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수메르로 돌아왔다. 중세 페르시아 시인인 사아디의 잠언집 <내 귀에 들리는 사랑의 숲 이야기>를 먼저 읽었지만, 그래도 수메르가 손에 먼저 잡히는 것을 어이하랴.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음직하다. 적어도 문학사에서는 말이다.
 
이제 수메르어와 악카드어에서 직역한 번역본을 읽자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것은 뭐라고 할까, 마치 아무것도 덧칠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생얼을 바라보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생소하면서도 본연의 깨끗함에 마음이 끌린다.
 
1부는 이 서사시를 발견하게 된 경위를 서술하고 있으며, 2부가 본문에 해당한다. 3부와 4부는 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을 품고 있다. 나같이 사전에 수메르 신화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은 이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으나 단번에 덥석 이 책을 펼친 이에게는 이정도 친절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
 
최초의 영웅 서사시로서 ‘길가메쉬 서사시’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재론해야 입도 손가락도 아플 따름이다. 길가메쉬는 신과 인간의 자식으로서 그 존재 자체도 신화와 역사의 중간에 걸쳐 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신이 등장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길가메쉬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가 산지기 훔바바(후와와)와 하늘의 황소 구갈안나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는 속임수로 훔바바를 죽일 수 있었고 엔키두의 도움으로 황소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길가메쉬는 영원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인간의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을 다녀왔다. 인간으로서 영생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비록 길가메쉬는 실패했지만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길가메쉬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였다.
 
이 서사시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먼저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우정이다. 길가메쉬는 우루크의 왕으로 젊은 폭군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그런 길가메쉬가 힘에서 엔키두에 밀리면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그들의 우정으로 길가메쉬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런 엔키두는 단순한 친구 이상을 넘어서는 혈육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길가메쉬의 상실감은 컸으리라.
 
젊은 길가메쉬는 엔키두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인간의 회피할 수 없는 숙명과 그 처절한 엄숙함의 의미를 절감한다. 필사적인 영생 추구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 유일하게 영생을 얻은 선조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가는데 성공하나 귀환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선물로 구한 회춘의 식물도 뱀에게 뺏겨버린다. (여기서 뱀은 엔키의 현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엔키는 인간의 창조주이지만 영생을 주는 것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길가메쉬가 청춘을 회복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수천 년 전에 씌어진 옛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문체와 표현의 고졸함을 제외한다면 처절한 박진감과 치열함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길가메쉬에게 계속 주목하는 연유 또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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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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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2 - 개정판 시친의 지구연대기 1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권의 말미에서 문명을 창조한 네필림을 추적하면서 저자는 12번째 행성의 존재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2권은 바빌론의 유명한 창조의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 대한 독자적인 재해석이다. 저자는 이것이 신화적 관점이 아니라 천문학적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

마르둑과 티아마트의 대결을 12번째 행성과 사라진 행성 티아마트의 충돌로 이해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매우 커다란 공전주기를 지닌12번째 행성 마르둑이 화성과 목성 사이의 행성 티아마트와 충돌하여 티아마트는 반토막이 나고 만다. 윗부분은 궤도를 달리하여 지구가 되었고, 아랫부분은 산산조각이 나서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대가 되었다. 티아마트의 사령관이었던 킨구는 끝까지 티아마트 즉, 지구를 떠나지 않고 위성인 달로 전락하였다. 티아마트의 위성들은 부서져 혜성이 되었고 이때 전령이었던 토성의 위성 가가가 명왕성으로 승격시켰다.

12번째 행성인 마르둑은 이로써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다른 행성들의 궤도를 횡단하는 마르둑을 기념하기 위한 문자표기가 바로 십자가 표시였다. 십자가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형틀로서의 상징이 아닌 그 연원이 매우 깊은 우주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12번째 행성에 살던 네필림들은 지구와 가까워지는 시기를 이용하여 지구로 내려왔고 빙하기 기후 및 지형과 에너지원을 고려하여 메소포타미아에 기지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어 여러 도시를 건설하고 식민 활동을 벌였는데, 이런 실제 작업을 담당한 하급신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신들의 노동을 대체할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즉 동물보다 우수하여 명령과 지시를 이해하고, 노동을 감당할 수 있도록 호모 에렉투스를 기초로 자신들의 형상을 덧붙여 현생인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야훼가 자신이 창조해 낸 인류를 왜 대홍수를 일으켜 멸절시키려고 하였는지 사유는 분명하지 않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신들의 타락을 원인으로 한다. 인간의 수가 번식을 통하여 늘어나고 네필림들이 인간과 짝을 짓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간은 번성하고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네필림들은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퇴보하게 되었다고 판단한 최고신들은 대홍수가 밀어닥칠 것을 알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인류를 정리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홍수가 있었는지에 대해 저자는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기원전 일만 년 전후라고 추정한다. 12번째 행성이 지구와 가까워지면서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켰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상이 신화든 아니면 실제적 역사 아니면 완전한 허구라고 하든지 간에 매우 흥미진진하다. 과거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 <창세의 수호신>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단순히 흥밋거리로만 이해하였는데 이제 생각하니 시친이 수메르 신화에서 주장하는 것과 많은 점에서 공통되고 중첩됨을 깨닫게 된다. 다시 핸콕의 저작을 읽게 되면 보다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제카리아 시친의 주장이 어느 정도의 동의와 지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저자의 주장을 제시한 해석과 논리, 그리고 관련 근거를 가지고 뒤따라가면 틀림없이 저자의 의견에 찬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일방통행(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더 적절하리라)이 아닌가 싶은 우려가 든다. 모든 것이 12번째 행성과 네필림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해석 자체가 그쪽으로 치중될 가능성은 부인하지 못한다. 더 많은 논의와 검토를 거쳐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외로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저자가 새로이 내놓은 참신한 해석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엔키의 인간 창조, 바벨탑의 진실, 우투와 독수리의 의미 등 기존 수메르 신화와 구약성서를 재해석할 수 있는 각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만 해도 중대한 기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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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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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1 - 개정판 시친의 지구연대기 1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다시 수메르다. 이 책은 수메르 문명의 건설자는 외계에서 왔으며 그들이 온 곳은 태양계의 12번째 행성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게 웬 황당한 소설이냐고 어처구니없어 할 이들이 많을 것이며 사실 나도 기대 반 걱정 반의 심경으로 책장을 펼쳤다.
 
책의 전반부는 의외로 온건하다. 수메르 문명의 발견과 수수께끼를 소개하며, 메소포타미아 주변의 신화와 신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원전은 결국 수메르 신화임을 수렴하고 있다. 이어 4장에서는 수메르 신화에 대한 개요와 주요 신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다만 한 번이라도 수메르 신화를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내용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지만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은 낯선 용어와 내용, 그리고 간략한 분량으로 다소 뜬구름 잡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수메르 문명은 최초의 문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어떤 고대 문명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발전적이고 포괄적인 문명이었다. 그리고 이 문명이야말로 현재의 우리 문명이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P.85)
 
이어 저자는 수메르 문명이 “아주 갑작스럽고, 전혀 앞선 문명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인류의 진화 수준에 비추어 순전한 인류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지구 외부의 존재가 문명을 세웠다고 수메르 점토판의 서사시들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증거로써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수메르 서사시나 기독교의 성서를 본인이 제안한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면 모호하였거나 해석이 불가능하였던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일례로 바벨탑의 일화를 보자.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쉠)을 날리고자 쌓는 바벨탑에 대하여 신은 분노하여 서로의 말을 뒤섞어서 결국 탑을 못 쌓게 방해한다. 여기서 인간들이 단순히 이름을 날리고자 거대한 토목공사를 벌인다는 것과 또한 단순히 높은 탑을 쌓는다고 신이 화를 내는 연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기서 이름이라고 해석한 쉠을 비행물체로 해석한다. 즉 인간들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자 우주선 발사대를 건설하는데, 하늘을 나는 것은 오로지 신의 특권이기에 신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인간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였다가 실패한 사례인 것이다. (P.218-220)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가 신이 있는 하늘로 가기 위하여 우투 신을 찾아가서 자신의 쉠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전통적 해석대로라면 왜 이름을 세울 수 있게 요청하는지 요령부득이다. 하지만 하늘로 날아가기 위하여 우주선을 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P.226-232)
 
성서의 창세기에 네필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저자는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온 자들로 해석한다. 네필림은 “쉠의 사람들, 즉 로켓의 사람들”(P.250)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수메르 신화에서 12라는 숫자의 중요성과, 발견된 유물들에서 수메르인들이 12개의 천체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다양한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수메르에는 위대한 12명의 신들이 있고, 예수에게는 12제자에 있었으며, 1년은 12달로 이루어져 있는 등 십진법을 사용하는 문명권에서 성스러운 것을 숫자로 나타낼 때는 유독 12라는 숫자를 사용하는 연원이 태양계의 구성체가 태양과 달을 포함하여 12개라는 데서 나온 것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9개의 행성에 태양, 달을 계산에 넣더라도 숫자는 11에 그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수메르인들이 알고 있으나 현대의 우리가 찾지 못한 12번째 행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임을 밝히고 있다.
 
꽤나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죽 훑어보면 저자의 주장에 견강부회는 찾기 어렵다.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유도하고 있다. 하기사 저자는 약력에 따르면 당대의 수메르어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상당한 권위자이니 허구로 소설을 쓰지는 않으리라.

아직까지는 정상궤도를 아슬아슬하지만 잘 지켜주고 있다. 이제 다음 권에서 저자의 로켓이 어느 선까지 치솟을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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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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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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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로 그리스 로마 및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담한 선전포고를 감행한 저자는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와 이 책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로 보다 대중성을 강화한 수메르 신화의 각론을 펼친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내용은 몰라도 그래도 이름이나마 들어본 사람은 꽤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인안나와 두무지 신화는 소수 매니아를 제외한 대다수에게는 금시초문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바로 인안나와 두무지의 사랑과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인안나는 누구인가? 바로 신들의 우두머리 엔릴의 손녀이며, 달의 신 난나의 딸이고, 태양의 신 우투의 여동생이다. 그렇다면 두무지는 누구인가? 엔릴의 형이자 라이벌인 지혜의 신 엔키의 아들이다. 이 둘의 결합이야말로 수메르 신계에서 최고의 주목받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물며 비극적 결말로 치달았음이야.
 
그리스 신화에서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되었다가 제우스의 중재로 일 년의 절반은 저승에서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서 지내게 되었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올라온 동안에 곡식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지하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움츠러든다.
 
한편 이집트 신화에서는 오시리스가 이시스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세트에게 살해되어 몸이 산산조각 나는 참변을 겪는 전승이 있다. 이후 오시리스는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진다.
 
이렇게 신의 죽음과 부활을 지상의 것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유래를 저자는 수메르 신화에서 찾고 있다. 바로 인안나의 저승 여행이다.
인안나는 수메르 신화에서 다면적인 존재다. 보기 드문 여신으로서 그 역할도 훗날 아프로디테와 아테네를 합친 이상의 권능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인안나는 지혜의 신 창조주 엔키를 유혹하여 전능한 메를 확보하기조차 한다. 그런 인안나가 지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승의 자리마저 차지하기 위하여 언니 에레쉬키갈라가 다스리는 저승을 찾아간다. 그리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엔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되찾은 인안나는 자신의 남편 두무지의 희희낙락한 모습에 분개하여 저승사자에게 자신 대신 남편을 목숨을 넘겨버린다. 두무지와 인안나의 러브 스토리는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두무지의 절규와 애가로 점철된다. 신들조차 도망가지 못하는 저승사자의 냉혹함. 하여튼 저승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인안나가 이쉬타르로, 이어 다른 신의 이름을 빌려 각처에서 득세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인안나 신화에 대한 해설이다. 저자와 편집자 간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수메르 신화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신화의 난삽함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인안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곁가지 수메르 신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쓰고 있다. 이미 저자의 전작을 독파한 독자에게는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초심자에게는 유익하다.
 
수메르 문자와 단어에 대한 뜻풀이는 흥미롭지만 다소 전문적이라서 순수하게 신화에 흥미를 가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은 순전한 개인적 취향이므로 평가를 유보한다.
 
한편 인상적인 내용은 수메르 신화에서 숫자 일곱(7)의 의미에 관한 부분이다. 인안나가 저승을 통과할 때 일곱 개의 문을 지난 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숫자 일곱이 내포하는 의미인 대변화 또는 운명을 감안하면 의미심장하다. 문득 벨라 바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 영주님의 성>이 떠오른다. 영주 부인은 성의 각 방을 들어가 보는데, 금지된 일곱 번째 방문을 여는 행위는 곧 죽음과 연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푸른 수염 영주의 전설을 그 일차적 근원은 기독교에 두겠지만 먼 근원은 결국 수메르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는지.
 
그렇게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으면서 수메르 신화에 독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는 저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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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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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김산해 지음 / 가람기획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그리스 신화의 연원과 이집트와의 관계를 구하는 글을 접한 적 있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 준다. 나름 고고학 내지 역사학에 대한 관심으로 다소간 지식을 갖고 있다는 오만과 착각을 일순간에 깨뜨려 버린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서구 역사와 신화는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수메르 신들의 이름과 계보는 낯설기 그지없다. 신들의 대부 안/아누, 신들의 제왕 엔릴/엘릴, 지혜의 신 엔키/에아 등등. 첫 대면의 생소함은 신화의 줄기에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점점 친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와 성서의 신화 뿌리가 수메르임을 알게 되었다. 수메르 신화는 작가들의 허구가 아님을 수천 년을 견뎌온 수많은 점토서판들이 입증하고 있다.
 
수메르 어로 ‘신’을 ‘딘기르’라고 하는데, 유라시아와 태평양 민족들의 텡게리, 틴기르, 텡그리, 탄그라, 단구스, 그리고 우리말의 단군 등과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뒷목이 띵하여 왔다(P.45). 인류 문명 전개과정의 공통 조상에 의한 유사성인지 아니면 문명 간 전승 관계의 결과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유사성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역사적 시간대로 추정해 볼 때, 수메르 신화는 그리스와 성서는 물론, 나머지 3대 문명권보다도 시기적으로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엔릴과 엔키의 관계는 형제간이면서 적자와 서자의 뿌리 깊은 갈등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갈등이 성서의 인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이사악, 이사악의 아들 에사오와 야곱, 야곱의 아들 르우벤과 요셉 등 장자상속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것은 엔키와 엔릴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P.55).

또한 신들의 어머니 닌투/닌후르쌍의 별칭이 마미, 맘무였는데, 여기서 마마, 맘이 유래하였다고 보는 장면도 꽤나 그럴듯하다(P.61).
 
바빌론의 건설과 어원을 언급한 대목은 어떠한가. 바빌론이 ‘신들의 문’(바빌리)을 뜻함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수메르 신화에 대한 전반적 줄기를 이해하는 가운데, 압권을 뭐니 뭐니 해도 ‘에누마 엘리쉬’와 ‘베레쉬트’, 즉 바빌로니아의 창세기를 모방하여 유대인들이 야훼에 의한 창세기를 창작하는 과정을 추론하는 대목이다. 바빌론 인들은 수메르 신화를 뒤집어 엔릴 계가 아닌 엔키의 아들 마르둑을 신들의 전쟁을 종식하고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변용하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민족의 영광을 빛내기 위하여 이를 따르고 있다. 수많은 신들은 오직 하나 유일신 야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아담(신의 피와 흙으로 빚어낸 존재)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본질적 사유와, 대홍수가 불가피하였던 연유 등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성서 전승을 비판할 의도였겠지만 비신자인 내게는 순전한 역사적 관점에서 성서의 서사적 틀에서 미진한 부분을 수메르 신화를 통해 메울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신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소위 ‘만물의 영장’을 만들 의도는 전혀 없었다. 노동에 시달리는 작은 신들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신을 대신하여 노동할 수 있는 적당한 지능의 존재가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노동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다. 조금은 씁쓰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담과 이브의 관계 또한 통념과는 다르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부분을 근거로 여성에 비해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혹자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수메르 신화를 근거로 갈비뼈 자체가 성서 작가의 오역임을 밝힌다. 수메르 어에서 갈비뼈를 뜻하는 ‘티’라는 단어는 생명이라는 뜻도 지닌다고 한다. 즉 이브를 창조한 것은 아담의 갈비뼈가 아니라 아담의 생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달의 여신 닌티는 갈비뼈의 여신이 아니라 생명의 여신이듯이(P.204).
 
수메르는 예수 탄생 수천 년 이전에 문명이 쇠퇴하고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는 앗시리아가, 남부에서는 바빌로니아가 대치 상태를 유지하다가 신바빌로니아가 통일을 수립하고, 후에 페르시아 제국에 멸망당하면서 역사에서 잊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재발견되고 쐐기문자가 잇달아 해독되기 시작하면서 그 유구하고 찬란한 유산이 인류에게 드러나고 있다.

아, 수메르 신화는 수만 장에 달하는 점토서판을 통해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고대와 현대를 바로 잇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기 위한 사전적 학습 차원에서 가볍게 접근했던 이 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적 충격과 자극을 받게 되었다.

서구 편중적인 우리 문화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메르 전승에 관심을 기울일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그래도 척박한 환경에서 저자 김산해와 조철수 같은 수메르 어를 원전으로 해독할 수 있는 이들이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문화적 편식을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나마 강구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 방대한 신화 전승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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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0.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