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브리트니의 공연을 본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끝까지 한자리에서 보았다는 점.

지금은 임신과 자포자기한 듯한 몸관리 덕분에 망가진 몸매를 보여주지만 이 당시만 해도 잘나가던 시절의 브리트니를 감상할 수 있다.

한때 마돈나의 뒤를 잇는 아이콘으로 간주되던 그녀는 이제 완전히 퇴색해 버렸다. 다시 재기하더라도 열광적인 데뷔초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하리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특이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등장하던 그녀의 히트곡 'Oops!... I Did It Again'이 준 강력한 인상을. 10대 소녀라고 하기엔 다소 성숙하지만 도발적이고 용감한 동작에서 어쩌면 오히려 신인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Baby One More Time'으로 이어지는 성공의 연속.

그때문일까. 그녀도 전형적인 성공한 미국 연예인의 가도를 따라갔던게. 단편적인 뉴스의 가십으로 부모와 갈등을 일으키고 독립을 한 후 곧바로 애인을 만들고 등등.

그녀의 인기절정의 한가운데 바로 라스베이거스 라이브 공연이 있었다. 대개 라이브공연하면 소극장이나 체육관 정도만을 생각했던 내게 라스베이거스의 공연장은 거대하다는 표현이 오히려 무색해졌다. 도대체 얼마만의 관중이 들이찼을까? 가장 상단 끝의 관중은 온전히 라이브의 느낌을 받을 수나 있을지.

그것은 한편의 거대한 쇼, 그 자체였다. 이에 비하면 국내의 라이브공연은 도대체가 학예회 수준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바로 전에 감상했던 것이 핑클이었기에 더욱 대비되는 듯. 라이브이기에 관중의 흥분과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많은 장치가 있었기에 더욱 쇼의 이미지가 강하다. 볼거리에 너무 치중한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몇명으로 구성된 그룹과는 달리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달랑 1명 즉, 솔로 가수다. 한 곡을 부른 후 다시 준비를 하는데 필요한 시간동안 다른 멤버들이 메꿔 줄 수 없는 단점, 즉 대기시간을 어떻게 프로그램할지가 중요한데, 여기서는 댄서들이 맹활약을 한다. 춤, 정말 잘 춘다. 현란한 춤동작을 보면 인간의 몸이 그렇게 유연하고 발랄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댄서들도 못지않게 잘 추지 않을까? 몸치인 나는 더욱 감탄스럽다.

특히나 브리트니는 섹시한 컨셉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공연에서도 그런 면을 간과할 리 없다. 그녀의 정신산란한 골반흔들기와 과감한 노출은 오디오 뿐만 아니라 비주얼에서도 상당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처럼 라이브공연 DVD도 출시된 것 아닌가. 가슴만 간신히 가린 채 무대를 사방으로 뛰어다니다가도 금세 청순한 포즈를 스크린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마지막 곡은 물을 흩뿌려서 비에 젖은 야릇한 복장으로 열광적으로 공연을 끝내는데 연출도 연출이지만, 그 엄청난 장비와 스케일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대국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대체로 봐서 젊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화끈한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영상물이란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불만사항 한가지. 아무리 미국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너무 미국적 냄새를 풍기는 것은 아닌지. 성조기 복장은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왜 갑자기 미군부대를 비쳐주는가 말이다. 브리트니의 스타일이 군인들에게는 무한한 지지를 받을 것임은 자명하지만 그래도 이게 군인대상 콘서트도 아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틀에 걸쳐 2장의 DVD를 봤다. 대단한 열성이라고 해야겠지. 누구에게나 풋풋한 꿈이란 있는 법. 어렸을때 위인전을 읽고 가슴벅찬 기억도 있지만, 라디오에서 또는 TV에서 비치는 멋진 배우나 가수의 모습에 가슴앓이를 한 것도 유쾌한 추억으로 남는다. 오히려 이런 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불쌍하다고 위로해 줘야 맞겠지.

어디 어릴때 뿐이랴. 이제 삼십을 훌쩍 넘긴 내가 핑클의 꾸준한 지지자라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본인들의 자평과도 같이 이젠 성숙한 여인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네 여성이지만. 데뷔 당시는 말그대로 요정이라는 별칭이 적합하였다. 그들의 깜찍하고 귀여움, 풋풋한 신선함, 앙증맞은 춤동작 등 한마디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내가 로리타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 8년째라고 한다, 가수입문한지. 이제는 핑클은 더이상 없다. 공식해체는 없었지만 그들이 후속앨범을 낼 전망은 미약하다. 효리와 주현은 솔로로 활동중이고, 유리는 완전히 연기자로 전업에 성공하였다. 이진만이 약간 어정쩡한 편이지만.

이진, 네 멤버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주었던 인물이다. 어찌 보면 넷중의 네번째라는 X맨의 평가가 틀리지는 않았던, 제일 약한 캐릭터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 어색함과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함이 맘에 다가왔다. 뭐라고 그럴까, 한눈에 매료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눈이 쏠리는 타입이라면 과찬일까.

하긴 각자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지닌 존재였다, 핑클은. 물론 효리가 가장 두드러졌다. 특히 솔로앨범을 내던 시절은 찌라시 연예가소식은 완전히 '섹시 효리'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었다. 물론 그녀가 섹시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한 방향으로 몰고가니 거부감이 생기기조차 한다.

넷중에서 옥주현이 내가 그닥 선호하는 유형은 아니다. 난 뭐랄까, 너무 튀고 나서는, 액션이 크고 요란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옥주현이 여기에 속한다. 더우기 다이어트 이후에 180도로 변모한 그녀를 난 아직도 브라운관에서 잘 구분하지 못한단. 본인으로서는 통통녀에 대한 열등감과 슬픔이 컸겠지만 달라진 그녀를 보면 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핑클 Forever'를 구입한 걸 보고 여자친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그따위 것을 왜 사냐 하는 얼굴이다. 평소의 내 행동으로서는 납득이 가지않는다나. 그래, 나도 때로는 주변경계를 허물고 속인이 되고 싶다. 자신은 가수 싸이나 다른 누구의 콘서트를 가고 싶다고 했으면서.

누구에게나 풋풋한 꿈은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아름다운 전유물이다. 타인의 비평이 필요치 않는. 그래서 내게 핑클의 이번 결산물은 의미가 있다. Belle Epoch 를 상기시키는 상징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나도 좋아하는 가수가 몇몇은 있다. 그 중에서도 자우림은 독특한 이미지로 시종일관 다가온다. 때로는 내가 자우림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보컬 김윤아를 더 좋아하는지 잘 모를 정도로 김윤아의 존재는 자우림에서 거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난 김윤아의 노래와 성음을 사랑한다.

 

KBS에서 The musician이라고 해서 음악콘서트 프로그램을 하는줄 처음 알았다. 우연히 자우림 콘서트를 중계해 준 영상물 두 편을 구해서 연속해서 집중 감상하였다. '트루 라이브'와 '모던락의 유혹'을. 역시 자우림이군! 하는 말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두 시간을 꼬박 앉아서 보는데도 지겹다거나 따분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맨처음 '헤이 헤이 헤이'라는 요상한 노래를 부르는 밴드의 존재를 알고는 재밌군 하며 지나쳤다. 더구나 락밴드라니..난 시끄러운 음악은 딱 질색이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심야의 음악프로그램인데, 윤도현이었나 이소라였는지 진행자가 자우림의 김윤아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빛나는 광채, 빤짝이를 한 눈 뿐만 아니라 도도한 표정의 얼굴에서도 그리고 자유자재로 뽑아올리는 목소리에도 온통 그만의 광채가 눈부셨다. 이렇게나 노래를 잘하는 가수도 있구나! 전혀 힘들이지 않고 노래함에도 전혀 가볍지 않다. 노래에 표정을 담아서 실어보낼줄 아는 가수.

 

곧 자우림의 라이브음반을 주문하였다.  

 

 

 

 

 

 

 

 

 

 

이게 현재까지 내가 소장한 유일한 자우림 음반이다. 자우림이 알면 섭섭할려나? 개인적으로 자우림은 라이브용 밴드라고 생각한다. 팬의 열광적 반응을 자양분으로 삼고 존재의 의의를 가지는.

 

자우림은 인기있는 밴드이지만 본령은 락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우림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움을 기대한다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한 도전과 반항, 이것이 락의 정신이고 자우림의 음악정신 아닐까? 김윤아의 보컬을 좋아해서 솔로 음반도 들어봤는데 너무 우울하고 어둡다. 밝은 김윤아의 곡은 언제쯤 들어볼 수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새'라는 곡이 불려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는 개인적으로 대학 은사이다. 대학원과는 달리 학부는 사제간의 관계가 미약하지만.그래서 아마도 나를 기억하시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상하관계에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최상층과 말단으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어쨌든 비서실을 통하여 간신히 한 권을 구하였다.

 

일종의 회갑 기념물로 얇은 책자를 내셨다는데, 벌써 연세가 접어드셨구나 생각하니 소회가 새롭다.

 

1부는 시편이다. 언제부터 시를 쓰셨는지, 그 중 '물방울'은 신작 가곡으로 작곡까지 이루어진 작품이다. 하긴 꼭 전문 시인만이 시를 써야 된다는 것은 지나친 엄숙주의의 발로다. 생활속에서 누구나 시적 감흥을 글로 표출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흥미가 없이는 이처럼 갈고 닦는 작업을 소화하기 어렵우니. 최근 건강이 안 좋으신 탓인'지 소재가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 어릴적 아려한 추억들,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상. 엄숙한 학자에게서 발견하는 뜻밖의 부드러움. 왠지 애틋함이 배어나온다.

 

2부는 '소설적 수필편'이라고 명명하였다. 선악과 이야기, 클론의 세계, 언문과 세종대왕 등 콩트에 가까운 분량의 수필을 소설 형식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소설인 듯 수필인 듯 분간하기 어려운 속에서도 이야기의 진행구조는 머리속에서 가다듬고 구성한 결과물이다.

 

3부는 '영화, 드라마 시청 소감'이다. 드라마 '아내'의 열렬한 시청자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콰이강의 다리', '에바와 페론' 등을 감상하며 느낀 소회를 토로하였다. 학자도 사람인 이상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대통령이라고 TV 드라마를 봐서는 안된다면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보더라도 항상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신의 관심분야와 접목시켜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만 하더라도 이를 수평적 리더십과 연결하여 관찰하고 있다.

 

4부는 약간의 전문성이 가미되어 정보격차와 위원회 운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실물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우위를 점하여 반목 갈등이 심화된다면 이러한 정보격차가 결국은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정부특별위원회가 성공하였던 요인 분석을 하고 있다. 위원회는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함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작년 가을에 발간된 책에서 작금의 '동북아위원회' 사태의 원인을 이해하게끔 단초를 제공하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한 개인의 비상업적, 신변잡기적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므로 다수의 관심을 끌 수는 없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몰입을 끌어당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저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의외의 놀람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완독에 실패한 소책자. 저자의 난해한 문체 or 역자의 난삽한 번역 or 독자의 무지?]

 

원래는 완독한 책만이 이곳에 올라올 자격을 부여받음이 타당하다. 하지만 가끔은 중도하차한 경우도 있어야 완독의 어려움과 기쁨을 상대적으로 실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 면에서 헤르더의 언어기원론은 최초의 완독 실패작이다. 물론 어떻게 해서든지 끝마칠 수는 있겠으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70여 페이지의 단촐한 구성에 자신만만하게 분수도 모르고 덤벼든 독자의 잘못이 물론 제일착이다. 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다. 해설에 따르면 ‘논의전개의 탁월함’과 ‘질풍노도적 문체’라 압권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첫 70여 페이지를 아무리 읽어도 이 두가지가 내게는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간혹 기발한 논리와 뛰어난 문학적 표현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논의전개를 따라가기엔 내용 파악이 매우 어렵다.

 

나는 진실로 묻고 싶다. 헤르더도 악명높은 독일 철학자답게 역시 난삽하고 현학적인 표현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원저의 아름답고 탁월함을 역자가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딱딱함과 난해함을 배가시키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결국은 역부족에 과감하게 도전한 나의 무모함과 무지탓인가.

 

애초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헤르더의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문고판을 읽다가 좀더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려고 집어들게 된 것이다.

 

나중에 혹시라도 헤르더의 사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도전하여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

 

- 2003.02.25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쿠자누스 2012-04-0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도 다른 번역자의 책이 있네요. 비교해보아도좋겠씁니다,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ㅣ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지은이), 조경식 (옮긴이) | 한길사 | 200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