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한해는 열두달에 삼백육십오일이다. 가끔 삼백육십육일일 때도 있다. 한해를 시간 분 초로 하면 얼마나 될지. 그런 것까지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한해에서 조금 좋은 때는 해가 바뀐 일월이다. 해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몰라 하고 기대한다. 좋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그런 건 자신이 만들어야겠지.

 

 다음은 날이 가고 달이 바뀌면 며칠은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주가 바뀌거나 날이 바뀌는 것도 좋아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다니 이상하다. 하루가 가고 다음 하루가 오는 것도 바뀌는 건데. 바로 이어져설까. 한달보다 한주를 잘 살려고 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것보다 하루가 더 나을까. 한주도 정말 빨리 간다. 학교 다닐 때는 참 천천히도 갔는데. 누구나 학교 다닐 때는 그랬을까.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해와 그냥 보내는 세해 길이는 다르다. 이걸 생각하니 신기하다.

 

 철을 말할 때는 봄을 가장 처음 말하는데 한해는 겨울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난다. 그래서 어떤 나라는 새해가 봄일까.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다. 봄이 새해면 어떨까. 난 겨울에서 시작하는 새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새해가 오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를 기다릴 테니 말이다. 삶 자체가 기다림이라 해도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봄은 누구나 기다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게 얼어붙는 겨울이 가면 몸과 마음이 풀리는 봄이 온다고.

 

 봄은 짧다. 시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짧은 봄이 있어서 좋다. 여름은 여름대로 괜찮다. 여름에 볼 만한 건 구름이다. 난 여름 구름이 좋다. 이제는 여름에 볼 수 있는 구름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잘 못 봐선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다음 가을도 짧다. 걷기에 좋을 때가 가을인데, 몇해 전부터 미세먼지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 편하게 걷기도 힘들다. 미세먼지는 겨울에도 심하고.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가을에도 들은 것 같다.

 

 내가 늘 한해를 잘 보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는 것 같다. 어쩌다 한번 봄이 오고 꽃이 피면 꽃이 피었구나 할 뿐이다. 여름에는 비 조금만 오기를 바란다. 하루하루도 다르고 한해 한해도 다르다. 이렇게 쓸 때는 생각하는데.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생각해야겠다. 하루는 그날뿐이다고. 그렇다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그리고 한주 한달 한해를. 늘 즐거운 일만 일어나지 않겠지만.

 

 

 

 

 

 

 

   

 

   

 

 

 

 

 

 

 

흐린 하늘

 

 

 

 

먹물을 조금 섞은 듯한 하늘에

무슨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

까만 새

까만 나무

까만 사람

까만……

 

단 하나 눈에 띄게

마무리는

빨간색 우체통으로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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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더는 자라지 않는 키와 달리

그대로 두면 자꾸 자라는 머리카락

머리카락에는 시간이 쌓인다

 

한동안 자란 머리카락을 잘라내니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한동안 쌓여 무거워진 시간은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나갔다

 

머리카락에 쌓인 시간은

잘라내도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무게가 줄어들 뿐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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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가지야마 도시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책은 마물이에요.

 

 여기에 홀리면……. 그래요, 책벌레라고 하나요. 이놈이 들러붙으면 절대로 헤어날 길이 없지요.

 

 나처럼 책 한권 찾으려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바보도 있고, 책 한권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자도 있어요.

 

 이는 절대로 활자의 매력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책이에요. 종이책이라고요.

 

 그런데 책을 모으는 사람이 있고, 사도 씨처럼 장정하는 낙으로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거 재미있지 않습니까?

 

 뭐, 마니아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심리겠지요.  (270~271쪽)

 

 

 어쩌다 보니 책읽기를 좋아하게 됐다. 어렸을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책이 가까운 곳에 없어서 책을 몰랐다. 지금도 책이 많지는 않다. 책을 사고 읽은 다음 없어도 괜찮겠다 싶은 책은 바로 파는 사람도 있던데, 그것도 괜찮은 듯하다. 난 책이 얼마 없어서 팔지도 버리지도 못한다. 책은 누군가 읽어야 책이 될 텐데. 내가 다 읽은 책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구나.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래둔다고 책값이 훌쩍 오를 일 없는 책뿐이다. 그것보다 난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책이나 오래된 책에는 별로 관심없다. 새책이든 헌책이든 읽기만 하면 된다. 책을 좋아하면 책을 많이 사고 좋은 책을 갖고 있기도 하다는데, 난 그런 쪽은 아니다. 난 대체 뭐지. 앞에서 말했듯 그저 읽는 사람이다. 이제는 읽고 쓴다고 해야겠다. 잘 못 쓰지만.

 

 한국에도 오래된 책이나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책을 모으는 사람 있을까. 아주 없지 않겠지. 책을 좋아하다 책을 모으게 된 사람도 있고 무언가를 연구하다 오래된 책을 보고 거기에 빠져들기도 하겠지. 책 내용을 무척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세도리 남작 가사이 기쿠야는 책을 보는 것보다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헌책방에서 산 미술전집과 책 바보 가산도를 만나고부터다. 처음에는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조금 다른 쪽으로 빠져들다니. 그럴 수도 있겠지. 세도리 남작이 어렸을 때 헌책방에서 산 미술전집 속에는 가늘고 긴 머리카락이 있었다. 나라면 그런 거 싫었을 텐데 세도리 남작은 남자여서 그걸 보고 다른 상상을 한 걸까. 고서를 잘 아는 가산도한테서 고서지식이나 우키요에나 니시키에를 배웠다. 세도리 남작은 책을 애인으로 여겼다.

 

 이 소설은 소설가 ‘나’가 세도리 남작 가사이 기쿠야를 만나고, 세도리 남작이 겪은 일을 듣는 형식이다. ‘세도리 남작’이라는 말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보았다. 그 책을 쓴 미카미 엔은 이 책을 보고 고서 이야기를 쓰려 했단다. 세도리는 새로 문 연 고서점에 가서 알짜배기 고서만 골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싸게 산 책을 다른 곳에 비싸게 판다. 가사이 기쿠야는 그걸 잘하고 고서점도 했다. 고서점 하니 교고쿠도도 생각난다. 거기에서는 책 이야기보다 요괴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만. 교고쿠도가 음양사여서 그렇겠다. 가사이 기쿠야가 처음에 찾으려고 한 《요곡백번》 이야기를 보니 그런 일 한국에도 있었겠다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책인지 모르고 불쏘시개나 휴지로 쓴 일. 그렇게 사라진 책 많겠다.

 

 세도리 남작이 우연히 만난 《프랑스 이야기》에는 뒤에 그 책을 가진 사람이 세 아들한테 남긴 말이 있었다. 금을 어딘가에 묻어두었다는. 세도리 남작은 다른 두 권을 찾았지만 금은 찾지 못했다. 금을 묻었다는 곳에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 지을 때 다른 사람이 찾았을까. 그 이야기를 보니 부자 아버지가 세 아들한테 포도밭을 물려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세 아들이 사이좋게 포도밭을 일구고 살기를 바라고 포도밭에 보물을 묻어두었다고 한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였던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이야기 같은 <봄꽃 만개 십삼불탑>. 여기에는 셰익스피어 책 《퍼스트 폴리오》가 나온다. 그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봐서 조금 반가웠다.

 

 책에 미치고 홀리면 사람을 죽이기도 할까. 오래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책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다는 걸 알면 다른 책을 없애기도 한단다. 책이 아닌 책 장정에 미친 사람도 있었다. 뭔가 하나에 미치는 게 나쁘지 않지만 사람은 죽이지 않아야 할 텐데. 재미있으면서도 이상한 이야기다. 이 소설을 쓴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일제 강점기에 조선 경성에서 태어나고 중학교까지 다녀선지 여기 실린 소설 한편에는 세도리 남작과 여러 사람이 한국에 고서를 찾으러 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신라 왕족이 만든 동전이 있을까.

 

 앞으로도 난 그냥 책을 읽고 쓸까 한다. 난 책이라는 물건보다 책속에 든 것을 더 좋아한다. 책을 모으는 사람도 처음에는 그랬을 텐데. 아주 지나치지 않다면 책 모으기도 즐겁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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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새로 산 물건

며칠 쓰고 얼핏 보니

작은 흠집이 생겼다

 

처음 흠집을 보았을 때는

무척 마음 아팠지만

곧 잊었다

 

새 것은 한번만 써도 헌 것이 되고

새 것은 늘 새 것이 아니다

 

흠집이 하나 둘 늘고

시간은 더 많이 흘렀다

 

함께 보낸 시간 만큼 정든 물건

흠집 투성이여도 버릴 수 없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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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집

정든 학교

정든 동네

정든 친구를 떠나

 

어색한 집

어색한 학교

어색한 동네

모든 것이 어색한 곳으로 간다

 

그래도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

새로운 동네

새로운 이웃이

조금 설레게 한다

 

아쉬우면서도

마음 두근거리는 이사

 

새롭고 낯선 것도

시간이 흐르면

정들고 익숙해진다

 

그렇게 사는 거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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