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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고려중기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것을 가리켜 '조선 일천년래의 일대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우리 고대사 연구를 통하여 기존의 식민사관을 통렬하고 공박하였던 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평전이다. 종전에 이러한 류의 책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평전은 거의 최초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때 역사학도를 꿈꾸었던 내게 단재는 하나의 우상이었다. <조선상고사>를 읽으며 그 혜안과 웅대한 시각, 사료의 한계 속에서도 탁월한 분석과 예리한 비평으로 통념을 갈파하고 올바른 역사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그 정신에 깊이 감복하였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와 사상세계에 대해서는 아는바 드물었다. 이러한 연유로 평전을 펼쳐들게 되었다.
단재는 사학자이기에 앞서 뛰어난 유학자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백암 박은식이 유학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단재도 그럴줄은. 보수적인 성균관박사가 어떻게 신학문을 접하고 신사상의 보급에 노력하고 사상의 방향을 아나키즘까지 몰고 갔는지 사상의 편력이 흥미롭고도 놀랍기 그지없다. 또한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문'의 주필을 역임하여 항일 언론의 선봉장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버렸던 사실이다.
상해 임시정부에 잠시 참여하였다가 위임통치를 주장했던 이승만이 대표가 되고, 외교론의 유약한 모습을 보고 격분하여 뛰쳐나오는 그 순혈한 열정. 왜놈에게 고개숙이기 싫어 뻣뻣하게 세수하여 옷을 적시는 일화는 다시 보아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수 밖에. 단재의 무장투쟁론이 보다 현실적인 방책임은 후에 임시정부가 백범 김구의 주도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 의거에 나서며 체재를 일신하는데서도 엿볼 수 있다. 단재의 말마따나 외세의 처분에 민족의 운명을 언제까지 기다릴 것이며, 일제의 압제하에 어느 세월에 실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인가?
단재의 삶은 치열한 언론인, 사학자, 독립투사의 소임이 수레바퀴의 축을 구성하여 최후까지 끌고 있다. 본문 중에 소개되었던 <천고>라는 잡지의 서문은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의열단을 위하여 집필한 '조선혁명선언'은 그의 아나키즘을 표출하는 투쟁서일 뿐만 아니라 '3.1독립선언문'을 능가하는 명문이자 가슴절절이 피를 끓게 만드는 혈서이다. 이제 독립투쟁은 '혁명'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일가붙이였던 조카딸이 친일파와 결혼하려고 하자,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시 귀국하여 설득하다가 안되자 단호히 절연을 선언한 대쪽같음.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도 친일파 친척에게 의지하기 싫다고 출감을 거부하고 차디찬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절개. 과연 우리시대에 단재와 같은 이가 다시 있을 것인가 의문스럽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렇듯 위대한 인물의 전집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의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독립투사의 후손은 대다수가 사회 하층에서 어렵사리 삶을 영위하고, 친일분자의 자손은 사회 지배층이 되어 떵떵거리고 위세를 부리며 사는 작금의 현실을 단재가 알며 얼마나 기가 막힐런지.
평전답게 단재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좇기 보다는 그의 대외 투쟁사를 중심으로 저자는 글을 전개하고 있다. 어쩌면 개인사에 관한 자료가 너무 빈약한데서 연유하지는 않을까 싶다. 때로는 중언부언 반복하는 것도 저자의 안타까움의 토로로 받아들여진다. 본문에 소개된 단재의 작품과 저작 인용문을 뺀다며 부피가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 이걸 짐작케 해준다.
저자의 뼈아픈 지적대로 '체 게바라'는 동경하여도 '단재'는 고리타분한 존재로 여기는 현세태, 그것은 우리가 아직 단재의 진면목을 모른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