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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Status Anxiety>인데 번역본은 그냥 <불안>이다. '지위로 인한 불안'이 보다 정확한 용어일 텐데 단순히 '불안'이라고 줄여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불안의 원인 중 지위에서 발생한 불안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반영한 셈인지.
저자는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꼽고 있다. 그리고 해법으로 역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사랑결핍. 여기서 사랑은 Love의 개념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또는 존중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P.21)
속물근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P.29)
기대.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선진국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기대감이 낮을수록 작은 불평등에 덜 예민해지며, 무제한의 기대는 희망과 낙담의 깊은 골을 만들어내므로 쉽사리 만족 못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대'보다는 '갈망'이 유효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충족되지 않은 목마름은 삶을 괴롭게 한다.
능력주의.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고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P.119) 가난이라는 낮은 지위는 열등성의 반영이므로 수치감을 더해주게 된다.
그리고 각종 불확실한 요인들도 불안의 증폭에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그러면 저자의 해법을 한번 보자.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나열된 해법을 보면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철학. 합리적 이성으로 필터링한다. 즉 이성적 판단으로 터무니없는 외부적 평가나 비난은 무시해버린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대단한 인물이다.
예술은 현실의 덕성과 지위 불일치를 문학(예술)에서 묘사하여 독자를 달래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덕성과 지위 일치의 혼동을 경고한다. 그리고 비극은 개인적 실패를 특히 위로하는 역할이 크다고 한다.
정치. 물자를 많이 소유하는 것은 물자가 쾌락을 제공하는 이상으로 명예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P.250). 필수품에는 자연적 필수품과 사회적 필수품이 존재하는데 생명유지에 필요한 자연적 필수품의 부족은 절대적 가난으로 이어지는 반면 사회적 품위에 필요한 사회적 필수품의 부족은 상대적 가난에 닿는다. 그런데 상대적 가난이 더욱 뼈에 사무친다. 우리는 이런 헛된 믿음(이데올로기)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배적 믿음과 사회적 질서는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할 경우 이데올로기는 그 천상의 자리에서 배겨나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 보통은 종교라고 통칭하면 편하다. 죽음과 신에 대한 관념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과 미덕의 발견을 위한 동기를 제공한다. 이때 세속적 가치체계는 덧없는 구조물로 전락한다.
보헤미안. 데이비드 소로의 예와 같이 기존의 사회적 관습과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거부하는 생의 태도라고 하겠다. 보헤미안이나 히피가 되는 것에는 낭만적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소시민에게 환상과 경각을 일깨워 주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그 또한 교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해법은 그 자체로 지위로 인한 불안을 제거하지는 못한다(P.385). 그것들은 지위를 다변화함으로써 지위의 새로운 위계를 구성하고 그럼으로써 불안을 단편화한다.
불안은 연원에 따라 개체적 불안과 사회적 불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체적 불안은 생명이나 상해와 같은 존재에 대한 불안으로 본원적 불안이다. 반면 사회적 불안은 지위 등 관계에 대한 불안으로 후천적 불안이다. 현대 사회의 특성은 사회적 불안을 개체적 불안으로 전이시키는 증상에 있다. 사회적 불안은 역사적 관습에 의해 본원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것을 당연하게 내면화한다. 거기에 유일한 가치를 숭상하고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이를 증폭시킨다.
저자의 해법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해소책은 부재한다. 인간이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 속에 잔류하는 한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사회를 등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회적 불안을 완화 또는 중화시키는 방책이 필요하다. 저자의 다섯 가지 해결책이 지향하는 바도 이것이다. 당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매몰되지 말자. 독자적 가치판단과 의식으로 인습을 거부하고 자존을 유지한다면, 그리고 타인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외관상 실패와 못남도 자신을 불안하게 하지 못한다.
* 존 러스킨과 그의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선구적인 인물을 나는 아직 왜 몰랐던가. 인터넷 서점에서 당장 그의 책을 주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