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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ㅣ 창비시선 511
남현지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시집에 담긴 시를 끝까지 보고 뒤에 실린 해설을 읽었지만, 여기 담긴 시를 더 모르게 됐다. 가끔 해설을 보면 아주 조금 알게 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남현지 시인은 처음 만났다. 얼마전에도 이런 말 쓴 것 같다. 내가 이름 아는 시인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 처음으로 만나는 시인이 더 많겠다. 이 시집은 제목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 끌려서 만났다. 온 우주가 자신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니. 그건 시인뿐 아니라 이 시집을 만나는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일지도. 시집 제목이 시 제목이기도 하다. 그 시 잘 모르겠다. 이 말 벌써 하다니. 시와 제목이 반대인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처음부터 시집을 보기 전에 그냥 휘리릭 넘겨볼 때는 많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았는데, 막상 제대로 보니 쉽지 않았다. 잘 읽지 못했다 해도, 잘 쓰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쓴다. 남현지 시인한테 이 시집은 첫번째다. 2021년에 창비신인상을 받았다. 창비에서 신인상을 받아서 첫번째 시집을 창비에서 냈을까. 시인이 되고 첫번째 시집을 내면 무척 기쁘겠다. ‘온 우주가 바라는’이라는 말을 보니, 예전에 만난 파울로 코엘료 소설 《연금술사》가 생각난다. 간절하게 바라는 건 온 우주가 힘을 빌려준다는 거였던가. 정확하지 않을지도. 그 책 볼 때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지만, 그런 일은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게 없어설지도. 바라는 건 자신이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바라기만 하면 이루기 어렵겠지.
분명한 마음이 있었는데요
사라졌습니다
고장난 사람처럼 야구만 보았습니다
공이 뭐라고
공은 분명한데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니까
개의 마음은 알 것 같고
공의 궤적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보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공을 보는 개의 마음은 알아도
나를 보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엄마는 내가 멀쩡해 보여요?
아름다움처럼 모르겠는데
나 없이 내게로 오는
그 마음들은
아무도 사할을 넘지 못하도록
투수와 타자가
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쉽게 하나가 되는데
그러려고 모인 거니까
온 힘을 다하여 야구를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전화기를 잊을 때까지
그러면 프랜차이즈 스타가 이적해도
돈이 모자라면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는 팬들만 남아서
내가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포지션이 없으면 게임이 안 되고
응원하는 팀이 없으면 야구가 재미없습니다
공놀이죠
돌아오지 않는 공도 가끔 있지만
야구에서는 돌고 돌아야 합니다
야구가 끝나면
아픈 사람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장합니다
사회보장제도를 알아보자고 말합니다
의사가 알려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따라서
차라리 돈을 많이 벌지 그랬어
그렇게 말해주는 시가 있었다면
저작권으로 농담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맥주가 지겨워도
사라진 마음이 지겹습니다
공은 왜 자꾸 돌아와?
-<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 59쪽~61쪽
오늘은 기도 대신
깜깜해질 때까지 자신을
종일처럼 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기도>에서, 89쪽)
앞에 옮긴 시 <실업자가 야구 보는 이야기>는 좀 길다. 어쩌다 보니 저 시를 옮겼다. 잘 모르겠다. 실업자는 야구 보면 안 될까. 그런 말도 없는데 생각했구나. 실업자는 시인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팔연에서 시를 말하는 걸 보니. 돈을 많이 벌라고 말해주는 시는 없겠다. 실업자한테 전화하는 아픈 사람은 누굴지. 같은 실업자여서 병원에 잘 가지 않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이구나. 사라진 분명한 마음은 뭘지.
여전히 시 잘 모른다. 어떤 건 잘 몰라도 느낌이 괜찮기도 한데. 시를 하나하나 따로 보지 않고 이어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해설을 보고 생각한 거다. 평론가는 해설 쓸 때 글에 알맞는 시 구절을 잘 찾는 것 같다. 시집을 여러 번 보고 글을 써서 그런 걸지, 읽다가 표시한 부분을 잘 살려서 인용하는 걸지. 난 그런 거 잘 못한다. 시를 잘 읽지 못해서 그렇고, 시집을 다 보고 글을 잘 못 써서겠다. 남현지 첫번째 시집을 만났다는 증거는 남겼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