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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평점 :
<수록 작품>
세라 오언 주잇 - 백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 뉴잉글랜드 수녀
샬럿 퍼킨스 길먼 - 누런 벽지
케이트 쇼팽 -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케이트 쇼팽 - 폭풍우
케이트 쇼팽 -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윌라 캐더 - 감상적이지 않은 토미
이디스 워턴 - 다른 두 사람
수전 글래스펠 - 여성 배심원단
버지니아 울프 - 벽의 자국
캐서린 맨스필드 - 작고한 대령의 딸들
엘런 글래스고 - 제3의 그림자 인물
조라 닐 허스턴 - 땀
앞서 읽은 책과 마찬가지로 영미권의 여성작가 단편 소설집이다. 먼저 책과 다른 점은 시기도 19세기와 20세기로 한정하였으며, 작품 선정 성향도 여성주의 색채를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윌라 캐더의 작품이 실려 있기에 이 책도 고르게 되었다. 수록 작품 중 <뉴잉글랜드 수녀>, <실크 스타킹 한 켤레>, <다른 두 사람>, <땀>은 이전 책과 중복이므로 따로 논하지 않는다. <작고한 대령의 딸들>도 이전 맨스필드 작품집에서 다루었기에 마찬가지로 언급하지 않는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성과의 만남, 교제, 그리고 결혼, 출산, 육아는 인생에서 중요한 통과의례 중 하나다. 성별에 따라서 실질적 비중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순서에 따라 수록 작품을 보면 주잇의 <백로>는 만남에 해당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골 소녀 실비아에게 멋진 청년이 다가왔다. 백로의 둥지를 알려 주면 돈은 물론, 넓은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생긴다. 무엇을 망설이랴, 그깟 새 한 마리뿐인데. 숲속의 키 큰 나무꼭대기에 힘겹게 올라간 실비아는 둥지 위치도 확인하였다. 이제 그에게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실비아는 입을 열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할까. 유달리 자연묘사가 아름다운 이 짧은 소설에서 작가는 이렇게 끝맺는다.
그녀가 놓친 보물이 무엇이든, 숲과 여름이여 기억해주렴! 이 외로운 시골 소녀에게 선물과 은혜를 가져다주고 너희들의 비밀을 말해주렴! (P.35)
캐더의 <감상적이지 않은 토미>와, 쇼팽의 <아카디아 무도회에서>는 교제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재로 한다. 캐더의 주인공은 당대 시각에서 보면 비전형적인 여성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신 구조를 지니고, 어지간한 남성은 물론 남자 친구인 제이 엘링턴보다도 지적인 측면에서는 뛰어나다. 가족을 떠나 홀로 대학에서 수업받는 길을 선택할 정도로 독립적이기도 하다. 친구인 제시가 제이 엘링턴을 매우 사랑하는 걸 보고 그녀에게 그를 양보하며, 그의 마음을 일깨운다. 확실히 그녀는 감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토미가 제이 엘링턴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요즘으로 치면 그녀는 비혼주의자에 가깝다. 작가가 토미의 외모를 좀 더 여성적으로 기술하였다면 설득력이 더 뛰어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토미는 꽃을 집어들고 잠시 입술을 깨문 채 서 있었다. 그러곤 꽃을 벽난로 안에 던져넣고 마른 어깨를 으쓱하더니 돌아섰다.
“멍청한 것들. 절반은 저녁에 뭐 먹나, 그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데. 아, 그런데도 왜 이렇게 좋은지!” (P.135)
연애와 결혼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흔히들 결혼은 현실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알세와 칼릭스타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부유한 농장주와 아름다운 마을 아가씨의 만남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질 거라는 섣부른 기대는 오산이다. 자존심 강한 클래리스가 마음을 굽히자마자 알세는 칼릭스타를 버리고 그녀에게 달려간다. 입에 발린 사랑의 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칼릭스타는 홧김에 보비노와 결혼 맹세를 한다. 어차피 누가 되었든 상관없는 일이니. 이렇게 작가는 사랑과 결혼의 엇갈림을 <아카디아 무도회에서>를 통해 보여준다.
한 시간 전에 칼릭스타의 귀에 입을 맞추며 실없는 소리를 속삭이던 사람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이제 칼릭스타는 먼 전설 같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위대한 현실은 그의 앞에 서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클래리스뿐이었다. (P.103-104)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결혼생활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결혼은 정말로 사랑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가, 사랑은 결코 흔들리거나 변함이 없는가, 애정 없는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수많은 예술작품과 TV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바로 결혼생활의 갈등과 파탄, 그리고 배신과 외도가 아니었던가. <폭풍우>를 보자. <아카디아 무도회에서>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인데, 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 폭풍우 치는 날에 우연히 알세와 칼릭스타는 단 둘이서 조우하게 된다. 그들이 결혼 후에도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을 거라고 오해할 독자를 위해 작가는 친절하게도 둘만 본 적은 이게 처음이라고 밝힌다. 마음속에 간직한 원망은 여전한 마음을 뜻하고, 원숙한 미모는 욕망을 자극한다. 두 사람의 열정은 폭풍우의 격렬함 속에서 한껏 불타오르는데. 결론은 다소 시니컬하다. 상투적인 권선징악은 없다.
그렇게 폭풍우는 지나갔고 모두가 행복했다. (P.113)
<누런 벽지>의 화자는 신경과민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 여름 별장 삼아 빌린 오래된 저택의 누런 벽지에 마음에 들지 않는 화자. 벽지의 누런 색깔과 무늬에 혐오감을 느끼며 자세히 관찰하는 화자.
도대체 벽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으니! (P.69)
그래서 내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거다. (P.75)
마침내 벽지 뒤에 숨어 있는 여자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화자. 그 여자가 언제 나와서 돌아다니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화자.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려서는 안 되기에 철저하게 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화자. 결말은 우울하다. 우리는 그녀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없다 태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결혼생활 도중 발생한 것인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우울증이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 온 지 급격히 악화하였다는 것이다. 남편이 화자의 의견대로 벽지를 뜯어고쳤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드디어 나왔어.” 내가 말했다. “당신과 제니가 기를 썼지만 말이야! 벽지를 거의 다 뜯어냈으니까 날 다시 저기에 집어넣지는 못할걸!” (P.85)
<여성 배심원단>은 앞서 읽은 책에서 수록한 작가의 <사소한 것들>과 내용을 공유한다. 단막극과 단편 소설로 형식을 달리한다. 전자는 사건의 여러 내용을 압축하여 대사로 표현하였기에 모호하고 추측에 의존하는 대목이 많다. 상징적이랄까 표현주의적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소설은 독자에게 훨씬 친절하다. 우리는 비로소 라이트 씨의 사망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라이트 부인의 이상한 태도도. 게다가 부부 사이 갈등의 골이 매우 깊었음을 텅 빈 새장과 죽은 새의 발견을 통해 슬며시 드러낸다. 이런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것들은 남자들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모든 결혼한 여성들은 누구나 괴로움을 안고 산다. 라이트 부인은 마음을 털고 함께할 이웃을 갖지 못하였다. 그것이 비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여성 배심원단으로서는 그녀의 유죄를 결코 인정하지 못하리라.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우리 모두 똑같은 일을 겪으며 사는데-조금씩 다를 뿐이지 사실 다 똑같잖아요! 그게 아니라면-당신과 내가 어떻게 이해를 하겠어요? 지금 알게 된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차렸겠어요?” (P.202)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목적으로 애정 없는 사기 결혼을 하였다면 그네들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까. 차라리 몰랐으면 다행일 텐데 남편의 속임수를 뒤늦게 알아차린 아내. 하지만 사회적으로 워낙에 매력과, 인품과 명성으로 자자한 인물인 탓에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수밖에, 게다가 남편이 의사가 아니던가. 아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꽤나 흥미진진한 소재감이 <제3의 그림자 인물>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광휘를 마주한 채 거기 선 나는 내가 이 집안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결정할 순간이 왔다는 사실을 온 직관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집에 있는 동안은 매러딕 부인 편에 서든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야 했다. (P.279)
야간 간호사로 의사 아내를 돌보게 된 화자가 아내가 제정신임을 알아차리고, 죽은 아이를 목격하게 된 까닭은 그녀가 아직 어리고 순수한 영혼을 지녀서였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파악한 진실과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권위와 체제에서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어린 의붓딸을 죽이고, 아내마저 정신병원에 수감하는 이중인격자 의사가 승리의 순간에 맞이하는 비극적 결말.
울프의 <벽의 자국>은 다른 수록작과 결을 달리한다. 독자는 화자가 여성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신상 정보를 알지 못한다. 심지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이 남자인지 확실치 않다. 문득 벽에 난 자국이 보인다. 그건 못 자국은 아닌 듯하다. 뭔가 튀어나온 듯한데, 단순히 벌어진 나무 틈새인가. 화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삶의 불가사의에 대해, 인류의 무지에 대해. 삶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지. 튀어나온 모습에서 무덤을 연상하기도 한다. 무덤 그리고 죽음. 나무 틈새로는 나무와 얽힌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두서없이 흘러간다. 행위와 사건보다 ‘의식의 흐름’이 중심이 되는, 역시 울프답다. 결말의 어처구니없음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해볼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 가서 보더라도 십중팔구 확실하게 콕 집어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결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아, 세상에! 삶은 어찌나 불가사의한지! 사고는 어찌나 불확실한지! 인류는 어찌나 무지한지! (P.210)
서두의 <책을 엮으며>에서 옮긴이는 여성과 여성성을 다루는 의의를 주장한다. 여성주의 담론이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많이 개선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 실린 19세기와 20세기 여성작가에게는 상전벽해의 수준일 것이다.
옮긴이가 주장하듯이 ‘여성성’이 “사회적.문화적 구조물”(P.7)이라는 논의는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담고 있지만, 과연 전적으로 생물학적 속성을 배제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남성성, 여성성 논의는 결국 우리가 태생적으로 남성 또는 여성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수컷과 암컷은 양성생식체에게 있어 불가결한 기능적 분화이다. 우리의 지향은 이 자연적 사실을 부인할 게 아니라 그 역할의 차이를 기능과 가치의 우월로 동일시하는 과거의 인식과 사회적 오류를 교정하는 데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