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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
존 메이시 / 종로서적 / 1987년 2월
평점 :
절판
먼저 내용보다도 책 자체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종로서적(종각역 출구 바로 앞이라 만남의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던 곳이다)이 한창 출판에도 힘을 쏟던 1981년에 발간한 단행본이다. 책 뒷면을 보면 1981년 3월 1일이 발행일이라고 적혀 있다. 이미 단종된 지 상당한 시일이 경과한 책이라 관심있는 독자라면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중고서점을 배회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다시 언급하련다.
저자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존 메이시는 1887년 미국 미시건 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일생을 문학 연구에 바쳤다. 처음에는 모교의 강사를 지낸 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평론 잡지 NATION 지의 문학부장 일을 맡았다. 그동안 여러 문학 잡지에 비평-평론을 썼고, 여러 저서도 출판하였다. 1925년에 이 책을 저술하였고, 1933년에 사망하였다.
저자의 약력을 보아서 알겠지만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씌어진 것으로 내용 상의 충실성을 떠나서 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옮긴이의 표현대로 '꿩 대신 닭'이라고 국내에 마땅한 세계문학사 개설서가 부재한 데 연유한다. 하긴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변함없다. 청소년을 위한 간략한 개설서와 조동일의 성격 규정이 다소 모호한 책을 제외하면 서양문학이 아닌 세계문학 전반을 다룬 책은 시중 서점에서 찾을 수 없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와 같은 한국문학사 대작도 나온 마당에 아직 국내 학자들이 세계문학 통사를 저술하기엔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려운 일임은 충분히 예상하지만 그래도 주체적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세계문학사가 나올 수 있도록 연구자들의 분발을 바랄 뿐이다.
존 메이시의 생몰연대를 통해서 이 책의 일차적 한계는 명확하다. 즉 20세기 중후반부에 대거 등장한 현대 문학가들에 대한 정보와 평가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편집인이 추가한 장을 통하여 윤곽을 훑어볼 수는 있지만 언땅에 오줌누기 격이다. 아무래도 고대와 중세를 제외하면 르네상스 이후부터 출발하여 19세기까지를 저자는 관심 영역에 두고 있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머리말에서 표명하듯이 당시 지적 역량의 한계가 눈에 띈다. 미국 출신이기에 영미권 문학은 자연스러우며,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등 주류 유럽 제국에 치중하고 있다. 비주류 국가의 작품은 영어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마당에 저자가 그 탁월성을 이해하기는 다소간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시대적 배경이 제국주의가 한창 세력을 떨치던 시기라 아무래도 서양 중심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므로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권의 문학은 전혀 배제하고 있다. 중국 문학과 일본 문학의 소개도 없는 마당에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을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저자는 대체로 시대별 분량을 장(chapter)별로 균등하게 할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학사를 특정 시대 또는 지역별로 편중하지 않고 고르게 고찰하려는 나름 균형을 살리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는 태생적 제약요인이 존재한다.
세계지도 제작 기법 중에 메르카토르 도법이 있다. 일반적인 종이 지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둥그런 지구를 평면에 펼쳐놓다보면 매끄럽게 되지 않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래서 적도 부분은 영역 크기의 척도가 바르게 되어 있으나 극지방을 억지로 잡아늘려 꿰어맞춘 바람에 척도가 매우 왜곡되어 나타난다. 시베리아, 캐나다, 그린란드 등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린란드 섬이 호주보다 크게 나타나 있고, 알래스카가 미국 본토의 절반만 하다. 이 도법의 특성을 이해하는 지적 수준을 지닌 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어린이나 문외한 같은 경우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우려가 크다.
이와 마찬가지 현상이 이 책에도 나타난다. 뛰어난 작가는 시간과 장소에 결코 균일하지 않다. 어떤 시대는 암흑기라고 불릴 정도로 명작 부재의 시기가 한동안 존속되기도 한다. 또 갑작스레 특정 시기 특정 국가에서 세계적 문인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평준화의 논리에 집어넣는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침대에 맞추기 위하여 사지를 절단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예컨대 누구라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문학사적 의의가 알프레드 드 뮈세(19세기의 프랑스 시인)보다 월등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는 구체적 작품 소개도 없는 데 비해 뮈세는 그의 시 한 편의 전문을 번역하여 수록하고 있다. 미지의 가작을 발견하는 기쁨이 왜곡의 우려를 능가해서는 안된다. 더우기 저자는 다른 문학 장르 보다 시(poetry)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왠만한 시인은 단편적으로라도 시 한 수를 소개하는 열성을 보이는데 비해 소설이나 희곡, 수필 등은 보통 간단하게 대략적 의의와 문체적 특징만을 언급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운문이 산문보다 내적 서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장르의 우월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한편, 존 메이시는 문학의 영역은 순수문학에 국한하여 파악하지 않는다. 역사가, 철학자, 과학자, 정치가(링컨에 대하여 한 면을 할애하고 있다!) 등의 각종 저술과 산문을 문학적 관점에서 포착함으로써 문학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하여 이해하려는 미덕을 보인다. 이는 순수문학만을 문학으로 간주하는 편협한 현대인들의 자세와는 분명 차이를 보인다. 지나친 환원주의 폐해는 문학에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저자는 작가를 문학자들, 수필가들, 시인들, 소설가들로 분류하는 것은 인위적인 데가 있고, 인간 정신에 대해 불성실한 것으로 간주한다(P.473 참조).
서양의 덜 부각된 작가들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전문 문학인 외의 인물이 쓴 글에 대한 문학적 가치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는 계기가 된 점은 유익하다. 이는 다른 저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책만의 독자적 가치라고 하겠다.
다만 처음으로 세계문학 전반을 이해하고자 이 책을 집어드는 초심자에게는 오히려 문학사의 커다란 조망과 이해를 흩트러뜨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도한 친절이 오히려 불친절을 낳았다고나 할까. 굳이 이 책을 읽겠다면 그 한계를 염두에 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