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로 살고 있니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숨 지음, 임수진 그림 / 마음산책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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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으로 사는 건 어떤 걸까. 이 책 제목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무언가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도 떠오르는데 이건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이 책에서 말하는 건 다른 것 같아. 이 책 우연히 알았을 때는 따스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읽어보니 다르군. 그렇다고 차갑거나 어둡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이런 사람은 식물인간이 되고 열한해 동안 산 사람인지, 연극를 하다 그것을 그만두고 식물인간 여자를 돌보는 사람일지. 그밖에도 여러 사람이 나오는군. 암으로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지금 생각하니 아픈 사람 이야기가 많네. 병원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겠어.

 

 가끔 오랫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지. 그런 것을 실제 본 적은 없고 드라마에서 봤어. 소중한 사람이 식물인간이 되어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돌보는 데 지치는 사람도 있겠지. 누군가한테 아픈 사람을 맡겨도 그 사람이 그만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사람도 있더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엄마가 언니를 돌보다 아프고 세상을 떠나서였어. 열한해 동안 식물인간인 여자 동생이 그랬어. 식물인간 여자한테는 지금 열여섯살인 아들이 있지만 아들은 큰아버지와 캐나다에 산대. 식물인간이어서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아들이 여자를 찾아오지 않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될 텐데. 식물인간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 영혼은 식물인간이 되기 전으로 돌아갈까. 식물인간이 된 때 일도 다 알까. 별거 다 생각했지.

 

 식물인간인 사람은 정말 자기 생각이 없을까, 없겠지. 그 사람을 돌보게 된 ‘나’는 연극배우였어. ‘나’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연극을 그만두었어. 그런데 갑자기 식물인간인 여자 돌보기를 하다니. ‘나’는 식물인간 여자를 보고 자신과 같다고 느끼기도 해. 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배우는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잖아. 그것 때문에 ‘나’는 늘 ‘나’로 살지 못했다 생각했을지. 식물인간 여자와 ‘나’가 자신을 같게 생각한 건 연극을 하다 쓰러져서일지도. 두 사람은 나이도 같았어. ‘나’는 식물인간인 여자를 알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겠지. 식물인간 여자 남편은 아내를 요양병원으로 보낸다고 해. 열한해가 지나고 그렇게 보내다니. ‘나’는 여자를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무 사이도 아닌 ‘나’가 바란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식물인간 여자가 갑자기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겠어.

 

 책 제목 ‘너는 너로 살고 있니’는 무슨 뜻으로 지은 걸까. 어딘가 아픈 사람은 자신으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건 아닌가. 그것보다 사람은 바뀔 수도 있다인가. 자신은 언제나 자신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도 하잖아. 사람은 누군가한테 영향을 주고받아. 나라는 건 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없으면 나도 없는 거 아닐까. 그러면 남과 함께 사는가를 묻는 걸까. 사람이 혼자 산다 해도 혼자 힘으로 살 수는 없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이게 아니면 어떤가 싶어. 책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은 거지. 아픈 사람이 나와서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지만, 책을 볼 때는 그런 느낌이 덜해. 이상하군. 이런 생각은 책을 보고 쓸 때 들기도 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어.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이 맡은 역을 잘 해 내는 배우인가 싶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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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투둑투둑투둑

땅으로

나뭇잎으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마른 세상을 적시고

버석버석 버석버석

마른 마음도 적신다

 

투둑투둑투둑투둑

듣고 있으면 눈이 감기는

비가 부르는 자장가

잠 못 자는 아기도 재울까

 

때로

투둑투둑투둑투둑

내리는 비는 땅을 두드려

씨앗을 깨운다

 

 

 

*어쩐지 봄비같은 느낌, 봄에 썼으니 그럴 수밖에……

 

 

 

 

 

 

 

여름이 오면 생각하는 것

 

 

 

 

 

 저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말을 비가 들으면 슬퍼할까요. 비 오는 건 싫어도 세상에 비가 오지 않으면 큰일이겠지요. 지구에 사는 모든 것은 물이 없으면 안 되잖아요. 사람 몸에도 물이 가장 많군요.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걱정스러워요. 제가 사는 곳에도 엄청 쏟아질까 봐. 예전에는 여기는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2012년 8월 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는 어디에든 많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비는 장마철에만 많이 오지 않지요. 몇해 전부터는 장마가 끝난 팔월에도 비가 많이 내리게 됐습니다. 가을 장마라는 말도 하지만 팔월은 아직 가을이 아니군요. 구월, 시월에도 비가 많이 내리기도 합니다. 한국은 아니지만, 몇해전 미국에는 겨울에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홍수가 났지요. 허클베리핀이 생각나는 미시시피강이 넘쳤어요.

 

 시간이 흐르면 걱정하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걱정합니다. 또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물난리는 한번만 겪어도 잊지 못하는가 봅니다. 이렇게라도 써서 걱정을 털어버리고 싶은 건지. 그런 것 같네요. 여름뿐 아니라 해가 바뀌면 언제나 ‘여름에는 비 조금 오기를’ 하고 생각해요.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생각하는군요. 그렇게 하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는 거겠지요. 기도와 같은 거네요. 신을 떠올리고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여름이 오면 생각하는 것’이 아닌 ‘비가 오면 생각하는 것’이 됐군요. 2012년 뒤 한두 해 동안은 여름에만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여름이 아닐 때도 ‘비 조금 오기를’ 합니다. 비가 아주 안 올 때는 비가 한동안 안 왔구나 해요. 그때는 반대로 비가 오기를 바라요. 적당히 오기를.

 

 비가 중요하지만, 엄청 많이 와도 아주 조금 와도 안 되는군요. 언제나 적당히 오면 좋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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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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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알았어. 그렇다 해도 자세한 건 몰랐어. 조금 아는 것과 책을 읽는 건 달라. 당연한 말을 했군. 책 읽은 느낌을 뭐라 하면 좋을까. 만나려고 한 사람을 겨우 만났구나 하는 느낌. 책이나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저 두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여기에 나온 두 사람은 잘 모르겠어. 한 사람이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 그러니 죽고 다시 태어난 다음에 전생을 기억하고 그때 좋아한 사람을 만나려고 한 거겠지. 그렇게 하려면 상대를 얼마나 좋아해야 할까. 난 그런 적이 한번도 없어서. 그런 마음이 부러운 건지도 모르겠어. 남자가 더 사랑받는 느낌도 들어.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나. 한 사람은 나중에 기다렸으니. 난 두 사람이 만난 것보다 그 다음이 더 마음 쓰여. 처음부터 이런 말을. 그건 마지막에나 나오는 건데.

 

 오사나이가 미도리자카 유이와 미도리자카 딸 루리를 만나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해. 열다섯해 전에 오사나이 아내와 딸 루리는 차 사고로 죽었어. 여기에 똑같은 게 있지. 오사나이 딸 이름과 미도리자카 유이 딸 이름이 루리라는 거야. 오사나이 딸 루리는 일곱살쯤에 몸이 아프고 나서 달라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노래를 알고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었어. 오사나이는 그 일을 크게 마음 쓰지 않았어. 오사나이 아내 고즈에는 루리가 환생했다는 걸 알고 루리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사고가 나고 말았어. 루리가 하려던 건, 오사나이 루리가 되기 전 마사키 루리였을 때 만난 미스미 아키히코를 만나는 거였어. 마사키 루리는 결혼한 사람이었는데 미스미 아키히코를 만났어. 루리 결혼생활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까. 결혼한 사람 가운데 두 사람 마음이 딱 맞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루리는 미스미를 만나고 좋았지만 끝은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루리는 자신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 미스미 앞에 나타나겠다고 해. 그 말이 씨가 된 걸까. 루리는 사고로 죽어. 그건 정말 사고였는지 루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지. 미스미나 남편 마사키는 루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해. 그러고 보니 그건 나오지 않았군. 사고여서 다른 말은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 루리가 미스미한테 자신은 달처럼 죽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했지만, 그런 일을 자신이 정말 할 수 있을까 했을지도. 그런데 정말 다시 태어난 걸 알고는 기뻤겠지. 처음부터 그걸 안 건 아니지만. 일곱살쯤에 열병 같은 걸 앓고 루리는 전생을 기억해 내. 루리는 오사나이 딸로 태어나고 그 뒤에 두번 더 태어나. 바라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서 그렇게 여러 번 태어난 걸까. 그 마음 대단한 것 같아.

 

 소설을 보면 루리와 미스미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와. 그건 오사나이야. 오사나이는 그저 루리 아빠로만 여겼는데. 오사나이는 환생을 믿지 않았어. 미도리자카 루리를 만나고 믿게 됐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알게 되고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해. 오사나이도 조금 부러워. 뭐가 부럽냐고 오사나이를 무척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루리처럼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미스미)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한테 하지 않았지만. 남한테 자기 마음을 잘 나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런 사람도 자기 마음을 나타내고 싶을 때가 있고 그때가 오면 말할 거야. 늦지 않게 말하면 좋을 텐데. 소설에서는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을 기억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잖아. 전생에 누구였다 말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군.

 

 전생에 두 사람이 좋아하고 다시 태어나고 만나는 이야기도 있지. 그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싶어. 전생에 좋아했다고 또 좋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하기는 하지. 같은 사람을 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야. 죽지 않는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시 태어날 때마다 찾아가는 이야기 본 적 있어. 한 사람만 좋아하는 마음 멋지기는 해. 둘 다 같은 마음이면 더 좋겠지만. 혼자 좋아하는 사람은 조금 안됐군. 루리 남편 마사키가 그랬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는 게 낫겠지. 그게 진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일 거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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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쯤 나를 좋아할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지만 나를 떠나가는 사람은 있다. 시간이 흐르고 만나지 않아서 서로 멀어진 사람도 있고, ……다음은 생각 안 난다. 나와 알게 되었다 해도 더는 가까워지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생각하고 사이를 이어가지 않기로 한 사람도 있었겠지. 친한 게 어떤 건지 난 잘 모르겠다. 어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는 건 보이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해 본 적 한번도 없다. 다른 사람하고는 그렇게 해도 나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건 내 탓이기도 하겠다. 어둡고 무거운 나여서.

 

 이제는 정말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다른 일이 없어서 그런 생각에 빠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쓸 게 떠오르지 않는다고 이런 거나 쓰고. 아직도 내가 나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사는 것도 그저 그래서. 모자란 나도 좋아하고 싶다. 오랫동안 잘 하지 못하는 거구나.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한다 여기는 거겠지. 진짜 그렇다 해도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나 자신이 기쁠 뿐이다.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책에서 나 같은 사람을 보면 ‘그게 아니잖아’ 하는데, 내가 그 처지에 놓이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작가도 그런 일이 있어서 쓴 걸까. 그런 걸 쓰면 마음이 달라지고 거기에서 자유로워질까. 가끔 죽으면 다 쓸데없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니 아쉬움 없이 살면 더 좋을 텐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여기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 내일은 없는데. 이런 말로 이어지다니.

 

 내가 가진 좋은 점을 한번 찾아볼까. 찾아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없다 해도 그게 뭐 어때서 해야겠다. 사람은 다 다르고 글도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더 잘하고 싶으면 그것에 시간을 들이면 되겠지. 시간을 들여도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아니 애쓰면 아주 아주 조금은 늘 거다. 그걸 즐겁게 하는 나를 좋아해야겠다.

 

 

 

 

 

 

 

 

  

 

 

장미는 벌써 졌겠지

그래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남자는 여자와 다른 어려움이 있겠지

 

 

 

 

 

 악스트가 나온 지도 세해가 됐다니,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한해와 두해가 됐을 때는 벌써 그렇게 됐구나 했는데. 올해는 다른 때보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듯해서, 다른 건 생각하지 못했다. 여름이 오고는 여름이 천천히 가겠다 생각했다. 여름 자체가 그렇게 느끼게 하던가. 무척 더우면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흐를 텐데. 낮이 길어설지도. 하지가 지나면 다시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여름 해는 다른 철보다 늦게 모습을 감춘다. 해가 모습을 감추어도 그 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더운 곳에 살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런 곳은 습기가 없어서 그늘에 들어가면 무척 시원하다고 한다. 나무 그늘은 어디서나 시원하겠다. 나무 많이 심으면 좋을 텐데. 나무가 많으면 비도 아주 많이 내리지 않을지도. 아니 나무가 많으면 기온이 조금 내려가서 비가 덜 오는 거 아닐까. 나무가 있어야 비가 내린다고도 한다. 이건 좋은 거다. 단비.

 

 처음 악스트가 나왔을 때는 소설을 소개했다. 언제부턴가 주제를 정하고 글 쓰는 사람한테 소설을 보게 했다. 책은 글 쓰는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고 주제를 생각하고 글을 썼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주제를 듣고 거기에 맞는 책을 봤겠지. 뚜렷한 주제가 있다 해도 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난 아직도 그런 거 잘 못한다(여러 가지로 보는 거). 그저 책을 보고 무언가 생각나는 걸 쓴다. 내가 생각한 게 다 맞지는 않겠지만. 책을 보는 사람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저마다 글을 쓰겠다. 권여선이 소설 쓰는 방법은 소설가 숫자만큼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난 누군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면 꼭 그렇게 해야 할까 한다. 앞으로는 그런 방법도 있구나 해야겠다. 권여선은 예전에 이름 알았지만 소설은 별로 못 봤다. 권여선을 만나 이야기 한 것에는 이번 열쇠말 ‘남자’와 이어지는 것도 있다. 그런 소설이 있어서 나온 말일지도.

 

 남자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여자가 아닌 사람. 세상이 남성 중심이 된 건 언제부터일까. 기독교도 그런 것 같다. 아담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다고 하니. 동양은 유교사상이 좀 그렇다. 남성은 힘이 세고 여성은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걸까. 꼭 그런 건 아니겠지. 여자 처지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남자가 더 나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남자는 남자대로 힘든 일이 있을 듯하다. 집안을 이어야 하고 울고 싶어도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에 묶여 쉽게 울지 않는다. 그런 것도 남자가 정한 거 아닐까. 여자는 거기에 따르다니. 오래전에는 그랬다 해도 지금은 좀 다르구나. 앞으로 더 바뀌어야 한다. 남자라고 힘이 세야 하는 건 아니다. 치마는 여자 바지는 남자가 입는 것이다고 누가 정했을까. 지금 여자는 바지를 입지만 치마를 입는 남자는 없다(아주 없지 않던가). 남자가 치마 입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닐 거다. 치마를 즐겨입는 남자가 생기는 것도 괜찮을 텐데.

 

 예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난 사람을 여자 남자로 가르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은 이런데 남자는 대하기 어렵구나. 남자뿐 아니라 사람은 대하기는 다 힘들지만. 이건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겠지. 오래전에는 여자든 남자든 모두 머리카락이 길었다. 동양만 그랬던가. 동양사상에는 부모한테 받은 몸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서양문물이 들어오고 여자는 긴 머리 남자는 짧은 머리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자기 마음대로구나. 많은 게 남자 여자 구분이 없어지기는 했다. 그대로인 게 더 많겠지만.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말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은 별로 안 좋은 말이구나. 사람다움이 낫겠다. 여자 남자보다 사람답게 살자. 성이라는 걸 아주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안 될까.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 하지 않으면 좋겠다.

 

 두달에 한번 어떤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은 듯하다.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 거니. 다시 생각하니 악스트에서는 시대에 맞추는 것 같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잘 모르는 거였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번에도 조금 그랬다. 소설은 많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거의 비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소설 여자가 더 읽을까 남자가 더 읽을까. 남자가 더 많이 읽고 바뀌려 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남녀차별이 줄어들 것 같다. 여자라고 고쳐야 할 점이 없는 건 아니구나.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꼭 그걸 지켜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다. 옛날 생각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사람을 더 생각하면 그게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있을 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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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없는 미술관 - 벽을 넘어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하여
임옥상 지음 / 에피파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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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하면 멋진 풍경이 떠오른다. 그림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예쁜 것만 자주 본 건 아닐까 싶다. 그런 걸 보는 게 더 편하기는 하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만 보면 되니 말이다. 그런 그림이 안 좋은 건 아니다. 그림뿐 아니라 어떤 예술이든 아름다운 것을 나타내는 것도 있고 우리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있다. 그나마 글이나 음악은 괜찮은데 그림은 마주하기 힘들 것 같다. 바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나타낸 것도 아닐 텐데. 그건 사진이겠지. 아니 사진이라고 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는 건 아니다. 그것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 많겠지. 아쉽게도 난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에서 아는 이름이 별로 없다. 책을 내는 사람은 세상에 이름이 조금 알려져도 그러지 않는 사람은 거의 모른다. 그림 하는 사람만 그런 건 아니다. 클래식 음악 하는 사람도 아는 사람 아주 적다. 내가 관심을 덜 가져서 그렇지 음악이나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은 많이 알겠지. 어떤 것이든 자신이 관심을 가져야 조금 알 수 있다. 임옥상은 이름 들어봤는지 못 들어봤는지 잘 모르겠다. 한번쯤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기억하지 못한 것 같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난 그것도 몰랐다.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임옥상은 그림을 물감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흙이나 한지 먹으로도 그렸다. 동으로 만든 것도 있고 점토로도 만들고 컴퓨터 그래픽도 그렸다. 한가지만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할 수도 있겠지.

 

 옛날에는 색깔 때문에 안 좋게 보기도 했다. 그림에 빨간색이 많이 들어갔다고 전시회를 못하게 하고 종이호랑이도 정치 때문에 전시할 수 없었다. 임옥상이 그린 그림은 한국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대를 담았다고 할까. 그림에도 그런 걸 담을 수 있다. 이 책 겉에 쓰인 그림은 많은 사람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시위 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이렇게 남겨둬서 그 일은 많은 사람이 잊지 않겠다. 아니 그림이 없다 해도 모두 잊지 않겠다. 임옥상은 1980년에 5·18도 겪었다. 그 일은 임옥상 그림에 많은 영향을 미쳤겠다. 이 땅에 사는 사람한테 소중한 건 땅이고 사람이 희망이라 말한다. 이건 박노해 시인이 한 말이기도 하구나. 임옥상은 김남주 시인과도 알았던가 보다. 임옥상이 그리는 그림은 세상과 아주 동떨어지지 않았다. 현실 참여 그림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이런 말 쉽게 하면 안 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인데 <아프리카 현대사>라는 그림을 그려서 왜 그랬을까 했다. 아프리카를 그렸지만 거기에는 한국도 담겨 있었다. 그림이라고 해서 모두 미술관에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일산에서는 아파트를 지으려는 땅에 종이와 흙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건 사진으로만 남겠다. 그런 그림도 괜찮은 듯하다. 임옥상은 바닷가 모래로도 그림 그린 적 있을까. 여기에는 없지만. 돌담을 만들기도 했다. 미술, 그림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것도 어렵게 하기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좋겠다. 지금은 그런 게 많구나. 임옥상은 일찍부터 그런 데 관심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임옥상 그림을 보고 바로 좋다 말하기 어려워도 자꾸 보면 그렇구나 하게 한다. 한번 보고 스쳐 가게 하지 않고 그림 앞에 사람을 머물게 하면 괜찮은 거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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