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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공지영이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이 있었다. 본인의 개인사를 소재로 한 것인데,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전남편이 소송을 걸기도 하였다. 아무리 작가가 사실을 토대로 한 허구라고 하여도 어리석은 우리네 범인(凡人)들은 여전히 사실과 허구를 혼동한다. 아니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의 의식, 무의식의 다양한 파편들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소설들을 만든다...독자들의 의식 속에서 소설가가 쓴 글들은 너무 쉽게 글쓴이를 지향한다. 우리는 한 작가의 소설로부터 구성해 낸 인물의 초상과 그의 삶을 너무 편리하게 현실 속의 작가와 동일시해 버리곤 한다.” (P.170~171)
지금 내가 읽는 <생의 이면>은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삶 자체를 재구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는 범인(凡人)이 우대받는다. 소설과 사실을 명백히 구분할 줄 아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신선하지 못한 접근방식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그리 나의 삶과 똑같을까 무르팍을 쳐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작중 박부길과 나는 삶의 환경과 궤적이 천양지차이다. 그러나 그의 태도와 내적 심리는 때로 나를 당혹하게 할 정도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책장을 접은(난 인상 깊은 대목은 책장 끝은 살짝 접어놓는다. 그래야 나중에 재음미하거나 감사기를 적을 때 유용하다) 적은 처음이다.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라고 하지만, 성실함의 징표 같은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아니었다...거기 적은 내용도 그날 있었던 일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고...대부분 내면의 수상한 움직임들을...포착한 것들이었다.” (P.91)
지금은 거의 일기를 쓰지 않지만 한때나마 간헐적으로 몇 자 끄적이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의 일기 쓰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였다. 며칠에 한 번 뭔가 삶에 강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나 인식이 있을 때만.
박부길의 필화사건(P.92~93)을 읽다보니 지나간 나의 필화사건들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다. 초등학교때 난 나름 문학소년 이었다. 그땐 상상력이 풍부했는지 시흥에 겨워 곧잘 시 몇 구절을 쓱 적어나가곤 하였다. 그때 노트가 아직 남아있으면 재밌으련만. 어머니께서 군인이신 첫째 작은아버지께 위문편지를 쓰라고 시켰는데, 난 쓰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재촉하다가 내가 편지는 쓰지 않고 시 나부랭이만 끄적거리니 화가 나신 당신은 내 시작(詩作) 노트를 빼앗아 확 찢어버리셨다. 그때 이후로 난 시를 쓰지 않는다.
고3 들어서 학기 초에 담임이 모두에게 편지를 쓰라고 지시한다. 수신자는 부모님. 내용은 이제 고3이 되었으니 정신 차려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가겠다 등등. 다음날 난 편지를 써 가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몇 명이 불려나왔다. 일장 훈계 후 내일까지 써올 사람은 들어가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담임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안 써올 거냐고 묻는다. 난 쓸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평소 해오던 것이라 별도로 편지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손찌검이 뒤따랐고, 난 교무실로 끌려갔다. 난 결국 편지를 쓰지 않았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세상을 쉽게 믿지 않고, 세상은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따돌림의 대상이 된, 생각이 많은 사람은, 복수하듯 세상을 따돌릴 채비를 한다. 거기서는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돌출한다...모든 오만의 기본 정서는 슬픔과 울분, 또는 스픈 울분이고 그 뿌리는 좌절감임을 나는 안다.” (P.106)
나 역시 세상과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여전히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세상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 홀로 독야청청하리라. 옛적의 은자(隱者)처럼. 고독하지만 쓸쓸하지는 않다. 한동안은 이러한 심경이 나를 약간의 우울증 증세로 몰고 가기도 하였다.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가 감당하기에 힘들다고 우려하던. 이제 나이가 제법 든 탓인가 예전같은 흔들림은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쓰라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을 뿐.
“내가 살던 자취방은 이상스레 어두웠다...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불을 켜지 않고 살았다...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어둠의 넓고 깊은 품에 푹 잠기기를 좋아했다. 어둠은 얼마나 아늑한지, 얼마나 아늑하고 편안한지...”(P.110)
중학교 때 나도 내 방을 굴속같이 어둡게 한 채 종일을 보내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조명을 겨지 않고 커튼을 치면, 북향인 내 방은 그야말로 은둔지로서 제격이다. 대낮의 어둠속에서 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백일몽을 꿈꿀 수 있었다. 거기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래서일까 난 아직도 빛 보다는 어둠을 선호한다. 환한 빛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눈을 아프게 만든다.
“그 시절, 나는 아주 간절하게 동지를 찾고 있었다...나는 아무와도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귀지 못했다. 누구에게서도 동질성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P.112)
내가 찾은 인생의 반려자는 동질성을 지닌 동지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과도한 경건성과 정신성의 갈구로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 어느 정도 나의 취미를 공유하고 그리고 적어도 나라고 하는 괴팍하기 그지없는 유형의 인간에 대해 조그마한 이해를 품은. 하지만 결혼에서 그런 거창한 포부를 찾는 이여, 일치감치 망상에서 벗어나라. 결혼은 말 그대로 생활을 그대에게 몰고 올 뿐.
"나의 사랑은 그런 식이었다. 사랑은 평화라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그러나 나의 사랑은 도무지 평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그렇다. 나는 사랑을 전쟁처럼 하고 있었다. “ (P.216)
박부길과는 다르지만 내게도 사랑이 있었나보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탈 고독 욕구가 아니었을까 회의도 든다. 아니면 약간의 동정심과 정욕의 복합체. 뭐라고 지칭하건 내게 결혼이라는 걸 해보게 한건 그녀, 그리고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부담스러워 하였다. 그땐 난 사랑하는 방법을 아직 몰랐다.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와 각오도 미처 없었다.
만물이 그러하듯 생(生)도 양면을 지닌다. 보통의 우리는 생의 긍정적인 면, 생의 밝은 면만을 주목하고 바라본다. 고통과 슬픔 없이는 참다운 인간은 완성되지 않는다. 생의 드러나지 않은 면, 즉 어둠속에 숨어있는 부분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