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과학 오디세이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후기를 작성하기 위하여 주요 대목을 발췌하여 놓았다. 이미 두 달이나 경과하여 새삼스럽게 끄적거리는 게 무의미해 보인다. 소설이라면 그때의 감흥이라도 되살리려 노력하겠지만.

버제스 혈암은 동물의 진화사에서 결정적 사건이었던 캄브리아기 폭발의 첫번째 개화로 출현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하게 넓은 창문이다. (P.30)

생물 진화의 역사는 많은 생물들이 사하진 후에 살아남은 소수의 계통 내에서 분화가 이루어진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종래 이야기되었던 것처럼 우수함, 복잡성, 다양성 등이 점진적으로 증대해온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P.32)

인간의 진화: 진보의 행진(사다리) (P.40~45)
생명수: 역원뿔 도상 (P.48~53)   => 진화의 잘못된 인식

가지각색의 다양성을 보이는 현생 생물 속에도 단일한 순서가 있다는 어리석은 사고 방식은 생명이 사다리 모양으로 진화하고 다양성은 역원뿔 모양으로 증가한다는 전통적인 도식과 그러한 도식을 낳은 편견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P.55)

사다리 그림과 역원뿔도라는 잘못된 도식에 대해 우리가 그 정도로 충성스러운 까닭이 거기에 특별한 비밀이나 수수께끼, 또는 미묘한 심리적 특성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한 도식이 채택되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리라는 우리의 갈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P.56)

만약 호모 사피엔스가 무성한 나무의 많은 가지 중 하나의 작은 가지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생물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인류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P.58)

도덕률의 원천을 포함해서 인생의 의미를 과학 이외의 더 적절한 영역에서 탐색하는 법을 배우고, 상실감에 젖어 금욕적인 삶을 살거나, 낙천적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욕적으로 도전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P.58)

버제스 혈암 -> replaying life's tape
테이프를 재생할 때마다 살아남는 종들의 조합이 달라지고, 전개되는 역사도 전혀 다르게 될 것이다. (P.65)

재생에 의한 여러가지 진화 경로는 진화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경로와 마찬가지로 사실을 근거로 한 사후 설명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이 제3의 입장이야말로 역사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바로 우연성이다...우연성과 생명 테이프 재생의 은유라는 주제에 의해 인류가 진화할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작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P.67)

버제스 동물군의 폭넓은 해부학적 이질성은 다세포 생물의 최초의 폭발적 진화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오히려 버제스 이후에서 우리는 격감한 생존자들이 급속히 안정화되어가는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P.91)

마렐라와 요호이아는 월코트의 '구둣주걱'에 도전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두 속은 절지동물이라는 틀 속의 고아일 뿐이었다...나는 휘팅턴이 1975년에 발표한 오파비니아의 복원도가 인류의 지식 획득 역사에서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P.205)

오파비니아가 새로운 생명관을 가장 먼저 알리는 기함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하는 분류학적 독특함의 메시지가 오파비니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후세에는 아무리 드물어도 버제스 혈암에서는 결코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P.208)

카나다스피스는 버제스 이야기의 핵심에 해당하며, 모든 점에서 사이먼이 연구한 기묘한 생물들과 같은 정도로 중요한 존재이다...버제스 동물군은 현생 그룹의 원형을 포함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핵심적인 측면에서 캄브리아기의 가장 평범한 동물군이다. (P.248)

버제스 혈암에는 해부학적 설계의 측면에서 유례 없는 이질성을 포함하고 있다...다세포 동물의 역사는 캄브리아기 폭발의 짧은 순간에 형성된 초기의 엄청난 재고가 격감괴는 과정이었다. 지난 5억 년에 걸친 이야기의 특징은 일단 제약이 가해진 후에 얼마 안 되는 숫자의 정형화된 설계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의 증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P.311)

버제스의 이질성을 가져온 폭발적 진화에 대해서는 크게 세 종류의 진화론적 설명이 가능하다. (P.343)
1. 처음 채워진 생태학적 통.
2. 유전 체계를 지향하는 역사 (P.347)
3. 체계의 특성으로서의 초기 다양화와 그 이후의 고정 (P.349)

만약 우리가 버제스 멸종이 최상의 설계를 보존하고 예측 가능한 패자를 배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우리는 단지 생존했다는 사실만을 우월성의 증거로 판별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그 해부학적 탁월함이나 경쟁력의 우위를 인정함으로써 승자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버제스 이후의 대규모 격감의 패자들이 승자에 비해 적응적 설계에서 체계적으로 열등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357-358)

그(월코트)의 구둣주걱은 역원뿔형 다양성 증대라는 전통적인 도상학과 그 도상학에 내재하는 예측 가능한 의식의 진화와 진보라는 개념적 장치를 보존하기 위한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P.371)

구둣주걱은 신의 도구가 된다...버제스의 구둣주걱은 안락하고 편리했던 생명관의 단순한 강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윤리적인 무기이자 실질적인 신의 포고였다. (P.399~400)

[거대한 파충류의 멸종 이후, 포유류와 조류의 경쟁에서 포유류가 승리: 디아트리마의 존재, 특히 남미의 포로라키드] 결국 포유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P.457)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
아프리카의 작은 개체군에서 불안한 출발을 한 후, 운좋게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며 전지구적 경향이 낳은 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사건, 역사의 한 항목일 뿐 보편 원리의 구현이 아닌 것이다. (P.494)

인간의 본성, 지위, 잠재력에 대해 생물학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깊은 통찰은 우연성의 구현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경향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인 것이다. (P.495-49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7.2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해방전후사의 인식 1
송건호 외 / 한길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정보가 기재된 뒷면을 보니 발행일이 1990년 2월로 나와 있다. 워낙 스테디셀러다 보니 요즘은 어떤 표지 디자인으로 꾸며졌을까.

현 시점에서 읽어도 부분적으로 참신하고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내용이 제법 있다. 출판 당시인 70년대말과 8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얼마만한 파장을 미쳤을지 새삼 깊이 인식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에 연이은 독서인지라 아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뭐든 그 때가 있다면 나는 약간 시기를 늦게 맞춘 꼴이다. 그래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한발 물러선 채 비판적 시각으로 내용을 조감하는 장점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미군에 의하여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절반의 진실이 담긴 사고다. 그렇다면 미군 진주 이후 및 군정 당시 그네들의 정책이 당시 민중들의 염원에 어긋났던 연유는 무엇일까 자문해야 한다.

"포고문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성격으로서는 먼저 미군은 한국인이 기대하고 또 생각했던 것과 같은 해방군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점령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1)

"한국은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우리의 적국이다...그리고 적어도 초기에 있어서의 대한점령정책은 일본의 행정기관을 통하여 실시할 필요가 있다." (P.479)

미군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조선은 적지에 불과하다. 이 점을 유념하면 미국이 왜 일본 통치체제를 가능한 한 그대로 잔존시키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배격하고 임시정부를 무시했는지도. 자고로 파트너를 인정한다면 무주공산이 아닌 법.

미군정은 극좌를 탄압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공산세력은 정권 쟁취를 위하여 사회 불안을 조성하므로. 또한 그들은 극우도 배격하였다. 하지가 이승만을 매우 싫어하였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좌우합작운동을 후원하였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그래서 진덕규는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화라는 미군정의 최대의 목표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결에로 유도시켰으며, 한반도의 통일은 당시의 냉전체제에 의해서 오히려 분단의 심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정계의 좌우합작은 미군정 당국자의 미숙한 정치적 행위에 의해서 진정한 의미의 좌우통합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정치적 활동기반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P.46)

남북분단의 시원 유래에 대하여 미국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그들은 군사적, 정치적 완충지대로 한반도를 선택하였다.
"한반도 분할의 최초의 발상도 미국에 의해서 행해졌고, 한반도 분할의 고착화도 미국에 의해서 추구되었던 것이다." (P.47)

그렇다고 분단에 대해 무조건 외세에 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후 자주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수차에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치인들 중 일부는 권력획득이라는 소승적 시각에 갇혀 있었고 정치적 포용성도 갖고 있지 못했다. 흉탄에 쓰러져간 대표적인 지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라.

오늘날에도 친일파의 잔재는 여전하다. 어쩌면 분단 체제가 과거 청산의 실패 결과 중 하나라고 볼 때 진정한 청산은 분단체제의 극복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군의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하여 시행되었던 일제 관리체제의 유지가 이러한 독소를 깊이 퍼뜨린 것이다.

"미군정은 공산주의를 억제했으면서도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파급될 수 있는 소지를 조성시켜주는 역설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말았다." (P.51)

거기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민족세력이 이를 교묘히 악용하였다. 오늘날 소위 뉴라이트에서는 이승만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승만은 영원히 민족의 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반민특위의 활동과 와해(오익환)'를 읽어보면 그가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칭 정통 야당의 대명사인 민주당도 과거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민주당의 창설자들이 누구인가? 처음에는 이승만과 야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였던 친일파와 지주세력의 연합체다. 그들이 후에 이승만과 사이가 갈라져서 야당화했을 뿐 만약 이승만이 고분고분한 허수아비였다면 그들은 결단코 집권당의 달콤함을 즐겼을 것이다.

따라서 진덕규는 미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미군정의 통치가 보여준 비효율성과 이데올로기적인 편협성, 그리고 권력구조 충원의 보수성은 한국정치의 민족주의적 측면에서는 비판의 중요한 대상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P.56)

개인적으로 여운형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증폭되었다. 당시에는 이승만 등이 극우파, 김규식이 중도우파, 여운형이 중도좌파, 박헌영이 극좌파로 대별되었다고 한다. 21세기의 현시점에 정상적으로 존속하는 체제는 좌나 우를 막론하고 중도세력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중도파가 중심을 이루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지녔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여운형 주도의 건준이 미군에 의해 인정받거나 또는 김규식과의 합작운동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친일파의 숙청과 아울러 북한에 비해 약점의 하나가 바로 토(농)지개혁의 실패라고 하겠다. 유인호는 "누구를 위한 농지개혁인가"하고 반문한다(P.442). 그 대답은 다음과 같다.

"토지소유의 봉건적 지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보장할 수 있었던 지주계층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견해에 주도되어 실시된 것이 우리나라 농지개혁이다. (P.462)
'우리나라 농지개혁의 농민부재성은 농지개혁의 원칙설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업시행과정의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관철되어 있는 기본적 특성이다." (P.466)

이상과 같은 논의의 바탕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단의 경험 30년은 우리에게 분단의 극복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최우선의 민족사적 과제이며 이 과제의 성취 없이는 그 어떠한 발전도 번영도 언제나 일시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P.552)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총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냉랭한 작금이다. 우리는 여전히 1945년의 주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이 책에게 여전히 일독할 가치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8.4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오스만 제국사 - 적응과 변화의 긴 여정, 1700~1922 서울대학교 중앙유라시아연구소 교양 총서 1
도널드 쿼터트 지음, 이은정 옮김 / 사계절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구인들에게 오스만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대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진행형이다. 오스만의 광대한 영토는 사라졌지만 튀르크를 계승한 터키가 독립국가로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그래서 터키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던 듯하다. 과거에는 결코 유럽이 아니었고 적대국이었는데 갑자기 유럽의 일부가 되겠다고 하니 문화적 정서상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오스만 사학계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서구 기독교적인 편향에 물들지 않고 오스만에 대한 비교적 공정한 기술과 평가를 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만 오스만의 전성기인 15~17세기가 아니라 후반부를 위주로 하고 있어 강대한 정복 제국의 면모를 일람하기에는 아쉬움도 있다. 대체적으로 오스만은 2차 빈 공략의 실패 이후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절뚝거리다가 1차 세계대전 후 패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저자는 비록 오스만이 조금씩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급격히 쇠퇴하지 않았음과 이따금씩 강력한 반격을 가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어쨌든 유럽에 일정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중동 지역도 세력권 내에 유지하고 있었다.

유럽인은 동방의 정복 제국에 역사적 경험에서 체현된 공포심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한 훈족, 무시무시한 타타르로 악명을 떨친 몽골족, 그리고 유럽을 삼킬 뻔한 오스만 등. 두려움에 대항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대상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이다. 별것 아니라고 자기주문을 외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럽인은 정복제국을 야만인으로 비하한다. 우월한 서구문명을 침탈한 병균 같은 존재로서.

저자에 따르면 오스만 치하의 많은 종족들은 오스만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성기의 로마가 그러했듯이 오스만 제국은 역내의 자유로운 교역과 안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에서의 민족주의 운동은 소수에 의해 조직되고 선동된 소수파의 운동이었다...어떤 종족에 속하든 오스만 무슬림들은 오스만 통치 아래 근본적으로 만족했으며, 적극적으로 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P.290~291). "지방 명사...이들은 '지방의 오스만인'들이었고, 아무리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오스만 체제의 일부가 되고자 했으며, 또한 그 체제의 일부였다."(P.93).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던 땅에 현대에 30여개가 넘는 나라가 세워졌고 잦은 종족간 종교간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가는 역설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관용과 통합 정책의 대가였는지를 반증한다고 하겠다. 오늘 조선일보에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교수의 <제국의 미래> 기사가 게재되었다. 모든 초강대국의 키워드는 '관용'에 있다고 한다. 시사점이 자못 크다. 비록 목차를 살펴보니 오스만을 불관용 항목에 집어넣었지만 이는 저자의 서양인 특유의 무지(?)와 편향에 연유한다고 조심스레 추측한다. 그래서 저자도 "오스만 제국을 연구하고, 그에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부여해야 하는 보다 더 명확한 이유는 오스만 제국이 그 역사의 거의 대부분에서 보여준 관용적인 통치의 모범 때문이다."(P.29)라고 지적하였다.

애초에 저자는 이 책을 오스만 제국사의 입문서로 의도하였으며 그래서 관계된 근현대사에 많은 지면을 할당하고 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을 부패하고 후진적이며 안락사를 기다리는 정체된 제국으로 묘사하는 몰역사적인(서문에서) 결함을 조금이나마 보완하려고 의도했다. 어느 정도는 1번 타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이다음에 더 상세한 내용으로 독자의 관심을 유도할 만한 클린업 트리오의 부재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0.6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터키가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한 때는. 셀주크 투르크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가 일정한 흥미를 주었지만. 더 눈부신 세계사의 다른 구비가 그리고 질곡과 왜곡의 한국사가 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광풍이 몰아닥쳤다. 나는 코웃음쳤다. 차라리 기본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만다. 완역본이 없어서 축약본을 구입해 읽었다. 나나미의 글만 접한 사람보다는 왠지모를 뿌듯함이 으쓱하게 만들었다.

얼마후 심심풀이로 그의 전쟁 삼부작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주인공은 베네치아(내지 로마문명)라고 누구나 알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삼부작을 통해서 로마 기독교 문명이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필사적이었으며 드디어 무슬림의 의도를 분쇄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오스만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누구인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서 천년을 넘긴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서구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그 자신이 천년 가까이 존속을 유지한 저력을 발휘했던 그들. 하지만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터키가 궁금해졌다. 터카의 어제와 오늘. 때맞추어 여행지로서의 터키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그리고 파묵칼레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걷는다>를 통해 터키를 횡단하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통해 현대 터키를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목마르다. 백문이불여일견, 만고의 진리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터키에 대한 개설서. 월드컵을 계기로 나온 책. 하지만 어떠랴. 무엇이든 계기가 필요한 법.

터키가 자리한 땅의 역사가 무척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서에도 등장하는 그곳.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유적지로부터 트로이의 무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현장이 이 땅이라는 사실도 재발견하였다. 터키의 역사유적은 비잔티움과 오스만의 이스탄불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케말 파샤를 떠올린다. 훗날 아타튀르크로 추앙받는 그는 기력을 쇠한 오스만의 사체를 뜯어먹으려는 열강의 탐욕을 뿌리치고 한줌의 터키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다. 그 덕분에 터키는 중세에서 갑자기 현대국가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변화에 국민도 정치도 군대도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건국자들를 대비시킨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그렇다치고 박정희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아타튀르크가 될 수도 있었다. 조그만 미련을 덜 가졌더라면 비명횡사도 존경도 모두 잃지는 않았을터.

10.26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국민학교 저학년. 방과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죽었다라는 말 외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건의 파장이 우리 역사에 이리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울 줄은 몰랐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진 터키. 한국전쟁 때 터키가 16개 참전국 중의 하나이며 수많은 전사자를 남긴 사실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된다. 참전의 동기야 다 다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피가 우리 산하에 뿌려진 것은 사실이니 그 의의는 폄하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시아의 동쪽 끝, 대한민국과 서쪽 끝, 터키. 재밌는 지정학적 동질성을 지녔다. 먼 역사의 뿌리는 아마도 유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으로 달렸고 그들은 줄곧 서로 전진하였다. 이제 그들과 우리 모두 땅끝에 도달해 있다. 과거의 아픔이 땅끝의 체험이라면 새로운 양국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궁금하다. 그래서 코렐리라면 카르데수나 칸카르데쉬로 여기는 그들과 깊은 인간적 유대를 맺어보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백일몽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8.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세계화와 그 불만 - 前세계은행 부총재 스티글리츠의 세계화 비판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송철복 옮김 / 세종연구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너덜너덜해진 양장본이 이 책에 대한 다중들의 관심을 웅변한다. 그만큼 우리는 세계화의 진지한 담론에 굶주렸던 것이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어느 날 문득 IMF 위기가 쓰나미 같은 기세로 몰려와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고통의 나날을 견뎌야 했다.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화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주역인 국제통화기금(IMF)과 배후의 미국 재무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IMF 관계자라면 이 책에 상당한 치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도 전직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지적이니 말이다.

1990년대 말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은 적정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구제 금융을 신청한 죄인의 입장에서 시혜기관이 던져주는 달러를 받기 위해 입도 뻥끗 못하고 죽은 듯이 복지부동하던 시절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IMF가 수행한 역할이 오히려 위기를 장기화하고 심화하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금융 긴축으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양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가중되었다고 한다. 차라리 통제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여 기업 활동이 이어져 나가게 하고 산업 전반이 침체되는 것을 막는 것이 나았다고 한다. 외자는 고금리가 아닌 사회적 안정과 경기 동향을 보고 투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당시 전후로 IMF의 처방은 한결같았다.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는 IMF가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직 금융계의 이익에 헌신하는 방향으로 변질된 데 연유한다. 이 변질은 한두 명의 주도가 아니라 관료들의 출신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비민주성에 기인하여 뿌리박힌 것이다.

무역 자유화와 금융 자유화가 경제 발전에 반드시 기여한다는 보장은 없음에도 소위 선진국에서도 완전한 자유화를 시행하지 못하는데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구제 금융을 무기로 자유화를 강제하여 경제가 파탄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글리츠는 케인즈주의자다. 이는 그가 개발경제를 전공하고 있음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시장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금융계의 시각에서는 훌륭할지 모르더라도 그 속에 인간이 누락되어 있다. 세계는 수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치가 화폐로 환산되면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에게는 미세한 수치가 주는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한동안 음모론(P.22~224)이 횡행하였다. 부상하는 아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서방의 의도된 음모라는 것이다. 사실 IMF 경제위기에서 덕을 본 이는 해당국의 부유층과 채권단(서방은행 등)들 뿐이다. 구제금융은 외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되었다. 외채도 서방 금융계의 것이며, 구제 금융도 결국 서방 금융계에서 나왔으니 꿩 먹고 알 먹고에 폭락한 실물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조치였던 셈이다.

어찌어찌하여 우리나라는 위기의 긴 터널을 벗어났나 싶었다. 그리고 10년 후 다시 전자 못지않은 강력한 위기에 휘말려 제2의 IMF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이번에는 우리보다는 소위 선진국들의 잘못이 훨씬 커다란데도 거대한 풍랑은 나룻배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시장은 신이 아님에도 많은 금융계 인사들은 이를 신격화한다. 신은 무오류성의 속성을 지닌다. 시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국가와 정부는 필요악이므로 최소한의 역할, 즉 야경국가의 역할만 이행하면 충분하다. 최근 수십 년간 세상을 지배하던 관념이다. 이제 신화는 깨지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움켜쥔 채 하늘로 오는 줄 만 알고 좋아하다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구체적 논의가 궁금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09-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11.1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