 것이라면, 남자의
몸에서 만든 여자를 남자에게 동반자로 주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토록 귀족적으로 만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P.44)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구애를 하는 것은 당연한 본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아름다운 여인에 시선을 돌린다. 여기서 의인화된 사랑(Amor)이 당시의 미인관을 들려준다.(P.77~78, 81~82)

애석하게도 화자의 노력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번번이 헛수고에 그친 화자는 마침내 사랑(Amor)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비너스에게 하소연한다. 비너스의 조언을 받아들인 화자는 매파, 즉 뚜쟁이를 통해 도냐 엔드리나에 대한 구애에 성공한다. 매파와 뚜쟁이는 종이 한 끝 차이인데, 뚜쟁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라 셀레스티나>의 원형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애에서 매파의 중요성이 강조되므로 매파 우라카가 죽었을 때 화자의 상실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화자는 매파를 데려간 죽음을 비난하며, 묘비명을 적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에서 화자의 연애담은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화자와 여성 간의 담화 중에 인용하는 숱한 우화 및 일화가 작품의 재미를 더해 준다.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 간에 일어난 이야기
사자와 여우에 대한 우화
땅의 출산에 대한 우화
알카라스 왕의 아들에 대한 예언
도둑과 개에 대한 우화
세 명의 여자와 결혼하고자 했던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
주피터에게 왕을 청했던 개구리들에 관한 우화
늑대와 학의 우화
화가 나서 자살한 사자의 우화
개구리를 믿은 두더지에 관한 우화
같은 여인을 동시에 사랑한 두 명의 게으름뱅이에 대한 이야기
화가 피타스 파야스에 대한 이야기
귀도 심장도 없는 당나귀에 대한 우화

이런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으며, 게다가 ‘육체 씨와 사순절 양의 싸움’이라는 우화는 별도 장으로 길게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무수한 단편의 모자이크로서, 민간 구비전승이 문자로 정착하는 시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발췌본이 아니라 하루빨리 완전본이 나와야 작품의 진면목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좋은 사랑에 대한 작가의 속내는 무엇일까? ‘탈라베라 사제들의 노래’를 보면, 정부를 두지 말라는 대주교의 칙령으로 모든 성직자들이 낙심하고, 일부는 집단으로 불복 상소를 내기도 한다. 이것이 작가의 내심을 슬쩍 표현한 게 아닐까?

“만일 주교가 그 일을 나쁘게 본다면
여러분들은 선행을 버리고 악행을 행하시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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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후안 테노리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16
호세 소리야 이 모랄 지음, 정동섭 옮김 / 책세상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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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티르소 데 몰리나의 <돈 후안>의 무수한 아류작 중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는 것이 이 <돈 후안 테노리오>로서 원작 출시 후 2백여 년이 경과한 후다.

돈 후안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이유는 거침없는 여성 유혹과 편력의 대담함과 신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무모함에 있다. 가톨릭이 지배하던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종교는 삶의 모든 것을 규율하고 지배하는 무거운 질곡이 되기도 하였다. 돈 후안은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중의 내심을 잘 반영하였다.

호세 소리야의 <돈 후안 테노리오>는 선배에게서 주인공을 빌려 왔을 뿐 작품의 전개와 성격, 분위기, 결말 등 모든 면에서 차별화를 도모하고 있다. 물론 극작품이라는 장르적 성격은 동일하다.

티르소의 돈 후안이 여성 유혹자임을 자부하지만 극중에서는 불과 4명 만을 유혹하는 데 그치는 반면, 호세 소리야의 주인공은 돈 루이스 메히아와의 악한 대결에서 72명의 여성을 정복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다만 티르소는 극중에서 유혹 장면을 보여주지만, 호세 소리야의 작품에서는 극중 유혹 장면은 단 한 명, 도냐 이네스 뿐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돈 후안의 도냐 이네스 유혹이 이야기의 중심을 끌어간다. 양가의 아버지 간에는 정혼이 구두합의가 되었으나 돈 후안의 파렴치함을 목도한 기사단장 돈 곤살로가 파혼시킨 예비 수녀, 이것이 도냐 이네스의 모습이다. 그녀는 나면서부터 수녀원에서 생활하여 세속의 티끌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의 현신으로 묘사된다.

돈 후안은 그녀의 약혼자임을 이용하여 접근하고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무구한 모습에 마음이 흔들려 기사단장의 발에 무릎을 꿇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이 전작과의 차이점이다. 전작의 돈 후안은 끝없이 신에게 도전하고 경멸하지만 후자의 돈 후안은 신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지 않다. 돈 후안과 돈 루이스의 회동 장면에서 우리는 돈 후안 자신의 입으로 그의 장문의 악행 리스트를 듣게 된다(P.38~42). 판소리 <흥부가>에서 형 놀부의 심술 대목의 나열을 연상시키는데 정도는 훨씬 심하다. 이러한 그가 도냐 이네스를 만나고 소위 개과천선을 바라지만 돈 곤살로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제 존재를 새롭게 하며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악마였던 자를 천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P.154)

“그렇지 않으면 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늘 그래왔던 그런 과거의 사람, 지금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이 될 겁니다.” (P.153)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돈 후안은 돈 곤살로와 돈 루이스를 죽이고 떠나며, 도냐 이네스는 아버지의 죽음과 돈 후안의 떠남에 정신을 잃고 영원히 쓰러진다. 완전한 비극!

2부에서는 돈 후안의 귀국과 묘지가 된 자신의 저택, 돈 곤살로와 도냐 이네스의 석상이 주 배경이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냐 이네스의 존재이다. 티르소의 작품에서 기사단장의 딸은 도냐 안나로 그녀는 아버지 몰래 모타 후작과의 만남을 꾀한다.

호세 소리야는 이를 도냐 이네스로 대치하는데, 단순 대치가 아니라 돈 후안 못지않은 중요한 캐릭터로 격상하고 있다. 그녀는 단테에게 베아트리체, 파우스트에게 그레트헨과 같은 구원의 여인상이다. 석상의 초대로 무덤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려는 돈 후안. 마지막 순간 그는 신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그리고 도냐 이네스가 나타나 돈 후안의 영혼을 구원한다.

호세 소리야는 선배의 그늘을 의식하지만 결코 이에 가려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돈 후안의 성격의 새로운 규정, 도냐 이네스라는 여인의 창조, 이를 통해 독자는 전작의 편력적 구성의 산만함에 비해 남녀 주인공에 집중된 보다 극적인 흐름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엇갈린 운명에 탄식을 흘리다가 마침내 주인공의 구원에 안도의 한숨과 갈채를 보낼 수 있다.

전작에 비해 분량이 많지만 오히려 읽어나가기는 훨씬 용이하다. 연대적 차이가 언어적, 문화적으로 보다 접근을 용이하게 하며, 아울러 작가의 글쓰기가 한층 대중친화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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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아웃 - 1950 겨울 장진호 전투 나남신서 327
마틴 러스 지음, 임상균 옮김 / 나남출판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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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전황은 급격하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린다. 북한군에 속수무책으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다시 힘을 내고 파죽지세로 북한군을 몰아붙여 마침내 압록강 도달이 멀지 않을 정도로 승세를 탄다. 맥아더 총사령관은 당시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공개적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군의 동태를 고려에 넣지 않았다. 자국의 국경이 위협받는 것을 방관치 않겠다는 모택동의 경고를. 모두가 낙관적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을 때 중국군 대부대가 국경을 넘어 험준한 산악에 매복하고 있었으며, 단 한 번의 역공으로 서부전선의 8군은 평양을 포기하고 남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동부전선의 10군단은 장진호반에서 엄청난 수의 중국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모두가 그들의 전멸을 예상하였다.

이 책은 10군단, 특히 주력인 해병 제1사단이 자신의 몇 배나 달하는 적군을 물리치고 무사히 흥남으로 철군하는 처절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논픽션이다. 저자 자신이 당시 해병대원으로 참전하였기에 자신의 청춘 시절의 잊지 못할 체험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투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전우들에 대한 눈물겨운 헌정이기도 하다.

당시 해병 제1사단의 후퇴작전(해병들 스스로는 후퇴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의 공격이라고 주장한다)의 기적적인 성공은 한국전쟁의 전세에 두 가지 큰 영향을 미쳤다. 먼저 해병 제1사단이 무너지지 않고 퇴각함으로써 중국군에 대항할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또한 장진호로의 공격과 후퇴 도중에 맞닥트린 중국군 최소 6개 사단 이상의 전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일거에 남진하려던 중국군의 전략에 지장을 주었다. 서부전선의 중국군 공세만만으로도 서울을 재포기할 정도였으니 만약 해병 제1사단이 아니었으면 동부전선의 중국군마저 공세에 합류하여 그야말로 유엔군은 전쟁 자체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는 게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모든 해병 개인들이다. 그들은 최악의 순간에도 상관과 동료와 자기 자신을 믿었으며, 자신이 해병임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자부심은 특별한 데가 있다. 그것은 육군(소위 땅개라고 그들이 무시하는)에 대한 해병대의 우월성을 자각하는 데서 나온다. 그들의 모토는 Sempre Fidelis, 즉 언제나 충성으로서 적군에게 밀리는 것을 치욕으로 알았으며, 후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전장에서 비겁한 행동을 한 병사는 그들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였다.

평시의 인명 사고는 뉴스거리가 된다. 전쟁이 발발하면 더 이상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의 목숨도 숱하게 희생당하며, 적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적을 먼저 죽여야 내가 살아남으며 높이 평가받는다. 그래서 전쟁은 인간을 비이성적 존재로 만든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은 천명에 가까운 전사 내지 실종자가 발생하였는데, 중국군은 3만 명 가까이 전사하였다. 해병대의 혁혁한 전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편 유엔군과 중국군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떠나 한국이라는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목숨을 바치게 만든 인류의 야만성이 새삼 두려워진다. 그들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동토의 설국에서 동상에 몸의 감각을 잃어가면서 참호에서 무슨 상념을 품었을까?

전쟁은 개인적 감상을 용납지 않는다. 전쟁은 집단적 힘과 힘의 전면적 대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의 결과에 환호하며, 전쟁 영웅을 우상시한다. 전쟁에서 영웅이란 무엇인가?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것에 다름 아니다. 평시에서는 사형에 처해지지만, 전시에서는 훈장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장에 선 병사 하나하나의 개인에 대해 무심하다. 오로지 전투의 결과, 전장의 성패가 주목받는다.

이 책은 장진호 전투에 참여한 개개인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전반적인 전략적 패배 속에서 이루어낸 일련의 전술적 승리(P.611)였다. 미국 대중들은 한국전쟁에 무심하다. 오죽하면 잊혀진 전쟁이겠는가. 설혹 관심 있는 이들도 병사들이 한국전에서 어떠한 고초를 겪었는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선에서 그들의 심경은 무엇이었는지 무심하다.

저자는 장진호 전투가 가진 역사성과 동료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충성과 헌신을 되새긴다. 익명으로 취급된 병사들 하나하나를 역사 속의 살아 숨쉬는 존재로 부활시켜 마치 눈앞에서 그들이 떠들고 농담하다가도 불현 듯 소총을 부여잡고 눈발이 휘날리는 엄동설한에 능선으로 돌격하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 전쟁 영화를 더 이상은 무심히 보지 못할 것 같다. 단순한 영화로 여겨지지 않고 전투원 개개인의 아픔이 내게 뼈저리게 다가온다.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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