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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평점 :
2007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여성 작가들이 다수 포진하였다. 이러한 여초 현상은 하루이틀 아니지만 그만큼 글을 써서 생계를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반증일 것이다.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동명의 자선 대표작과 함께 연작 소설의 형태를 취한다. 두 편 모두 가정 붕괴 현상을 다루고 있는데, 소재는 약간 다르다. 전편은 유부남과 준동거생활을 하는 여자가, 후편은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하고 국제 결혼을 고려하는 여자가 각각 등장한다. 수상작인 후편 역시 여자가 유부남인 남편과 눈이 맞아 결국 이혼후 결혼한 것이니, 이미 단초는 출발부터 존재하는 셈이다. 전편에서 여자는 남자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후편에서는 "블라우스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즉 작중 인물은 그 지긋지긋한 인연을 정리하고 싶어하면서도 결국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 머무는 천사는 무엇인가?
공선옥의 '빗속에서' 역시 가족 문제를 다룬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벽한 가족 해체를 보여 준다. 여기서는 가족이란 더이상 가슴 아련한 대상이 아니다. 남 보다도 못하고 억겁의 악연이 맺어준 끔찍한 관계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은 구수한 사투리 속에서 역설적인 가족의 끈끈한 정을 보여 준다. 제 아무리 아웅다웅해도 가족은 해체될 수 없는 것임을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다소 이색적인 제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시위 학생을 고문하여 죽이는 데 관여한 후 숨어사는 공안 형사의 자취를 통해 인간과 인간사이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만 장편소설에 적합한 제재를 무리하게 단편으로 축소하다 보니 어색함이 드러난다. 단편소설의 마학이 무엇인가를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은 낯설다. 교통사고당한 노교수의 연락책을 맡는 조교의 교통사고가 주는 연속적 재앙이 우선 낯설다. 우물쭈물 생의 투쟁성이 박약한 조교가 자신과 학교와 노교수에 부딫히는 관계 설정이 낯설다. 불편함 몸으로 조교, 아들들, 가정부 등 주위사람에 대한 노교수의 삐딱함이 낯설다. 아버지의 사고소식에 집안으로 들이닥쳐 죽치다가 조교의 사고 이후로 훽 나가버리는 아들들이 낯설다. 가정부와 안주인의 분위기를 동시에 풍기는 건장한 가정부도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 모든 낯선 상황을 낯설기 그지없게 이끌고 나가는 작가가 무엇보다도 내게는 낯설다.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근원적 생명력 회복에 대한 갈구를 담아내며, 진실한 삶의 이해를 촉구한다. 이 작가는 특이한 소재를 다루는데 매료된 듯 하다.
편혜영은 '첫번째 기념일'에서 한 시골 택배 기사를 통해 기약없는 공허한 삶의 굴레를 보여주려 한다. 그다지 가슴에 다가오지는 않지만. 타인의 물품을 개봉하고 사용하는 그에게는 관음증과 페티시즘의 자취가 슬쩍 엿보인다.
김애란은 <달려라 애비>에서 재미있게 마주친 작가다. 역시 그에게는 참신성과 재미가 묻어 나온다. 작품을 쭉 읽어 나가게 하는 능력은 요즘 많은 작가들에게 결핍된 미덕이다. 생활의 미묘한 구석을 발견하고, 예상치못한 허 찌르기에서 고음과 저음의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