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회주택 - 당신의 주거권은 안녕하십니까?
최경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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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후보들은 항상 집값을 잡아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어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왜 이토록 부동산은 오르기만 하는 걸까? 저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에 대해 1장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며 집값이 오르는 것까지 임차인이 부담했던 상황을 도마 위에 올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값이 떨어졌을때는 임대인이 그 만큼의 책임을 지거나, 공급자들이 조금 더 책임을 전가받는 해결방안을 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으로 ‘사회주택’ 어떠냐고 살포시 묻는다. ‘사회’라는 단어에, 그럼 북한과 중국의 사회주의인가 싶기도 할테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 역시 ‘Social Housing’ 이라고도 하지만 ‘Public Housing’이라고 덧붙인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보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나라를 이야기하며 “도시화 과정에서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하려는 것에 좌우의 구별이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들 나라의 이념적 대립이 적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념적 대립이 적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회가 주택을 만들지만, 주택이 사회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p.120)이라며 좌우 수렴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도파민을 많이 가진 사람이 못되는데(도파민 많은 쪽은 진보성향) 집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대안이 반갑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영끌하는 청년층이 안쓰럽다. 일본의 자산 중 80%를 손에 쥔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새로운 것에 투자보다는 손에 쥐고 있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영끌 할 의욕조차 잃었고, 지금의 잃어버린 30년을 지냈다고 말이다. 한국사회는 깡통전세의 도미노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갭투자로 인한 집장사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반전세더라도 월세를 내야하는 젊은이들은 좁은 방 구석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나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지방에서 자란 청년층은 더하다. 이러한 숨막히는 구조는 결국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가장 큰 원인은 집값이라고 생각한다. “안정된 주거 공간, 그곳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주택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p.12) 저자의 이 말에 200% 공감한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에서는 주거 이야기로 난 이 부분에서 전세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2장은 사회주택에 대한 글이다. 스웨덴 학자의 복지 삼각형 그림에 따라 “호혜성을 바탕으로 공공의 지원을 활용하여 주거 선택권을 확장하는 주택”(p.66)이라는 사회주택의 정의가 쓰여있다. 3장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주택의 예시다. 홍시주택, 쉐어어스, 자몽하우스 등등 훈훈한 미담이 쓰여져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사회주택에 입주한 이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공동체성을 가진 이들만이 적응할 수 있겠다, 싶다.(I성향이 97%인 나는, 3장을 읽는 동안만 혹했다..)4장에서는 사회주택과 함께하는 미래인데 다보스회담에서 볼 법한 문장들과 함께 ESG,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이 다 같이 존재하는 그런 유토피아가 그려져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에필로그에 있었다.
“우리가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이유는 벽돌과 콘크리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양호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면서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자가소유를 통해 얻는 더 큰 근원적인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노후 대비에 대한 걱정이나 자녀 독립 시에 전세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아이를 키울 엄두도 낼 수 있으며, 에너지를 생산해서 생활비를 줄이고 기후 위기에도 대응하는 주택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p.293)

그러게 이건 정말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일까? 나도 저자와 함께 마구마구 공을 쏘아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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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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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는 벨기에 조형 예술가 자크 리젠의 부고로 시작한다. 이 예술가는 “실패의 예술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p.5)했던 사람으로 실패 전문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 예술가의 미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것이었다면, 자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지 않는가.”(p.8)라며 책 제목의 평범과 찬란이 동등한 의미로 쓰이는, 이 책을 써냈다. 왜 작가는 평범한 것이 찬란하다고 했을까? 보통의 작가라면 평범함이라는 소재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텐데. 이 궁금증에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는 저자인 마리나가 향하는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따라가며 완독했다. 총 12장의 목차를 따라 읽다보니 평범함의 다양한 프리즘이 보인다. 이걸 작가는 찬란하다고 표현했구나, 싶다.

“평범함을 뜻하는 프랑스어 ‘메디오크리테’는 ‘메디어스medius’,(중간)와 ‘오크리스ocris,(산)’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가파른 산 중턱 외딴 구석에 갇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런 적막한 산골에 틀어박혀 있다고 상상해보자.(p.43)” 여기서 알수 있듯이 평범함은 산 중턱의 외딴 구석이라는 어원에서 온 것이다. 사람들은 산의 정상만을 정복하려 한다. 중턱에서 멈추고 되돌아오는 것은 실패자의 행동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동안 산 중간에서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책 표지에도 세로에 “인류는 평범한 중간의 이들 덕분에 살아남았다!”라고 쓰여있다. 영웅이 아닌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이들의 평범함을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5장이 좋았다. 5장의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다 여기에서는 능력주의라는 폭군에 휘둘린 저자의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나는 위대한 예술, 즉 극도로 난해한 철학에 헌신하고 싶었다. 이 특별한 영역에 들어가면 불안과 우울이라는 악마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돌이켜보면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위대한 예술, 즉 추상적 관념이 인간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나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다. 성취보다 사유를 중요하는 삶을 선택한 것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스스로 저급 예술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돈키호테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의 위선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구별되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상업적이거나 싸구려 쾌락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미학을 추구했다. (...) 순수한 영혼에 대한 열망과 모든 현실적 감정을 거부한 나의 태도는 일상의 만족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처럼 나를 평범하여 찬란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pp.162~163)”
나 역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주었던 유난히 짠 별점이 떠올랐다. 지금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무언가, 더 위의 것, 더 찾기 힘든 것을 찾아 헤매며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것들을 평가절하한 나의 시선의 위치가 보였다. 소설에는 수많은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들이, 찌질이들이, 실패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유의미한점일 것이다. 나는 이 평범한 주인공들의 서사가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고군분투기를 읽으며 마치 남 이야기 구경하듯, 강건너 불보듯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 평범한 주인공들이 내포한 메시지를 보지 못한 눈먼 독자에 불과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연필을 들고 읽을 것을 추천한다. 평범하여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문단이 끝나고 다음의 새로운 단락마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짚어주는 저자의 ‘소듕’한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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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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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부를 의미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학군지가 있고, 노인들에게는 근처에 병원이 있는, 이 좁은 도시에서 둥지로 삼기에는 닭장같은 아파트 구조가 최선이다. 아파트는 구축이냐, 신축이냐, 어느 건설사가 지었느냐, 역세권인가, 숲세권인가, 이왕이면 강뷰가 있는 곳인가,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로얄층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청조의 사기가 먹혔던 이유는 그가 시그니엘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그니엘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99.999999...%가 입주하고 싶어하는 그 아파트, 시그니엘이니까. 명주시의 2층 단독주택에서 깨볶던 은주는 몰랐지만, 어미새가 된 은주는 지안이의 둥지로 마땅한 곳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부동산 스릴러극의 시작이 된다.

<새들의 집>에는 새의 이름을 딴 아파트들이 나온다.
은주가 이번에 이사하는 아파트의 이름은 공작성운이다. 표지에 그려진 공작이 바로 이 그림일 것이다. 공작의 깃털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은주의 모습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은주의 친구, 혜경이 가진 오피스텔의 이름은 푸른숲버드힐시티이고, 이들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 민정언니의 주소는 덕원피닉스메트로아트파크이다. 심지어 이 언니는 결혼도 안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홀로 유아독존 불사조인 피닉스를 담은 아파트에서 산다. 이 소설 시작 전, 주어진 지도위의 아파트 이름들은 죄다 새들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새들을 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관리사무소 처마 밑 할머니들은 참새들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끝 부분에 동대표 아저씨가 기다란 벤치형 나무의자를 놓아주시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참새와 나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악역을 맡고 있는 삐죽사장의 부동산 이름도 펠리컨이다. 커다란 비둘기를 꿀꺽 삼키는 펠리컨은 유툽 동영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새에서 비롯된 표현들도 많아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디테일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우편함마다 흰 비둘기 같은 봉투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p.37)”
“사람들은 마치 불길한 소식을 찾아 헤매는 까마귀처럼 몰려들어 주위를 둘러 싸고 무슨 말들인가를 수군대고 있었다.”(p.67)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더니 그 말이 딱이구먼.”(p.162)
“누굴 닭대가리로 아나······.”(p.243)

이토록 많은 새들의 표현을 담은 작가. 그가 생각하는 새와 아파트는 어떤 관계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참새할머니들이 알려주신다.

“여기가 원래 새 무덤이었잖아.”
“새 무덤?”
“그래. 7동에 민아 할머니 알지, 이번 봄에 요양원 들어간. 그 사람이 여기 토박이였잖아.”(...)
“글쎄들어보니까 여기가 늪이었다는구먼그래. 보통 늪이 아니라 연고도 없는 사람들 시체 걷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곳이었대잖아. 그래서 새들이 그거 뜯어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늪이 어찌나 깊은지 내려앉는 족족 가라앉아버렸대.”(pp.242~243)

이 부분을 읽으면 이 책의 전체적인 스릴러의 내용이 한번에 이해된다. 뜯어먹겠다고 내려앉는 순간, 나락을 가는 곳. 이걸 아파트화한 이름이 “공작성운”이었군.

이 새들이라는 상징외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름꽃 비비추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해서 기다란 꽃대를 새우고 거기에 보라색 꽃들이 세로로 피어난다. 난 이 꽃이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확실히 작가님들은 남다르다. 이제 앞으로 나는 우리 아파트 한쪽에서 피어나는 비비추를 보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한국형 스릴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안이가 하는 말들이 제일 무서웠다. “저 아저씨도 새가 되려고 해?” 지안이가 코난도 아니고 이 어린 애 주변에서는 사람 새를 몇 번을 보여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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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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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에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세 번의 혁명을 이야기한다. 이는 인지, 농업, 과학혁명이다. <유전자 지배 사회>는 이 중 세 번째 혁명인 과학혁명에 대해 더 자세히 써놓은 책으로 읽혔다. 특히 진화론이라는 마크를 새긴 과학이라는 세분화된 시각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를 유전자로 건강검진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저자가 유전학자이면서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복원하여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의 비교분석을 해낸 스반테 페보박사가 코로나19백신 개발을 제치고 받았다는 점을 가장 처음에 언급한다. 이후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과 1976년에 쓰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바로 이 관점에서 지금까지 “5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에 미친 영향과 파급력은 그 사상적인 심오함에 크게 못 미치는 것 같다. 즉,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와 같이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의 여러 활동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영역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탐구가 별로 없었다”(p.11)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한다. 첫 번째는 “유전자의 조종이 너무나 교묘해서 인간의 인지능력에 감지되지 않는다”(p.12)는 점, 두 번째는 “우리 안에 있는 이타성의 집착”(p.14), 세 번째는 “<이기적 유전자>의 사상이 인문학적으로 발전되지 못한데는 그것이 주로 유신론과의 싸움에 집중되어 왔다는 점”(p.17)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사실 세 번째 문제를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점이 느껴진다. 나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뉴스에 몇몇 목회자분들이 자주 목격되는 걸 보며 느껴지는 바가 있는데 과학자들, 특히 진화론전공 과학자라면 오죽할까 싶었다.

이 책의 목차 키워드는 6개이다. ‘사랑’, ‘혐오’, ‘경제’, ‘정치’, ‘의학’, ‘종교’(라고 쓰여있지만 기독교), 이 여섯 개다. 만약 이 단어들에 실물이 있다면 저자가 그 실물의 바닥에 붙어 길게 누워있는 유전자식 그림자를 보고 쓴 책같았다. 어둡고 잘 포착되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실물의 유전자식 이면을 말이다. 사랑이라는 기만, 혐오라는 두려움, 감소하지 않는 한계효용을 무시한 댓가로 붕괴되어 가는 자본주의 세계, 보수적인 세로토닌과 진보의 도파민, 질병과 노화라는 생물학적 비극은 자연의 문제라는 것, 종교는 보수적인 성향의 인간 본능의 극단적 발현이라는 것, 따라서 창조란 자연세계의 발생이 아닌 인간 세상을 만들어가는 진보적 창조라는 것 - 이 6가지 키워드에 대해 진화론으로 투사한, 사회의 그림자같았다. 저자는 기독교인인 나에게 신이 아닌 인간의 유전자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를 직관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난 직통으로 맞았다. 그것도 뼈맞았다. 근데 더 맞고 싶다. 그게 과학의 매력이고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1.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이 한국인이 쓴 책이라 너무 좋았다...몇년 전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때 느낀 이해도와는 차이가 다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사람들은 미리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2. 글은 논문식으로 쓰여져있다. 마지막에 요약 한페이지까지. 갓벽하다. 뭔가 “글은 이렇게 써라”를 배운 책이기도 하다.
3. 한편으로는 과학자가 전공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 이해(여기에 한국사회에 대한 분노를 결합시키면)하면 이런 시너지 폭발 글이 나오는 구나를 느꼈다.
4. 기독교인이 더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반성해야 한다. 나는 예배당에서도 잘 안나오는 그 이름 ‘주여’를 여기서 가끔 읊조린 건 안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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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키우기 1 - 봉봉, 알에서 깨어나다!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기무라 이코 그림, 황세정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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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게의 경품행사에서 특등 상품인 ‘수호신의 알’을 받게 된 승우. 원래 승우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수호신에게 그 소원을 빌기 위해 데려온다. 곧 이 무지개 빛깔을 가진 알에서 ‘봉봉’ 수호신이 태어난다. 하지만 봉봉의 수발을 들고, 맥이고, 씻기는 상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하지만 수호신이라는 타이틀 답게, 아이돌 신야를 만나고 싶어하는 엄마의 소원과, 돈이 생겼으면.. 하는 승우의 소원, 그리고 시험장까지 시간 내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주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과정에서 수호신, 봉봉 역시 한 단계 성장한다.

*처음에 봉봉을 데려왔을 때, 가장 좋아하지 않았던 아빠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면 노력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음을 짐작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자기도 모르게 신에게 기대고 싶어지잖아 그렇지? 하지만 아빠는 그게 싫단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수호신의 도움만 바라다니 부끄럽잖니.”(p.93)
봉봉 역시 이런 아빠의 의중을 눈치채고 가장 맘에 들어한다!(역시 신이군)

*“후후, 행복을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나누는 거지.”(...)
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짜증 내던 사람들, 조금이라도 먼저 앞으로 가려고 무리하게 끼어들다 오히려 더 정체를 일으키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봉봉의 힘이 깃들고 있었다.(p.106)
결국 수호신의 마음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의다. ‘나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이웃과 함께 읽고 나눌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봉봉이라는 귀여운 그림은 아이들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봐도 숨막히게 귀엽..

p.s 히로시마 레이코의 새로운 이야기인 수호신을 읽으며 내내 다마고치와 앵그리버드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더 재밌게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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