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클래식
허제 지음 / 책과음악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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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동림 교수가 쓴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과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를 가지고 있다. 각권이 정가 5만원에 분량도 전자의 경우 1500여 면을 훌쩍 넘는다. 서가에 꽂아놓고만 있어도 흐뭇하며 가끔씩 들춰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물론 이런 유형의 저작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옛 시대의 거장들의 연주를 선호하고, 개인적 감상이 깊숙이 반영되어 있어 음반가이드로서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책을 음반가이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이 한 장의 명반’에 대한 수상록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싶다. 물론 비싼 돈 주고 수상록을 사보는 데 반대한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하다.

여하튼 허제의 이 책을 보며 안동림 교수의 저작을 떠올리는 건 대체로 스타일이 비슷한데 연유한다. 허제는 일찍이 <명반의 산책>과 개정판인 <명반의 산책 1001>로 정통적인 음반가이드북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가이드북에 충실하게 대중적 명곡과 대표음반 세 장씩을 소개하여 나 같은 입문자에게는 지금도 꽤나 도움이 되고 있다. 영문판인 <펭귄 가이드>나 <그라마폰 가이드>는 조금 어렵다.

<불후의 클래식>은 음반가이드북이 아니다. 오페라를 제외한 주요 작곡가의 대표 작품 당 단 하나의 음반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실 900여 면을 빽빽하게 채운 것은 음반 자체보다는 음반에 수록된 작곡가와 작품, 그리고 연주가와 연주에 얽힌 이야기다. 음반 선정 자체는 대체로 주관성과 객관성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명반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한 법이 아니겠는가?

저자가 추천하는 음반으로 그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그동안 간과하기 쉬웠던 악구의 미묘한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가이드북처럼 한번 쑥 스쳐지나가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그래서 나도 날마다 몇 장씩 읽다 보니 거의 두 달이나 소요되었다. 음악 감상과 병행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 책을 클래식 입문자에게 추천하기는 약간은 곤란하다. 소위 보편타당한 추천음반으로 어느 정도 귀가 익숙해져서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저자의 주관성에 함몰되지 않는다. 저자의 절대 명반은 내게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경우 저자는 헨릭 셰링을 추천하지만, 나의 가슴 속에는 요제프 시게티가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의 아름다움을 처음 깨달은 연주는 여기서 추천하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미국 데뷔 50주년 음반이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두 종류의 음반이 아니라 아쉬케나지가 유진 오먼디와 협연한 것이다.

또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경우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와 쿠르트 잔데를링의 멜로디야 음반을 듣고 나서 비로소 라흐마니노프 음악의 감상성과 상투성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즉 허제의 이 책은 한 음악애호가의 주관적 감상기로 참고도서로 유용하게 활용하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 책은 결정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가 49,000원의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만한 책이라면 내용뿐만 아니라 편집에도 보다 철저를 기해야 했음에도 다소 미흡하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곳곳에 수많은 오타를 발견할 수 있다. 연주와 녹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명반이 되는 것처럼(연주는 좋은데 녹음이 나쁘면 historic 이라는 단어가 추가된다) 내용과 편집이 잘 어우러져야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상업성이 취약한 1인 출판의 한계가 노정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데, 클래식 음악 감상에 대한 저자의 다년간의 몰입과 열정이 수록된 내용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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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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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브리스트 대산세계문학총서 83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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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세계문학총서 083.

1. 에피와 인스테텐의 결합

1) 에피
사랑보다 조건(지위, 신분) 선택 → 연령차 20년 이상!!!
부녀 같은 사이에 무슨 사랑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것인가?
애정의 결핍이 외도를 유발시키는 필요조건이 되었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처리에 대해서는 불만: 가혹함 → 한때의 실수

2) 인스테텐
정신적, 윤리적으로 엄격한 모범적 귀족 & 관료
에피와의 결혼은 에피의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대체재?
20년 이상 차이의 에피와 행복한 결혼생활 기대는 과욕, 잘못된 판단
조건으로 애정 결핍을 보전할 수 없음
유령의 집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7년 전의 지나간 사건에 대한 결투와 복수
→ 자신과 부인의 진정성이 아닌 사회적 계급의 틀에 얽매인 보수적 가치관 표출
→ 개인<사회(계급)
복수는 불가피했는가? (사랑하는 여인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는가의 문제)
진정한 용서가 불가능하다면, 복수와 결별 그리고 덮어둠가 외양적 평온 중 무엇이 바람직한가의 가치관 문제

2. 에피와 인스테텐의 비난 불필요성
그들은 19세기 사회적 관습의 지배를 받고 있음
당대의 여러 가정에 잠복해 있는 위험이 외면으로 표출된 것일 뿐

3. 여성주의 문학의 걸작 이유?
에피의 외도의 불가피성 해명???
에피에 대한 인스테텐/사회의 가혹한 처사 비난???
에피의 이혼 이후 여성으로서의 독자적 삶 개척???
19세기 당대의 귀족적 삶의 모순과 은폐에 대한 온유한 비판 (작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 내용 추가 
http://blog.aladin.co.kr/anaudeh/4080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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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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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폰타네의 소설연구
배중환 지음 /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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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저 <테오도르 폰타네 연구>가 아무래도 여성인물의 분석에 치중하고 있어 전체적인 작가와 작품 경향 파악에 한계가 노정되고 있으므로 보완의 기대로 이 책을 읽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반의 충족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책에 대해 말하자면,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본으로 다듬은 것이라 그다지 읽기에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겠다. 논문 특유의 딱딱하고 분석적인 어투는 결코 대중에게 친절하지 않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 비록 <얽힘과 설킴>과 <에피 브리스트>만을 다루고 있지만 - 폰타네의 문학관과 문학사적 의의를 알 수 있고, 두 작품을 비교적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폰타네가 어떤 점에서 탁월한 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게는 단순한 여성소설로 이해될 따름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서론에서 이 점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즉 19세기 근대 서양소설사의 주류는 사회소설인데 독일은 사회소설 대신에 괴테 이후 독일소설의 전통인 교양소설에 치중하였다. 따라서 유럽문학의 주류에서 소외되었는데 폰타네는 당대의 사회와 인간을 잘 묘사한 사회소설(P.7)을 써서 당대의 대가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소설의 끈을 주류와 연결시킨 큰 공로가 있는 셈이다.

폰타네는 소설을 “‘우리 자신이 속한 시대의 상’이며 또 소설의 과제를 ‘인생과 사회에 인간의 영역을 묘사하는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왜곡되지 않게 묘사함’”(P.9)으로 이해하였다. 이로써 폰타네는 독일에서 근대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두 편의 작품 분석은 각각 도입, 의미, 구조(구성, 화법, 라이트모티브)로 구성되며, 결론에 앞서 두 작품을 비교하고 있다. 의미 부분은 각각 순수한 사랑, 동일신분의 결혼, 만족없는 삶(이상 <얽힘과 설킴>), 부자연한 결혼, 탈선, 인습에 의한 희생, 체념과 화해(이상 <에피 브리스트>)으로 나누어 작품을 분석한다.

<얽힘과 설킴>은 번역본이 없어(저자의 각주에는 1979년에 번역본이 간행되었다고 하나 중고서점에서도 찾기가 어렵다) 읽어보지 못했으니 뭐라고 촌평할 여건도 안 되니 생략.

<에피 브리스트>도 이미 나름대로 짤막한 의견을 개진한 바 있으니 역시 생략. 다만 폰타네의 특성 중 배경의 효과에 대해서는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의 작중 배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전개를 전조하며, 결말을 예감하는 절대적 영향력을 등장인물에 무의식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한편 부록으로 또 다른 작품 <배나무 아래에서>를 분석하고 있는데, 추리소설적 기법이 사용되어 실제로 독서를 하게 되면 무척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 출판계에서 보다 많은 폰타네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희망한다. 달랑 두 편은 너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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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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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폰타네 연구
김영주 지음 / 삼영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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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네의 두 작품 <마틸데 뫼링>과 <에피 브리스트>를 읽어보았다. 20편에 가까운 장편 중 단지 두 편(번역본은 이게 전부이므로)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추론한다는 것이 섣부르지 않은가 의문스러웠다. 특히 <에피 브리스트>를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아울러 그가 과연 어느 정도의 문학사상 평가를 받는 작가인가도 궁금하였다.

이런저런 궁금증의 해소하기 위하여 작가론을 펼치게 되었는데, 김영주는 <에피 브리스트>의 번역자이기도 하니 잘 된 셈이다. 이 책이 1989편에 간행되었으므로 그는 20년 이상 테오도르 폰타네 연구에 헌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서는 초년 시절의 것이므로 현재의 저자 견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폰타네의 기본적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므로 충분하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폰타네의 주요한 여성소설 네 편(<얽힘과 섥힘>, <에피 브리스트>, <예니 트라이벨 부인>, <슈테힐린>)의 주인공을 통해 사회비판적 역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폰타네의 소설을 단순 여성소설로 간주하면 개인의 불행사로 이해하면 족하지만, 관습과 제도에 의하여 억눌린 소수자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사회비판적 의의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에피 브리스트>를 제외한 세 편은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므로 저자의 내용 소개와 분석에 따라 작품의 대강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가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얽힘과 섥힘>은 구신분제도의 모순을 비판하여 시민계급의 여성 레네와 귀족계급의 남성 보토는 사랑하면서도 신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각 자신들의 신분에 맞는 배우자를 고른다. <에피 브리스트>에서는 귀족사회를 억누르는 구 사회규범의 해악을 비판한다. 자연의 대변자 에피는 사회의 대변자 인스테텐과 결혼하나 가정을 지배하는 사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일탈하여 파멸한다. <예니 트라이벨 부인>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귀족계급에 필적하게 부상한 신흥 부르조아 사회의 이중적 또는 기만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있다. 예니는 고상하고 순수한 척 행동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가난한 시민계급 여성과 결혼하려 하자 그 위선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탐욕스러운 부르조아의 실체를 드러낸다. <슈테힐린>의 멜루지네는 신질서와 구질서의 균형을 추구하며 일방의 급격한 지배가 아닌 점진적 사회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노년의 폰타네의 사상과 가치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나마 <에피 브리스트>가 익숙한 작품이므로 저자의 견해와 내 자신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서 작품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폰타네의 작풍은 온유하고 체념적이다. 위의 작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들의 행동은 소극적이다. 그들은 사회의 모순에 반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를 포기하고 수용한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약한 존재라는 인식에서이다.
“폰타네 문학에서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현실 속에서 사랑을 체념하여 행복을 포기하거나, 삶을 희생당하는 비극적 운명을 겪는다.”(P.12~13)
"폰타네의 비영웅적인 주인공들이 사회와 개인의 불균등한 투쟁에서 그 싸움을 피하고 있다...“(P.54)
“폰타네는 인간의 내면이 전승되어 온 사회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기에는 그 스스로 유약함을 통찰하였기 때문이다.”(P.56)

에피와 인스테텐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서 저자 및 이전의 비평가들은 결혼을 통해서 에피에게 사회가 처음으로 출현하였음을 지적하며, 사회의 대변자 인스테텐과의 결합은 곧 파멸에의 첫걸음을 의미한다고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에피는 개인의 대변자이고 인스테텐은 사회의 대변자이므로 에피에게 구혼한 것은 에피에게 사회가 출현함을 의미한다.”(P.71)
“에피에게 있어서 인스테텐과의 결혼은 사회에 희생당하는 에피의 삶의 도정에서 처음으로 사회와 대면하게 된 사건인 것이다. 인스테텐의 출현 자체가 에피에게는 삶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될 사회에의 첫 걸음을 의미한다...”(P.76)

한마디로 인스테텐과 에피는 잘못된 만남이라는 것이다. 계속된 분석에서는 인스테텐은 가해자, 에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이 매우 농후하다. 여기서 지난세기 초부터 몰아닥친 전투적 페미니즘의 폐해를 찾게된다.

에피의 가해자는 사회 또는 계급이다. 인스테텐도 에피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피와 인스테텐의 삶은 당대의 억압적 사회규범에 의해 파멸당하였다. 그런데 분석에서는 인스테텐 개인의 가해자로 취급한다. 인스테텐의 사회의 대변자라는 당황스러운 논조이다.

인스테텐과 결혼을 선택한 것은 에피 자신의 선택이다. 물론 부모의 명시적 권유가 있었지만 강요라고 할 수는 없다. 에피는 사랑보다도 지위와 명예를 확보한 인스테텐과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연령차나 애정은 결혼에서 부차적일 수 있다는 것이 당대의 지배적 가치관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관구장 부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은 본인의 선택의 귀결이므로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적어도 사회성에 관한 한 인스테텐을 홀로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에피와 인스테텐은 모두 사회성을 공유하였으며, 당시 관습에서 볼 때 인스테텐은 모범적이며 충실한 남편상이다. 애정이 가로놓여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여러 평자들이 이 작품에 내재한 사회비판적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에피로 하여금 간통의 죄를 범하게 만든 것은 억압적 사회규범이므로 에피의 탈선은 사회비판의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탈선한 에피에게 비판자의 지위를 부여한다면 탈선하지 않는 유사한 처지의 대다수 부인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에피의 불행은 섣부른 결혼관과 당당한 자아관의 결핍이 빚어낸 작용의 산물일 뿐이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러한 결과를 유발한 구시대적 사회규범이 에피와 인스테텐을 돌아오지 못할 길로 안내하였다는 비판이 보다 적합하다.

뷜러스도르프와 인스테텐의 대화에서 인스테텐은 개인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우월성을 언급한다.
“우리는 단순히 개별적 인간이 아니죠. 우리는 전체에 속해 있어요. 우리는 항상 전체를 고려해야 해요. 우리는 철저히 전체에 의존하고 있어요...”(P.101)

집단가치의 무조건적 수용과 내면화. 이것의 무시무시한 결과가 무엇인지 독일역사, 아니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20세기 독일의 양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 배경, 그 근원은 이렇게 뿌리 깊다.

즉 폰타네는 <에피 브리스트>를 통해 억압적 사회규범이 개인의 가치관에 미치는 깊숙한 영향력과, 그것이 선량한 에피와 인스테텐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과 결말을 독자에게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자연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반추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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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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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데 뫼링 (구) 문지 스펙트럼 27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박의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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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폰타네와 그의 작품 선택은 솔직히 말하면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에 힘입은 바가 크다. 평소 신뢰하던 이 시리즈로 나온 <에피 브리스트>를 우연히 도서관에서 대출하면서 <마틸데 뫼링>도 곁들였다. 테오도르 폰타네의 이름은 테오도르 슈토름의 작품 해설을 읽으며 처음 들었는데, 초기에는 문학평론을 많이 하였음을 약력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작가들은 창작력이 저하되고 과거의 명성에 의지하게 되는 시기인 나이 육십에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에 뛰어든 폰타네. 그 후 그는 평균 일년에 한 권씩의 무서운 속도로 연이어 소설을 발표한다.

이 작품 <마틸데 뫼링>은 작가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출간된 이른바 유작이다. 비교적 경장편에 가까운 분량이므로 두툼한 <에피 브리스트>에 앞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표제는 작중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틸데 뫼링이란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이 작품의 키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미망인의 딸로 방 하나를 하숙하여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집안 형편. 지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외모 등 여성적 매력은 부족한 아가씨. 그녀가 입신양명을 꿈꿀 수 있는 방법은 시집을 잘 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으나 형편 상 그럴듯한 집안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숙생이 국가고시 지망생인 후고 그로스만을 선택하고 우연한 계기에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여기서 양자 간에 결혼의 진정한 전제인 사랑이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남자는 감사와 배려의 마음에서 여자는 팔자를 고치려는 의도가 결합한 것이다.

남편을 통해 대리 출세를 도모하는 마틸데.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용의주도하게 후고를 독려한다. 안이한 후고는 마틸데의 부드러운 압력에 떠밀려 고시를 통과하고 소도시 시장에 응모하며, 성공적인 시장 활동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심의 본의와는 다른 사회활동은 그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건강을 해쳐 마침내 병사하게 된다.

마틸데는 보기 드문 유형의 인물 설정이다. 사려 깊고 지적으로 뛰어난 그녀는 악인의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가 후고를 이끄는 것도 강압이 아닌 이해와 설득을 통해서다. 즉 후고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길을 따랐다.

그럼에도 독자가 주인공에게 공감과 애정을 품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용의주도함이 비인간적인 면모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후고는 마틸데의 목적 성취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던 게 아닐까? 작가의 태도 또한 독자와 그리 다르지 않다.

후고의 죽음 이후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마틸데는 재혼을 거부하고 여교사로 독립된 삶을 계획한다. 마틸데가 굳이 재혼할 필요는 없으리라. 미망인 연금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므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그녀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리고 당대에 여성의 사회활동이 허용되었던 유일한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그나마 후고의 영향으로 그녀가 다소는 인간적 유연함을 가지게 되었음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마틸데 뫼링을 현대적 여성상으로 이해할지 아니면 도구적 인간관의 현현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다만 작가의 주인공에 대한 거리감과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이 작품이 당대 독자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웠을 것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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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24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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