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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평점 :
페트라르카에 대해 자세히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의 서간문 선집을 읽는다. 자고로 서간, 즉 편지는 글쓴이의 내밀한 속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페트라르카의 시 작품만으로 그를 잘 안다고 한다면 착각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페트라르카는 다섯 묶음의 서간집을 남겼다. <친근서간집>, <운문서간집>, <노년서간집>, <잡문서간집>, <무명서간집>. 옮긴이는 전자 3곳을 중심으로 하되, 후자 2곳에서도 1편씩을 선별하였다고 한다. 모두 23편을 다섯 가지 주제로 편집하였는데, 페트라르카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 문학 관련 서간문들, 조국과 정치 관련 서간문들, 로마 관련 서간문들, 고대 문화 관련 서간문들이다. 이로써 독자는 시인 페트라르카가 아닌 인간 페트라르카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 페트라르카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
서간문 1과 2는 페트라르카의 두 가지 대표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방투산 정상을 단지 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등정하는 행동, 당대에는 특별한 목적 없이 고산 등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대한 심취. 세속의 열락을 등지고 홀로 ‘비밀의 동료’를 만나 교류하는 고독한 삶의 즐거움을 토로한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초의 르네상스인다운 모습이라 하겠다.
그리고 라우라에 대한 본인의 심정이다. <칸초니에레>의 많은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라우라를 향한 깊고 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시인은 그 사랑으로 정말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았음을 몇몇 시구에서 나타내고 있지만 여기 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십년이나 무거운 사슬을 나는 지친 목덜미에 매달았다.
이 정도의 세월을 여성의 굴레에 묶여 보낸 것에 심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P.389, 서간문 2)
시인의 자기부정은 서간문 17에서도 되풀이된다. 그가 라우라를 사랑한 건 맞지만 수많은 시를 써서 찬미할 정도는 아니며 그건 자기가 꾸며낸 것이라는.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속마음의 일정 부분은 그러하였을 듯도 싶다.
그러나 이, 살아 숨 쉬는 라우라는 그 아름다움에 내가 매료된 것처럼 보이긴 해도 모든 것은 꾸며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시도 가짜이고 한숨도 겉치레라고. (P.240-241, 서간문 17)
특징적인 서간은 서간체 자서전을 시도한 서간문 5다. 후세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이는 해설에서 밝히고 있듯 왕과 제후와의 친교를 정당화하는 집필 동기를 품고 있어 순수한 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공화주의자 페트라르카는 현실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문학 관련 서간문들
톰마소에게 보내는 서간문 6은 문학적 명성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통찰을 담고 있다. 명성은 대체로 사후에 얻기 마련이므로 생전에 열심히 덕을 쌓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편지가 쓰여진 것은 톰마소가 죽은 지 십 년 후의 일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페트라르카는 편지라는 형식을 택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 생각을 기술하였음이다. 여기서 그가 서간문을 하나의 창작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계관 시인으로 추대된 이후 시인 페트라르카의 명성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그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도 있었나 보다. 서간문 10에서 그는 자신이 고대인들의 범례, 즉 예시를 많은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에 대해 글쓴이와 독자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고대 문화에 무지한 당대인들에게 그 아름다움과 심원함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일까. 해설에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페트라르카의 밀라노 체류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서는 서간문 11에서 일종의 해명을 시도한다. 자신이 각종 저술에 매진하고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기에 온전한 고독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고 밀라노에 머문 것이지 그 외 다른 의도는 없다는. 이제 그의 행보 하나는 세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 조국과 정치 관련 서간문들
서정시인 페트라르카는 단지 그의 일면이다. <칸초니에레>에서도 당대 정치 상황에 대한 시인의 깊은 관심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사제의 신분이었기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옆에서 열렬히 격려하는 처지일 뿐이다. 서간문 13은 그의 정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누가 내 한숨에 어울리는 가락을 노래할 수 있으랴.
누가 무참한 조국의 황폐함에 걸맞는 탄식을 연주할 수 있으랴. (P.187, 서간문 13)
자, 우리들의 손에 무기를 들고 벌판으로 말을 몰자.
창을 하늘로 내뻗자. 군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자. (P.197, 서간문 13)
외세와 내홍으로 분열된 조국 이탈리아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실로 깊고 강하다. 아비뇽 교황청을 ‘서방 바빌론’으로 비난하는 그의 어조는 결코 수사적이 아니다. 페트라르카의 정치적 글을 보면 마키아벨리와 사고와 유사함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공화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군주정을 옹호하는 점에서. 서간문 16을 보면 페트라르카는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이탈리아를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향한 시인의 의지는 이처럼 맹목적이다. 그만큼 그가 이탈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나의 조국을 알아보고, 기쁜 마음에 인사를 하노라.
안녕, 나의 아름다운 어머니여. 세상의 영광이여, 안녕! (P.216, 서간문 15)
4. 로마 관련 서간문들
종교적인 측면에서 페트라르카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의 <고백록>과 <신국론>을 페트라르카는 탐독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마음을 당겼던 이유 중 하나는 고대 문화를 배제하지 않고 이를 호교론에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서간문 17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고대 문화에 대한 애호의 장난스러운 비난에 사뭇 진지하게 응대한다.
오오, 로마 자유의 아버지여! 로마 평화의 아버지, 로마 평안의 아버지여! 그대 덕분에 현시대 사람들은 자유롭게 죽을 수 있고 후세인들은 자유로울 때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P.279-280, 서간문 19)
공화주의자 페트라르카의 가슴에 불을 지른 이가 있으니 바로 콜라다. 그는 귀족 가문의 영주정을 타파하고 로마에 공화정을 실현하였다. 서간문 19와 20에서 콜라와 콜라 정부를 향한 시인의 지지와 찬미는 강렬하고 더없이 드높다. 그는 드디어 로마가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껏 기대를 품는다.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콜라는 이내 초심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하며 결국 귀족들에 의해 타도되고 만다. 콜라를 열렬히 지지했던 만큼 페트라르카의 정치적 입지도 곤란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콜라의 그릇된 처신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콜라에게 보낸 글을 통해 절망적 심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대가 조국을 배신함으로써 내가 평생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거짓말로 며칠 슬퍼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P.303, 서간문 20)
5. 고대문화 관련 서간문들
페트라르카의 삶과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라우라,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한다. 특히 키케로는 그가 자신의 지적인 측면에서 전범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는 비록 키케로의 인간적 약점, 즉 그의 삶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키케로의 재능과 변론은 고대 로마의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서간문 21과 22는 그것을 보여준다.
페트라르카는 진정한 애독가라 할 만하다. 책에 싫증 나지 않으며,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병세를 밝히지만 누구도 이를 병이라 여기지 않으리라. 그는 독서의 탐색에 관한 흥미로운 방안을 제시하는데, 독서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책 내용 중에 언급된 다른 책으로의 독서를 이끈다는 점이다.
페트라르카의 서간집을 읽다 보면, 그가 편지를 공적, 사적 양면으로 활용하였음을 알게 된다. 순전히 개인적 동기와 목적으로 쓴 글에서는 그의 내밀한 심경과 알지 못하였던 모습을 알게 되고, 공적인 편지는 문학적 창작의 하나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여기서는 그가 대외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정신적, 정치적 성격의 글을 통해 그의 사상과 사고를 헤아리게 된다. 확실한 것은 시인 페트라르카는 매우 단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의 시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서간집을 포함한 그의 기타 저작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