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 블루스
고형진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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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고려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펴낸, 일종의 정년퇴임 기념 문집이다. 다만 일반적인 문집과는 구성이 사뭇 다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저자 자신이 아니라 고려대학교다. 평생을 봉직하면서 저자가 지녔던 고려대를 향한 사랑을 고려대의 문학적 유산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고려대와 고려대인의 추억을 회고한다.

 

1부는 고려대학교를 제재로 삼은 여러 작가의 시, 수필, 단편소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조지훈, 오탁번, 이희중, 강연호, 심재휘 등 여러 고대 출신 문인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시각에서 고려대를 표현한다. 동시대에 학교를 다니거나 학교에 대한 추억을 지닌 독자라면 작가들이 그리는 당시 고려대의 모습에서 맞아, 그랬지 하고 저도 모르게 회상에 빠질지 모른다. 훨씬 후대의 독자라면 당대 고려대의 풍물이 그러했구나 하고 새삼 신기하게 여길 수도 있다.

 

현대사의 굵직한 고비마다 시대와 함께 풍운을 겪었던 대학이니만큼 수록 작품에서도 이를 담고 있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의 울분과 답답함, 미안함은 여전하며 <80년대라는 이름의 강의실>(심재휘), <오월의 숲>(이희중)에서 대학의 대학다움이 무엇일지 새삼 생각해 본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P.34)라며 도발적으로 시작하는 오탁번의 <고려대학교>는 당당한 자긍심이며, 문과대 옆 스팀목련은 올해도 때아니게 꽃을 피움에 공감을 품는다.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경건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P.23, 조지훈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굴뚝과 천장>(오탁번)은 본관 건물에서 발견된 오래된 사체를 작가의 상상력이 풍선처럼 부풀려 한 편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작중의 화자는 죽은 그와 친소를 반복하는 라이벌의 삶을 사는데, 그는 민주화의 투쟁으로 화자는 안정된 개인적 삶의 투쟁으로 길을 달리한다. 어딘가로의 실종 또는 잠적으로 그는 화자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머나먼 존재로 승격시키는데 난데없는 사체의 발견으로 그 신비로움이 깨졌음을 화자는 애석해한다. 독자는 화자의 어조가 속이려 하지만 자신에게 일말의 부끄러움이, 겉보기에 보잘것없는 삶을 선택한 그에게 존경과 동경의 마음이 서려 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끝까지 끝까지 그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이런 나의 감정이 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증오 때문인지 대결 의식 때문인지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P.142)

 

2부는 저자 자신의 글로 오롯이 담고 있다. 본인이 학생 시절 만났던 은사인 정한숙과 오탁번에 대한 회상록이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원로 교수의 인간미 물씬 풍기는 일화를 접하는 재미가 있다. 쏠쏠한 지적 자극을 주는 글도 들어 있는데, <고려대학교 교가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교가의 가사와 악곡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어 고대인조차 미처 생각지 못한 교가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준다.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의 조합이 이루어낸 교가에 대해 저자는 교가로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당시 신진 작곡가였던 윤이상에게 작곡 의뢰한 당시 사람들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할밖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부르기 쉽고 오래 기억되기까지 하기에 학교의 많은 구성원이 집단으로 부르는 교가로선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208, 고려대학교 교가의 문학성과 음악성)

 

건축학적 분석과 예찬으로 이어지는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나의 백석 연구>는 박동진 건축가가 설계한 도서관이 근대 건축의 뛰어난 작품임을 설명하고, 자신이 시인 백석을 연구함에 있어 도서관 소장 희귀 도서에서 큰 도움을 받아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백석 시집 원본을 찾기 위한 노력 등과 같은 연구 비화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는 사범대학장과 교육대학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사범대 건물인 운초우선교육관 미화를 위해 애쓰던 활동과, 미당 서정주의 시 <동천>에서 영감을 얻어 조명등을 설치한 일을 마지막으로 기술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당시에는 다들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사라지면 아무도 당시 일을 알지 못하게 된다. 기록의 중요성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 책은 고려대 학생이었던 저자가 고려대 교수가 되어 평생을 바쳐온 고려대를 정년퇴임을 하면서 고려대에게 바친 헌서다.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고, 특정된 단편적 추억에 지나지 않다고 깎아내릴 수 있을 수 있다. 달리 보면 좁게는 고려대 일개 대학의 대학 생활의 잡사이면서 넓게는 국내 대학의 전반적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개인과 대학, 나아가 사회 전반의 풍물 변천을 조망할 수 있는 통사로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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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리의 사람들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3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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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존 르 카레를 알게 된 내가 다시금 그의 여러 소설 중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역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에 소개되어서다. 이른바 카를라 삼부작의 마지막 소설로 굳이 앞의 유명한 작품들을 제쳐놓고 굳이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였다.

 

르 카레의 연관 검색어인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가 등장하는 사실상 마지막 작품으로 작가는 처음부터 늙은 스파이의 레퀴엠”(P.454)으로 기획하였다고 밝힌다. 왕년에 명성을 날리던 그러나 지금은 은퇴한 늙은 스파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일선에 다시 등장한 것은 오랜 공작원인 늙은 블라디미르 장군의 살해 때문이다. 블라디미르의 살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맞닥뜨린 것은 소련의 스파이 대부 카를라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 블라디미르는 그 증거를 확보하고 스마일리에게 알리려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제 알 수 있었다. 간신히 문턱을 넘어선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역경을 헤쳐 나온 인생 말기에, 우천으로 순연된 삶의 경기장으로 돌아가 마침내 끝을 맺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P.171)

 

이로써 양 진영의 두 늙은 스파이 대부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해졌고, 물론 이 소설은 주인공 스마일리의 관점에서 서사가 전개된다. 시리즈의 앞선 작품을 언급하거나 암시하는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하기에 해당 소설을 읽었다면 이 작품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모르더라도 전반적 이해에 곤란하지는 않다. 카를라가 스마일리의 맞수라는 것. 카를라의 공작으로 영국 정보부는 크나큰 위기에 처하였고, 스마일리의 활약으로 이중 스파이를 제거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빌 헤이든이 스마일리의 아내를 유혹하여 가정생활에 파탄을 나게 만들었다는 점이 사적인 영역에서 스마일리가 카를라를 결코 잊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이유였다.

 

먼저 읽은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르 카레의 글쓰기 방식은 사건의 외적인 기술, 행위의 직접적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스마일리는 행동파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 문건의 조사, 무엇보다 자신의 직관으로 제반 요소를 종합하여 번득이는 통찰을 내놓는다. 독자로서는 그저 스마일리가 준비하고 마련한 조치를 통해 사후에야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추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뒤늦게 무릎을 치며 탄복한다면 르 카레의 작품에 무한한 감동과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소설책을 덮는 게 서로 간에 유익하다. 나로 말하자면 대체로 흥미로운 편이지만 흠뻑 빠져들 정도의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아냐, 카를라는 불사의 존재가 아니야. 그저 미친놈일 뿐이라고. 언제가 그자의 종말을 위해 뭐든 해야 한다면 이번엔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겠어.” (P.296)

 

적수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인간의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껏 스마일리가 죽어라 추적했던 야수도 광인도 로봇도 아니었다. 그도 분명한 인간이었다. 스마일리가 손을 조금만 내밀어도 절박한 사랑 따위에 무너지고 말 그런 인간...... (P.422)

 

카를라는 작중에서 어마어마한 존재로 기술된다. 스마일리의 평생의 맞수이자, 스마일리가 여태껏 단 한 번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였기에 어둠의 성배”(P.182)라고 고백하는 인물. 그런 대단한 인물을 낚기 위해 치밀한 공작, 즉 설계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내게는 그게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읽힌다. 스마일리가 카를라의 계략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언급했듯이 키로프 같은 인물을 대리인으로 쓰고, 오스트라코바에게 접근하는 미숙한 술책, 그리고리예프에게 알렉산드라를 돌보게 한 행동 따위는 전혀 스파이 마스터답지 않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허술하게 만들었을까. 숨겨진 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부성애? 자신의 공작을 절대로 서방에서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오만함? 그 또한 늙고 지쳐서 불가피하게 드러난 인간적 약점? 소련의 정세 변화로 위기감을 느껴 은근슬쩍 허술한 점을 노출하여 자신의 전향을 유도하게끔 하는 고도의 공작? 여기서는 어느 요인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내내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는 왜 여기서 늙은 스파이의 레퀴엠을 기획하였을까. 소설 초반부에서 블라디미르를 둘러싼 스마일리와 다른 사람의 평가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냉전 시대 후기로 넘어가면서 국제정세의 변화, 소련 망명 집단의 효용가치 절하로 스마일리는 구시대의 인물로 취급받는다. 스마일리가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렇다면 카를라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는 위대한 스파이 마스터 두 사람의 명예롭고도 공식적인 은퇴식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파리, 런던, 함부르크, 스위스 등지를 배경으로 전개되던 대단원의 무대가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베를린에서 펼쳐진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민낯을 드러낸 카를라의 모습을 보면서 당혹해하는 건 비단 그림말뿐만은 아닐 것이다. “왜소한 사내”, “늙고 지쳤지만 너무도 지혜로운 얼굴”(P.448). 악의 탈을 쓴 것처럼 간계와 술책,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른 냉혹한 스파이치고는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 늙은 스마일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스마일리가 자신의 조국과 신념을 위해 헌신한 것처럼 카를라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르 카레가 주장하듯이 냉전과 스파이 첩보는 동서 양 진영에 치명적인 도덕적 타락을 초래하였다. 상대방의 음모와 공작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도 불가피하게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조치와 공작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 그것이 국가 안보와 국민 평화를 위해 필요악으로 용납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영국 정보부뿐만 아니라 그의 맞수였던 카를라 포함 적국의 스파이들 또한 같은 부류의 처지에 놓인 존재임을 역설한 셈이다. 그리고 스마일리와 카를라는 닮은꼴이기에 작가는 카를라를 광포한 악인으로 묘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밤새도록 거의 미동도 않은 채 자료를 읽었다. 카를라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까지 함께. 그러다 보니 때때로 둘의 삶이 서로를 보완하는 듯하고, 또한 똑같은 원인의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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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민 & 함신익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 브람스: 교향곡 4


1. 음반정보

- 레이블: VISION Classics

- 음반번호: N/A

- 수록시간: 71:28

 

2. 연주자

- 피아노 : 이형민 (Hyung-Min Lee)

- 지휘 : 함신익 (Shinik Hahm)

- 연주 : Polish National Symphony Orchestra

 

3. 녹음

1) 녹음일자: 1997/03/18-20

2) 녹음장소: Concert Hall of the Polish Radio in Katowice, Poland

 

4. 프로그램

    Mozart : Piano Concerto No.20 K 466 In D Minor

01. Allegro (13:40)

02. Romanze (9:33)

03. Allegro assai (6:42)

    Brahms : Symphony No.4 in E Minor Op.98

04. Allegro con brio (13:26)

05. Andante (11:05)

06. Poco Allegretto (6:33)

07. Allegro (10:29)

 

오랫동안 찾던 음반이다. 이형민의 예전 소개글에서 이 연주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전혀 접할 수가 없어 궁금하게 여겼다. 젊은 시절 연주다운 패기가 살짝 드러나는데 그것이 나쁘지 않다. 지휘자가 함신익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역시 함신익 소개글에서 이 녹음이 있음을 알았는데, 한 장의 음반에 두 사람의 연주가 함께 들어있을 줄이야.


[중고] 이형민, Shinik Hahm / Brahms : Symphony No.4, Mozart : Piano Concerto No.20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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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텟 케이(Quartet K) (1) -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2/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죽음과 소녀'

 

1. 음반정보

- 레이블: SONY Classical

- 음반번호: S80114C

- 수록시간: 68:57

 

2. 연주자

- 콰르텟 케이 (Quartet K)

  1 바이올린 : 임가진 (Kajin Lim)

  2 바이올린 : 김덕우 (Duck Woo Kim)

  비올라 : 이수민 (Soomin Lee)

  첼로 : 주연선 (Yeonsun Joo)

 

헤르만 헤세는 니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작품에 음악에 대한 사랑을 헌신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삶과 꿈의 괴리,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 문명사회의 비이성적 독재와 억압 같은 정신적, 물질적 문제가 음악적 숭고함과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다. 콰르텟 K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말년의 작품 <유리알 유희>에 등장하는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이름을 빌었다. 크네히트 역시 헤세가 만든 지적, 예술적으로 완성된 인격체이자 유토피아적 미래 지식인의 표상이다. 콰르텟 K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 현신한 헤세의 음악적 신념을 동경하고 그의 음악에 대한 헌신에 자극 받았다. 2013년 창단과 동시에 철학콘서트의 파트너로서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앙상블의 탄생과 철학콘서트의 동행은 이같이 운명처럼 시작됐다.

 

콰르텟 K는 서울시향의 바이올린 수석 임가진, 김덕우, 첼로 수석 주연선, 그리고 최고의 현대음악 단체인 독일 앙상블 모데른의 멤버로 활동한 비올라 이수민으로 구성되었다. 최고의 지성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이다. '사랑과 배려를 통한 조화로운 음악'을 모토로 한국을 대표할 최고의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 K의 역사가 시작됐다.

[내지에서...]

 

3. 녹음

1) 녹음일자: 2014/06/26-28

2) 녹음장소: Studio of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Seoul

 

4. 프로그램

    Mendelssohn, String Quartet No.2 in A minor Op.13

01. Adagio - Allegro vivace (8:01)

02. Adagio non lento (7:13)

03. Intermezzo. Allegretto con moto -Allegro di molto (5:11)

04. Presto - Adagio non lento (9:36)

    Schubert, 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810 "Death and the Maiden“

05. Allegro (11:11)

06. Andante con moto (14:31)

07. Scherzo. Allegro molto (3:47)

08. Presto (9:03)

 

콰르텟 K 또는 콰르텟 크네히트의 두 번째 음반이다. 상대적으로 귀한 국내 현악사중주단, 그것도 서울시향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연주 단체다. 슈베르트 곡이야 원체 유명하지만, 멘델스존의 작품이 내게는 의외로 숨은 명곡이다. 연주도 좋고, 녹음도 우수하다. 이들의 활동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게 안타깝다.


멘델스존 : 현악사중주 2번 / 슈베르트 :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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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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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를 통해 대중에게 오펜하이머의 이름이 비로소 각인되었다. 이전에는 일부에게 기껏해야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자 정도로만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그가 당대의 저명한 양자물리학자라는 사실도 알지 못하였다. 원자폭탄 개발 이후 핵 통제를 위해 활동하다 곤욕을 치른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전이다. 본문만 900면이고, 색인 등을 포함하면 1,000면을 넘긴다. 빽빽한 조판을 고려하면 상당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 책은 오펜하이머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사망하기까지 그의 개인, 가족생활, 학자로서, 행정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 끝내 좌초하고 마는 삶 전부를 샅샅이 훑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꼭 이 정도로 파헤칠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내밀한 삶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는데, 서문에서 저자들은 이미 이렇게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한 사람의 공적인 행동과 정책 결정 과정이 (오펜하이머의 경우에는 심지어 그의 과학 업적들마저도) 일생에 걸친 개인의 경험들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믿음으로 쓰인 극도로 개인적인 전기이다. (P.15)

 

우선 궁금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 만한 과학적 업적을 성취하였는가이다. 저자들은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기술한다. 오펜하이머의 뛰어난 재능은 그가 한 분야에 집중하는 걸 막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로스앨러모스 책임자를 맡지 않았다면 과학자로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기에 학문 연구에 집중하여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는 이론물리학계에 일파를 이룰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오펜하이머는 한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파고들 만한 참을성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결과 그가 새로운 분야의 문을 열어젖히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중요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P.150)

 

오펜하이머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성격상 결함이 온전히 메워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높은 자존심과 금욕적 성향, 무모할 정도의 반항심 내지 오만함, 캠프장 얼음 창고에 갇혔을 때 보였던 수동적 태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에게 엿보이는 성격이다. 케임브리지 시절 지도교수에게 독을 먹이려고 했던 행위는 그가 극단적 압박 상황에서 이성의 끈을 놓치는 성향의 출발점이다. 훗날 그가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청문회에서 보인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은 그의 성격적 결함이다.

 

그는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으나, 긴장만 하면 깊이 후회할 만한 말을 했고, 이는 그를 심각한 곤경에 빠뜨렸다. (P.506)

 

오펜하이머는 이제 자신에게는 끝까지 절차를 진행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금욕적이고 수동적인 반응이었다. (P.789)

 

사회적으로 명성 높은 인물의 가족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사례가 흔하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대목에 이르면 부부보다도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길 정도다. 과학 연구밖에 모르는 아빠, 가정을 꾸리는 일에 전혀 무관심한 엄마. 그곳에서 아이들이 올바로 자라기를 기대한다면 과욕이 아니겠는가. 두 자식의 삶이 훗날 불행으로 점철된 것은 외부적 요인을 참작하더라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로스앨러모스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진력한 행위는 극단적 반핵주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납득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이 개발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폭탄 개발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승전을 바라는 처지에서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나치 독일의 개발과 실험을 방해하는 공작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달라졌을 수 있었다. 요는 개발 자체는 당시 전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였다는 점이다.

 

다만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 독일은 이미 항복하였고, 일본은 조만간 패망이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목적을 위해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핵폭탄 기술을 독점하여 그것으로 국제정치에서 힘의 우위를 발휘하려 한 선택에서 이론이 생긴다. 오펜하이머 역시 이 점에서 정부 관료들과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라비와 오펜하이머는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제 원자력 기구를 제안했고, 그것이 폭탄과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P.518)

 

허울 좋은 동맹관계를 벗어던지고 냉전으로 돌입하는 시점에서 핵무기 기술을 공개하여 누구도 독점하지 못 하게 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은 순진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조치다. 오늘날 핵확산을 강조하는 목소리의 원류가 보어와 오펜하이머에게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정부 관계자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주장이었고, 매카시즘과 정치 역학이 결부하여 원자폭탄의 아버지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키는 공작을 펴게 하였다.

 

오펜하이머의 정치적 편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1930년대에 미국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좌파의 편에 서기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P.245)

 

매카시즘 광풍에서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인지가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저자들이 속속들이 밝혀낸 자료에 따르면 비교적 젊은 시절 그가 공산주의에 경도된 건 사실이다. 어쩌면 당시에 지식인치고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두거나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하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정도다. 오펜하이머 역시 대공황의 참담함에 연구실 밖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원자폭탄 개발 책임자로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계속해서 의심과 감찰과 도청의 대상이 된다. 그에게 과연 참다운 의미에서 개인적 삶이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시 상황에서조차 통과되었던 그의 이력과 사상이 새삼 1950년대 다시금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어처구니없지만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까 회의적이다. 조금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좌파, 빨갱이 같은 색깔 논쟁을 전개하며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념으로 시비를 걸고는 하지 않았던가.

 

그가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이주하는 건 애국심 차원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박해받는 상황에서 청문회의 그 모든 모욕을 오롯이 감수했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오펜하이머 망신 주기를 목적으로 하는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절차와 자료로 도저히 정당한 항변이 불가능하다면 아인슈타인의 조언처럼 차라리 과감하게 청문회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뛰쳐나올 수 있었다면 어떠하였을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부인당하고 살갗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무력하게 감내하는 한 마리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오히려 부당한 피해자로서 동정심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온갖 수모와 치욕을 다 겪고 난 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재판과 그레이 위원회의 평결을 둘러싼 소동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오펜하이머의 유명세를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만 알려져 있던 그는 이제 박해받는 과학자로 갈릴레오와 같은 반열에서 추앙받게 되었다. (P.826)

 

로스앨러모스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한 고등연구소장직도 끝내 내놓고 야인생활을 하게 된 그에게 남는 건 무엇이었을까? 야망이 남다르게 강렬했던 그가 타의에 의해 하차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과 아내, 자식들의 정상적 삶은 이미 불가능해진 셈이다. 그의 급격한 건강 악화는 커다란 실의와 지독한 흡연의 절묘한 콜라보의 결과다.

 

국제적 핵 통제를 주창한 그의 노력은 무산되고 미소 강대국의 무한 군비 경쟁이 냉전 시대를 특징 짓게 되었으며, 원자폭탄은 이제 강대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그토록 반대했던 슈퍼 폭탄, 즉 수소폭탄도 결국 원자폭탄의 기술적 우위가 사라지자 군사적 목적에서 추진되었으니 그가 예언했던 것처럼 인류는 인류의 멸망을 순식간에 초래할 위험을 침대 밑에 깔고 누워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한 시대에 굵직한 선을 그은 한 과학자의 삶을 통해 과학기술 개발과 인류의 진보, 개인과 정부의 관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파렴치한 공작 전개 등의 작태를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냉전 시대를 관통하여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펜하이머라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신화 속 거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을 겪게 되었지만 그로써 그의 이름은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100년간 끊임없이 생겨날 무책임한 정부들과 새로운 기술적 발견에 맞서, 누군가 우리를 핵무기로 기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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