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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대중에게 오펜하이머의 이름이 비로소 각인되었다. 이전에는 일부에게 기껏해야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자 정도로만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가 당대의 저명한 양자물리학자라는 사실도 알지 못하였다. 원자폭탄 개발 이후 핵 통제를 위해 활동하다 곤욕을 치른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전이다. 본문만 900면이고, 색인 등을 포함하면 1,000면을 넘긴다. 빽빽한 조판을 고려하면 상당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 책은 오펜하이머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사망하기까지 그의 개인, 가족생활, 학자로서, 행정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 끝내 좌초하고 마는 삶 전부를 샅샅이 훑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꼭 이 정도로 파헤칠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내밀한 삶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는데,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미 이렇게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한 사람의 공적인 행동과 정책 결정 과정이 (오펜하이머의 경우에는 심지어 그의 과학 업적들마저도) 일생에 걸친 개인의 경험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믿음으로 쓰인 극도로 개인적인 전기이다. (P.15)
우선 궁금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 만한 과학적 업적을 성취하였는가이다. 저자들은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기술한다. 오펜하이머의 뛰어난 재능은 그가 한 분야에 집중하는 걸 막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로스앨러모스 책임자를 맡지 않았다면 과학자로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기에 학문 연구에 집중하여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는 이론물리학계에 일파를 이룰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오펜하이머는 한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파고들 만한 참을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결과 그가 새로운 분야의 문을 열어젖히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중요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P.150)
오펜하이머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성격상 결함이 온전히 메워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높은 자존심과 금욕적 성향, 무모할 정도의 반항심 내지 오만함, 캠프장 얼음 창고에 갇혔을 때 보였던 수동적 태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에게 엿보이는 성격이다. 케임브리지 시절 지도교수에게 독을 먹이려고 했던 행위는 그가 극단적 압박 상황에서 이성의 끈을 놓치는 성향의 출발점이다. 훗날 그가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청문회에서 보인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은 그의 성격적 결함이다.
그는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으나, 긴장만 하면 깊이 후회할 만한 말을 했고, 이는 그를 심각한 곤경에 빠뜨렸다. (P.506)
오펜하이머는 이제 자신에게는 끝까지 절차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금욕적이고 수동적인 반응이었다. (P.789)
사회적으로 명성 높은 인물의 가족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사례가 흔하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대목에 이르면 부부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길 정도다. 과학 연구밖에 모르는 아빠, 가정을 꾸리는 일에 전혀 무관심한 엄마. 그곳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자라기를 기대한다면 과욕이 아니겠는가. 두 자식의 삶이 훗날 불행으로 점철된 것은 외부적 요인을 참작하더라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진력한 행위는 극단적 반핵주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납득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개발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폭탄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승전을 바라는 처지에서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나치 독일의 개발과 실험을 방해하는 공작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달라졌을 수 있었다. 요는 개발 자체는 당시 전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였다는 점이다.
다만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 독일은 이미 항복하였고, 일본은 조만간 패망이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목적을 위해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핵폭탄 기술을 독점하여 그것으로 국제정치에서 힘의 우위를 발휘하려 한 선택에서 이론이 생긴다. 오펜하이머 역시 이 점에서 정부 관료들과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라비와 오펜하이머는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제 원자력 기구를 제안했고, 그것이 폭탄과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P.518)
허울 좋은 동맹관계를 벗어던지고 냉전으로 돌입하는 시점에서 핵무기 기술을 공개하여 누구도 독점하지 못 하게 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은 순진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조치다. 오늘날 핵확산을 강조하는 목소리의 원류가 보어와 오펜하이머에게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주장이었고, 매카시즘과 정치 역학이 결부하여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키는 공작을 펴게 하였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편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30년대에 미국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파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P.245)
매카시즘 광풍에서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인지가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저자들이 속속들이 밝혀낸 자료에 따르면 비교적 젊은 시절 그가 공산주의에 경도된 건 사실이다. 어쩌면 당시에 지식인치고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두거나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하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정도다. 오펜하이머 역시 대공황의 참담함에 연구실 밖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원자폭탄 개발 책임자로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계속해서 의심과 감찰과 도청의 대상이 된다. 그에게 과연 참다운 의미에서 개인적 삶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시 상황에서조차 통과되었던 그의 이력과 사상이 새삼 1950년대 다시금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어처구니없지만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까 회의적이다. 조금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좌파, 빨갱이 같은 색깔 논쟁을 전개하며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념으로 시비를 걸고는 하지 않았던가.
그가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이주하는 건 애국심 차원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박해받는 상황에서 청문회의 그 모든 모욕을 오롯이 감수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오펜하이머 망신 주기를 목적으로 하는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절차와 자료로 도저히 정당한 항변이 불가능하다면 아인슈타인의 조언처럼 차라리 과감하게 청문회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뛰쳐나올 수 있었다면 어떠하였을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부인당하고 살갗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무력하게 감내하는 한 마리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오히려 부당한 피해자로서 동정심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온갖 수모와 치욕을 다 겪고 난 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재판과 그레이 위원회의 평결을 둘러싼 소동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오펜하이머의 유명세를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만 알려져 있던 그는 이제 박해받는 과학자로 갈릴레오와 같은 반열에서 추앙받게 되었다. (P.826)
로스앨러모스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한 고등연구소장직도 끝내 내놓고 야인생활을 하게 된 그에게 남는 건 무엇이었을까? 야망이 남다르게 강렬했던 그가 타의에 의해 하차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과 아내, 자식들의 정상적 삶은 이미 불가능해진 셈이다. 그의 급격한 건강 악화는 커다란 실의와 지독한 흡연의 절묘한 콜라보의 결과다.
국제적 핵 통제를 주창한 그의 노력은 무산되고 미소 강대국의 무한 군비 경쟁이 냉전 시대를 특징 짓게 되었으며, 원자폭탄은 이제 강대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그토록 반대했던 슈퍼 폭탄, 즉 수소폭탄도 결국 원자폭탄의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자 군사적 목적에서 추진되었으니 그가 예언했던 것처럼 인류는 인류의 멸망을 순식간에 초래할 위험을 침대 밑에 깔고 누워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한 시대에 굵직한 선을 그은 한 과학자의 삶을 통해 과학기술 개발과 인류의 진보, 개인과 정부의 관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파렴치한 공작 전개 등의 작태를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냉전 시대를 관통하여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펜하이머라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신화 속 거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을 겪게 되었지만 그로써 그의 이름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100년간 끊임없이 생겨날 무책임한 정부들과 새로운 기술적 발견에 맞서, 누군가 우리를 핵무기로 기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P.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