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스티븐 런치만 경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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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비잔틴 제국의 역사>로 동로마제국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 지식을 파악하였다. 그럼에도 다시 이 책을 펼쳐든 것은 무슨 연유인가. 장구한 제국의 마지막 순간을 미시적으로 이해하는 게 의미가 있을지 한편으로는 회의도 있다. 비잔티움은 십자군의 침공 이후 사실상 멸망한 것과 다름없다. 수십년 후 다시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기는 하였지만 제국은 최후 순간까지도 라틴제국의 잔해와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지배하는 섬들, 그리고 내부 유력세력에 의해 조각나 있었다. 그런 비잔티움에게 있어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당연한 역사적 수순이라 하겠다.

서구에서는 비잔티움의 멸망을 중세와 근세를 가르는 상징으로 파악하였다고 한다. 15세기 유럽인에게 있어 로마제국은 옛적의 아스라한 추억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로마제국의 한 축이 동방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고목이 쓰러지듯 넘어갔던 것이다. 이것으로 이 책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본다. 어쩌면 노제국에 대한 만가로서의 역할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자그마치 10배가 넘는 오스만군의 포위에 대항하여 수개월간이나 버틴걸 보면 비잔틴인들의 필사적 노력도 가상하지만 난공불락으로 명성이 자자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도 엄청났음을 새삼 알게 된다. 성벽 비상문이 열려있는 우연이 아니었다면 최후의 총공세도 아마 무위에 그쳤을 테고 그러면 비잔티움은 그 질긴 생명을 연장했겠지만.. 결국 역사는 비잔티움 대신에 오스만 투르크를 선택한 것이다.

수개월의 공방전 동안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원군이 있었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동과 서의 간극은 너무 크고 감정의 앙금은 깊게 가라앉았다. 유럽인에게 비잔티움은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리스인의 국가일 뿐이다. 종교는 화합을 위한 부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죽하면 오스만은 트로이인의 후예이고 따라서 비잔티움 멸망은 고대 그리스가 트로이를 멸망시킨 업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비잔티움의 최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천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국가이든 중국처럼 2백년 만에 왕조 교체가 이루어지는 국가이든 거대체제의 종말은 내부적 모순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내부가 일치단결하고 번영과 화합을 누릴 때 외침에 의해 멸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주저앉을 준비가 되어있는 체제에 외부의 일격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비잔티움은 달랑 수도밖에 남은 게 없는 상태였다. 콘스탄티노플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면 몰라도 무한정 포위상태에서 버티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성 밖에서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공성전을 택한 것은 물론 병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얼마동안 만 버티면 제풀에 철군하던가 그렇지 않더라도 서방에서 구원군이 올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스만의 술탄은 끝장을 보려고 결심했고 거대한 대포라는 신무기를 개발하여 두꺼운 성벽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겼다. 그리고 유럽은 당시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게도 바빴다. 그들에게 오스만은 아직 직접적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비잔티움은 명맥을 다하였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다시 살아났다. 동로마에서 오스만으로 지배세력은 교체되었지만 수도의 지위는 유지하였다. 정교에서 이슬람으로 정체성이 변경되었고 이름마저 이스탄불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번영을 누렸다. 여전히 동과 서를 잇는 요충지로서. 그것은 일종의 숙명이자 비잔티움과 오스만이 일대 제국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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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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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제국의 역사 역사 명저 시리즈 15
워렌 T. 트레드골드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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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게 된 계기 :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난 후 동로마제국의 역사편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와 한비야의 <바람의 딸> 시리즈를 통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중동, 터키에 대한 나의 무지가 상당함을 발견하였다.

읽은 후 소감 :
동로마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 그 체제를 유지한 국가였다. 말이 쉬워 1,200년이지 그 장구한 세월을 부침을 겪으면서도 유지한 자체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한다. 중국의 강성한 역대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도 못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유럽이 근대 세계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 외 문화권에 대한 인식은 상당기간 평가절하 되었다. 동로마제국도 그 영토가 구공산권과 이슬람 문화권으로 계승되면서 찬란한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할 주체를 상실하게 되었다. 역사의 제자리에 복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인상깊은 대목 :
"비잔틴 제국이 뚜렷한 차별성을 나타내게 된 것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을 분할하고 그후계자들이 그것을 영구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그후계자들이 그곳을 진흥시켰기 때문이다" (P.65)
=> 단순한 지역적 구분에서 벗어나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흥륭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화하였고 그리스/동방문화와 그라스어가 여기에 기여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도 맞춤법이 틀린 곳이 있다.

"...테마와 군사상의 토지 무상 불하 제도는 제국에 크게 유리했다...그들이 한층 더 열성적으로 자신들의 주둔지를 방어하게 되었다" (P.155)
"...주둔하고 있는 곳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둔전이라는 족쇄가 없는, 용병으로 구성된 수비군은 쉽사리 항복하거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주해 버렸다." (P.290)
=> 인간은 누구나 내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그것이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테마 제도는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지와 소유물을 지키도록 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였다. 이것이 비잔틴 제국이 무수한 외침에서도 중반기 이후 성공적으로 영토를 보존하게 된 큰 이유이며, 결과적으로 테마의 폐지가 제국 방어력의 급격한 쇠퇴를 불러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내 것을 남이 지켜주도록 방임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성상 숭배파와 성상 파괴파의 대립 (P.172~173)
=> 여기서 인간의 피하기 어려운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노정된다. 종교와 이념의 갈등이 애초의 존재 목적을 전복하는 현상이다. 비단 이들뿐일까? 가까이는 수많은 종교분쟁들과 양차 세계대전, 국내에서는 조선후기의 예송논쟁과 한국전쟁들. 그들은 왜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가? 그것이 그렇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인가? 누구말대로 인간은 좌뇌와 우뇌가 너무 단절되어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교류와 균형이 부족한 근원적 취약성을 내포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인간의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게 만드는 자연의 냉혹한 법칙의 작용인지도.

"결국 비잔틴 인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갖고 있는 자원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부로 인해 위태로운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 부가 그들을 약탈하도록 외국인들을 유인했기 때문이다." (p.304)
=> 이 문장 그대로다. 황제는 골치 아픈 잠재적 반란자를 없애기 위하여 아나톨리아 고원지대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콘스탄티노플과 아나톨리아 해안지대, 발칸의 일부만 있으면 족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침략자들이 어디 그들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가? 주면 영역의 쇠퇴는 심장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시키는 가능성을 강화할 뿐이다.

"하지만 비잔티움의 유산은 이런 실망스러운 일들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 같다." (P.372)
"오늘날 동방 그리스도 교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건설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보다 그럴싸하게 비잔티움보다는 오스만 투르크나 공산주의 지배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P.373)
=> 동구의 낙후는 이들의 유산이고, 중동의 낙후는 이슬람에 책임을 돌린다. 그럼 동아시아의 상대적 고도성장은 유교문화의 찬란한 후광 덕분일까? 불과 1세기전만해도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이었던 이곳이? 오스만 투르크와 공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없었던 인종 청소는 왜 자유를 쟁취한 이후 나타났는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날의 상대적 번영과 후퇴를 과거에 귀인할 필요는 없다. 이웃보다 역사의 전개상 우연히 조금 더 유리하게 번영의 길에 출발하는 국가가 있던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에는 낙후된 많은 서유럽 인들이 이를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 :
이처럼 좋은 책이 번역과 편집에 있어 심각한 흠결을 지닌 것은 유감스럽다. 무엇보다도 번역에 대해서는 번역자와 편집자는 머리를 들 면목이 없을 것이다. 중반부까지 쏟아지는 무수한 용어의 오자와 불일치, 거듭 읽어보아도 도대체가 독해되지 않는 구절 등. 편집과 교정작업을 생략한 채 출판한 인상을 받았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시류에 영향받을 만한 분야도 아닐 텐데. 정말 훌륭한 저작이 힘들게 나왔는데 번역상의 문제로 질타받아 원저작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제발 이런 폐단이 없기를 바라며 개정판에서는 대대적인 교정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는 신전의 재보들을 몰수함으로써 과도하게 소비하게 되고, 결코 다시는 그런 식으로 치러질 수 없는 낭비와 타락 습관이 조장되었다" (P.44)
=> 부자연스러운 번역

"...헤라클리우스는 613년에 안티오키아 인근에서 페르시아 군을 공격했다. 고전 끝에 그들은 그를 격퇴하고 팔레스타인로 진격해 들어가 예루살렘을 빼앗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십자가로 믿어지고 있는 유물을 손에 넣고, 이 도시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도를 추방한 뒤 유대 인들이 그곳에 다시 정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P.142)
=> 처음에는 무슨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빼앗은 동로마가 왜 그리스도 교도를 추방했을까? 한데 자세히 보니, '그' 와 '그들'에 이해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또한 첫 문장과 두번째 문장에서의 주체가 역전되어 있다. 기막힌 문학적 표현 아닌가???

"비잔티움이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저 유럽 국가들이 조직의 정도나 심지어 세입에서까지 제국을 능가하고 있었던 14세기에만, 비잔티움은 시대에 앞선 근대 국가였다." (p.369)
=> 처음 읽으면 뭔가 그럴듯하게 여겨져 넘어간다. 자세히 음미하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앞뒤 문맥상 비잔티움이 14세기까지는 서유럽보다도 앞선 근대 국가라고 해석해야 의미가 맞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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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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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노 대산세계문학총서 58
알 자히드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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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아랍지역의 수전노에 관한 일화를 모아놓은 일종의 야담집이다. 이 작품은 '아랍 고전문학의 진수'라며 대단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당시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실성 있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인 듯하다. 문학성과 재미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러한 저작이 국내에 번역 출판된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다. 해설에 따르면 영어 번역본도 1997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수전노라고 칭하는게 타당한가 계속 의문이 든다. 수전노라고 하면 극단적 인색함으로 부정적인 이미지의 대명사다. 구두쇠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이 중에는 수전노에 부합되는 인물들도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합리적 절약 내지 검약, 즉 구두쇠 정도라고 할 만한 사례가 보다 많다.

여기에서 당시 아랍사회의 특수성이 등장한다. 사막과 초원지역에서 대부분이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손님 환대의 풍습이 강하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리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저절로 나타나게 된 일종의 자연법이다. 그리고 이를 위반하면 실정법의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해설에 나온 아랍인과 비아랍인, 특히 페르시아인의 정치적 관계 변화를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수전노의 등장과 세력 강화는 아랍인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된 데 연유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스람 제국의 성립 이전 각지로 산재된 작은 정치집단으로 생활하게 된 아랍인이 지배방식은 바뀌었지만 어쨌든 이슬람 종교의 통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한 문명집단 혹은 시장을 형성하게 되면서 유목 대신 상업이 경제생화의 중심이 되었다. 상업세계에서는 거래가 존재할 뿐 일방적 자선은 없다. 따라서 무조건적 손님 환대라는 관습도 서서히 흔들리게 되었다. 전통주의자에게는 이것이 못마땅한 변화이며 구두쇠가 아닌 수전노로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소위 수전노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너희들은 실수를 범할까 두려워 재산을 못 쓰도록 금지하는 사람이나, 속임수를 당할까 두려워 재물을 요새 안에 가두어두는 자, 혹은 재산을 잃을까 우려하며 지키고 있는 자를 '수전노'라 부른다...너희는 부의 장점을 무시하는 자, 가난이 가져다주는 굴욕을 경험해보지 않은 자, 낭비를 일삼는 자, 쉽사리 실수를 하는 자, 행복을 남용하는 자, 쉽사리 남에게 관용을 베푸는 자를 '관대한 사람'이라 부른다."(P.143)

"너희들은 주장하길, 내가 탐욕을 검약이라 부르고 욕심을 절약이라 불렀다고 했다...너희들은 낭비를 관대함이라 하고..."(P.144~145)

"사람들은 사치를 관용으로 또 관대함으로 여긴다. 그것은 나약함과 허풍의 산물인데도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P.282)

그것은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고전 '흥부전'을 보자. 권선징악의 대표적 본보기로 인구에 회자되곤 하였다. 오늘말 흥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법 크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처지에 대책없이 아이만 잔뜩 낳은 한심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제비의 부러진 다리라는 로또에 의존한 그의 재산형성도 본받을 사례는 아니다. 반면 놀부는 투철한 경제 관념으로 생활속에서 절약을 통해 부의 축적으로 도모하였다. 빈민에 대한 일방적 시혜는 오히려 가난을 고착시키는 악효과를 낳는다. 이만큼 현대인의 삶의 방식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변동동이 발생한다.

개안적으로 이런 유형의 저작물은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전체적인 집중도의 응집을 가져오기 어렵다.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쉽게 지루함을 동반한다. 그러한 연유로 <서유기>와 <연탄길> 등을 읽다가 중간에 접은 경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압권은 제13장이라고 평가한다. 세들어 사는 사람에게 사촌이 아들과 함께 와서 한 달 정도 머문다고 하자 집세를 올리겠다며 장문(P.132~143)의 사유서를 통보하는 수전노 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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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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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나무 대산세계문학총서 63
피오 바로하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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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를 제외한 스페인 작가의 글은 처음 읽는다. 그만큼 스페인은 우리에게 가깝지만은 않은 존재인가. 대산세계문학총서에 새삼 고마움을 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난 후 소감은 '담담함'이다. 이 단어가 이 소설의 특질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성장소설을 연상시키는 작픔 전개는 마지막에 급작스러운(하지만 당연한) 주인공의 죽음으로 결말난다.

'과학의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에덴동산에 있다는 나무이다. '생명의 나무'와는 대조되는 의미에서 말이다.

작가는 안드레스 우르타도라는 젊은이를 내세워 당시 스페인의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부조리와 비합리성, 낙후성을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드러낸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대 스페인제국은 무수한 식민지를 상실하고 이제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완패할 정도로 몰락하고 만다. 사회에 팽배한 상실감과 패배의식 속에 피오 바르하는 분노를 한껏 표출해도 되련만 자제로 이에 대응하며, 후미진 구석을 더 깊고 자세히 그려도 되겠건만 문을 열어서 안을 보여주고는 다시 닫고 만다. 어찌 보면 감질난다고 할 정도로. 이건 작가의 스타일인데, 이또한 피오 바르하가 다른 18세기 작가들과는 비교되는 현대성의 일부라고 한다.

이 작품의 성장소설적 구조는 안드레스가 아버지의 세속성에 대한 강한 불만과 의대생으로 겪고 사색해나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칸트와 쇼펜하우어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적인 해결책은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애정과 자비심에 기초한 정신적 아나키즘에 경도되어 가고 있었다"(P.60).

우르타도와 삼촌 이투리오스 간의 철학적 담화는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다. 제4장을 구성하는 이 담화는 작가 자신의 삶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 이투리오스가 생명의 나무, 즉 주지주의에서 벗어나는 생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보는데 반해("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P.160) 안드레스는 이성과 의지의 중요성과 우월성을 신뢰한다.

굴원의 어부사가 연상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고, 모두가 흙탕물에 옷을 적시는데 나만 홀로 깨끗하다. 안드레스가 바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가 본 스페인 사회는 모두가 취한 사회였다. 그는 아무일 없듯이 그들에 합류하여 취하거나 옷을 더럽힐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었을텐데, 한줄기 끈이 그것을 지연시켰다. 룰루와의 교제와 결혼이 그것이다. 그녀의 존재는 그가 세상과 맺고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고 그녀를 통해서 그는 세상과 최소한의 관계나마 형성할 수 있었다.

그는 룰루의 염원과는 달리 아이을 낳는데 찬성하지 않았다. 어지럽고 희망없는 세상에 또다른 비주류를 잉태한다는 것은 비극이고 무책임한 짓이다. 출산은 사산으로 끝났고 룰루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도 세상을 버린다. 룰루라는 한가닥 실마저 끊어진 마당에 생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너무 안됐어! 이 친구, 이제 아주 잘나가고 있었는데!" 이투리오스가 외쳤다. 그들이 하고 있던 말을 들은 안드레스는 영혼이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P.288)

그는 잘나가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근근이 연명을 하고 있었을 뿐.

여러모로 특이한 소설이다.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전개의 고조와 클라이막스를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기 딱이다. 문학작품에서 기대하는 감정의 몰입도 어울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뭔가 독특함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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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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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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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로드 무비가 있다면, 이 작품은 '로드 소설'에 적합하다. 적어도 중반부까지라도. 오르한 파묵. 노벨문학사 수상자로 성가가 높다. 더구나 터키 출신의 비서구권이라 진정한 실력파라고 생각되었다.

겨우 한 작품 가지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예단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작품 해설을 보면 <타임스>가 "현대의 가장 특이한 작가들 중의 한 명"(P.390)이라고 하였다는데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더구나 이 작품은 그리 녹록치 않다. 파묵의 미덕이 서사성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분명히 서사는 서사인데...굳이 분류하자면 순수한 서사 보다는 상징적 서사에 가깝다. 전체 플롯은 존재하지만, 이것이 사실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모호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작품 해설에서도 그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가 서술하는 것은 구체적인 삶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들'의 세계이자 실상이며, 그 이미지들이 다양한 의미로 인용되는 구조다."(P.391)

하긴 출발부터 그러하다.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새로운 세계'에 대해 자각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선다. 이 부분이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된다. 잔뜩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작품 내내 언급이 없다.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렇게 인생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지.

"책 한 권을 읽은 후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고,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였다."(P.63)

작품은 무심하게 흐른다. 오스만의 자각과 여학생 자난의 만남, 메흐메트와 자난의 실종.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방랑 중 재회. 이어서 나린 박사와의 운명적 만남. 그렇다, 그것은 운명적이다.

오스만의 차가운 분노는 자난과 메흐메트가 자신을 속여서 그 책에 빠져들게 한 데 대한 것이 아니다. 덕분에 수년의 세월을 도로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자난과 행복한 동행을 하였다. 오스만은 여전히 '새로운 인생'을 갈망하고 있다. 그 책의 저자를 알게 되고, 그것의 신비로움의 꺼풀이 벗겨졌다. 그러나 그는 이를 뿌리칠 수 없다. 자신의 온몸과 영혼을 바치려고 하였던 그것. 그것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는 시골에서 개명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하는 또다른 오스만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모습이었으므로.

"그의 인생이 이미 자리를 잡았고 책 속의 표현처럼 '정상 궤도에 들어섰음'을 나는 보았다...내면의 평화를 찾아냈던 것이다...그가 찾았던 균형의 평온은 그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영원한 시간을 주었다."(P.286)

나린 박사는 다소 비극적인 동시에 희화적이다. 서구화, 개방화에 저항하여 전통적 가치와 고유성을 옹호하려는 그와 대리점주 모임의 노력은 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을 읽고 새로운 인생을 구하는 사람들을 죽인다. 자신의 아들이 변한 게 그 책이라고 판단하고 말이다.

"모든 것이 단지 하나의 책이 만들어 낸 것일까? 그 책은 거대한 음모의 아주 작은 도구일 뿐이야."(P.181)
"우리 젊은이들이 이러한 유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한두 권의 책을 가지고 '모든 세상을 혼란케 한다는 것'을..."(P.184)

나린 박사의 집에서 헤어진 여학생은 결혼하고 독일로 간다. 오스만도 일상으로 복귀하여 결혼하고 아이도 낳는다. 그리고 은둔한 오스만을 죽인다. 14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찾아다닌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 캐러멜 창안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천사를 만난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그토록 고대하던 찰나와 영겁의 시간.

이 모든 굴곡을 작가는 극적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세부적인 묘사를 피하고 슬렁슬렁 넘어간다.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물의 물결마냥 담담히 흘려보낸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새로운 인생. 파묵이 말하는 '새로운 인생'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새로운 인생은 따로 없는지 모른다. 아니면 일상의 나날이 새로운 인생 자체일 수도 있다. 아니면 떠도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또는 방황을 멈추고 이제는 고요히 정착하는 모든 게 새로운 인생인가? 어쩌면 파묵은 이 모든 열려진 결말(open ending)을 우리가 생각해 보도록 권유하고 있나 보다. 그게 그의 의도라면 그는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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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7.12.13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