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빠지는 즐거운 유혹 세트 - 전3권 유럽에 빠지는 즐거운 유혹
베니야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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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일본인이 지은 3부작 중 첫 번째다. 애초부터 시리즈로 기획하였던 같지는 않고 책의 반응이 좋으니 추가로 펴낸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마 1권과 2권은 전체적 분위기와 제재, 스타일에 있어 유사성이 있지만 3권은 동일한 저자인가 할 정도로 완전히 이질적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는 유럽에 빠졌던 발을 확 들어 올려버릴지도 모른다.

확실히 일본사람들은 여행이나 이런 면에서는 우리에 비해 폭이 넓고 깊이도 한층 깊다. 단순한 주마간산식 여행기가 여전히 대세를 이루는 우리에 비해 이들은 한 나라에 한 지역에 푹 빠져서 거의 현지인들처럼 그곳을 사랑한다. 호오에 관계없이 집요함은 인정해야 하리라.

이 책은 여행 가이드북의 상투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가이드북은 대충 알겠지만 지도가 나오고 이어 지역 소개, 관광명소, 교통편 그리고 맛집과 호텔 등으로 이루어지며 극히 사실적인 내용과 지은이의 주관적 감상이 버무려진 구성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체로 흥미롭다. 배낭여행자나 개별여행자에 꼭 필요한 일체의 정보는 다른 곳에서 얻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유럽에 와서 무엇을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돌아갈 것인가에 주안점을 둔다. 쇼핑 관광자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제1권 신화와 역사 편은 잡다함이 혼재되어 있다. 1/3은 유럽 신화와 전설, 다음 1/3은 건축 양식에 대해 소개하는데 나머지는 공예와 보석 등을 중심으로 유럽 문화의 배경 지식과 상식을 알려주는 데 치중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한 이라면 부족함을 느끼겠지만 초보자나 회화 예술과 결부지어 새삼 되새기고 싶다면 꽤 그럴듯하다. 군데군데 흥미로운 단편적 지식도 축적할 수 있으니.

건축 양식에 대해서는 유럽 건축사에 대한 전반적 흐름과 주요 특징을 소개하는데 유럽의 웅대한 성당이나 저택 등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게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음에 동의한다. 교회와 카테드랄의 차이가 뭔지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이런 정도의 내용은 진지한 서적에서는 취급 안하고 가벼운 책에서도 건드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나 할까. 이 책이 독자에게 뿐만 아니라 여행업계 종사자에게 호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관광객의 편안한 입장과는 달리 인솔자로 때로는 가이드로 손님들에게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어야 하는데 이 책이 그 필요에 썩 부합하는 것이다.

약간의 전문성과 많은 대중성의 조화. 뭔가 부정적인 인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심리적 한계다. 역으로 많은 전문성과 약간의 대중성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다. 진지한 자연과학자도 필요하지만 그 연구성과를 다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내용으로 해설할 수 있는 대중과학자 내지 과학저술가가 크게 요청되고 나름 인정받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소위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그래도 번역에 있어 오타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전적으로 편집부의 잘못인데 어려운 전문용어도 아닌 일상적 어휘에서 그리 많은 오타가 난무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웬만하면 사소한 수준은 넘어가려고 하는 편인데 이것은 정도가 상당하다. 아예 교정을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제2권은 축제와 문화편이다. 절반은 기독교와 축제를 다루며, 나머지는 자연과 음식물 및 이모저모이다. 한마디로 잡학을 습득할 기회라는 의미다.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흐름을 좇아서 간략한 배경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 또는 나름 기독교 지식에 해박한 이라면 별로 대단치 않겠지만 문외한에게는 쓸 만한 내용이다. 특히 '조형미술에 나타난 상징'은 서양 문화권이 아니면 알아차리기 힘든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은 성 마가인데, 그래서 상징은 날개달린 사자이고, 대성당 이름이 산 마르코라는 것. 또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등등. 이어지는 각종 종교축일은 더더구나 이방인에게는 낯선 영역인데 나름 잘 정리하여 알려주고 있다. 저작 의도에 어울리게 어디를 펼쳐도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 여기도 여전히 무수한 오타가 난무한다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하기엔 티가 너무 커서 옥의 옥다움을 가리고 있다.

앞서 두 권의 독자라면 제3권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 내지 편향이 생길 것이다. 대충 그럴듯한 내용으로 쉽고 쏙쏙 이해되게. 그런데 저자는 앞서의 성공에 자심을 얻었는지 이번에 내공의 깊이를 뽐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주위에서 너무 가볍다고 쏙닥거린 듯. 제3권 고성과 건축편은 앞서의 기억을 지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그렇지 않으면 어어, 이 사람이 왜 이렇지 하는 끊임없는 의구심으로 쉬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가뜩이나 만만한 내용도 아닌데 말이다. 유럽 여행 소개책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것은 그들의 멋진 성들이다. 오죽하면 고성 호텔, 고성 탐방 같은 프로그램이 성황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서구의 성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저자는 성채와 성관을 구분하는데 사실 그런 구분이 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성의 역사, 중세의 성, 남아있는 중세의 성벽도시 방문, 성관과 의고성(노이슈반슈타인 성이 그 예다)의 구성으로 꽤 전문적인 내용도 담고 있어 흥미 본위의 접근으로는 배겨내지 못할 사람이 많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면 흠, 서양애들도 그럭저럭 쓸 만하군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더욱이 빨리 가서 유럽의 아름답고 웅장한 성을 실제로 밟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게 한다. 한 가지 잊지 말 것.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성(성관이 아닌)은 실제 거주에는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 아 또하나 이 권은 오타가 상대적으로 거의 없어졌다. 내용의 무게와 오타율의 관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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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15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이솝우화전집 - 새롭게 재해석한
이솝 지음, 송경원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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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필독 도서 목록에 포함되며, 지금도 성인남녀 누구나 한두 가지 이야기는 기억한다. 그만큼 이솝우화는 우리에겐 친숙하다.

하지만 우화와 동화는 틀리다. 동화는 특별히 어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흥미있는 서사다. 우화는 동(식)물을 빗대어 인간세상을 비유하여 깨우침(교훈)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는 전자와는 달리 독자에게 이단계의 사고를 요구한다. 우화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가 먼저이고, 이어서 이것의 인간사회에 대한 변용과 적용이다. 따라서 우화는 속성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솝우화는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대상이다. 누구나 알면서도 기실 아무도 윤색되지 않은 참모습은 알지 못하는. 약 500편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각각의 우화는 매우 짧다. 게다가 건조하다. 여기서는 동화책이나 만화로 윤색된 겉치장이 없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 <채근담>의 글귀처럼  꽃 지고 잎 떨어져 겨울바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앙상한 나무줄기와 가지. 이것이 사물의 근본적 형태이자 본성에 가까움을 상기시킨다.

옛적 추억을 되살리려 이 책을 펼쳐든다면 단언컨대 분명히 실망만 하게 된다. 깡그리 잊어버리고 첫 장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천년도 더 옛날의 이솝이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솝이 간파한 것처럼 민족과 시대를 건너뛰어 내려오는 인간의 속성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이솝우화가 현대에도 재해석되고 고전으로 대우받는 연유다.

인상에 남는 몇 편을 언급하자면 2편 <구두쇠와 금덩이>, 5편 <바닷가의 나그네들>, 13편 <쇠똥구리와 독수리>, 32편 <노인과 당나귀>, 60편 <두 개의 주머니>, 68편 <헤르메스신과 도끼>, 89편 <원숭이와 두 나그네>, 92편 <살인자와 나일강>, 110편 <황소와 수레>, 141편 <어미개와 강아지>, 186편 <말벌과 나비>, 188편 <소크라테스와 친구>, 205편 <기회>, 276편 <벼룩과 낙타>, 281편 <생쥐와 대장장이>, 437편 <프로메테우스와 두 길> 등이 있다.

그런데 129편 <개구리와 해>, 223편 <당나귀와 귀뚜라미>, 287편 <사자와 농부의 딸>, 335편 <뱀과 게>, 415편 <이솝과 도망친 노예> 등은 그 해석이 나와는 사뭇 달라 이채롭다. 129편은 오히려 미리 조심하자는 취지가 아닐지, 223편은 굶어죽은 당나귀는 순수한 예술혼의 구현으로 각광받아야 하지 않을까. 287편은 어떠한가. 농부의 딸을 사모하여 이빨과 발톱마저 빼버린 사자는 완전한 사랑에의 헌신 그 자체가 오히려 배반을 당하였다. 사랑에 지고지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시각에서 사자는 비극의 주인공 감이다. 디즈니의 <야수와 미녀>를 볼지어다. 또 335편은 타고난 본성 상 불가능한데도 불의한 강요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뱀의 슬픈 삶이 안타깝다. 친구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라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를 하는 친구를 만나라가 제격이 아닐는지.

마지막으로 415편을 보자. 얼핏 이솝의 조언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순응하여 언젠가 마음씨 좋은 주인이 자유의 몸으로 놓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의 잔재다. 만약 주인이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노예로 죽어야 하는가. 독재국가에서 독재자가 언젠가는 개심하겠거니 압제에 순응해야 하는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삼척동자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이것이 우화는 나날이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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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조선시대 동성혼 이야기 - 방한림전 즐거운 지식 81
장시광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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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에서부터 확 눈이 끌린다. 언뜻 과도한 상업주의 의도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완독 후에는 이렇게 해서라도 눈길을 끌어보려는 안쓰러운 시도가 오히려 눈물겹다. 결코 대중 영합적인 유형의 서적은 아닌 게 270면에 가까운 분량 중 번역문은 80면 정도, 원문이 150면, 그리고 나머지가 작품해설이다.

먼저 분명히 하자. 일단 동성혼이다. 결코 동성애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이 부득이하여 그렇게 되었음을 초반부에 구구절절이 기술하고 있다. 또 말미에는 이 모든 게 하늘의 장난이었음을 밝혀 혹시 모를 보수파의 반격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정해 두었다.

작품 제목은 방한림전으로 남장 여자인 방관주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져 있고 그의 출생부터 혼인, 벼슬살이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속사포처럼 전개된다. 워낙 분량이 적다 보니 구체적 배경이나 사건 묘사보다는 서사의 전개에 치중하고 있다. 솔직히 작품성으로는 그렇게 두드러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제재의 의외성이 흥미를 유발하는 점을 제외하고.

방관주의 남장은 여성해방이나 다른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동성애 관계에서 남자 역할을 하는 여성처럼 방관주도 외양은 여성이지만 사고와 의식 구조는 남성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지배계급인 남성처럼 동지이자 아내인 영혜빙을 강압하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 보인다. "남자에 대한 콤플렉스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P.254)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역자의 주장대로 오히려 영혜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관주가 여성임을 알면서도 남성에게 억압받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주체적 판단으로 결혼을 하는 선택을 한다. 여차하면 독신도 각오하고 있는 영혜빙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그리고 부부 관계에서 대등한 동지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애쓴다.

소년 출세, 문무 달통, 자손 번창은 전형적인 고전소설의 특성이다. 방한림전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다. 다만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르다. 속박당하는 여성의 실현하지 못하는 기상과 소망을 소설로나마 성취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보다 통속성을 추구하는 의도일 뿐 특정한 의식적 표출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방한림의 행동과 발언은 후자에 가깝게 이해된다.

호기심으로 일독할 정도는 되지만, 추천할 정도는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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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구운몽 - 성진과 여덟선녀가 꾼 봄꿈 한 자락 겨레고전문학선집 21
김만중 지음, 림호권 엮음 / 보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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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고전문학선집 21. 북한에서 번역 출간한 우리고전문학을 간행하는 시리즈이다.

명성 높은 소설임에도 교과서에서 일부만 접하였을 뿐 작품 전체를 일독하기는 처음이다. 예상보다 분량이 제법 되어 먼저 놀랍고 내용도 비교적 흥미로워 재미라는 측면도 만족시킨다. 역시 허명이 아니구나!

2처 6첩을 거느리는 것은 봉건적인 당시로서도 불가능한 것일 테니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의 변함없는 불행한 로망일 것이다. 또한 국내 몽자류 소설의 비조가 되고 있으니 소년 출세, 미녀 취처, 자손 번창 등이 다 그러하다.

고전소설의 표제를 보면 소위 몽자류가 상당 분량을 차지한다. 먼저 소재나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데 유리하다.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자유로움이 꿈의 형식을 빌면 무한한 탐구가 가능하다. 그리고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 당대의 도덕에 어긋나거나 파격적인 소재와 내용, 표현 구사가 비교적 용이하다.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이 우려되면 만사가 꿈이더라는 후렴구를 덧붙이면 만사 OK이다.

또 고전소설의 배경은 대다수가 국내가 아닌 중국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대주의의 발상인가? 먼저 국내는 영토가 협소하고 인구가 미약하다.  별난 인물과 사건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 즉 그다지 신비롭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내가 배경일 경우 보다 현실적인 제재를 다루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국의 경우 영토와 인구가 광대하여 미지의 존재, 신비로운 현상의 추구가 가능하다. 즉 흥미 유발이 용이하다. 이 점에서 정보통신이 발달한 현대에도 중국의 내륙과 오지는 여전히 생소하기 그지없다. 실크로드, 대황하, 차마고도 같은 TV 다큐멘터리를 보라. 따라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대체로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구운몽 초반부에서 성진의 죄가 그토록 중한 지 의심스럽다. 잠시 마음이 미혹되었지만 곧 본연의 수행 정진에 돌아갔는데 말이다. 고전소설의 개연성 부족의 단면이리라. 전체로 보았을 때 그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한 속성 코스를 밟게 하려는 육관대사의 의도라고 하더라도.

한편 성진이 남해용왕 군대와 일전을 벌여 동정 용녀를 구하고 동정용왕의 청으로 동정호를 방문한 후 돌아올 때 남악 형산을 구경하고 한 노승을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 깔려 있는 곳이다.

그런데 번역본에는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오역이 있다. 163면에서 용왕이 "곧 남악 형산이니 아름답고 신기한 산이거늘 아직 그 명성도 듣지 못하였느뇨?"라고 성진에게 말하는데, 원본 371면에는 "곧 남악 형산이니 신기하고 이상한 산이라. 어찌 깨닫지 못하느뇨?"로 되어 있다. 형산의 명성을 듣지 못하였느냐고 물음과 깨닫지 못하였느냐는 천지 차이다. 소설 초반부에 성진이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동정용궁에 다녀갔음을 상기하자.

이처럼 북한 번역본을 본 후 호기심이 생겨 후반부의 원문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참으로 빼먹은 게 많다. 고사라든지 고전 인용 문구 등은 누락 내지 소략하여 고전의 향취를 상실케 하고 말았다.

몇 군데만 예시하면 번역본 55면과 원본 310면을 비교하면 경홍이 매파의 주선을 거절하는 대답이 번역본은 달랑 2줄인데 원본에는 사안석, 주공근, 이태백, 사마상여의 성명과 고사를 인용하여 5줄로 되어있다. 또 원본 389면 태후의 말을 소략한 것은 물론 난양공주의 평은 완전히 누락하였고 원본 418면의 잔치 장면도 번역본은 일반적인 문장으로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아무리 북한이 한문을 배격한다고 하여도 줄거리 위주가 아닌 깊이 있는 고전 독서를 위해서는 아쉽기 그지없다. 원문도 그리 어렵거나 생경하지 않으니 그냥 원문에다 각주를 다는 게 더 나았을 듯. 이 책으로 구운몽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작품 자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지 모른다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기를.

번역본의 제일 미덕은 원전 충실이다. 기본에 충실한 후 응용과 변용이 가능함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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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젖과 알 - 138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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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에 나온 서평을 보고 흥미가 생겨 읽다. 처음으로 읽는 일본 소설이다. 아니 오래전의 <빙점>을 제외하면. 일단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점, 게다가 작품의 소재가 특이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먼저 책이 작고 얇은 데 놀라다. 역시 경박단소의 대가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가의 이력이 독특한 데 또 놀라다. 소위 술집 출신의 연예인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큰 부담 없이 숨에 읽어치울 수 있으니 환영이다. 실제로 통근 길에 오가며 수일 만에 완독이 가능하였다.

'젖과 알'은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상징한다. 유방확대 수술을 통해 외양적 여성성의 쇠퇴에 불안해하는 엄마, 아빠와의 이혼 이후 술집에 나가 힘겹게 생계를 꾸리는 엄마를 본 후 알, 즉 난자로 대변된 여성성의 가치에 회의를 느끼는 딸. 양자의 관계는 삐걱거리고 의사소통의 부재와 단절은 필담 대화로 극화된다.

이 둘이 동경에 사는 엄마의 동생이자 딸의 이모집을 방문하고 돌아가기까지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본 플롯과 딸의 일기장(노트) 내용이 교차한다. 여기에 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성성의 회의적 인식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난자, 월경, 생리대 착용, 가슴 등의 적나라한 기술은 서평대로 여자들은 다 알지만 다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마뜩치 않아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더욱 말초적 관심과 아울러 균형 잡기가 요구되며 아마도 수상은 이의 성공을 반영하리라.

오사카로 돌아가는 모녀의 뒷모습은 올 때와 변함없어 보이지만 '나'와 독자는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오기 전보다 한층 깊어질 수 있음을.

번역자의 후기에 따르면 원작은 오사카 사투리로 만연체로 서술되어 읽기가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번역은 역시 필요악이다. 한편 필업된 <당신들의 연애는 빈사>는 별로 언급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일본의 문학도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하루키 외에도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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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2.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