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들리는 사랑의 숲 이야기
사아디 지음, 김택 옮김 / 선우출판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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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전에 사아디의 우화집을 읽었다. 너무나 자그마한 판형에 간략한 내용이라 부담 없이 흥미롭게 읽었지만 사아디의 참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그의 유명한 ‘장미원’의 번역본이 국내에 나왔음을 알게 되었고 절판된 책을 수소문해서 결국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부제가 잠언집이라고 하였는데, 너무 딱딱한 표현이고 ‘교훈적 이야기와 시’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페르시아어를 전공한 역자가 원전에서 직역한 것이니 중역 편집본보다 신뢰감이 훨씬 높다.
 
13세기 당대에 중세 페르시아는 문예 방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아디와 사위 허페즈(하피스)를 비롯하여 또 하나의 대시인 루미 등이 드높은 예술 수준을 오늘날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구성은 일화(이전의 사아디 우화집의 내용과 많이 겹침)를 소개하고 이어 짤막한 교훈시로 끝맺음하는 방식이다. 각 편이 대개 한 장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역시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화와 잠언시의 병행 구조라 단지 일화만 소개할 때보다 가슴에 좀 더 와 닿는다.
 
주된 내용은 가난 예찬, 권세 비판, 위선 비난 등 수피즘의 관점에서 인생과 사회의 지침이 될 만한 교훈을 담고 있다. 때로는 과도하게 자기 위안 내지 합리화를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작가 자체가 권력계급보다는 거지성자에 가까우니 말이다. ‘천국가는 발걸음’(P.118~119)에서는 부자는 빈자보다 천국가는 길이 무겁다며 가난을 예찬한다. 그러면서 위선적인 거지성자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거지성자의 길’, P.70~71). 사실 “마음이 하늘과 함께 한다면”(P.76~77) 참된 OO가 되는 것이 어디 거지뿐이랴.
 
‘거짓도 때로는 진실의 힘을 갖는다’(P.128~129)는 선의의 거짓과 악의의 진실에 대하여 재삼 생각할 기회가 된다. ‘상처의 흔적’(P.140~141)은 진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재발견할 수 있다. ‘잠수부가 악어를 두려워하면 어찌 귀한 진주를 얻으리’(P.144~153)는 가장 긴 이야기로서 이채로운데 안락에 안주하지 않고 고생을 하는 힘이 장사인 아들을 통하여 노력하는 가짐의 의의를 되새긴다. 그리고 ‘좋은 약이 입에 쓸까’(P.178~179)는 고언(苦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인생은 허망한 꿈’(P.159)의 시구는 그 자체로 세상을 이별하는 시, 즉 사세구(辭世句)다. 여기에는 슬픔과 회한, 체념의 정서가 물씬 배어있다. 마지막 ‘지혜에 이르는 통로’와 ‘지혜의 속삭임’은 일화 없이 순전한 잠언과 교훈시 모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그 중 침묵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P.191~192)이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교훈서로만 받아들이면 사아디가 무척이나 슬퍼할 것이다. 사아디는 그래서 일화와 시의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였다. 심오한 내용을 경쾌한 수단으로 구사하는 기법을 가지고 인생의 지혜를 밝혀 주고 싶었던 것이다. 괜히 무겁고 진지하게 책장을 넘기지 말자. 슬며시 감도는 미소 속에, 그렇지! 하는 탄식 속에 어느덧 “마음의 눈”을 열고 사아디가 전하고자 한 “사랑의 숲 이야기”들 듣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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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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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디의 우화 정원 - 위대한 페르시아 수피 붓다 지혜의 우물 1
사아디 지음, 이현주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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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부피에 분량도 170면 내외에 불과하다. 아담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게다가 어려운 책도 아니고 ‘우화’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사아디는 누구인가? 겉표지에는 ‘위대한 페르시아 수피’로 적혀 있다. 간단한 약력을 확인해 보니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으로 하피즈[허페즈]와 더불어 대표적인 저명 작가라고 한다. 작품 중에서는 <굴리스탄(장미정원)>과 <부스탄(과수원)>이 유명하다는데, 국내에는 당연히 번역본이 있을 리 없고(예전에 굴리스탄이 번역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절판되었다 ㅠㅠ), 이 우화집이 출판된 것만도 감지덕지하다. 다만, 아서 숄리의 편집본을 번역한 것이므로 작가의 원작의 출전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가 없다.
 
약 80여 편의 짤막한 교훈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각 이야기는 대개 두 면 남짓하며 짧은 것은 반 면도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화’라고 하였지만, 동물이 등장인물인 이야기는 몇 편 되지 않으므로 그냥 옛이야기 모음집으로 이해하면 맘 편하리라.
 
훈육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고금과 동서의 차이를 물론하고 비슷한 형태와 주제를 갖기 마련이다. 어차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은 유사한 법이다. 여기에 문화적 차이가 비슷비슷한 가운데 독특함을 부여하는 양념 역할을 해준다.
 
인상에 남는 몇 편의 이야기만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목이 비틀어진 왕’ 편에서는 목이 비틀어진 왕을 고쳐주었는데도 아무런 감사를 표하지 않자 의원이 다시 목을 비틀어지게 해놓고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즉 배은망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사람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틀리다는 속언과 별반 차이 없다.
 
‘술탄과 탁발승’ 편은 알렉산더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연상시킨다. 디오게네스에겐 한 줄기 따뜻한 햇살이 소중했듯이 탁발승은 술탄에게 자신을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구두쇠와 아들’ 편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재화를 땅속에 묻어놓는 것은 돌멩이와 다름없다는 표면적 교훈인데, 내게는 부자 삼 대 못 간다는 속설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답으로 여겨졌다. 선대의 근면과 절약 정신을 후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탁발승과 여우’ 편은 고사성어 수주대토(守株待兎)가 연상된다.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와 가만히 누워서 먹을 것을 기다리는 탁발승이 어떤 차이점이 있을는지.
 
‘고삐 끈 이름’ 편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먼 조상 격이다. 진정한 양의 고삐 끈은 친절과 사랑이라는 소년의 말이 가슴에 뜨끔하다.
 
‘겁에 질린 여우’ 편에서 여우가 두려워하는 것은 집단행동의 맹목성이다. 그 맹목성에 일단 포위되면 정의는 사라지고 광기만이 난무한다. 여기에 희생된 억울한 개인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좋은 선생’ 편은 교육과 교육자의 본질에 대해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한다. 교육의 민주성은 어디까지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일정 정도의 비민주성이 불가피한 것인가. 강제적 방식으로 교육을 받은 이들이 훗날 개인의 인성 존중과 자율성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를 성공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신성한 나무’ 편은 재화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재화가 혈연에 선행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만이 아니었다.
 
작가 사아디는 몽골의 침략 이후 방랑 세월을 보내다가 노예가 된 경험도 있다. 어찌 보면 그리스의 이솝과 마찬가지 경험을 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 중에 자신을 등장인물로 삼은 경우도 있다. ‘불쌍한 노예, 사아디’ 편은 개인적 체험을 객관화시켜 더욱 사실성을 담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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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0.18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수메르 신화
조철수 지음 / 서해문집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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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후반부터 세계문학을 통독해 보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야심만만하게 시도하였다. 우선 문학의 시원인 신화부터 시작하여 시대 순으로 내려올 생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표격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펼쳐들었다. 그 후 불현 듯 인도의 고대 문학작품이 궁금하여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샤쿤탈라>, <메가 두타> 등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은 고대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페르시아를 향해 서쪽으로 나아가 우화집 <칼릴라와 딤나>로 시작하여 사아디와 허페즈의 교훈적 이야기와 시를 살짝 맛보았다. 이번에는 다시 메소포타미아로 건너뛰었는데 <길가메쉬 서사시>를 실제로 대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길가메쉬는 고립무원의 독립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수메르 신화의 광대하고 풍요로운 토양에서 생산된 산물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래서 수메르 신화와 문명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런저런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 처음에는 낯설기 짝이 없던 신들의 계보와 용어, 수메르 어휘가 가리키는 깊은 중의적 의미, 찬란한 고대 서양 문명과 신화가 수메르에게 크게 빚지고 있었음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진실. 게다가 터무니없이 고대이면서 때로는 초현대적이기 조차한 그들의 문명 세계. 인류가 그토록 오랜 세월 수메르를 잊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몇 권의 수메르 저작물을 읽어나가면서 레퍼런스로 소장할 책을 골랐다. 수메르 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윤색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맞대면하고 싶었다. 그것은 국내에서 수메르 문자를 해독할 줄 아는 단 두 명의 인물인 김산해의 <길가메쉬 서사시>와 조철수의 <수메르 신화>이다. 다행히 김산해의 책은 쉽사리 구할 수 있었던 반면, 조철수의 것은 시중 서점에서 절판되어 구할 수 없어 출판사에 직접 전화하여 재고분을 겨우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욱 뜻 깊다.
 
사실 <수메르 신화>의 내용은 대부분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앞서 읽은 책들에 한두 번 내지 많게는 대여섯 번도 등장했던 토판의 이야기들이다. 지우수드라의 홍수 이야기, 아트라하시스, 에누마 엘리쉬 등 수메르 신들의 창세기. 그리고 유명한 인안나와 무두지의 사랑과 비극, 길가메쉬 이야기 등.

그렇다고 이 책을 읽는 게 별 의미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인용이 많고 해설이 풍성하다고 해도 원작을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그렇다, 나는 수메르 탐험의 휴지부를 여기서 찍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수메르 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것이 수메르에 대한 걸맞은 에티켓으로 생각하였다. 그 의도에 이 책은 십분 부합한다.
 
수메르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수메르가 재발견된 지 겨우 이백여 년 남짓. 수메르 문자가 해독되고 토판들이 연구되기 시작했던 게 얼마 전이던가. 현재까지의 연구만으로도 수메르는 인류 문명의 선구자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수메르가 갖는 양면성이 어쩌면 고대 인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뒤엎을 잠재력을 내포할 가능성에 기인한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수메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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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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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
조철수 지음 / 김영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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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신화 전문가 조철수 님이 쓴 책이라 일단 관심이 갔다. 게다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우리 신화를 연관 짓는 서제를 보니 뭔가 획기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네이버 서평을 보니 평가가 엇갈린다. 추천과 비추천이 혼재한다. 비추천의 요지는 신빙성이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이제 책을 다 읽은 후 소감은 나 역시 비추천에 가깝다는 것이다. 서제 자체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농후하다. 언뜻 보면 수메르 문명과 신화를 통해서 우리 신화 즉, 고대사를 재검토하는 듯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다소 거리가 있다. 내가 수정한 서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로 재해석한 우리 신화’ 정도이다. 이것이 조금 더 책 내용과 가깝다고 판단한다.
 
여러 곳에 연재한 관련 논문을 한데 모은 탓인지 각 장들 간에 체계성이 부족하므로 개별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저자는 신화소(神話素)의 개념을 거듭 중시한다. 신화소는 신화의 구성단위로 이해하면 될 듯한데, “작은 단위의 이야기가 한 신화소를 이루는 것”(P.6)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에서 마름모 모양의 물결무늬, 연못 모양, 활과 화살 등 신석기 시대의 신화소를 통하여 고대 근동 문화와의 동서 교류의 흔적을 재음미하고 있다.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 석탈해, 처용설화를 통해 우리는 이미 서역과의 교역이 존재했으며 이들이 서역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신화소들은 근거로 고대 근동에서 세계 각지로 문명이 전파되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신화는 수평적일 수도 있다. 사람이 모여 사회를 형성하는 단계에서 시기적으로 선후는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 양식은 유사하다. 공통된 신화소가 독자적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타 문명에서 전파되었다고 추단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물론 공통의 신화소로 다른 문명권의 신화를 분석하는 것을 신화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군 신화에서 환인의 서자 환웅을 수메르 신화의 신들의 아버지 안의 장자이자 신들 중에서 넘버 투인 엔키를 비교하여 환웅의 스토리를 분석해 보는 것을 매우 흥미롭다. 동일한 방식을 저자는 두무지와 인안나를 견우직녀 설화에 적용하는데 이것은 다소 무리한 확장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신화 이해에 있어 극적 상상력을 강조하는데, 상상력이 지나치면 창작 내지 허구가 될 우려가 존재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화 이해는 결코 문학 창작이 아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길가메쉬에게 죽임을 당하는 삼목산 산지기 후와와(훔바바)와 우리의 귀면(鬼面)을 비교하여 귀면에 새겨진 존재가 후와와에서 유래하였다고 추론하는데, 대체로 근거가 희박하다. 수년 전 귀면 속의 존재는 도깨비가 아니라 용의 형상화로 강력하게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 곰과 용은 거리가 멀다. 저자가 이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편 동양의 십이지간의 유래가 고대 근동의 황도 십이궁에서 유래되었다는 저자의 논거 역시 궁금하다.
 
한편 참신한 분석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우선 민요 아리랑에서 아라리의 의미다. 아라리 고개는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는 고개로 아리랑은 망자가 생자로부터 멀어짐과 버려짐을 애통해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심청전과 바리공주 신화는 어떠한가.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고 인당수에 뛰어들고, 바리공주가 서역으로의 갖은 고생을 무릅쓴 것은 그래야 저승(용궁과 서역)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며, 저승 세계에 다녀옴으로써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권능과 오구대왕의 죽은 몸을 살릴 권능을 얻게 되는 한편 자신은 존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시비를 떠나서 자체로서 음미할 대목이다.

덧붙이자면 훈민정음 창조를 옛 히브리 문자와 연관시킨 부분은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가림토 문자가 기록된 사서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가운데 중간 단계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전체 토대가 불안정하다는 맹점이 있다.

대체로 이 책은 우리 옛 신화와 설화를 전통적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저자가 오랜 기간 연구한 수메르 문명의 신화소를 도입하여 분석하고 있는 점에서 상찬 받아 마땅하다. 다만 화제 유발을 의도한 과도한 상업성의 서제로 말미암아 이 책의 진면모가 오해받고 가려지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와 출판사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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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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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역사 명저 시리즈 1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지음, 박성식 옮김 / 가람기획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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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존에 읽었던 수메르 관련 도서와는 접근 방식이 다소 다르다. 즉 이 책은 신화로서의 수메르가 아니라 역사로서의 수메르 문명을 다루고 있다. 피부에 닿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 보다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을 다루고 있으니 훨씬 현실감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 39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시대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디서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학교 공부는 쉽지 않다. 교육적 체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촌지는 어떠한가.
 
최초의 양원제, 법전, 의학서, 농업서 등등은 사실과 흥미 유도를 교묘하게 엮은 것이다. 수메르 문명이 인류 최초의 시원 문명이라면 그들이 이룩한 모든 문명 항목은 모두 인류 최초의 것이 될 것이다. 한편 그리스 로마 중심의 교육과 가치관을 지닌 서양인들에게 고대 근동이 문명의 원류임을 예시하는 데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소제목은 달리 없을 것이다.
 
신화를 다룬 점토판이 아니라 문명 속의 인간에 대한 점토판을 중심으로 다루니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 간과하였던 문명을 이끈 주역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미지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점은 참으로 유익하다. 더구나 저자는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직접 점토판 원문 번역본을 읽어보게 함으로써 수천 년 전 조상과 후인을 직접 연결시키는 중대한 체험의 기회를 주고 있다.
 
수메르 문명의 세부에 대해 다시 운운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의 초판이 1956년에 출판되었고 개정판이 1981년에 나왔음에도 기본 틀은 그대로인 점을 감안하면 나날이 새로운 해석과 발견이 잇따르는 수메르학에서 고전의 자리를 지킴은 사실이지만 내용상 다소간의 진부함을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쨌든 비교적 흥미로운 내용에 비해 저자의 문체에는 다소 불만이다. 처음엔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역시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메르 문명의 석학이지만 글쓰기의 대가는 아니다. 따라서 수메르 문명에 대한 입문서로 가볍게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얼마 못가서 실망한 채 내려놓을 우려가 있다. 이 책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서사문학-인류 최초의 영웅시대’라는 장에서 저자는 “수메르 영웅시대의 존재를 인정한 결과로 우리는 수메르 인들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첫 번째 정착민들이 아니었고, 문화적으로 그들보다 훨씬 진보된 문명세력이 그 이전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P.292)고 주장하는데 이어지는 내용은 이의 입증이 아니라 추론이 나열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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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8-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2.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