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양이라는 관점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그동안 평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을 교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께 가기 위해 우선 평등해야 한다. 과학은 교양이다. (P.14)

 

인문학에 관심을 지닌 이론물리학자가 쓴 교양 과학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의식은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의 바로 아래 문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속으로 뜨끔하다. 나조차도 제법 독서를 좋아함에도 감히 과학책을 읽어보겠다는 발칙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이 책도 순전히 나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읽어보도록 권유하기 위한 학교 추천도서의 하나라서 펼치게 된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왜 교양으로서 과학에 등한시하는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일 것이다. 소위 인문학은 첫째, 진입장벽이 낮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알면 극단적인 사례를 빼면 대부분 따라갈 수 있다. 둘째, 우리 주변의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다룬다. , 가족,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이해와 관계설정이 필수 불가결한 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관심도와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타인과 대화에 소외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확히 반대 사유가 과학에 적용된다. 첫째, 진입장벽이 높다. 수학적 지식을 기본으로 한다. 자연과 현상에 흥미를 갖고 다가서다가도 수학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학생에게 수학은 공포의 대상이며, 학업을 마친 성인들에게 수학은 학창 시절의 추억일 뿐이다. 둘째, 과학적 지식은 잘 알지 못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물론이려니와 저자가 전공하는 양자역학은 다른 세상 얘기다. 일상적 화제에 과학 관련 사안이 오르내리는 때는 사회적 이슈와 연관된 아주 드문 경우뿐이다.

 

그럼에도 과학 없이 우리가 살 수 없다는 점을 모두가 인정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휴대폰, 컴퓨터, TV, 전기, 가전제품은 물론 의류, 생활용품 등은 모두 과학기술의 혜택이다. 날씨를 예보하고 지진과 태풍을 예측하며,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행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근년 들어 전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는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과학기술이 비관적 미래를 가져올까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제대로 과학기술을 해야 한다. (P.59)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의 편익을 누리면서도 미래에 한 가닥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주제로 한 무수한 SF소설과 SF영화도 있다. 과학의 발전 끝에는 어떠한 미래가 있을까. 유토피아 아니면 디스토피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오는 의구심에 저자는 돌직구를 날린다.

 

저자의 이 책이 여타 과학자들의 것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순수한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데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과학적 사고와 과학 정신에 충실하지 못하다. 권위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P.127) 과학자로서는 사실을 은폐하고 사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방해하고 죄악시하는 불합리한 권위와 여론, 권력을 인정하지 못하리라. 세월호 참사, 국정원 부정선거 의혹, 부조리한 총장선거 등과 함께 국정 교과서의 폐해를 토로하는 저자의 심정이 절절하다.

 

과학에서 올바른 답은 많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으로부터 얻어진다. [......] 만약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정부가 결정하는 거라면, 우리는 지금도 천동설을 믿고 있을지 모른다. 노벨상은 이렇게 우리에게서 더 멀어져간다. (P.146)

 

저자가 언뜻 본령을 넘어서는 영역에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쏟는 이유는 그가 우주에 고립된 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 이전에 그는 인간이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과학 지상주의자가 되고 만다. 저자는 과학과 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변하지만 이의 해악도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자이기에 잘못될 가능성에 더욱 경각심을 지닐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경고한다.

 

과학적 지식 역시 독점되면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과학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과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시민사회는 그 중요한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P.166)

 

교양 과학서이므로 당연히 과학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누리게 되는데, 특히 저자의 전공인 양자역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고전물리학조차 낯선 빈약한 독자에게 최첨단 물리학 이론은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저자는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할 것인가에 많은 고민을 한 자취가 역력하다. 어조를 가볍고 편하게 사용한다든지, 중첩 상황은 짜장면 우주와 짜장 우주로 비유한다든지, 확률론적 해석을 동전 던지기로 예시하는 등이다.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깊숙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지는 않지만, 양자역학이 발견한 낯설고도 당혹스러운 진실의 세계에 독자를 보다 가까이 이끄는 유인으로서는 충분하다. 카오스계와 프랙털에 대한 소개, 자유의지의 실재에 관한 뇌신경과학자의 관점 등도 흥미로운 주제다.

 

과학이라는 두 글자가 세상만사의 만능 치트키처럼 인식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확대되고 중요성이 커질수록 인간 자체는 점점 왜소해진다. 과학의 시대에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외면하지 않고 교양으로서 소양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자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 점에서 이와 같은 교양 과학서의 지속적 대중화 노력의 가치가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그 자체로 상상이기에 우리의 상상으로 지켜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비과학적 대상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없다면 인간은 불행해질 거다. (P.229-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벨린 - 전예원 세계 문학선 324 셰익스피어 전집 324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문학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소재 중 하나는 아내의 정절을 시험하는 남편의 이야기다. 최근에 읽은 <겨울 이야기>도 부인의 정조를 의심하는 남편에 관한 작품인 걸 보면, 여성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에 대한 남성 배우자의 경계심이 자고로 매우 강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굳건한 나머지 이를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자 하는 욕망도 마음 한구석에는 동일한 정서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머젠) 차마 들을 수가 없군요. 당신이 비록 주피터 신의 아들이라 해도 아무 쓸모 없는 자이니 내 남편의 마부도 될 자격이 없는 야비한 사람이야. 사람됨으로 따진다면 내 남편은 국왕이고 당신은 기껏해야 그분의 왕국의 처형장의 망나니의 부하가 알맞으며 그것도 너무나 과분해서 사람들의 시기를 살 거고 너무나 출세했다 해서 미움을 살 거구. (P.71, 23)

 

이 희곡에서 포스튜머스는 신분을 제외하면 공주 이머젠에 걸맞은 자격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로 소개된다. 자신의 남편에 대한 이머젠의 자부심도 매우 드높다. 그런 포스튜머스조차 야키모의 제안에 쉽사리 넘어갈 정도이니 탁월한 이성도, 고매한 품성도 이런 면에서는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믿음이 크면 배신감도 큰 법이랄까, 야키모의 교묘한 속임수에 빠진 포스튜머스는 배신한 아내를 비난하며 심지어 그녀를 죽이라는 명령조차 내린다. 이성과 연관된 사안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이렇게 불타오르기 쉽다.

 

왕이 왕비를 잃고 재혼하였는데, 새 왕비는 전남편의 아들을 데리고 온다. 왕을 사랑하지 않는 왕비, 자기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고 획책하는 왕비. 역시 생소한 글감은 아니다. 독자의 시각에서는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악인을 사랑하고 선인을 박대하는 왕이 답답하겠지만, 새 왕비에 홀딱 빠진 왕은 이미 귀먹고 눈먼 존재이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사건이 뒤얽혀 진행한다. 포스튜머스와 이머젠, 클로텐의 결혼과 증오에 관한 것과, 벨라리어스와 두 아들- 사실은 두 왕자 -이 웨일즈 산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브리튼 왕국과 로마제국 사이의 갈등과 전쟁. 각각 진행되던 사건은 서서히 응축되고 양국 사이의 전쟁을 계기로 합쳐져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고, 해묵은 은원이 세상에 드러난다.

 

(포스튜머스) 난 어차피 죽어야 하는 사람이니, 어느 편에서든지 숨을 거두기는 매한가지. 이 이상 더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죽고 싶으니, 이머젠을 위해서도 말이다. (P.160, 53)

 

아내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린 포스튜머스는 전쟁에 참가하여 용맹을 떨치나 그는 다만 스스로 죽기를 원할 뿐이다. 이때 그의 선조 유령이 나타나 주피터 신을 비난하고 하소연하는 장면은 뜨악하지만, 이 모든 게 훗날의 은총을 위한 시련이라는 신의 말을 통해 장차 기쁨이 다가올 것이라는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벨라리어스를 충신으로 평가해야 할지 애매하다. 그가 제아무리 왕의 처분에 분개하였더라도 왕자 둘을 유괴한 행동은 분명 신하의 도리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왕자 둘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점과, 대 로마 전쟁에서 두 아들과 참전하여 위기에 빠진 왕과 브리튼을 구원한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이 양립한다. 궁금하다, 전쟁이 없었다면 벨라리어스는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려고 했을지 어떨지.

 

주인공은 아니지만 피사니오의 충성과 사리분별은 돋보인다. 왕비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이머젠의 곁을 꿋꿋이 지키며, 분노에 이성을 잃은 포스튜머스의 명령에 침착하게 대응한다. 위기에 빠진 이머젠에게는 남장을 하고 궁궐을 떠나라고 조언하는 등 단순한 하인 이상의 소임을 수행하지만, 오해를 받아 이머젠의 비난을 받고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그의 존재감은 흔적조차 없다. 그야말로 이 작품의 이름 없는 영웅이다.

 

<심벨린>에서 이머젠은 영특하면서 매우 지혜로우며 분결같은 고운 심성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 그녀의 사랑은 줄리엣처럼 서정적은 아니지만 적극적이며 정결하며 그녀의 숨결은 이사벨 못지 않게 지순하게 묘사되어 있어 감동의 진폭을 넓혀주게 된다. (P.202)

 

이머젠 공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허울과 반대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민 출신의 포스튜머스를 남편으로 선택한 혜안과 용기. 왕비와 클로텐의 간사한 욕심을 간파한 현명함. 남편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흔들림 없는 믿음. 야키모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꿋꿋한 지조. 남편 가까이 찾아가기 위하여 남장을 하고 낯선 세상에 뛰어드는 대담함 등 통상적인 여성상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면모의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이머젠) , 어서 가자. 생각해야 할 일이 아직 많아, 하지만 어떻게 하든 뚫고 나가 봐야돼. 군인의 기개를 가지고 왕자다운 용기를 발휘해 끝까지 나가 보겠다. , 어서 가자구. (P.105, 34)

 

이 작품은 마지막 장에서 모든 고난과 갈등, 비밀이 해결되면서 등장인물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비희극이다. 심벨린은 모든 포로를 풀어주며, 포스튜머스는 야키모를 용서한다. 심벨린은 로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적장을 풀어주고 로마와 평화 관계를 제안한다. 기쁨, 용서, 평화로 넘쳐나는 대단원이다, 죽은 왕비와 클로텐을 제외하고는.

 

죽은 왕비와 클로텐은 극 중에서 그다지 동정받지 못할 악역이지만, 그들의 모든 언행을 완전히 무시하고 비판하는 건 곤란하다. 그들은 심벨린 왕을 부추겨 로마에 대한 조공을 끊도록 하였다. 로마의 지배에 대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한 건 동기의 선악을 떠나 왕과 귀족, 국민에게 잠재돼 있던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웠다.

 

(심벨린) 오만한 로마인이 조공을 강요하기 전까진 우리 브리튼은 자유로운 나라였다. 시저가 전세계를 다 집어삼킨다는 부푼 야망 때문에 부당하게도 그런 멍에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러나 용감무쌍하다고 자처하는 우리가 그 멍에에서 한사코 벗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P.87, 31)

 

사극을 제외한 셰익스피어의 전 희곡 작품 읽기를 끝낸다. 한숨 돌린 후 남은 사극에 도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귀족 친척 셰익스피어 전집 4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가장 최후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희곡이며, 같은 시기의 <헨리 8>와 더불어 그의 단독작이 아니라 존 플레처와의 공저이다.

 

셰익스피어 : 1, 21, 31-2, 51, 53-4

플레처 : 22-6, 33-6, 4, 52

 

작품해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이상과 같다. 합작이니만치 전체적 짜임새는 단독적인 만큼 유기적이지 않고 다소 느슨한 면이 있다. 특히 1막은 테세우스의 테베 정벌의 불가피성을 끌어내기 위한 배경인데, 나머지 막과의 유대감에서 현저히 괴리되어 있다. 제프리 초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고 하거나 작중 배경이 고대 테베와 아테네라는 점, 그리고 테세우스와 히폴리타가 <한여름 밤의 꿈>과 마찬가지로 등장한다는 점 등은 참고만 하면 될 뿐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테베의 크레온의 폭정을 테세우스가 징벌한다는 것도 아테네 정통론에 입각한 서사 전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팔라몬과 아사이트가 보이는 우정과 사랑의 갈등,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사랑의 강력함이자 동시에 바보스러움이다. 22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우정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사촌 간 혈연의 정과 우정을 갖춘 아름다운 모습이다. 크레온의 폭정에 실망하면서도 조국을 버릴 수 없어 아테네에 맞서 싸운 그들, 포로가 되어 아테네에 갇힌 처지가 차라리 죄악에 물든 테베보다도 낫다고 위안 삼는 그들은 건전한 사고와 윤리관을 지닌 인물들이기도 하다.

 

(팔라몬) 우리가 크레온의 궁정에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 죄가 정의이고, 높은 나리들의 미덕이라는 것이 / 욕망과 무지가 아닌가. 아사이트, 자애로운 신이 /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 남들과 같이 불운한 노인이 되어 저승길에 가고, 누가 / 서러워하지도 않고, 비문에는 대중의 저주가 새겨질 거다. (P.61, 22)

 

22장에서 포로가 된 두 사람이 에밀리아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고 만다. 그들은 더는 친구이자 동료가 아니라 사랑의 경쟁자가 된다, 에밀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사랑을 좇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단지 적에 불과하다. 적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존재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맹렬한 적대감을 분출하는 장면은 매우 낯설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혀 의외가 아니다.

 

(팔라몬)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나고, 또 그녀의 아름다움이 / 남자에게 인식된 것을 처음 이 눈으로 / 확인한 것도 나지. 만약 네가 그녀를 사랑하고, / 나의 소원을 망쳐버리려고 한다면, / 너는 배반자다, 아사이트, 비겁한 놈이다. / 너는 사랑할 권리 같은 건 없다, 우정, 혈통, / 그리고 우리 둘 사이의 모든 연결된 매듭을 포기하겠다, / 네가 그녈, 한번이라도 사랑한다면 말이다. (P.65-66, 22)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관심을 보이고 구애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자연법칙이다. 더구나 대상이 에밀리아처럼 빼어난 미모를 갖춘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랑의 감정과 행위는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다. 인류 문화가 역사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아울러 남녀 간의 사랑을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서 열렬히 찬미함은 이런 까닭이다. 극 중 대사에서도 모든 신을 지배하는 사랑의 여신을 우월성을 추앙하고 있어 이것의 당연성을 인정한다. 문제는 사랑의 호르몬의 부작용은 이것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이성과 도덕이 마비된다는 점이다. 사랑 외엔 모든 것이 맹목적으로 된다. 가족도, 친구도, 조국도. 에밀리아는 원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의미에서 팜므파탈이 되었다. 그녀는 극 중에서 남자에게 관심 없어 하는 인물인데 42장에서 갑작스레 팔라몬에 대한 열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대목은 낯설기 그지없다.

 

남녀 간의 사랑에는 애틋하고 안타까운 예도 있다. 쌍방의 감정이 서로를 향한다면 좋겠지만, 일방이 바라볼 때 다른 한쪽이 등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면 딱한 상황이 된다. 에밀리아는 어쨌든 팔라몬과 아사이트를 외면하지 않는다. 반면 팔라몬은 교도관의 딸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 그녀는 단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여성에 불과하다. 물론 신분상의 격차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팔라몬을 향한 지고한 사랑이 보답을 받지 못하자 그녀는 광기의 지배를 받고 교도관의 딸이 보여주는 대사나 행동 하나하나는 독자 또는 관객에게 그만큼의 아픔과 동정을 유발한다.

 

() 몹시 추워. 별들도 다 사라졌어, / 장식용 술 같이 보이던 작은 별까지 말이야. / 해님도 보았을 거야, 내 바보스런 꼴을. 팔라몬! / 아 아냐. 그이는 천국에 있어, 나는 지금 어디 있지? (P.106, 34)

 

이 작품은 통상 셰익스피어의 로맨스 희곡으로서 비희극으로 분류된다. <겨울 이야기>, <템페스트>, <페리클레스>, <심벨린>과 달리 이 작품은 비희극으로 평가하기 애매하다. 팔라몬을 중심으로 놓고 본다면 시련 끝에 에밀리아와 결혼하게 되므로 맞는다고 볼 수 있지만, 아사이트를 외면하기 어렵다. 아사이트는 역할과 비중 면에서 결코 팔라몬에 못지않은 공동 주인공이다. 팔라몬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에밀리아와의 결혼 권리를 쟁취한 이가 아사이트라는 점을 놓치지 말자. 그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덧없이 목숨을 잃고 자신의 권리를 친구에게 양보한다. 이것을 볼 때 과연 비희극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팔라몬) , 사촌! / 소망한 것을 얻으면, 소망한 것을 / 잃어야 하다니! 소중한 사랑을 / 잃지 않고서는 소중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니!

(아사이트의 유체가 옮겨져나간다)

(테세우스) 운명의 여신이 / 이렇게 교묘한 승부를 한 일은 없었다. 패자가 이기고, / 승자가 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승부에서 / 신들은 극히 공평하였다. (P.200, 54)

 

팔라몬과 테세우스의 대사는 서로 다른 감정과 해석을 보여준다. 팔라몬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반면 테세우스는 오히려 신이 공평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에밀리아를 먼저 본 사람이 팔라몬이라는 우연적 요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날 사랑의 주제에서 테세우스 같은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템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표제를 번역하지 않고 원본 그대로 적어 놓았지만, 작품 내용을 감안하면 폭풍우가 적합하다.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인하여 발생한 폭풍우이므로 계절적으로 자연 발생하는 태풍과는 구분이 필요하다.

 

작품 서두부터 거대한 폭풍우 장면이 압도한다. 배를 난파 지경까지 몰고 가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바꿔버리는 폭풍우의 위력. <페리클레스>에서도 폭풍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 작품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자연의 위력을 보여주는 반면 여기서는 푸로스퍼로가 마법으로 일으킨 폭풍우라는 면에서 인위적이다.

 

작품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우선 작품의 주제 의식이라고 할 용서와 화해다. 작품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표현되기에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주제 정신이다. 자신과 딸을 죽음의 극한 상황까지 내몰아간 동생 일당을 향해 푸로스퍼로는 복수를 감행하지 않고 용서의 손을 내민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마법의 위력으로 충분히 그들을 몰살시켰을 것임에도.

 

그가 폭풍우를 일으킨 동기도 그들을 섬으로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에서 푸로스퍼로는 치밀하게 계획하였다. 무엇을? 사랑하는 딸의 장래를. 외딴 섬에서 인간이라고는 자신과 딸밖에 없는 곳에서 그로서는 딸의 행복한 앞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훌륭한 남편감을 찾아주어야 할 텐데. 더불어 자신의 가슴에 맺힌 원한과 분노도 해소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미랜더와 퍼디넌드의 만남과 결혼 약속을 바라보는 푸로스퍼로의 눈길은 흐뭇하다.

 

(푸로스퍼로) 별일 없다. / 내가 한 일은 오로지 다 너를 위해서다. / 내 사랑하는 딸 너를 위해서야. (P.14, 12)

 

(미랜더) 저는 저분이 / 어떤 신으로만 보이네요. 자연계에서는 저렇게 고상한 존재를 / 저는 일찍이 본 일이 없으니까요.

(프로스퍼로) (방백) 나의 계획이 잘 진행되는가 보군. / 내가 의도한 대로. (P.35, 12)

 

(푸로스퍼로) (방백) 가장 훌륭한 두 사랑의 아름다운 만남이로다! / 하느님이여, 자라는 이들의 사랑 위에 / 은총을 부어주시옵소서! (P.75, 31)

 

대개 용서와 화해라 함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를 빈 후 피해자가 만사를 다 용서하고 덮는다는 방식과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 희곡에서 주된 가해자인 앤토니오는 자신의 형에게 미안한 심정을 가지고 용서를 비는가? 절대 아니다. 이 섬에서도 그는 시배스천을 부추겨 그의 형이자 나폴리 국왕인 알론조를 시해하도록 획책한다. 주저하는 시배스천을 향한 그의 대사는 그의 비인간성의 수준이 어디에 달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앤토니오) 아니, 양심이 어디에 있어요? 그것이 발꿈치에 입은 / 동상이라면 덧신이나 신어야겠지만, / 하지만 그러한 신적인 것이 내 가슴속에는 없습니다. / 설사 양심이 스무 개쯤 나와 밀라노 대공의 지위 사이에 / 끼여 있다고 해도 난 그것들을 얼어붙거나 녹아버리도록 하여 /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소! (P.57, 21)

 

신성한 정의의 법칙에 따른다면 앤토니오는 엄벌에 처해지는 게 맞겠지만, 푸로스퍼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알론조, 시배스천, 앤토니오 일행을 용서한다. 심지어 자신의 힘의 원천인 마법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무조건적인 용서는 작품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개인적 차원을 초월한, 종교적 차원- 여기서는 기독교 의 것이다. 푸로스퍼로가 마법을 포기하는 대목을 두고 여러 추측이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푸로스퍼로와 미랜더가 문명사회로 복귀함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마법은 기독교 세계에서 허용하는 게 아니므로 푸로스퍼로와 미랜더가 외딴 섬에서 문명사회로 복귀하려면 지배적 사회 가치를 수용해야 함은 당연하다.

 

인간이 정신과 육체라는 불가분의 두 가지 요소로 된 개체라고 할 때, 에어리얼과 캘리밴은 바로 인간의 이 두 요소인 것이다. 영혼, 사랑 등 천사적인 면을 상징하는 에어리얼은 곧 인간의 정신이요, 미랜더를 능욕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음으로써 육욕과 같은 동물적인 면을 상징하는 캘리밴은 곧 인간의 육신인 것이다. (P.146)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정령 또는 요정이 등장하여 주도적 역할을 맡는 사례는 <한여름 밤의 꿈> 정도에 불과하다. 에어리얼과 캘리밴이라는 피조물의 성격이 흥미롭다. 전자는 정령이며, 후자는 마녀의 자식으로 반인반수의 존재다. 작품 해설에서처럼 정신과 육체라는 관점에서 두 피조물의 언행을 파악해 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추가하자면 전혀 상반되는 존재임에도 에어리얼과 캘리밴은 공통점을 지닌다는 점이다. 양자는 모두 자유를 희구한다. 에어리얼이 푸로스퍼로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는 것은 그가 자신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에어리얼은 이 점을 푸로스퍼로에게 상기시키며, 마법사도 정령에게 반복적으로 주지시킨다.

 

(에어리얼) 저에게 약속하신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 그것이 아직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푸로스퍼로) ? 화가 났느냐? / 네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에어리얼) 저의 자유이옵니다. (P.25, 12)

 

캘리밴도 마찬가지다. 그의 처지에서 보면 섬은 원래 자신의 소유물이었다. 어느 날 푸로스퍼로가 와서 섬을 차지하고 그를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푸로스퍼로의 마법에도 굴하지 않고 저주를 퍼붓는 건 그만큼 그를 향한 적개심이 크다는 것이다. 캘리밴이 푸로스퍼로를 물리쳐줄 대안적 인물을 간구하는 건 그로서는 정당하다. 물론 에어리얼의 자유와 캘리밴의 자유는 내용 면에서 전혀 다르다.

 

(캘리밴) , , -캘린밴은 / 새 주인을 모셨다. 새 사람을 얻었다. / ! , 자유다! 자유다, 자유! (P.68, 22)

 

푸로스퍼로와 미랜더는 캘리밴을 싫어함에도 그를 버리지 못한다. 그들에게 그는 필요악이며, 그들의 생존을 위해 결여되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캘리밴의 음모를 지켜보면서 푸로스퍼로가 내뱉는 대사는 인간에 내재하는 근원적이며 길들일 수 없는 야성적 본성의 실상에 대한 탄식에 불과하다.

 

(푸로스퍼로) 악마, 천생 악마. 이놈의 본성에는 교육이 /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이놈에게 내가 자비심을 가지고 베푼 / 모든 수고가 다 헛되었다. 완전히 헛되었다. (P.103, 41)

 

이 작품에서 독자는 르네상스 정신이 물결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이성, 신성에 대한 인간성의 우위가 곧 르네상스라고 할 때, 푸로스퍼로의 모든 행위는 이성적 사고의 총합이다. 그가 감정과 본능에 휘둘렸다면 처절한 응징과 복수만이 행해졌겠지만 차분하고 고매한 이성의 힘으로 용서와 화해의 길을 선택하였다.

 

(푸로스퍼로) 비록 그자들이 나에게 저지른 큰 죄는 / 나의 골수에 사무치나, 나는 고매한 이성으로써 분노를 / 참고 있는 것이다. 더 귀한 행동은 복수에 있기보다는 / 용서의 미덕에 있는 것이다. (P.112, 51)

 

미랜더는 처음에 퍼디넌드를 신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아버지 외에 다른 인간을 접한 적이 없는 그녀에게 퍼디넌드처럼 젊고 고상한 남자는 단순한 아름다움 그 이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녀가 알론조 일행을 보았을 때 외침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생생하게 나타낸다. 르네상스는 인간 예찬에서 출발한다.

 

(미랜더) , 놀랍구나! / 훌륭한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도 많다니! /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하다니. / , 찬란한 신세계로다!

(푸로스퍼로) 너에게는 신세계이지. (P.120, 51)

 

<겨울 이야기> 독서평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인명과 지명의 번역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책을 보면서 이것이 작품이해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다시 떠올린다. 21장에서 대사 중에 미망인 다이도와 홀아비 이니애스가 인용되는데, 굳이 영어식 표기가 아니라 디도와 아에네이스라고 하면 관련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41장에서 등장하는 정령들이다. 주노, 시어리즈, 아이어리스가 그것인데, 로마의 신들이라고 한다. 주노는 그나마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데, 나머지 둘은 도대체 어떤 신인지 알기 어렵다. 별도 주석도 없다. 할 수 없이 영어 원문을 구해서 살펴보니 그제야 이해 가능하다. 시어리즈는 케레스(Ceres), 아이어리스는 이리스(Iris)의 영어식 표기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영어식에 매몰되어야 할지 회의적이다. 이 번역본을 읽는 독자가 누구인지, 셰익스피어가 신화를 인용한 까닭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 이야기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 외 옮김 / 달궁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겨울 이야기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레온테스가 헤르미오네와 폴릭세네스의 부정을 의심하여 왕비와 갓난 아기를 박대하는 일련의 사건은 겨울에 발생한다. 플로리젤과 페르디타가 사랑을 약속하고, 회개한 레온테스가 죽은 줄 알았던 왕비와 공주를 상봉하는 사건은 봄에 발생한다. 봄이라고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양털 깎기 축제로 계절을 알 수 있다.

 

시간적 지칭 외에 내용적 의미도 연관되어 있다. 레온테스의 의심을 불러일으킨 파장은 비극으로 치닫는데 겨울처럼 차갑고 가혹하다. 반면 레온테스가 잃어버린 가족과 재회하고, 양국의 왕자와 공주가 혼인하게 되는 내용은 화사한 봄날처럼 흐뭇하고 따뜻하다. 겨울에서 시작하여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내용적 변화가 표제에 녹아 있다. 구성으로서는 1막에서 3막까지가 겨울에 해당하고, 4막과 5막은 봄에 해당한다. 전자는 비극이며, 후자는 희극이다. 비극과 희극 전환의 매개는 41장에서 시간을 등장시켜 담당시킨다.

 

(시간)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유쾌하지 못했다면 양해해 주시고, 불쾌했던 것은 아니지만 재미가 좀 없었다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이 시간의 이름으로 감히 말씀드립니다. (P.116, 41)

 

배우자의 정절에 대한 의심은 문학의 오랜 제재 중 하나인데, 결혼 생활이 기대하는 상호 신뢰가 서약에도 불구하고 단단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굳건한 우정으로 맺어진 레온테스 왕과 폴릭세네스 왕의 경우에도 레온테스는 어느 순간 왕비와 친구의 부정을 의심하며, 의심은 억측과 망상에 힘입어 확신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누구의 말도, 어떤 사실도 의심을 없애지 못하며 모든 것들이 의심을 강화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자신의 의심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만 자신의 적일 뿐이다, 제거해야 마땅할.

 

(카밀로) 그분의 망상은 확신에서 온 것이라 그분의 육신이 살아 있는 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폴릭세네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온 것이오?

(카밀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P.54, 12)

 

레온테스의 망상은 아기 유기라는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명령으로 이어지고, 아폴론 신의 신탁마저도 진실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다가 신의 분노를 산 이후에 망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 거대한 권위를 지닌 신탁마저 부인할 정도로 거짓 확신에 깊이 빠진 레온테스와, 한편으로 신의 분노로 순식간에 망상을 벗어던진 레온테스의 두 가지 모습이 대비적이다.

 

희극으로 끝나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인물은 안티고누스다.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인 그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꿈속 왕비의 지시대로 보헤미아에 아기를 버린다. 그가 어쩔 수 없음을 왕비 영혼이 이해함에도 어쨌든 악역을 맡았으니 그는 맹수에 물어뜯겨 죽게 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만다. 그의 비극은 훗날 아내 파울리나의 운수와 상반되어 더욱 안타까울 지경이다.

 

파울리나는 작품 전개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녀는 시종일관 레온테스의 불합리한 처사를 비판하고, 왕비를 죽은 것처럼 하여 몰래 숨겨 보살핀다. 파울리나가 왕에게 퍼붓는 언사는 매우 혹독하여 조마조마할 지경이다. 대놓고 폭군이라고 지칭할 정도니. 그녀의 충성과 헌신의 대가는 보답을 받는 게 당연하리라. 카밀로처럼.

 

아우톨뤼코스와 시골 청년은 함께 작품 내 희극적 역할을 담당한다. 시종일관 어리숙하지만 순진한 시골 청년을 속여서 재물을 뜯어내는 도둑 아우툴뤼코스가 막판에는 처지가 뒤바뀌게 되어 착하게 살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은 관객과 독자에게 재미와 안도감을 전달한다.

 

플로리젤과 페르디타의 사랑에 관해서는 진실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띈다. 페르디타는 연인의 신분이 왕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 왕의 반대에 부닥치자 실망을 토로한다. 양치기의 딸과 왕자의 결합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플로리젤 또한 신분을 숨긴 채 결혼을 감행하려고 한다. 변장한 폴릭세네스가 부친의 승인을 받으라고 조언하지만 이를 거부한 대가는 부친의 분노다.

 

(페르디타) 왕자님, 이제 가 주시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지요. 부탁이오니, 왕자님, 귀한 몸을 소중히 보중하십시오. 저는 이제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P.154, 44)

 

그럼에도 사랑을 위해 신분을 기꺼이 포기한 플로리젤의 과감성과 순수한 사랑의 추구는 작품 내에서 빛을 발하며, 현대의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윤기는 유명한 번역가이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낯선 이름이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번역본도 없다. 왜 하필 이 희곡에 대해서만 번역본을 남겼는지 궁금하고, 그가 다른 작품의 번역본도 남겼으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및 문화와 관련된 작품이 무려 14편이나 된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 및 문화는 16, 7세기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했던 모양이다. (P.234)

 

부록의 풍부한 설명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놓고 그리스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 외에도 작품 중간에 고대의 사례를 언급한 예도 상당히 있다. 몰라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안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독서가 될 수 있으므로.

 

같은 맥락에서 번역자가 언급한 그리스와 로마의 인명과 지명에 대한 번역 문제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당대의 영국 독자를 위해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은 당연한데, 셰익스피어 번역가들이 국내 독자를 위해서도 여전히 영어식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국내 독자는 그게 누구와 무엇을 지칭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번역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원문을 신성시함인지 아니면 고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