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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의 소박한 삶]

 

예산조정팀에서 대외협력부로 발령받은 지 얼마후, 최병순여사 추모식에 갔었다. 막연히 학교에 돈을 많이 기부하신 양반이구나 하는 느낌외에는 없는 상태였다. 거기서 내가 여사의 약력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런지 며칠후 사무실 보관장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기부하시고 눈을 감으신지 얼마후에 발간된 책이다.

 

가끔씩 언론매체의 한 구석을 장식하는, 일생을 힘들에 모아온 재산을 노년에 학교나 자선기관에 기부하는 사람들의 훈훈한 미담이 있다. 대개는 나처럼 그냥 훌륭한 분이군하고 넘길 것이다. 정말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야 그 분들의 이력을 통하여 얼마나 고단한 삶을 겪어왔는지 추측할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최병순 할머니도 그런 분 가운데 하나다. 약력만 보아도 파란만장한 인생역경이 눈에 밟힌다. 초년 결혼 실패, 간첩죄로 장기 복역, 그리고 재혼 등. 80세를 넘긴 친자식 하나 없는 고독한 노인의 삶 중 소위 말하는 행복한 기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하였다. 여기서 금액의 다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1천억의 재력가에게 10억은 미미하지만, 10억이 전부인 사람에게 10억은 전재산이고, 그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훌훌 털어버렸다. 그것은 무소유의 삶이자 진정으로 돈을 쓸 줄 아는 모습이다. 종신에 임박해서야 비로소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후 짧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한 가운데 잔잔히 죽음을 맞이한다.

 

대개 이런 유형의 책들은 목적성이 뚜렷하다. 기부자의 삶을 아름답게 윤색하여 보여주기 일쑤다. 모든 자서전이 대개 그러하듯이. 여기도 할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각종 역경에 찬 인생이 할머니 개인의 구술에 의해 서술된 탓에 가끔은 미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려대학교에 기부하는 경위는 솔직히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유형의 책은 많이 권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홍보도 많이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제2, 제3의 최병순 할머니 같은 분들을 필요로 한다. 그 분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급급하지 않고 정말 사회가 필요로 하는데 기부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좀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졌다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약력의 연도와 본문 내용의 연도가 불일치하는 점이 옥의 티라고 하겠다. 

 

- 2003.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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