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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평점 :
절판
서가에서 먼지를 떨어내고 책장을 펼쳐든다. 발행년도가 1991년, 벌써 15년이나 경과하였다, 그런데 난 한번도 구입한 후 한번도 이 책에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된 것일까.
앞뒤 표지를 뒤집어본다. 겉표지에는 '무삭제 완역판'이라고 큼지막하게 강조한 문구가, 뒷표지에는 '헨리 밀러 탄생 100주년 기념 출간'이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보는이에게 들이대고 있다. 본고장인 서구에서도 오랜동안 외설을 이유로 출판금지 되었다고 하니 상업성을 위해서는 역시 마땅한 공략법이다.
꽤나 머리아프고 난해할 것으로 짐작되는 선입견을 깨고 초반부를 넘기자 이내 읽어나가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일관된 스토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어렵다. 이는 나중에 해설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작품의 특징이자 작가의 작법이다. 그저 한 미국인인 '나'가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어찌 보면 나열한데 지나지 않는 인상마저 풍긴다. 하지만 작품 전체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그래도 뭔가 내적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는걸 보면 분명히 그 이상임을 어려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평가에는 나는 쌍수를 들고 반대하련다. 현대사회가 너무나 성표현의 과다한 개방으로 범람한 탓일까, 눈을 부릅뜨고 보더라도 외설스럽다는 표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1930년대 당시의 보수적인 서양사회에서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시각도 변화되었다.
작가는 극한의 바닥까지 스스로를 추락시키면서 역설적으로 순수한 인간 본연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현실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수도의 뚜껑을 열고, ..." (180면)
'나'가 파리에서 무일푼으로 눈앞의 끼니를 걱정하고 여자들 엉덩이에 혀를 내밀면서도 그래도 미국 대신 파리를 택하는 것은 거기에 자유가 있어서다. 당시 미국은 경제대공황을 겪고 있었다. 실직과 기아에 허덕이며 '나'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세계를 떠나 파리에 왔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고, 전대미문의 고통과 비참을 야기시키면서도 항구 평화의 수립을 꿈꾸고 있는 사자(死者)의 심부름꾼으로 온 것이다. 제기랄!"(284면)
그가 보는 파리는, 아니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 그러나 절망이 아니다."(167면). 마치 색으로 치면 백색도 흑색도 아닌 회색이라는 것처럼. 그는 인생과 세상의 극한을 그리기 위해 극단적인 표현을 골라 사용한다. 황당하기조차한 비유와 표현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나열되는데서 일말의 역설적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온다고 할까.
"전기를 띤 창백한 여명의 창백한 빛 너머로 빈대 껍질이 파랗게 짓눌려 보인다. 몽파르나스 기슭에 수련이 꺾여서 시들어 있다. 썰물이 되어, 몇몇 매독에 걸린 인어가 쓰레기에 섞여 육지 위에 올라와 있다...모든 것이 서서히 하수도를 향해 되돌아간다. 한 시간쯤 구토물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은 죽음과 같은 정적이 감돈다. 별안간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길의 끝에서 끝에까지 온통 미친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은 거리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다. 모든 희망이 일소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오줌을 배설할 순간이 온 것이다. 여명이 문둥병 환자처럼 스며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에피소드들 중간에 이따금 나오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 사고와 견해를 피력하는 현학적이고 수사적인 말의 홍수를 피해갈 수 있다면 나름대로 흥미롭게 독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선정주의적 기대는 접어두도록 하자.
갑자기 원제인 'Tropic of Cancer'의 어원이 궁금해져 사전을 뒤적거린다. 'Tropic'은 열대라는 의미 외에서 '회귀하는'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Cancer'는 낯익은 '암' 외에 천문상에서 '게자리'라고 한다. 즉 게자리가 회귀하는 점을 이은 선이 북회귀선을 가리키는 듯. 참고로 남회귀선은 'Tropic of Capricorn'인데, 'Capricorn'은 '염소자리'를 가리킨다.
헨리 밀러의 다른 작품들의 출판 현황은 어떤가 하고 보니 몇 편 나와 있지 않다. 역시 대중적으로 어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책은 절판되고 다른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 해설을 보니 이 책은 일어 중역판이라고 한다. 어쩐지 군데군데 오역과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