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생각이 났어요 - 지친 마음을 토닥이는 세나의 감성 엽서북
굳세나 지음 / 로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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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아는 것일 텐데, 난 편지 쓰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쓴다. 초등학생 때는 어버이날에나 편지를 썼는데, 중학생이 되고는 친구와 편지를 나눴다. 편지로만 이야기하는 친구였다(언젠가도 썼구나). 난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책을 좋아했다. 그 친구가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걸 읽었는지 좀 물어볼걸 그랬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생각나지 않는다. 그 친구가 준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친구하고 연락을 하지 않지만. 나보다 잘 살겠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거의 내가 썼다. 그래선지 그게 오래 가지 못했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전화를 자주 한다거나 말을 잘 했다면 좋았을지. 지금도 말 거의 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쓰는 말은 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니 아직도 편지를 쓰지.

 

색칠하는 엽서를 산 적도 있는데 다 칠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나중에 심심할 때 한장씩 칠하고 써야겠다. 심심한 건 늘이구나. 그 심심함은 다른 걸 하면서 달랜다. 편지 쓰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편지지를 사고 거기에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또 이런 엽서를 샀다. 이건 뜯어서 바로 쓸 수 있다. 봉투는 없지만. 엽서가 좀 두꺼우면 좋을 텐데 얇다. 봉투를 두꺼운 종이로 만들면 좀 낫겠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그냥 얇은 종이로 만들지도. 어쩌다 두꺼운 걸로 만들어야겠다. 봉투 만드는 건 아주 쉽다. 종이 자 가위 칼 풀만 있으면 된다. 난 엽서를 봉투에 넣지 않고 우표 붙이고 보내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쩌다 한번 그렇게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것도 받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건 얇아서 그렇게 하기 어렵지만. 글씨를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잘 안 된다. 연습할 때는 손에 힘 주지 않고 흘려 쓰기도 하는데 편지지나 엽서에는 꾹꾹 눌러쓴다. 펜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마음을 담아서일지도.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누군가한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편지가 막 쓰고 싶다. 그럴 때 다른 걸 하면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걸 끝내고 써야지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걸 뒤로 미루고 편지나 엽서를 먼저 쓴다. 중간에 할 때보다 하던 걸 끝내놓고 할 때가 더 많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런 버릇이 든 건지도.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거의 쓰고 싶을 때 쓴다. 가끔 그렇게 써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미없어서. 예전에는 좀 재미있게 쓰려고도 했는데, 지금은 좀 어두운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일이 별로 없어서구나. 별일 없는 게 더 나은 거기는 하다. 늘 무슨 일이 있어서 마음을 많이 써야 하면 힘들 거다. 나도 조용하게 사는 게 좋다.

 

 

 

 

 

 

엽서 다 예쁘고 글씨 쓰기도 괜찮다. 이름이 굳세나인데, 진짜 이름은 아니겠지. ‘굳세, 나’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나도 굳세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언가를 쓰는 게 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많은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쓰기만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려고 해야 하는데. 걸어야겠다. 갑자기 걸어야겠다고 하다니.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좋다. 실제 걸을 때보다 책 속을 걸을 때가 더 많구나.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걸은 걸 세어보면 아주 많을 거다. 어렸을 때부터 걸었으니 말이다. 걷기는 내가 단 하나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운동이 좋기는 해도 누구한테나 좋은 건 아닐 거다. 자기한테 맞는 운동을 알고 그것을 꾸준히 하면 몸이 괜찮겠지. 나한테는 그게 걷기다. 걷기 좋아하는데 많이 걸어서 무언가를 떠올린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그런 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걸어야 하는구나. 이 생각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하는 거다. 그런 건 거의 해 보지 않았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건 그냥 여러 가지다. 가끔 좋은 게 떠오를 때도 있지만, 그런 건 어쩌다 한번이다.

 

편지를 쓸 때도 뭔가 좋은 게 생각나기도 한다.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써야 할 텐데, 내 생각을 더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받을 사람을 더 생각하고 써야겠다.

 

 

 

 

 

덩그러니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아

한마디도 적지 못하고

하얀 종이만 덩그러니

봉투 속을 채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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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0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2-12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선님은 굿세나 스타일보다는 꿋꿋하게 쓰나 스타일 같으세요^^

희선 2017-02-14 02: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꿋꿋하게 써야겠습니다 책을 잘 읽고 쓰면 좋을 텐데, 마음과는 다르게 될 때가 많네요 어쩌다 한번 하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기도 합니다 써도써도 늘 어렵고, 같은 말 자꾸 쓰는 것 같기도 해요


희선
 

 

 

 

크게 휘두르며 27

히구치 아사

講談社  2016년 07월 22일

 

 

 

지난번 것을 본 지 아직 한해는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크게 휘두르며>도 나오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제인지 잊어버렸는데 몇해 전에 작가가 연재를 쉬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아이를 낳아서다. 이번에도 쉰다고 한다. 지난번과 똑같이 아이를 낳아서다. 둘째구나. 다음 권은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곧 나올지. 그동안 연재한 게 한권이 되면 좋을 텐데. 다음 권 빨리 보고 싶다. 사도 바로 안 보고 알고 싶은 건 없지만, 아니 미하시가 어떻게 될지 알고 싶다. 연습한 다음에 제구력이 돌아올지. 미하시 학교 니시우라는 센다와 한 경기에서 졌다. 시작은 좋았는데, 경기하다 미하시는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그건 경기하기 얼마전에 공 던지는 자세를 조금 바꿔서다. 미하시가 그렇게 해서 니시우라가 진 건 아니다. 센다가 야구를 잘했다. 센다한테 콜드로 지기는 했지만 7회까지 끌고 간 것을 괜찮았다 말했다. 이건 응원하는 하마다가 한 말이구나. 그런 생각으로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 되겠지만. 연습 많이 하고 싶어도 한동안 부활동이 없었다. 점심에 잠깐 연습했다. 곧 시험을 봐서다.

 

아이들이 야구 연습하는 거 보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내가 잘 움직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잘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구나. 이 말은 예전에도 했을 텐데.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은 점심에만 하는 연습이 모자란다고 느꼈다. 미하시는 경기한 날에도 공 던지고 싶어했지만 쉬었다. 타지마가 미하시한테 연습하자고 했지만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에 아베가 와서 타지마가 아베한테 학교 끝나고 자기네 집에서 잠시 연습하자고 한다. 학교 끝나고 타지마 미하시 아베 이즈미 넷이 타지마네 집에서 연습했다. 다른 아이들도 가고 싶어했는데 하나이가 많은 사람이 가면 타지마네 집에 폐라고 몇 사람만 가라고 했다. 주장다운 모습이구나. 타지마네는 식구가 많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함께 살고 형제도 많고 첫째형은 결혼하고도 함께 살았다. 아이들이 연습할 때 집에 있던 타지마네 식구는 그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 이름도 불렀다. 처음 만난 아이도 있을 텐데 친근하게 대하다니.

 

이즈미는 타지마와 미하시가 렌과 유 군이라 하는 걸 듣고 신기하게 여겼다. 왜 그러느냐고 이즈미가 미하시한테 물으니 식구들이 유와 렌이라 해서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타지마라 해서 미하시도 타지마 군이라 한다고 했다. 미하시 엄마 아빠는 집에 늦게 올 때도 있어서 미하시는 자주 타지마 집에 갔다. 이즈미는 자기도 부르라고 했다. 미하시와 타지마가 친할 수밖에 없었구나. 이름 이야기로 돌아가서, 타지마네 집에서는 다들 성이 아닌 밑에 이름으로 불렀다. 미하시는 다른 아이 이름은 어떻게든 불렀지만 아베 이름 타카야는 말하지 못했다. 아베가 자신을 렌이라 하는 것도 어색하게 여겼다. 학교에서도 아베는 미하시를 렌이라 했다. 그걸 자꾸 듣다보니 미하시도 익숙해졌다. 미하시가 아베를 타카야라고 하는 날은 언제 올지. 시간이 더 있어야 할지도. 둘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면 좀더 친해지고 야구도 즐겁게 하겠다. 이런 말하면 아베한테 미안하지만, 나도 아베는 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니. 난 미하시와 좀 비슷해서.

 

미하시가 공 던지는 모습을 아베가 카메라로 찍어서 코치(감독 아버지)한테 보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던지고 받기 연습 많이 하라고. 이렇게 짧게 말하다니. 제구가 안 되는 건 공 던지는 자세를 바꿀 때 일어나는 일이고 중심과 하반신을 단련하라고 했다(허리와 다린가). 저녁에 잠깐 코치를 만났다. 코치는 몸 균형을 잡으면 쉽게 다치지 않는다고 했다. 야구를 좋아해도 하다보면 다치기도 한다. 균형을 맞추면 쉽게 다치지 않는다면 다 그러려고 하겠지. 투수는 한동작만 오래 해서 한쪽만 쓴다. 다른 쪽도 단련해서 부드럽게 만드는 게 아닐까. 운동선수만 몸 균형이 맞아야 하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도 그래야 한다. 왼손도 자주 써야 할 텐데. 어른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만화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히구치 아사가 어딘가에서 본 모습을 그린 거겠다.

 

타지마 집에서 야구 연습하고 타지마와 아베는 미하시 집에서 공부했다. 오래 못하고 조금 하다 잠들었다. 잠깐이라도 함께 공부하는 게 낫겠지. 시간은 흐르고 중간시험 보는 날이 왔다. 첫날 시험이 끝나고 타지마는 야구부 아이들한테 시험 끝나고 자기 집에서 바비큐 잔치를 한다면서 모두를 불렀다. 식구도 많은데 야구부 아이를 다 부르다니. 타지마네 식구는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내는구나. 어른이 함께 살아서일지도. 다들 시험 잘 봐야 할 텐데. 시험 못 보면 야구 못한다. 야구를 생각하고 공부 열심히 했겠구나. 니시우라 야구부 아이들 공부도 야구도 즐겁게 하기를 바란다. 경기 이기면 좋겠지만 이기지 못해도 많이 아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니시우라가 어디와 경기할지 모르겠지만 이길 것 같다. 이기는 모습 내가 보고 싶은 건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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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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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도 쓰기도 힘든 책을 만났습니다.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은 건 다른 일보다 이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지나간 일이라 해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일흔해가 넘게 흐르고 일본 위안부 피해자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언젠가는 한 사람만 남을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 일본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지요. 피해자한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려 했어요. 누군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피해자가 돈을 받고 그 일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돈을 준다고 해도 누가 그걸 하려고 할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몸을 팔고 먹고 사는 사람이 그랬고, 그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었어요. 일본은 전쟁을 하는 곳 여자들을 군인이 성폭행하는 일이 많아지자 몸 파는 사람을 그곳에 데리고 갔어요.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자 한국 여자아이들을 끌고 갔습니다.

 

일본한테 지배받는 조선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고 먼저 죽은 아이 이름을 물려주기도 했어요. 여자아이는 집안에 보탬이 될까 싶어서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돈을 더 준다는 곳으로 가려 했고, 식모살이를 다른 데서 하려고도 하고, 좋은 데서 일한다는 말에 속고, 야마다공장에 실 푸러 간다고도 했어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열세살에 다슬기를 잡다 남자들한테 끌려갔습니다. 누군가는 엄마와 일하다 끌려가고 간호사 일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속고, 돈 벌어서 동생 배를 곯게 하지 않으려 집을 나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양반집 딸을 대신한 아이도 있었겠지요. 여자아이들이 끌려간 곳은 만주로 일본군을 받는 위안소였어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여자아이들은 일본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하하가 붙여주고 군인이 붙여주기도 했어요. 하하(母), 오토상(お父さん), 엄마 아빠라는 말이지만 실제 엄마 아빠와는 달랐습니다. 누가 자기 딸한테 일본군을 받게 하겠어요(그런 일 아주 없었던 건 아니군요). 하하한테는 딸도 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타고 온 기찻삯을 내라고 하고, 물건을 주면서 모두 빚이라 했어요. 빚을 갚으면 돌려 보내주겠다니.

 

한반도에서는 여자를 다른 나라에 보낸 일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있었어요. 고려 시대에는 공녀로 중국에 보내고 조선 시대에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질 같은 거로.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인조 때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라고 했다지요. 그때 돌아온 여자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사람이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 사람 많았을 거예요.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했다니.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님이 처음으로 증언을 하고 이어서 많은 사람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곳에 끌려간 사람은 이십만명이고 돌아온 사람은 겨우 이만명이었어요. 1991년 뒤에 알린 사람은 이백서른여덟(238)명이고 지금은 마흔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소설에는 한 사람만 남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른 한 사람은 지금까지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한 사람이 말하는 거지만 많은 사람 이야기예요. 드라마에서 그런 것을 봤을 때도 저런 일이 있었다니 했는데, 이 소설은 더 현실에 가깝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말한 것을 바탕으로 써서군요.

 

지금도 인도에서는 여자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서 성노예로 만들기도 합니다. 집이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미국에 가지만 성노예가 되는 유럽 여자아이도 많습니다. 그런 건 쉽게 사라지지 않는군요.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에는 열한살 열두살 아이도 있었어요. 나라에 힘이 없어서 그걸 그대로 보고 있었을까요.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을 일을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죽임 당한 사람도 많을 거예요. 힘들게 살아 돌아온 사람은 죄인처럼 살았겠지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3인칭 대명사로 나와요. 한 사람 남은 분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풍길’이라는 자기 이름을 말합니다. 일흔해가 넘어서야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겠지요. 남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말을 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그때가 올 거예요. 그전에 일본이 제대로 사과를 하면 참 좋을 텐데요. 아니 그것보다 나라에서 먼저 그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그런 말한 사람 있는지. 제가 모르는 거고 있었다면 좋겠군요.

 

일본한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을 바친 분도 잊지 않아야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분도 거의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신이 살지 않았다 해도 오래전에 일어난 일 알아야 합니다. 저도 역사 공부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소설을 보고 알기도 합니다. 소설은 개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이 모여 역사가 되지요. 작다고 해도 한 사람은 중요합니다.

 

 

 

희선

 

 

 

 

☆―

 

위안소에 있을 때 그는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하나인 몸뚱이를 두고 스무 명이, 서른 명이 진딧물처럼 달려들었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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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0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졸업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5
윤이형 지음 / 내인생의책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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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먼 앞날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말하는 걸까.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환경오염 때문에 사람 몸속에는 NF 바이러스라는 게 있어서 나이가 어릴 때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국민 미래 재건 위위원회에서 검사받는다. 그런 검사를 스스로 하는 건지 부모가 시키는 건지. 반반으로 거의 다 하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날 거다. 학교에 다녀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하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일 말이다. 학교에 다니는 건 그렇게 나쁜 건 아닐 거다. 학교에 다니면 기본은 배우기도 하니까.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하면 더 좋을 텐데. 거의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되었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 했으니.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는데, 학교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 청소년이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른다. 청소년뿐 아니라 다들 힘들다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굽히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을 거다. ‘나’는 대학 합격 통지서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통지서를 함께 받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 나라에서 집과 돈을 준단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아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상대를 골라서 아이를 갖고 낳으면 자신이 기르지 않고 입양 보낸다(그렇게 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축이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반에 아이를 가진 아이가 있으면 따돌렸다.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 거겠지.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고 자신이 친구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걸 미안하게 여긴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 엄마는 ‘나’한테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보다 아무 말도 안 한다. 이건 ‘나’가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걸까. 여기에는 자기 아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판정을 받기를 바라는 부모도 나온다. 진짜 이런 세상이 되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한 부모 때문에 아이를 낳고 돈을 받으려는 아이도 있다. ‘나’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두고 집을 떠났다. 엄마는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엄마한테 돈이 얼마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검사를 받은 거였다. 대학은 ‘나’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고 성적에 맞춘 곳이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있다. 자신이 관심없는 것을 공부해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먼저 같은 반 남자아이 밀을 만난다. 밀은 한해 전에 아이를 낳고 입양 보냈다고 한다. 밀은 남자아이여서 여전히 학교에 다녔구나. ‘나’ 친구 희나는 다시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이 일을 깊이 생각하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여자 남자를 생각하게 한다. 밀이 ‘나’한테 사귀자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얼마 뒤 ‘나’는 다른 아이 경호를 만난다. 경호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말로 나타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게 우리만의 잘못은 아니잖아.”

 

경호가 말했다.

 

“그리고 난, 말하기 힘든 것일수록 누구한테든 말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고 믿는 편이야. 말하지 못하면 그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각하지 않다 보면 잊어버리게 되니까. 난…… 무서워. 분명 뭔가 마음속을 떠나니고 있었는데, 내가 외면할수록 그게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 앉아서, 결국 사라져 버리고 대체 뭐였는지 영원히 모르게 되는 게.”  (149~150쪽)

 

 

아이들 만나는 게 어쩐지 맞선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가 경호를 만난 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경호가 하는 말을 듣고, ‘나’도 자신을 생각하고 말을 했다. 둘이 친구로 지내도 좋았을 텐데 서로 바쁘게 지내다 연락이 끊긴다. 엄마도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나’한테 힘들다 해도 자신이 엄마가 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엄마 같지 않기도 했다. 어떤 일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싫지 않지만 그게 정말 자신이 결정한 걸까 한다. 그 아이는 ‘국민 미래 재건 위원회의 임신·출산 정책에 반대합니다’ (198쪽)는 말을 종이에 쓰고 홀로 시위한다. 지금 바로 바뀌지 않는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커다란 흐름에 떠밀려 가지 않고 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 저항하는 방법은 생각하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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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人 (新潮文庫) (改版, 文庫)
가와바타 야스나리 / 新潮社 / 196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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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지난해가 된 2016년에 바둑기사 이세돌(몇단인지 잘 모른다)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을 두었다. 그런 일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보고, 라디오 방송에서도 잠깐 나와서 들었다. 내가 그때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을 보려 한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 때문에 책을 알게 되고 한번 볼까 생각했다. 책이 얇아서 조금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마음은 그랬지만, 책이 얇아도 쉽게 펴볼 수 없었다. 책을 보지 않고도 어떤 기운을 느낀 걸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책, 그러니까 일본말로 쓰인 소설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마음먹고 읽었다. 한번 읽기는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은 처음이다. 한국 사람이 많이 본 건 《설국》일 텐데, 그것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언젠가 보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까.

 

내가 바둑에 관심을 가진 건 <히카루의 바둑>(한국에서는 <고스트 바둑왕>으로 했다)을 보고서다. 그것을 봤을 때는 바둑이 참 재미있게 보였는데 그 뒤 바둑은 배우지 못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바둑 대국을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히카루의 바둑>을 보고 내가 좋게 여긴 건 바둑이라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거 하나에 빠져서 그것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거였던가보다. <치하야후루>를 봤을 때는 카루타가 재미있게 보였으니 말이다. 카루타는 백인일수(百人一首)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도 잠깐. 난 좋아해도 끝까지 가지 못한다. 책만은 여전히 읽는 걸 보면 이것은 그만두지 않겠다. 읽는 시간이 늘면 좀 잘 보기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기도 해서 아쉽다. 그것도 애써야 하는 거겠지. 바둑 이야기하다 다른 말로 빠졌다.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신의 한 수를 두려는 헤이안 시대 바둑기사 후지와라노 사이가 지금 시대에서 바둑을 둔다. 실제 바둑을 두는 건 히카루다. 사이가 히카루 몸을 빌린다고 해야겠다. 히카루는 사이가 두는 바둑을 보다가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평생의 좋은 맞수(호적수)도 만난다. 히카루가 히카루의 바둑을 두는 동안 사이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사이는 신의 한 수를 두지 못하고 사라진다(이거 지금 생각해도 조금 슬프다). 그렇다고 사이 바둑이 사라진 건 아니다. 히카루가 사이 바둑을 이어받고 히카루가 신의 한 수를 두려 한다. 옛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건 사람 삶이기도 하다.

 

이 소설 《명인》과 <히카루의 바둑>이 상관없지 않다. 만화를 그린 사람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 봤을까. 알았을 것 같기는 하다. 만화를 그리려고 자료를 많이 찾았을 테니까. 사이가 지금 시대에 나타나기 전에 에도시대에 자기 대신 바둑을 두게 한 건 혼인보 슈사쿠(본래 이름은 구와바라 토라지로)다. 혼인보는 일본에서 대대로 바둑을 둔 집안이다. 지금은 ‘명인’과 함께 바둑기사 타이틀이다(타이틀을 뭐라 말하면 좋을지). 여기 나오는 명인은 혼인보 슈사이다. 슈사이 명인은 예순다섯살에 마지막으로 은퇴 바둑을 둔다. 슈사이 명인과 바둑을 두는 건 오타케 7단이다.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실제 있었던 사람으로 그때 바둑을 둔 사람은 기타니 미노루 7단이라 한다. 이름을 바꾼 사람도 있고 그대로 쓴 사람도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소설에서 글을 쓴 사람처럼 슈사이 명인과 기타니 7단이 한 대국을 보고 글을 썼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고 글을 써서 이 소설을 쓴 거겠지.

 

슈사이 명인과 오타니 7단은 1938년 6월 26일에서 12월 4일까지 바둑을 두었다. 바둑 한판을 여섯달이나 걸려서 두다니 하겠다. 여섯달에서 석달은 슈사이 명인이 병원에 있어야 해서 쉬었다. 그렇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바둑과 달리 40시간을 제한시간으로 정했다. 40시간도 길다. 시간을 다 쓰면 초읽기로 들어가고 1분에 한 수를 둬야 할 거다. 슈사이 명인보다 오타니 7단이 시간을 더 많이 썼다. 한 수 두는 데 몇시간 걸리기도 했다. 하루에 몇 수 못 두기도 했다. 그런 바둑을 몇달 동안 두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다. 소설 속 작가는 마지막 바둑이 슈사이 명인 목숨을 빼앗아갔다고도 한다. 본래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바둑을 두다보니 더 안 좋아졌다. 슈사이 명인은 바둑을 두면서도 이것을 끝내면 괜찮을 텐데 하거나 그만두고 싶다고도 한다. 그래도 바둑을 끝낸다. 슈사이 명인뿐 아니라 오타니 7단도 힘들었다. 아픈 사람과 바둑을 두려니 부담스럽고,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은 것도 부담스러웠다. 오타니 7단이 한 수 한 수에 시간을 들일 법하다.

 

은퇴 바둑을 두고 한해가 조금 지난 1940년 1월 8일에 혼인보 슈사이 명인은 세상을 떠난다. 소설에는 이게 맨 앞에 나온다. 잘 모르는데 명인은 그 시대 최고 기사가 받는 종신 명예였는데, 슈사이 명인을 끝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명인이 될 수 있게 된 거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그 대국이 그때 꽤 중요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거였겠다. 바둑도 예술처럼 둘 수 있는가보다. 슈사이 명인은 기술보다 예술에 가까운 바둑을 두려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런 바둑기사가 슈사이 명인이 마지막이다 여겼다.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바둑을 멋지게 두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또 히카루가 생각나는데, 히카루는 안 좋은 수로 보인 것을 좋은 수로 바꾸는 바둑을 두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그것을 꽤 훌륭하게 여겼다. 바둑은 한번 잘못하면 모두 무너질 수도 있지만, 잘못한 것을 좋게 바꿀 수도 있다. 늘 그런 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살 길이 없으면 어렵겠지. 잘 보이지 않아도 살 길을 찾으려 하는 게 바둑과 삶이 닮은 걸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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