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전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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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만난 미야베 미유키 소설 《괴수전》은 지금까지 만난 에도시대 소설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봐. 읽었지만 잊은 것도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한 듯해. 배경이 에도시대기는 해도 판타지라는 말을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어. 미야베 미유키 판타지도 쓰지. 이것을 잊고 있었네. 판타지일지라도 사회문제와 함께 썼지. 에도시대 소설에도 그런 게 있었어. 사람이 만든 신이나 귀신(도깨비), 요괴가 나오기도 하지. 에도시대기에 그것을 더 편하게 쓴 건 아닐까 싶어. 거기 나오는 사람은 서민일 때가 많았지. 하급무사도 나오기는 하지만. 하급무사는 서민 편에 서서 일을 했군. 내가 《괴수전》은 다른 에도시대 소설과 다르다고 느낀 건 왜일까. 다 읽고 보니 아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거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건지도 모르겠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난 이야기가 아주 없지 않았어. ‘마구루’라고 하더군. 《피리술사》 읽었는데 그 이름은 잊어버리고, 사람들 원한으로 이루어진 괴물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잊지 않았어. 그게 바로 ‘마구루’였어.

 

이것을 보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아서 말은 안 할게.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이 생각났다고만 할게. 미야베 미유키가 쓴 에도시대 소설에서 두번째인가 본 게 《외딴집》이었던 것 같아. 왜 이런 말을 하느냐구. 그 소설 앞부분 배경 설명이 복잡해서. 이것도 앞부분 어쩐지 복잡해 보여. 쉽게 말하면 한 번이었던 곳이 둘로 나뉘고 사이가 좋지 않다야. 고야마와 나가쓰노라는 곳이야. 나가쓰노 주군을 섬기던 집안 사람이 고야마를 다스리게 되어서.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알기 어렵겠군. 이건 에도시대 정치라고 할까 나라를 다스리는 장치를 알아야 하는 거군. 나도 자세하게 몰라서 복잡하다고 느끼는 건지도. 번은 우리나라로 치면 시쯤 될까(도는 그것보다 넓으니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도일 수도 있겠군). 나도 잘 모르니 이건 그만 하고. 번경에서 가까운 곳에서 산을 개척하고 사는 고야마 한 마을 사람이 하룻밤 만에 모두 사라져. 거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곳에 괴물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이 괴물한테 잡아 먹히고 죽었어. 고야먀에서 이 일을 알게 되는 사람이 있고, 번경에서 가까운 나가쓰노 한 마을 나카무라에서 사는 몇 사람도 그 일을 알게 돼. 사이 안 좋은 두 번 사람들이 힘을 모아 괴물을 물리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괴물을 이용해야겠다 생각한 사람도 있어. 다행하게도 그건 이루지 못했어.

 

괴물 모습 참 무서워. 글로만 나와서 뚜렷하게 그리기 어렵지만. 몸은 두꺼비, 다리는 도마뱀, 꼬리는 뱀이고 눈은 없어. 머리가 좋고 둘레 색에 따라 몸 색깔이 바뀌어.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생물이지. 사람을 많이 잡아먹고 배가 부르면 다시 뱉어내. 이건 보통 뱀이 차라리 낫지. 뱀은 먹이를 먹고 배가 부르면 다른 먹이가 나타나도 공격하지 않잖아(그렇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사람 욕심은 끝이 없지. 그렇군, 괴물은 사람이 가진 끝없는 욕심을 가진 거군. 이렇게 말하면 그 괴물이 어떻게 말들어졌는지 좀 알겠지.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무서운 일을 하지. 그게 도움이 된다 말하면서. 괴물, 원자력 발전소인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편집후기에 그 이야기가 나와서. 누군가는 그런 걸 만든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누군가는 괴물이 나타나면 물리칠 수 있는 주문을 오랫동안 지켰어. 세상에는 잘못 생각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책임을 느끼고 바로잡으려는 사람도 있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아주 없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런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돌아가는 거겠지.

 

사람이 가진 무기로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을 어떻게 쓰러뜨릴까 했어. 앞에서 괴물을 물리치는 주문을 오랫동안 지킨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그 주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집안 사람이고, 산제물이 되어야 했어. 이건 조금 아쉬워. 사람이 주술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물리치는 주문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그것을 만들 때 사람도 희생되었군.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 다시 누군가 희생해야 했을까. 어렸을 때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때는 어떤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도 모르겠어. 자신이 숨어서 살아야 하는 것을 원망하고 복수하려고 한 사람도 있군.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이름은 거의 적지 않았군. 누군가 한두 사람만 말하기 어렵고 모두 중요한 사람으로 보여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은 없앴지만, 모든 게 다 좋아진 건 아니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도 있어. 세상이 그렇기는 하지. 나쁜 건 뿌리뽑을 수 없는 거니까. 여기에서는 번이나 식구를 위해 안 좋은 일을 하기도 한다는데, 자신의 둘레뿐 아니고 더 넓게 보고 생각해야지. 지금은 자신이 사는 나라만 생각하지 않고 세계(지구)를 생각해야 한다고도 하더군. 맞는 말이야. 좀 멀리 간 건가.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은 무섭기도 한데 재미있는 면도 있어. 미야베 미유키가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함도 담겼어.

 

 

 

희선

 

 

 

 

☆―

 

“나는 산에서 죽지 않고 내려왔어.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한 내가 살아남은 것은.”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근성을, 인간이 지은 업을. 죄는 잊혀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바라고 하루하루 살아가. 그런 선한 바람 때문에 죄악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소심한 내가 확실히 기억해야 해.”  (656~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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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어둠

 

  범죄자의 탄생   無宿人別帳 (1958)

  마쓰모토 세이초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2015년 11월 16일

 

 

 

 

 

 

 

 

 

 

 

 

 

조금 다르지만 이 책 미야베 미유키가 쓴 에도시대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책 내용이 아닌 만듦새가. 이 책이 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소설을 많이 낸 북스피어에서 나와서겠다.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을 마쓰모토 세이초 첫째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국 사람인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을 보고 미야베 미유키 소설을 떠올렸다. 마쓰모토 세이초보다 미야베 미유키를 먼저 알고 책도 더 많이 보았다. 이 책 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책소개 자세하게 안 봤다. 책을 보고 이게 에도시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에도시대 소설 썼구나 했다. 역사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지금까지 많이 못 보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일본을 많이 썼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그건 요코미조 세이시인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소설 쓰기 시작한 게 그때가 조금 지난 뒤부턴가보다. 1951년 마흔하나에 역사소설 《사이고사쓰》를 쓰고 소설가가 되었다. 맨 처음 쓴 게 역사소설이라니. 이 말 처음 보는 거 아닐 텐데 잊어버렸나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꽤 오랫동안 글을 썼다. 늦게 시작해서 오래 쓴 건가 싶기도 하다.

 

에도시대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가 쓴 걸 많이 보고, 교고쿠 나쓰히코가 쓴 것하고 이름 잊어버린 사람이 쓴 《한시치 체포록》을 보았다. 미야베 미유키가 그리는 에도시대는 따듯하다. 욕심을 내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사는 사람 이야기가 많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조금 다르다. 아니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민을 이야기하고, 마쓰모토 세이초는 서민보다 더 밑에 사람을 이야기한다. 호적이 없는 무숙자다. 미야베 미유키는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을 보았기에 따듯한 이야기를 썼겠다. 마쓰모토 세이초 이야기에는 환상이 없다. 현실뿐이다. 에도시대에는 자신이 살던 곳을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다. 떠난다 해도 사찰에서 증명서를 받아야 무숙자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할 때는 언제일까. 잘못을 저지르거나 농사가 잘 안 돼서 그곳을 떠나야 했을지도. 그런 사람은 에도로 갔다. 에도에 간다고 해도 일자리가 없을지도 모를 텐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로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한번 형무소에 갔다 온 사람은 다시 시작하기 어렵기도 하다.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가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뉘우침 없는 사람도 있다. 에도시대 무숙자하고는 좀 다를까. 무숙자는 살 곳이나 일자리를 제대로 구하기 어려웠다. 나라에서 무숙자만을 잡아다 금광에 보내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섬으로 보냈다. 운이 좋으면 그곳에서 풀려날 수 있지만, 금광에는 한번 가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섬으로 가는 사람은 먹을거리도 자신이 구해야 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곳에서는 일을 하면 밥을 주고 돈을 모아주었다. 돈 정말 모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유가 없어서 그곳에서 달아나려는 사람도 있었다. 달아났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감방에는 아주 많은 사람을 가두었다. 감방 안에서도 힘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힘있는 사람은 사람이 많아서 좁아진 감방을 넓힌다면서 자기 밑에 사람한테 죽일 사람을 고르게 했다. 오캇피키가 무숙자와 사귀는 여자를 손에 넣기 위해 없는 죄를 만들어서 섬으로 유배 보내기도 했다. 그 무숙자가 섬에서 돌아오자, 그때는 무숙자가 일하는 곳마다 찾아다녀서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도 여자는 오캇피키한테 오지 않았다. 사람 마음은 억지로 얻을 수 없는데.

 

처지가 비슷하면 서로 사정을 잘 아니 돕고 살아야 할 텐데 여기 나오는 무숙자는 그러지 않았다. 섬에서 달아나기로 하고 사람을 모으고는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하고만 달아나려고 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무숙자한테 그 죄를 뒤집어 씌웠다. 억울한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 잘못을 말하고 감방에서 나오다니. 감옥 서기가 잘못해서 섬에 오랫동안 있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촌장은 나라에서 하는 일에 잘못이 있을 수 없다 말했다. 나라든 높은 사람이든 다 잘못할 수 있다. 에도시대에는 무숙자를 차별했다.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누군가 저 사람이 범인이다 하면 감방에 가두고 섬으로 유배 보냈다. 다시 돌아와서 제대로 살려고 해도 무숙자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 사람들은 다시 범죄에 손을 물들였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나라가 죄인을 만들었다 말한다.

 

옛날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지금도 일어난다. 한번 잘못한 사람은 다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같은 처지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내리려는 것도. 이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비슷한 처지에서는 서로 돕고 사는 게 훨씬 좋을 텐데.

 

 

 

 

☆―

 

“긴스케, 너는 무숙자야. 무숙자 놈들이 하는 짓은 가택 침입 강도질, 날치기, 불지르기, 아녀자 희롱 따위로 정해져 있지. 확실한 증인이 있는데도 버티는 거냐.”  (178쪽)

 

 

 

 

 

 

 

처음인데 마지막

 

  시노부 선생님 안녕

  しのぶセンセにサヨナラ 浪花少年探偵団・独立篇 (1996)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옮김

  재인  2015년 08월 07일

 

 

 

 

 

 

 

 

 

 

 

 

책을 다 읽고 생각한 건 나도 잘 쓰고 싶다예요. 소설이 끝나고 작가가 하는 말이 있고 다음에는 해설입니다. 해설 보고 그런 생각했습니다. 히가시도 게이고가 예전에는 짧게 글 썼네요. 지금은 소설만 쓰고 다른 건 안 쓰잖아요. 이 책 삼분의 이쯤 보고 난 다음날 새벽 인터넷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 한번 찾아봤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 찾으려고 한 건 아니고 이 책 제목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였어요. ‘시노부 선생님, 안녕!’ 다음 말이 ‘나니와 소년 탐정단 독립편’이 맞는지(해설 보니 쓰여 있더군요. 해설은 나중에 봤지요). 소설가여도 가끔 산문 쓰기도 하잖아요. 아니 쓰는 사람도 있고 안 쓰는 사람도 있겠네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것 같은 산문이 있더군요(다른 것도 있을지도). 《아마 마지막 인사 たぶん最後の御挨拶》예요. 2007년에 나왔더군요.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 조금 들었는데, 이런 마음이 든 건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많이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데 2015년에 두권 다 나왔네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인데 중심은 초등학교 선생님인 다케우치 시노부군요. 《오사카(나니와) 소년 탐정단》을 먼저 만나고 이 책을 만났다면 더 나았을 것 같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요.

 

다케우치 시노부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지금은 가르치는 일 쉬고 대학에 다니더군요. 첫째권 마지막에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대학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을 것 같네요. 학교 아니면 교육청 같은 데서 보내주는 거였을지도. 이 책이 나온 건 1990년대예요(첫번째는 1980년대 말일까 했는데 1991년에 나왔네요). 오래전에 나왔다고 말하고 싶어서. 오래전에 나왔지만 읽는 데 문제없습니다. 맨 처음 이야기에서는 지금과 다른 시대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겠네요. 회사에서 하는 일을 컴퓨터로 바꾸기 시작할 때 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컴퓨터 배우기 어려운 사람 많았을 것 같네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생각한 사람 많았겠지요. 가벼운 듯 보여도 사회문제도 건드렸네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도 했군요(기계를 이용해 사람을 죽인 거였지만). 시노부는 여성이 사회에 나간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 결혼과 일을 생각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시노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니. 시노부 마음은 경찰인 신도 쪽에 기운 것 같아요. 바로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좋은 대답을 하겠습니다.

 

나니와 소년 탐정단 아이는 몇이었을까 싶군요. 이번에 나온 건 뎃페이와 이쿠오예요. 둘이 친한가 봅니다. 둘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시노부를 만납니다. 시노부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선생님이라고 합니다(한번 선생님은 언제까지고 선생님이군요). 이쿠오 엄마는 시노부와 운전면허증을 따려고 운전 연습하다 사건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범인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 됐습니다. 욕심을 내면 안 되겠지요. 그걸 알았다면 처음부터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았겠습니다.

 

이 책 배경은 오사카예요. 한번은 시노부가 뎃페이, 이쿠오와 함께 도쿄에 갑니다. 오사카에서 초등학교 다니다 도쿄에 간 아이도 만나기 위해. 시노부는 유타가 쓴 편지를 보고 조금 걱정했는데. 셋이 도쿄에 간 날 유타 동생이 유괴 당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유타 동생이 나쁜 사람한테 끌려간 건 아니고 유타와 유타 누나 그리고 뎃페이와 이쿠오가 꾸민 일이었습니다. 오사카와 도쿄 둘 다 도시겠지만 도쿄가 더 살기 어렵겠지요. 유타 부모는 도쿄로 이사하고는 사이가 나빠지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이는 그런 부모 모습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요. 위조 지폐 소동이 일어나고 모르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보면 알기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누군가와 관계가 있기도 하더군요(이건 제가 책을 봤기에 말할 수 있는 거네요). 사람은 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는군요. 그게 늘 좋지만은 않다는 게 아쉽네요. 좋기만 하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 마지막에서 시노부는 다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하는데 잘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시노부 같은 선생님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지만 친구 같기도 하네요. 중학생이 되고도 뎃페이와 이쿠오는 시노부를 만났잖아요. 나니와 소년 탐정단 독립이면 이제 시노부 만나지 않을까요. 아이는 자라니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스스로 해결할지도. 모든 사람이 홀로서기를 잘 하는 건 아니군요. 시노부가 가진 좋은 점 생각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아이 마음을 잘 알려고 애쓰는 거였을지도. 마지막에 그런 모습 잘 보입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이라 하지 않고 나니와 소년 탐정단이라고 했네요. 그걸 먼저 봤다면 나니와라 하지 않았을지도. 나니와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본래 나니와 소년 탐정단이고 오사카 옛이름이 나니와예요.)

 

 

 

희선

 

 

 

 

☆―

 

“사무직만 그런 건 아니예요. 공장 사람들도 기계에 쫓기느라 즐거움이라고는 거의 못 느끼는 얼굴이었어요. 그렇다는 것도 모르면서 뭐가 합리화인가요? 이러다간 정말로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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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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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7 0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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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사라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친구를 만난 게 확실하게 언제였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애를 나만은 기억한다. 내가 친구를 잊지 못하는 건 부럽기 때문일까.

 

그냥 친구라고 했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해준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날 난 어떤 책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여행기였다. 그 책에는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작가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도서관 한구석에서 찾아냈다. 여행기 잘 안 보던 내가 그런 책을 왜 봤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 책 어때, 재미있어?” 하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친구와 나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한 적 없었는데, 마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것처럼 말을 걸었다. “여행긴데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어. 상상으로 쓴 것 같기도 해.” 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등학생 때였던가보다. 친구는 내 뒷자리에서 내 손에 들린 책을 힐끔 보더니, “그 책 내가 쓴 건데, 가짜 같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정말 니가 쓴 거야?” 하고 되물었다. 친구는 겉으로는 내 나이와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깊었다. 나와는 아주 다른 일을 겪은 눈이었다.

 

소설, 아니 내가 보던 책은 소설이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판타지 소설 같은. 가짜처럼 보이면서도 어쩐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 책을 쓴 사람도 우연히 그곳으로 갔다. 책 읽기를 좋아한 그 사람은 거의 도서관에서 지냈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해도 재미가 없고 친구도 잘 사귀지 못했다. 그 사람한테는 언제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 친구였다. 그날도 학교에 가서 교실에는 가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책 한권을 골라서 보았다. 그때 본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으로 작가 이름은 쓰여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책을 보다 잠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잠속에 빠져들면서도 잠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은 깜짝 놀란 듯이 깨어났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천천히 그곳이 도서관이 아닌 걸 깨달았다. 그곳은 숲속이었다.

 

“그때 내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행이었어. 책을 읽고 사는 거 괜찮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많았거든.” 하고 친구가 말했다.

 

친구가 간 곳은 어디였을까. 가끔 이 세계와 다른 세계가 비틀려서 틈이 생긴다는 말을 어떤 소설에서 본 것 같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정말 그 일을 경험한 걸까. 도서관에 그런 틈이 생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여행 하는 이야기를 보면 지난날로 간 사람은 자신이 살던 시대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 친구는 그곳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이곳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고 사람들은 모두 따듯했다. 어쩌면 친구가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하지 못한 걸 그곳에서는 했다. 친구도 그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게 지냈다. 한두 해는 갑자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 누군가 한 사람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곳에 간 지 세해째 친구는 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친구는 그곳에서 그 사람과 평생을 살리라 생각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 걸까, 얼마 뒤 친구는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책》을 읽다 잠든 도서관으로. 친구가 도서관에 왔을 때 그 책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책을 찾았지만 그 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책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친구는 다른 세상에 가고, 그곳에서 만나고 겪은 일을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고 책으로 묶었다. 책 제목은 《여행자의 책》이라 했다. 친구는 그 책이 자신을 다시 다른 세상에 데려다 줄 《여행자의 책》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친구가 썼다고 한 여행기를 본 다음날부터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내 뒷자리 아이 학교에 안 오네.” 하고 짝한테 말하니, “무슨 말이야, 본래 저기 빈 자리잖아.” 했다.

 

여행기 마지막에는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해줄 거다.”는 말이 쓰여 있다.

 

 

 

 

*더하는 말

 

전에 한번 책을 보고 이야기를 써 보기는 했지만(짧은 이야기도 가끔, 그게 이야기야 할지 몰라도), 그때는 책 이야기도 썼다. 그 뒤 언젠가 책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쓴 건 아니고 《여행자의 책》(폴 서루)을 보다보니 쓰고 싶은 게 떠올랐다. 처음에는 ‘나’가 다른 곳으로 이어진 틈을 우연히 알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곳에 가서 떠나는 것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좀 달라졌다. 생각한 대로 쓸 때도 있고, 생각한 것과 달라질 때도 있다. 바뀔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얼마나 써 봤다고 이런 말을. 앞으로 이야기가 가끔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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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부 남기고 가요 ㅡ^^

희선 2016-02-21 02:45   좋아요 1 | URL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그장소] 2016-02-21 11:43   좋아요 0 | URL
희선 님도요!^^

2016-0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체임버 뮤직

  제임스 조이스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2015년 05월 12일

 

 

 

 

 

 

 

 

 

 

 

 

 

 

얼마전에 정끝별 이름은 알지만 시집은 처음 본다고 했는데 예전에 책 두권 만났다. 그걸 본 지 오래돼서 잊어버린 거다. 그렇게 책을 보고도 봤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 가끔 있다. 산 것 같은 책이 보이지 않는 건, 내가 사지 않은 건가. 그래도 난 한번 산 책 두번 사는 적은 없는데, 샀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책은 있다. 그런 책은 슬프겠다, 내가 자기를 잊어버려서. 책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책은 누군가 펴보아야 비로소 책이 된다. 지금 책을 펴자.

 

 

 

1

 

이 세상에는 이름은 알지만, 내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작가 책 많다. 제임스 조이스도 다른 데서 이름은 봤지만 글은 한번도 못 보았다. 소설이 아닌 시를 먼저 보다니(제임스 조이스는 시를 먼저 썼다), 언젠가 소설도 만날 수 있을까. 어쩐지 제임스 조이스 소설은 어려울 것 같다. 정신분석가는 제임스 조이스 책을 보고 여러가지를 알기도 했다던데. 정신분석가만 그런 건 아니고 많은 작가가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만났겠지. 제임스 조이스는 글을 써서 정신의 균형을 지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딸 루치아는 신경쇠약과 정신분열 증세로 치료받기도 했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책에서 본 걸 쓰다니. 제임스 조이스 소설에서 제목 아는 건 《더블린 사람들》과 《율리시즈》다. ‘더블린’이라는 곳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 곳인지 확실하게 몰랐다. 제임스 조이스가 난 곳은 아일랜드고 죽은 곳은 스위스 취리히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에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왜 제임스 조이스 유해를 아일랜드에 묻지 못하게 했을까.

 

위장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에 빠진 뒤 숨을 거둔 제임스 조이스 이야기를 보니 마왕 신해철이 떠올랐다. 제임스 조이스는 스물다섯에 왼쪽눈에 홍채염이 생겨서 몇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지금은 그거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집 《체임버 뮤직》은 제임스 조이스가 처음으로 낸 책이다. 시에 제목은 따로 없고 번호가 쓰여 있다. 제임스 조이스 식구는 모두 음악을 좋아했다. 여기 실린 시도 여러 사람이 곡을 붙이고, 제임스 조이스가 곡을 붙인 것도 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는 오페라 가수가 되려고 성악을 배웠다.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시를 우리말로 옮기면 느낌이 다르다. 영어 잘 모르는데 이런 말을. 우리말로 쓰인 시를 다른 나라 말로 옮겨도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다. 아주 좋은 시는 어느 나라 말로 옮기든 좋을까. 말장난이 있는 건 그 나라 말과 문화를 모르면 알기 어려울지도. 예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캐논>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듣기에 연주가 좋았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고 했다. 그때 체임버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오케스트라는 거의 바깥보다 안에서 연주하지 않나. 체임버는 실내, 안, 방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오케스트라보다 적은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9

 

 

오월 바람, 바다에서 춤추네,

기쁨에 들떠 고랑에서 고랑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춤추고

거품은 날아올라 화환 되어

은빛도 둥글게 공중에 걸치는데,

내 애인 어디에 있는지 보셨나요?

아, 슬퍼라! 아, 슬퍼라!

오월 바람이 있어!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45쪽)

 

 

 

여기 실린 건 제임스 조이스가 자기 아내 노라 바나클을 만나기 전에 쓴 사랑시다. 사랑시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써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남도 있지만 헤어짐도 있다. 대상이 없어도 시를 쓰는구나. 그나마 알기 쉬운 게 사랑시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실린 시는 알듯 모를듯하다. 있는 그대로 봐도 될 것 같은데 누군가는 숨은 뜻과 상징을 억지로 갖다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제임스 조이스 소설을 본 다음에 시를 봤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시는 느끼라고 한다. 이런 말 들어도 잘 알기 어렵기도 하다. 시만 느끼는 건 아니다. 음악도 그렇다. 시와 음악은 가까운 사이구나.

 

 

 

16

 

 

이제 골짜기 서늘하니

우린 그리로 가요 내 사랑

임이 언젠가 갔던 곳

이제 수많은 새들이 노래하잖아요

개똥지빠귀들이 부르는 소리,

우리더러 오라는 소리가 안 들려요?

오, 골짜기는 서늘하고 쾌적하니,

그대여, 우리 거기에 머물러요.  (65쪽)

 

 

 

2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를 배웠다. 처음에는 친구가 배운다고 해서 나도 같이 배운 것 같다. 피아노 치는 건 즐거웠다. 혼자 연습하는 때가. 난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나 선생님을 아주 어려워했다(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어려울지도). 피아노 연습한 것을 선생님한테 들려주는 시간은 그리 좋지 않았다. 편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그때 잘 못 친 건 아니다. 그때도 피아노 배우는 건 돈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피아노 배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이엘 다음으로 넘어갈 때 그만두어야 했다. 그게 아쉬웠다. 집에 피아노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6학년 때 피아노 잘 치고 피아노 있는 친구가 같은 반에 있어서 몇번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 친구하고 그 뒤에 어떻게 됐던가. 피아노 그만 둘 때 언젠가 피아노 다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피아노 대신 배운 게 있다. 그건 타자다. 타자 치기도 두 손으로 하는 거니까(피아노 치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만). 이젠 수동 타자기 없는데(박물관에 있을지도), 타자기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 배운 거다. 그것도 겨우 몇달. 시험도 한번 보라고 했는데, 내가 다니는 학교와 좀 멀어서 그만뒀다. 그때 타자를 배워서 나중에 컴퓨터 자판 외울 필요없었다. 영타는 여전히 천천히 한다.

 

피아노를 생각하고 타자를 배우다니 지금 생각해도 좀 우습다. 피아노 생각은 그 뒤로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에 일이 있어서 5학년이 되고 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사귄 친구와는 초등학교 두해, 중학교 세해 동안 만나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어릴 때 친구여서 그런지 조금 뒤 괜찮아졌다. 그 친구는 나와 나이는 같지만 한 학년 위였다. 어릴 적에 친구로 만나서 죽 친구로 지냈다. 고등학생 때는 아니고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친구 집에 가서 피아노를 쳤다. 잘 못 치는 피아노 소리는 듣기 싫은가보다. 그런 것에 별로 마음 안 쓰고 자기 집에서 피아노 치게 하다니, 그때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그 친구 집이 멀어서 그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어쩐지 핑계를 찾고 그만둔 듯한 느낌이다. 내 성격이 살가웠다면 달랐을까, 무뚝뚝해서. 지금 집에 피아노는 없다. 피아노 오래 배우지 못한 일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렇게 쓴 걸로 그만 아쉬워할까 한다. 내가 피아노 오래 배웠다고 해도 잘 쳤을 것 같지 않다. 언젠가 피아노 이야기 써 보고 싶다.

 

 

 

한때는 차갑고 묵직한 건반 위에서 열 손가락이 춤 추려 했지,

지금 내 손은 덜 차갑고 가벼운 컴퓨터 자판 위에서 때때로 춤추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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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는이가

  정끝별

  문학동네  2014년 10월 28일

 

 

 

 

 

 

 

 

 

 

 

 

 

 

 

 

 

시인 이름은 들어봤지만 시를 보기는 처음이다. 그런 사람 한둘이 아니다. 시를 보면 나도 시 말투로 말하고 싶다, 마음은. 글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시를 더 많이 만나야 할까보다. 시를 본다고 그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정끝별 시는 더 모르겠다. 어떤 건 자기 이야기인 것도 같은데. 아버지가 여든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그전에 병원에 있었나보다. 나이 먹고도 아주 많이 아프지 않고 남의 도움 없이도 사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살다보면 아프고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해야겠지. 그나마 식구가 있는 사람은 나을지도 모르겠다. 도움 받는 게 미안할지라도. 혼자 사는 사람은 아주 모르는 사람 도움을 받아야겠다. 그런 일 없는 게 가장 좋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 평소에 덕을 쌓는 게 좋겠다. 착한 일 많이 하지 않았지만,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아도 가끔 안 좋은 일 일어난다. 그걸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다. 모든 일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불 들어갑니다!

 

하룻밤이든 하룻낮이든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듯한 것

 

지는 벚꽃 아래

목침 삼아 베고 누워

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예쁠 뿐!  (34쪽)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따듯하겠지. 아, 당연한 말을. 아직 봄은 아니지만, 봄이 올 걸 생각하고 <봄>을 앞에 썼다. 입춘 지났으니 봄이 올 날 머지않았다. 마지막 말 봄이 예쁘다는 걸까. 사람도 봄을 맞았을 때 티없이 예쁠까. 아니 어느 철이든 괜찮을 거다. 봄은 꼭 어릴 때만은 아닐지도. 설레는 일이 많이 일어나거나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을 때 봄이라고 하지 않을까. ‘봄은 시작이다.’ 봄 없이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겠다(바로 나, 이런 말은 왜 했지). 마음은 언제나 봄일 수도 있겠다. 그러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투신천국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대 셋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 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보겠다며 활짝 웃으며 예비 신고식을 했던

 

악 소리도 없이 별똥별처럼 뛰어내린 너는

그날그날을 투신하며 살았던 거지?

발끝에 절벽을 매단 채 살았던 너는

투신할 데가 투신한 애인밖에 없었던 거지?

 

불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던 물먹은 시곗줄과

어둔 강물 어디쯤에서 발을 잃어버린 신발과

새벽 난간 위에 마지막 한숨을 남겼던 너는

 

뛰어내리는 삶이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던 거지?  (100~101쪽)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지금이지만, ‘너’는 군대 다녀오고 대학을 마치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다. 애인이 죽어서 ‘너’도 죽다니.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자신도 따라죽다니. 그 말만 남겼지만 다른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많이 보거나 듣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아주 많다고 한다. 물질은 넘치는 세상인데 마음이 모자란 세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까닭이 있어설지도 모르겠다. 이 시 다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이야기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알려주는 걸까. 그 사람은 성실하게 일하고 그게 잘되고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는데, IMF를 맞고 일이 잘 안 되자 아내와 딸이 떠났다. 아내와 딸은 떠났지만 형은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조금 나가면 이웃이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이웃과 잘 지내는 건 힘든 일이다. 죽기로 마음먹으면 그런 것도 보이지 않겠지. 죽으려고 했을 때 우연히 음악을 듣고 마음을 접는 사람이 있고, 라디오 방송을 듣고 마음을 접는 사람도 있다. 죽기로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한테 아주 작은 거라도 나타나면 좋을 텐데.

 

누구나 한번쯤 죽고 싶다 생각할 거다. 그런 순간을 잘 넘기면 괜찮을 텐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죽음을 스스로 앞당겨서 좋을 건 없다. 자신이 죽어서 슬퍼하고 괴로워할 사람을 생각하면 좀 낫지 않을까. 죽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겠지. 살았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나 슬픔 아픔도 없을 거다. 그런 감정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 많겠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못하는 건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권리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번밖에 없는 삶 그냥 살다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말도 있다. ‘봄이 온다, 살아야겠다.’ ‘비가 내린다, 살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살 까닭 많겠다.

 

 

 

마음 지치고 쓸쓸한 그대

라디오를 들어요

그대만을 위한 말과 음악이 흘러나올 거예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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