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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사르트 산장 ㅣ 레인보우 북클럽 5
빌헬름 하우프 지음, 김희상 옮김, 박기종 그림 / 을파소 / 2009년 1월
평점 :
빌헬름 하우프와는 <카라반>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의 <교양계층의 자녀들을 위한 동화 연감> 중 일부이다. 문득 나머지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총 3편인데 <카라반>이 소개되었다면 다른 작품도 소개되지 않았을까 하여 검색하여 보니 적지 않은 책들의 목록이 죽 나온다. 구하던 <동화 연감>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하우프의 동화 몇 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 스님은 동화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글이다 보니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서려 있다. 동화를 거듭 읽다 보면 내 영혼도 순수해지지 않을까.
작가 소개를 통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빌헬름 하우프가 ‘근대 동화의 아버지’라 불린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동화 연감>의 진상이다. 제1권이 <카라반>이며, 제2권이 <알렉산드리아의 족장>, 제3권이 <슈페사르트 산장>이라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마음을 비운 선택이 당초 기대했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니 흥미로운 한편 흐뭇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리아의 족장>과 <슈페사르트 산장> 역시 액자소설의 틀을 지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족장>은 이집트를 배경으로 족장 알리 바누가 납치당한 아들을 찾기 위하여 노예들을 해방하면서 이야기를 한 편씩 하는 형식을 취한다. 반편 <슈페사르트 산장>은 독일의 슈페사르트 숲속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산장에서 하루 묵는 도중 도적떼의 습격을 막기 위하여 철야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3부작이 형식적 유사성을 보이고 있지만 액자와 그림의 유기적 조화와 구성이라는 관점에서 역시 후기작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족장>에는 ‘난쟁이코’, ‘아브넬, 아무것도 보지 못한 유대인’, ‘가난의 수호천사 슈테판’, ‘갓 구원 낸 머리’, ‘영국 청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맨 앞의 ‘족장 알리 바누’와 맨 뒤의 ‘알만소르 이야기’를 통해 수미를 맞추고 있다. 역자에 따르면 총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그림 동화 두 편을 수록하지 않았으며, ‘가난의 수호천사 슈테판’도 편역을 하였다. 수록 작품 중에서도 ‘가난의 수호천사 슈테판’과 ‘갓 구워 낸 머리’는 다른 작가의 작품이다.
<슈페사르트 산장>은 ‘사슴 금화 한 닢의 예언’, ‘차가운 심장’, ‘자이드의 운명’, ‘스텐폴의 동굴’로 비교적 긴 이야기 중심이다.
동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유사하다.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사회의 규범과 가치를 수용하여 성실한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 따라서 동화의 진정한 묘미는 교훈이 아니라 작품에 불어넣은 상상력의 정도에 달려 있다.
사실 하우프의 3부작은 명목상 동화로 분류되어 있지만, 이것이 과연 올바른 분류인지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에 따라서는 잔인하고 어두운 부분이 강렬하여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슈페사르트 산장>에 실린 이야기들이 특히 그러하다. 독자층으로는 어린이 보다는 청소년 수준이 보다 적합하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어른들도 역시 흥미롭게 읽겠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족장>에는 작가의 동화론(童話論)이 전개되어 있어 흥미롭다. 노인의 입을 빌려서 하우프는 동화의 매력을 상상의 날개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비상(P.91~92)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동화를 애들 장난쯤으로 바라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동화는 우리의 정서를 따스하게 보듬어 준다(P.199~200)는 것이다. 이어서 동화와 소설의 구분에 대하여 명확히 하고 있는데(P.200~205) 제법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어 이채롭기조차 하다.
빌헬름 하우프의 3부작은 일단 순수한 창작물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라비안 나이트> 등의 외국과 독일의 민담 및 설화를 각색하여 수록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하우프를 소위 ‘근대 동화의 아버지’로 평가하는 부분은 동화론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낱 흥밋거리가 아닌 진지한 대면을 동화와 나누고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