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잔틴 제국의 역사 ㅣ 역사 명저 시리즈 15
워렌 T. 트레드골드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읽게 된 계기 :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난 후 동로마제국의 역사편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와 한비야의 <바람의 딸> 시리즈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중동, 터키에 대한 나의 무지가 상당함을 발견하였다.
읽은 후 소감 :
동로마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 그 체제를 유지한 국가였다. 말이 쉬워 1,200년이지 그 장구한 세월을 부침을 겪으면서도 유지한 자체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의 강성한 역대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도 못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유럽이 근대 세계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 외 문화권에 대한 인식은 상당기간 평가절하 되었다. 동로마제국도 그 영토가 구공산권과 이슬람 문화권으로 계승되면서 찬란한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할 주체를 상실하게 되었다. 역사의 제자리에 복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인상깊은 대목 :
"비잔틴 제국이 뚜렷한 차별성을 나타내게 된 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을 분할하고 그후계자들이 그것을 영구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그후계자들이 그곳을 진흥시켰기 때문이다" (P.65)
=> 단순한 지역적 구분에서 벗어나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흥륭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화하였고 그리스/동방문화와 그라스어가 여기에 기여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도 맞춤법이 틀린 곳이 있다.
"...테마와 군사상의 토지 무상 불하 제도는 제국에 크게 유리했다...그들이 한층 더 열성적으로 자신들의 주둔지를 방어하게 되었다" (P.155)
"...주둔하고 있는 곳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둔전이라는 족쇄가 없는, 용병으로 구성된 수비군은 쉽사리 항복하거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주해 버렸다." (P.290)
=> 인간은 누구나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것이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테마 제도는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지와 소유물을 지키도록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이것이 비잔틴 제국이 무수한 외침에서도 중반기 이후 성공적으로 영토를 보존하게 된 큰 이유이며, 결과적으로 테마의 폐지가 제국 방어력의 급격한 쇠퇴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내 것을 남이 지켜주도록 방임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성상 숭배파와 성상 파괴파의 대립 (P.172~173)
=> 여기서 인간의 피하기 어려운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노정된다. 종교와 이념의 갈등이 애초의 존재 목적을 전복하는 현상이다. 비단 이들뿐일까? 가까이는 수많은 종교분쟁들과 양차 세계대전, 국내에서는 조선후기의 예송논쟁과 한국전쟁들. 그들은 왜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가? 그것이 그렇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가? 누구말대로 인간은 좌뇌와 우뇌가 너무 단절되어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교류와 균형이 부족한 근원적 취약성을 내포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인간의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게 만드는 자연의 냉혹한 법칙의 작용인지도.
"결국 비잔틴 인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갖고 있는 자원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부로 인해 위태로운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 부가 그들을 약탈하도록 외국인들을 유인했기 때문이다." (p.304)
=> 이 문장 그대로다. 황제는 골치 아픈 잠재적 반란자를 없애기 위하여 아나톨리아 고원지대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콘스탄티노플과 아나톨리아 해안지대, 발칸의 일부만 있으면 족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략자들이 어디 그들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가? 주면 영역의 쇠퇴는 심장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시키는 가능성을 강화할 뿐이다.
"하지만 비잔티움의 유산은 이런 실망스러운 일들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 같다." (P.372)
"오늘날 동방 그리스도 교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보다 그럴싸하게 비잔티움보다는 오스만 투르크나 공산주의 지배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P.373)
=> 동구의 낙후는 이들의 유산이고, 중동의 낙후는 이슬람에 책임을 돌린다. 그럼 동아시아의 상대적 고도성장은 유교문화의 찬란한 후광 덕분일까? 불과 1세기전만해도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이었던 이곳이? 오스만 투르크와 공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없었던 인종 청소는 왜 자유를 쟁취한 이후 나타났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날의 상대적 번영과 후퇴를 과거에 귀인할 필요는 없다. 이웃보다 역사의 전개상 우연히 조금 더 유리하게 번영의 길에 출발하는 국가가 있던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에는 낙후된 많은 서유럽 인들이 이를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 :
이처럼 좋은 책이 번역과 편집에 있어 심각한 흠결을 지닌 것은 유감스럽다. 무엇보다도 번역에 대해서는 번역자와 편집자는 머리를 들 면목이 없을 것이다. 중반부까지 쏟아지는 무수한 용어의 오자와 불일치, 거듭 읽어보아도 도대체가 독해되지 않는 구절 등. 편집과 교정작업을 생략한 채 출판한 인상을 받았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시류에 영향받을 만한 분야도 아닐 텐데. 정말 훌륭한 저작이 힘들게 나왔는데 번역상의 문제로 질타받아 원저작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제발 이런 폐단이 없기를 바라며 개정판에서는 대대적인 교정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는 신전의 재보들을 몰수함으로써 과도하게 소비하게 되고, 결코 다시는 그런 식으로 치러질 수 없는 낭비와 타락 습관이 조장되었다" (P.44)
=> 부자연스러운 번역
"...헤라클리우스는 613년에 안티오키아 인근에서 페르시아 군을 공격했다. 고전 끝에 그들은 그를 격퇴하고 팔레스타인로 진격해 들어가 예루살렘을 빼앗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십자가로 믿어지고 있는 유물을 손에 넣고, 이 도시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도를 추방한 뒤 유대 인들이 그곳에 다시 정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P.142)
=> 처음에는 무슨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빼앗은 동로마가 왜 그리스도 교도를 추방했을까? 한데 자세히 보니, '그' 와 '그들'에 이해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또한 첫 문장과 두번째 문장에서의 주체가 역전되어 있다. 기막힌 문학적 표현 아닌가???
"비잔티움이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저 유럽 국가들이 조직의 정도나 심지어 세입에서까지 제국을 능가하고 있었던 14세기에만, 비잔티움은 시대에 앞선 근대 국가였다." (p.369)
=> 처음 읽으면 뭔가 그럴듯하게 여겨져 넘어간다. 자세히 음미하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앞뒤 문맥상 비잔티움이 14세기까지는 서유럽보다도 앞선 근대 국가라고 해석해야 의미가 맞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