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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 Page Proposal -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
패트릭 G. 라일리 지음, 안진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1월
평점 :
[주목받는 기획서 작성을 위한 제언]
<한비자>에 '세난(說難)'편이 있다. 유세객이 집권자 즉, 왕을 설득하여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의 귀란 얼마나 간사하던가, 누구나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따라서 귀에 거슬리지 않도록 주의깊게 혀를 놀려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갑자기 한비자가 떠오른다. 지식사회를 부르짖는 요즘, 지식인이 갖출 중요 요건 중의 하나가 소위 '기획력'이다. 그런 탓인지 최근에 들어서 기획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비즈니스 서적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기획서 내지 제안서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기획서는 만들기가 어렵다. 끙끙 대며, 글자 하나, 문장 한 줄, 거기다가 도표 등을 덧붙이고, 혹시나 분량이 적으면 무성의하다고 여겨질까봐 각종 자료를 보태어서 두툼하게 올린다. 그런데 기획서는 또한 읽히기도 어렵다. 혹시라도 타부서나 외부업체에서 보내온 기획서를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칼라인쇄로 예쁘게 단장하였더라도 일단 글씨가 작고 분량이 많으면 대충 첫 몇줄만 훑어본 후 한쪽 구석으로 쌓아놓는다. 다시금 읽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획서는 계륵과 같은 존재다. 작성자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고, 막상 받는 사람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간파한 저자는 기획서(제안서)를 One Page 즉, 한 장도 아니고 한 면으로 끝내라고 한다. 말도 안된다고...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제안 자체가 참신하지 않은가.
시간, 돈 등 각종 자원 낭비를 줄이고 효율(효과+능율)적으로 기획서가 처리될 수 있도록 하자. 솔직히 소위 고위층들은 일단 바쁘다. 그들이 두툼한 페이퍼를 천천히 정독하리라고 기대한다면 너무나 순진하다. 아마 보지도 않을 테니까. 그러면 한 페이지짜리 기획서라면 아무래도 완독의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게다가 기획내용을 한 페이지로 압축하다보니, 쓸데없는 내용을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어 문장은 스피드감이 철철 넘치리라.
말로는 쉽다. 하지만 한 페이지로 쓰려면 만만치가 않다. 무슨 내용을 어떤 표현으로 어떻게 배치하여 기획서를 작성할 것인가. 저자는 제목, 부제, 목표, 2차 목표, 논리적 근거, 재정, 현재 상태, 실행 등의 8개 부문으로 나누어서 형식을 갖추라고 권한다. 역시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작성한 한 페이지짜리 기획서를 예로 들어 하나하나 분석하고 있다. 권말에는 여러개의 샘플도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설사 한 페이지로 기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하더라도 과연 일반 조직사회에서 이것이 용납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찍 머리가 깨인 경영자(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직상급자)가 쉽게 나타날까 하는 불안감. 힘들이고 공들여서 한 페이지로 기획서를 썼는데, 검토와 격려는 못 해 줄망정, 불러서 호통이나 치고 홱 집어던지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한비자의 '세난'이 연상된다. 내 말이 아무리 옳더라도 상대방이 그걸 흔쾌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별로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