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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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권력이동> 이후 오랜만의 신간이다. 물론 중간에 몇편 있지만, 유명한 삼부작의 뒤를 잇는 수준은 이 책이라고 한다. 예전에 삼부작을 읽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던 나는 진작부터 예약주문을 걸어놓고 이제나 저제나 학수고대하였다.

오며 가며 통근 지하철 안에서 짤막짤막 책장을 넘기는게 아쉽지만 다행히 이번 저서는 전작들에 비하면 그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하여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아니 그동안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내 지적 수준이 그만큼 레벨업 된 것인지도.

토플러는 부(wealth)의 토대를 형성하는 심층기반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세가지 심층기반을 소개하고 있다. 즉 시간, 공간, 지식이다. 제3물결은 심층기반에 근본적인 변동을 초래하여 부 창출 시스템이 오늘날 요동치고 있으며 여기에 잘 올라탄 국가 사회는 보다 앞서나가고 있음을 무수한 사례로 보여준다. 이미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출간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수많은 서평을 참조하면 충분할 것이다.

과연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혜안과 예측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토플러만큼 뛰어나지 못하다. 확실히 그는 일반인들과 정치인들도 헤아리지 못한 깊숙한 메카니즘을 잘 꿰뚫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사항은 그의 미래사회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는 사실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이러한 인사는 쉽사리 나오기 어렵다.

인상깊은 부분은 제6부의 프로슈밍을 다룬 영역이다. 프로슈밍은 생산과 소비를 함께하는 경제를 일컫는 조어다. 화폐경제에서는 배제하고 있기도 하다. 토플러는 프로슈밍의 영역이 점점더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프로슈머들의 등장에 오히려 큰 환영을 아끼지 않는다. 아울러 기존의 경제학이 화폐경제와 아울러 비화폐경제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토플러는 서구사회의 과학기술에 토대를 둔 긍정적인 미래관을 지니고 있다. 곳곳에 그 흔적이 엿보인다. 그것은 그가 무용지식의 함정을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진실을 가려내는 방법 중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아끼지 않는데서 알 수 있다. 그는 과학에 대한 옹호를 펼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에 대한 비판과 반대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가 변호하는 과학이 순수하게 테크니컬한 과학 그 자체라기 보다는 소위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옹호임이 명확하지만, 자신이 종종 혼용하여 사용한다는 데서 시비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토플러의 저서는 따분한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발굴한 흥미진진한 사례와 인터뷰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가설과 이론의 언명은 제아무리 그럴듯 하여도 멀리 떨어져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제10부 지각변동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일본, 유럽, 미국에 대한 지역적 분석을 하면서 짤막한 장을 한반도에도 할애하고 있다. 남북한의 문제는 시간이라는 심층기반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의 전망이 다소 추상적이고 표피적으로 보일지라도 한번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우리 자신이 아닌 외부인이 바라본 우리의 현실이다.

<부의 미래>는 과거 그의 저서들이 안겨다 준 충격과 파급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너무나 복잡다기하게 변모하였으며 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판단의 잣대를 정리하여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토플러는 일독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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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9.17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헬로우세븐 2014-07-0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수많은 현장 사례, 인터뷰, 각종 통계자료에 매료되어 재밌게 읽었습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 양장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신동욱 옮김 / 창해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세계화는 일종의 경제적 유행이 아니다...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의 국제관계는 물론 국내의 정치판도까지 결정짓는 국제 시스템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냉전 체제를 대체해 버린 지배적인 국제 시스템인 것이다. (P.42~43)

나는 새로운 세계화 체제가 본질적으로 새 세상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믿는다...정치, 문화, 국가안보, 금융시장, 기술, 환경 등 여섯 가지 모든 차원에서 중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68)

세 가지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들 장벽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그것은 통신방식의 변화, 투자방법의 변화, 세계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방법의 변화였다. (P.103)

세계화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기술의 민주화, 금융의 민주화 그리고 정보의 민주화 (P.150)

네 번째 민주화, 즉 의사결정의 민주화 또는 정보면역 결핍증의 예방제 또는 회복제로써 권력구조의 분산이 원용될 수 있다. (P.170)

세계화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신흥시장뿐만 아니라 ‘신흥사회’가 있어야 한다 (P.290)

전자투자가 집단이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데 일조하는 과정을 ‘외부로부터의 혁명’ 또는 ‘글로벌루션’ (P.299)

전자투자가 집단은 안정성, 예측가능성, 투명성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사유재산을 보호받고 (P.303)

여섯 가지 키워드...투명성, 기준, 부패, 자유언론,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민주화 (P.303)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과 ’창출형인가, 적응형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두 질문 다음으로 다음의 아홉 가지 질문을 통해 한 국가 또는 기업의 경제적 능력과 잠재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P.367)

오늘날 국제관계의 드라마는 결국 새것 즉, 세계화의 각종 압력과 유인요인 그리고 복잡성이, 옛것 즉,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올리브나무에 대한 열정과 맞부딪치며 일으키는 상호작용이다. (P.459)

모든 것을 동질화시켜 버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해 세계 각국이 다중 필터를 스스로 개발해 냄으로써...각 주체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필터가 ‘글로컬화’하는 능력이라고 믿는다...글로컬화의 목적은 결국 세계화의 충격에 압도됨 없이, 자기 나라와 문화가 더 윤택해지고 다양해지도록 세계화의 각종 면모를 우리 것으로 동화시키는 것이다. (P.500~501)

건전하지 못한 글로컬화란, 자기 문화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무언가를 흡수하고 있으면서, 그들 문화를 잃어버린 탓에 그것을 자기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P.504)

환경과 문화의 보존 없이는 지속가능한 세계화는 불가능 (P.511)

환경 없이는 지속가능한 문화가 있을 수 없고, 지속가능한 문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지역사회가 있을 수 없으며, 지속가능한 지역사회가 없이는 지속가능한 세계화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P.514)

소득불균형이야말로 세계화 체제의 가장 불안한 사회적 부산물이다. (P.526)

오늘날 세계화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세계화다. 현 체제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잠재력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P.678)

세계화, 너무나 가혹하다

세계화, 연결이 과도하다

세계화, 단절이 심하다

세계화, 주제넘게 끼여든다

세계화, 너무나 불공평하다

세계화,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시장의 비전만으로는 불충분하다...너무나 잔혹해서 정치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복지주의의 온정주의는...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P.744)

세계화를 민주화하기 위한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발견하고 도출해 내는 것...‘통합 및 사회적 안전망주의’...‘제3의 길’...제3의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한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말하는 균형잡힌 접근법이다. (P.744~745)

세계화의 민주화, 그것은 세계화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이익추구에 부합하면서도 도덕적인 정책으로써 어느 나라 정부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P.757)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모든 사회가 매일같이 실행하고 노력해야 하는 사안이다...건전한 글로벌 사회는 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다. (P.797)

이상과 같은 본문의 구절만 읽어봐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 세계화, 그것이 800면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의 줄기를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주제다.

2006년도 연말을 목전에 둔 시점에 너무 진부한 주제가 아닐까 우려도 있지만 출간된 지 햇수로 7년, 개정판이 나온 지 6년이 경과하여도 여전히 그의 논의는 유효성을 담보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세계화에 무지하다.

‘세계화’에 대한 개념정립조차 이루어지지 않던 때 이미 그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은 확실히 언론인다운 발 빠른 감각이다. 우리 정부는 그때 세계화의 영문표기를 Globalization 이 아닌 Segyehwa 라고 정하는 소동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세계화의 물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는 거의 없다. 세계화는 좋든 싫든 외면해서 해결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 관계를 맺고 있다. 거창하게 인터넷과 IT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시장과 마트에만 나가봐도 중국산 제품이 압도적으로 쇄도하고 있다. 그리고 연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간다. 목적은 단순관광에서 유학, 비즈니스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결국 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른 세계와의 네트워킹 구축이라는 관점에서는 동일하다.

세계가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는 한 세계화의 테제는 지속적으로 논의와 주목의 대상이므로 귀 기울여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그저 흔하디흔한 유형의 책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이제야 접하게 되니 만시지탄이다.

한 가지 국내 독자라면 자존심 상하는 부분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수준의 국가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IMF 금융위기를 겪은 대가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인식에는 대만보다도 하위에 놓여있다. OECD에 가입하여 득의양양하던 시절이 어제련만. 하여튼 미국에서도 주류언론인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의 시각이 이렇다면 즉각적 울분을 표출하는 대신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이 나를 평가하는 명확한 우리나라의 현주소이자 참모습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후 현상을 개선하기 위하여 어찌 노력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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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증보판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김상철.최정임 옮김 / 창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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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화 1.0 시대에 변화의 동력은 국가였고 2.0 시대에는 기업이었다면 3.0 시대에 변화의 주체이자 동력은 개인이다. (P.21)

둥근 세계가 평평해지고 있다는 개념...명령하고 지시받는 하향식 구조에서 동등하게 협력하고 서로 돕는 수평적이고 협동적인 구조로 바뀌고 있다. (P.61)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10가지 동력

평평화 동력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 출현
베를린 장벽은 통행만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모두의 시야를 가리고 세계를 단일시장, 단일생태계, 단일공동체로 사고하는 능력을 앗아갔다...미래를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막는 수단 (P.68)

평평화 동력 2: 넷스케이프 출시

평평화 동력 3: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워크플로 덕분에 산업은 세계적 규모의 인력과 컴퓨터를 위한 세계적 기반을 만들어내게 됐습니다. (P.102)

공통의 표준은 많은 사람들이 교류하고 보다 광범위한 플랫폼을 위해 혁신하도록 만들고 힘을 부여하기 때문에 강력한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P.103)

유례없는 새로운 방식의 대인교류를 새로운 워크플로 프로그램에 접목하면,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함께 처리할 전혀 새로운 세계적 플랫폼이 만들어진다. (P.108)

세계를 평평하게 만드는 나머지 6가지 동력은 이 새로운 플랫폼이 기회를 만들어준 협업의 새로운 형태들이다. (P.109)

평평화 동력 4: 오픈소싱
평평한 세계에서 범용제품에 힘을 쓰는 기업에는 미래가 없다.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범용제품을 만드는 것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역할로 옮겨갈 것이다. (P.123)

평평화 동력 5: 아웃소싱

평평화 동력 6: 오프쇼어링

평평화 동력 7: 공급사슬
공급사슬은 공급자, 소매상,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수평적으로 참여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이다. 공급사슬이 만들어지는 건 물론 세계가 평평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공급사슬은 세계를 더욱 평평하게 만들기도 한다. (P.172)

평평화 동력 8: 인소싱
UPS의 엔지니어가 한 기업의 고유한 사업영역 안으로 들어가 제조, 포장, 배달의 과정을 분석하고 상황에 맞게 조정해 주며, 그 기업이 의지해야 하는 공급사슬을 관리해 주기 때문이다. (P.192)

인소싱은 공급사슬 관리시스템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공급사슬 자체와는 구별된다. 제3자가 재고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므로 UPS와 그 고객이 되는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의 고객 사이에는 훨씬 더 긴밀하고 광범위한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P.198)

평평화 동력 9: 인포밍
인포밍은 개인이 오픈소싱, 아웃소싱, 인소싱, 공급사슬, 그리고 오프쇼어링에 접근하게 하는 수단이다. 인포밍은 개인이 공급사슬을 구축하게 하는 능력이다...인포밍은 자기협력과 관련이 있다. (P.203)

평평화 동력 10: 스테이로드

베를린 장벽의 붕괴, 넷스케이프, 워크플로,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오픈소싱, 인소싱, 공급사슬, 인포밍과 이들을 확대하는 근육강화제까지, 이들 모두가 보완재처럼 서로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놓았다. 이 요소들이 융합되고 서로 보완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융합의 결과 지리적 환경과 거리에 관계없이,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는 언어의 장벽에도 관계없이, 실시간적으로 지식과 작업의 공유가 가능한 웹에 기반을 둔 지구적인 규모의 활동적인 공간이 창출되었다. (P.232)

기술적 발전이 새로운 관행이나 사업 프로세스와 결합하여 생산성의 폭발적 향상을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려면 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방식이 등장해 결합되어야 한다. (P.233)

새로운 활동공간과 새로운 게임 참여자, 그리고 과거와 달리 수평적 협력을 기능하게 만들어준 새로운 비즈니스 과정과 관행 말이다. (P.239)

끊임없이 능력을 키워라. 평평해지는 세계에는 좋은 일자리가 널려 있다. 단, 지식과 아이디어를 갖춘 사람에게만 그렇다. (P.314)

평평한 세계에서는 모두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개념정의는 ‘그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특별한‘ 노동자, ’전문화된‘ 노동자, ’자리잡은‘ 노동자, ’적응을 잘 하는' 노동자가 그것이다. (P.315~316)

'무형 자산‘...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경제발전을 위하여 단결하고 희생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 그리고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헤아릴 수 있는 비전과 권력을 개인적 치부와 현상유지를 위해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쓰려는 의지를 갖춘 지도자의 존재이다. (P.444)

또다른 무형 자산은 문화가 교육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느냐이다. (P.446)

기업이 아웃소싱을 하는 것은 사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P.485)

세계가 완전히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그렇지만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평평해졌으며, 이 과정이 최근에는 대단히 빨라졌다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P.502)

지금 세계에 필요한 것은 반세계화 운동의 소멸이 아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성장해야 한다. (P.522)

오늘날 세계에서 작동하고 있는 두 가지 상상력이 서로 경쟁하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11월 9일이라는 창조적인 상상력과 9월 11일이라는 파괴적 상상력 말이다. (P.595)

평평한 세계에서 게임의 참여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능은 창조적인 상상력이다. (P.636)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 (P.636)

전작인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고 나자 6년이 시간이 경과한 현시점에서 저자의 사고와 견해가 어떠한 변화와 진전을 이룩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전작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가-이제는 IMF 금융위기도 벗어났으므로 보다 그럴듯한 지위를 회복할지도 궁금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에 대하여 저자의 한층 확고해지고 심화된 인식체계를 발견할 수 있었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거의 절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예 언급 자체에서 배제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만큼 평평해진 세계에서 서구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주목할 존재가 아니다. 비단 프리드먼에 그치지 않음은 앨빈 토플러의 신작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세계화’ 추세가 어느정도 자리잡은 현재 둥그런 세계는 나날이 평평해지고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화는 10가지 동력을 낳고 이것이 삼중 융합을 일으켜 세계를 평평하게 만든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화는 인류 전체적으로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며 문명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이는 세계화 체제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이다. 뒤처지고 소외당한 사람들은 세계화 체제를 반대하고 미워하게끔 된다. 더 이상 그럭저럭의 삶은 용납하지 않는 특성 탓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 이들의 세력이 강해지면 평평해진 세계가 자칫 둥글게 환원될 수 있는 연유다. 그래서 올바른 반세계화 운동은 존속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부에서 평평해지는 세계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평평한 세계와 미국, 개발도상국, 기업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평평한 세계는 누구에게나 자동적 번영과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자국민들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미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강조하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과 기업들이 대처할 방안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평평한 세계를 위협하는 이슬람-레닌주의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미국사회에 있어 9.11 테러가 미친 강도를 말해준다. 그러면서 9.11 테러에 대하여 세계 각국이 보인 이중적 태도는 바로 미국 자신이 초래하였다는 따끔한 지적이 한편 이채롭다.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우경화, 보수화하는 미국의 정책은 세계의 평평화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9.11의 파괴적 상상력 대신에 11.9의 창조적 상상력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맺음말.

전작과 마찬가지로 분량은 방대하지만 딱딱한 이론 대신 흥미진진한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비교적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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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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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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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이렇게 나의 문학적 관심을 받게 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우연히 <동물농장>을 읽게 된 후 보다 근본적인 <카탈로니아 찬가>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1984>를 보고 있다.

조지 오웰은 문학적 평가 그 자체보다도 그가 묘사한 미래사회의 암울한 정치적 성격으로 세간에 회자되었다고 본다. 이는 작가 자신이 본인이 왜 글을 쓰는가에서 토로한 사유이기도 하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엄밀히 구분짓자면 소설이 아니라고 간주될 수 있을 만하다. 다큐멘터리 내지 르포르타쥬에 속한다. 그럼에도 생생한 사실 전달 이외에 개인적 소회가 날카로운 분석안과 결합하여 지금 읽어도 독자의 감성에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특히나 그의 후기작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선행하여 읽어야 할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은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주의파가 공화국 정권을 잡자 프랑코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기간 내정 끝에 군부가 승리하여 그후 프랑코의 극우 일당 장기 독재체제가 구축되었다는 정도다. 이때 많은 지식인이 민주체제를 수호하고자 공화국 의용군으로 자원 참전하였으며,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도 동일한 시대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저 단순히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는 파시스트세력이 강하여 공화파가 패배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공화파 내에 다양한 파벌이 존재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이 불거져 역량이 분산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권획득을 위하여 협력해야 할 투쟁의 동지를 배신하고 탄압하는 공산당의 모습은 러시아혁명 후의 소련이나 1945년 이후의 북한을 보면 반복된 사례임을 알게 된다. 무정부주의세력과 다른 좌파세력을 제거한 후 그들은 얼마나 희희낙낙하였을까? 하지만 곧 프랑코의 공세에 밀려서 아예 정권을 내놓는 처지에 몰리고 만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모든 공화파가 협력하여 내전 승리에 몰두하였다면 스페인은 어두운 과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체포와 죽음의 위기를 헤치고 나온 조지 오웰은 목전에 다가온 어둠을 통렬히 절감한다. '이 땅에는 독재가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이제 남은 것은 악랄하기 짝이 없는 프랑코의 독재였다'(P.233).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 사상에 있는데(P.140) 공산주의의는 이를 무너뜨리고 계급을 강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잃어버린 사회주의의 실험장에 애도의 만가를 목놓아 부른다. 그리고 공산당의 위선을 폭로하고 다가올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이 글을 썼다고 본다.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이며, 우울하고 참담하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는. 그리하여 이것은 '만가'가 아닌 '찬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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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1.2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
 
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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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목을 보고 그로테스크함에 이끌려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애초 기대와는 다른 낯섬에 다소간 당혹감을 느끼면서 읽어나갔다.

1. 대화체의 전개방식. 첫장면부터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끝까지 이어진다. 대화 형식으로만 구성된 장편소설이 더 있었던가 반추해봐도 모르겠다. 하여튼 형식의 독특함에서 일단 독자의 관싱을 끄는데는 성공한 셈.

2. 영화 스토리의 삽입. 소설 진행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오로지 사건전개는 영화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할 정도로. 그리고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함축을 지니며 소설의 심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몰리나가 발렌틴을 시밀적, 육체적으로 유혹하려는 의도를 지니는 동시에 막다른 처지에 놓인 외로운 사람간의 진정한 교감을 주고받는 수단이기도 하다.

3. 동성애의 소재. 소설에서 이렇듯이 동성애가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를 처음 접한다. 그럼에도 관대한 평가를 받으니 확실히 우리 사회가 많이 개방되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자칫 혐오스러울 수 있는 장면에서도 순수하고 솔직함이 신비적 탐미감을 불러일으킴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리라.

4. 장대한 각주. 음, 소설 속에 이리 난해하고 기나긴 각주를 만나기도 또한 처음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당혹스러운 가운데 동성애와 관련한 심리학상 견해를 상술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각주가 꼭 필요했을까는 여전히 의문시된다.

이 작품의 탁월함은 저급하게 평가되는 대중영화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그 극적 효과를 발휘케 하였다는데 있다고 한다. 동성애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그 자체로 문학적 평가에 부정적 영향은 없는 듯.

이 소설이 발표된게 1976년, 이제 30년이 경과하였다. 상전벽하라던가, 천대받던 영화는 이제 문화산업의 중추로 자리잡고 각계의 열렬한 주목을 한손에 휘어잡고 있다. 오히려 순수문학이 연약한 생명력을 간신히 유지하는 형국. 대중영화의 소설 도입의 공은 문학사적 가치로 국한시켜도 충분하다고 할 때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혁명가와 미성년자추행범인 동성애자가 서서히 교감을 주고받아 사회적 터부를 깨뜨리고 진실한 사랑에 이르렀다는 점에 높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확실히 작품 기술 측면에 있어서는 탁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일반의 도덕성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할 때 여전히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동성애는 뜨거운 감자다. 서구 일각에서는 조금씩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다른 차원이다.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새 생명의 탄생과 인류 생존의 기본 관계라면 동성간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설은 문학보다는 가치판단의 차원에서 논의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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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08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6.11.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