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 - 세계 대문화와 함께 인류 문명의 위대한 역사를 걷다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김희주 외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3개월 전에 독서한 책을 이제야 감상을 남긴다. 대단한 게으름의 소치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웰스가 난데없이 역사책을 집필하였다는 사실이 생소하다. 이 책은 그가 저술한 방대한 세계사의 개론서에 해당한다.
그의 역사 인식이 독특한 점은 세계사를 고대 문명의 출현이 아니라, 지구의 탄생(1부)과 인류의 탄생(2부)으로 시작하는 점이다. 과연 자연과학을 공부한 저자다운 선택이다. 웰스는 인종 개념을 거부하면서 민족 개념으로 세계사를 이해한다. 서양사는 기본적으로 아리아인과 셈족의 투쟁으로 지속되었으며, 여기에 동양, 특히 중국의 한족, 몽골족이 등장하여 세계 전체의 역사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권력이 아리아인의 수중에 떨어진 후에도 사상과 체계를 둘러싼 아리아인과 셈족, 이집트인의 투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실 이 투쟁은 이후 역사 전반에 걸친 싸움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도 진행 중인 싸움이다. (P.132)
이런 민족간 대립과 경쟁 관계로 역사를 이해하는 개념은 생소하면서 저자만의 시각에 해당한다. 서양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그는 셈족과 아리아인의 관계를 언급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최초의 아리아인 제국이었으며, 아리아인의 최초 전성기는 로마 제국에 해당한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침묵하던 아리아인은 근대 유럽에 접어들면서 앞선 기계혁명과 자연과학의 덕택으로 근대 세계사를 지배하게 되었다. 셈족은 페니키아인, 유대인, 그리고 이슬람인들이다. 역사에서 맨 먼저 득세한 페니키아인이 로마와의 다툼 끝에 패망하고 오랜 기간 피지배인의 처지에 있다가 다시금 힘을 회복한 게 이슬람 제국이다.
포에니 전쟁이 남긴 흔적은 지금도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이겼지만 아리아인과 셈족의 대결은 나중에 비유대인 대 유대인의 충돌로 다시 나타나게 된다. (P.213)
13~16세기에 유럽의 아리아인들은 셈족과 몽골인에게 자극을 받고 그리스 고전을 다시 발견한 덕분에 라틴 전통에서 벗어나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류를 이끌 수 있는 자리에 다시금 올라서게 되었다. (P.375)
현대에서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여전하며 정치적, 종교적 요인뿐만 아니라 민족적 차이에도 있다고 볼 때 웰스의 견해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웰스가 유럽인이므로 분명 부분적으로 서구우월주의 인식을 가졌음을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는 비교적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균형적 인식, 다양성의 인정, 그리고 희망적 역사 인식이다. 그가 무조건 서구 사회를 옹호하지 않았으며, 솔로몬의 영광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며, 근대 유럽인들의 무분별한 오만성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인들은 기계혁명 덕분에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자, 이전에 몽골인들이 세계를 정복했던 일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자신들이 앞으로 영원히 인류를 이끌어가리라 확신했다. (P.503)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 서구 사회를 지탱해 온 건 정치적으로 로마였고, 정신적으로 기독교였다. 저자는 이 두 거대한 제국이 쇠퇴하고 소멸한 원인을 같게 보고 있다. 즉 로마와 기독교를 지키고 유지할 의지가 더 이상 없었기에 붕괴하였다면서.
아무래도 서구 중심으로 기술되기 마련이지만 저자가 세계사에서 동양, 특히 중국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대목은 그렇기에 더욱 신뢰가 간다. 그는 특이하게도 싯다르타에 대해서 다섯 페이지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한나라의 비중을 전성기 로마 제국과 비슷한 위치에 두고 있으며, 당나라와 몽골인의 개방성과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서구의 정신이 신학에 대한 집착으로 암울해졌을 때 중국의 정신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탐구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P.300-301)
그다지 독창적인 민족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몽골인이 지식과 방법의 전달자로서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P.369)
인류의 역사 발전에 대해 기본적으로 웰스는 낙관적이다. 그는 기원전 6세기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때 비로소 인류가 유아기를 벗어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고대 철학자들, 인도의 석가모니, 중국의 공자와 노자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기 전 6세기는 사실 전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시기 중 하나였다. 중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인간 정신의 대담성이 새롭게 발현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인간이 왕권과 신권, 제물의 인습에서 깨어나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P.187)
아울러 근대유럽의 정치적 혼란과 제1차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진보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혼란은 인류가 노쇠하여서가 아니라 개인이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겪어야 비로소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듯이 마찬가지 성격이라고 해석한다.
인류는 이제 겨우 청소년기에 도달했을 뿐이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인류가 노쇠했거나 탈진해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더욱 강해진 힘을 아직 길들이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P.536)
그렇다고 순진한 낙관론을 펴지도 않는다. 인류가 가진 힘은 점점 커지는 데 반해 인간 이성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이 세계대전을 일으켰음에도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단언한다. 평화를 향한 조처와 노력이 부족하다면 다시금 비극은 재발할 수 있다며. 이후 세계사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섬뜩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20~30년 뒤에 훨씬 더 큰 규모의 전쟁이 반드시 일어나고 말 것이다. (P.531)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 출간되었다는 점이 공교롭다. 저자는 이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의 전쟁에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당시 이처럼 비판적 지성을 갖춘 저자가 생전에 또다시 세계대전 겪은 후 어떤 감정과 사고를 지녔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희망의 끈을 품었을지 아니면 참담함에 비관적으로 돌아섰을지.
방대한 세계 역사의 흐름을 이처럼 단 권의 책으로 모두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개별적 사실의 상세한 내용은 개별사에 맡겨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식을 깨우치고 다양한 견해를 품는 데 있다. 역사 전공자가 아니기에 웰스는 오히려 기존의 틀에 박힌 역사 인식을 떨쳐버리고 자신만의 개성적인 역사관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기분 좋고 보람 있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