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 창비시선 400번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400
박성우.신용목 엮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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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과 같은 시집을 처음 만든 사람은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라고 한다. 박맹호 회장이 시집을 만든 다음 여러 출판사에서 비슷한 크기 시집을 내놓았다. 어디에서나 100, 200, 300이 되면 기념시선집을 내는지. 다른 때도 냈을지 모르겠는데 문학과지성사에서는 300번째에 기념시선집을 냈다. 문학동네에서는 50번째에 기념 자선시집을 냈다. 문학동네는 50번째에서 내다니 할지도 모르겠는데, 예전에 나온 것과 달라진 뒤 50번째다. 창비시선 400 기념시선집을 보고 이런 말을 하다니. 책을 볼 때 출판사를 아주 안 보는 건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는 작가는 작가 이름으로 모르는 작가는 책 제목을 먼저 본다. 출판사는 그다음이다. 출판사가 아주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이런 저런 책을 보다보면 출판사를 기억하고 이름 아는 작가 책이 나오면 저 출판사에서 나왔구나 하기도 한다.

 

 창비에서 나온 시집이 나한테 아주 없지 않지만 많지도 않다. 시를 잘 알아서 본 건 아니지만, 예전에 시를 보다가 안 본 시간이 길었다. 그렇다고 시를 아주 만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집이 아닌 시 한편을 가끔 만났다. 그런 건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을 하면서 시를 올려두는 카페에 들어가서 시를 봤는데, 그것도 그렇게 오래 하지 못했다. 이 말은 예전에도 했는데, 책을 보고 꾸준히 쓰면서 시집과 한국소설은 피했다.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이고 잘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런 것과 멀다. 시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쓸 말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강박증은 오래도 가는구나. 언제쯤이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내가 읽는 건 여전히 소설이 많다. 과학 철학 역사 그밖에 인문은 거의 만나지 못한다. 좋아하는 거 읽기에도 삶이 짧기는 하지만, 어렵거나 잘 모르는 것에도 조금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지. 요새 내 마음이 참 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넓게 못 봐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자기 마음을 넓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책을 읽고 쓰면서 다시 시를 봐야겠다 생각만 하는 시간을 보내다 다시 시를 만난 지 이제 한해가 조금 넘었다. 소설은 내용에서 벗어난 것을 쓰기 어렵기도 한데, 시집을 보고는 조금 마음대로 쓴다. 늘 좋은생각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만. 별거 아닌 생각이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것도 잘 쓰면 괜찮은 게 될지도 모른다. 어쩐지 변명 같다. 시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시만 그런 건 아니구나.

 

 

 

아직 발굽도 여물지 않은 어린것들이

소란스레 함석지붕에서 놀다가

마당까지 내려와 잘박잘박 논다

징도 박을 수 없는 무른 발들이

물거품을 만들었다가

톡톡 터뜨리다 히히히힝 웃다가

아주까리 이파리에 매달려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논다

마당 그득 동그라미 그리며 논다

놀다가

빼꼼히 지붕을 타고 내려가

방바닥에 받쳐둔 양동이 속으로도 들어가 논다

비스듬히 기운 집 안

신발도 신지 않은 무른 발들이

찰방찰방 뛰며 논다

기우뚱 집 한채

파문에 일렁일렁 논다

 

-<빗방울은 구두를 신었을까*> 송진권 창비시선 331 《자라는 돌》 (66쪽)

*힐데가르트 볼게무트(Hildegard Wohlgemuth) 동화 제목

 

 

 

이른 봄에 핀

한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한송이 꽃> 도종환 창비시선 333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70쪽)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나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주소> 박소란 창비시선 386 《심장에 가까운 말》 (164쪽)

 

 

 

 여기 실린 시는 창비시선 301번에서 399번까지에서 고른 거다. 시인 한사람에 시 한편이다. 여러 시인 시를 한번에 만날 수 있다. 이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날에 아들한테 마음 쓰는 게 애틋한 고광헌 시 <정읍 장날>도 괜찮았다. 아들만 나왔지만 부모는 자신보다 자식한테 맛있는 것을 더 먹이려 하겠지.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늦게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몰래 우는 아버지도 있다(<부녀> 김주대, 110쪽). 한편 한편 잘 보면 다 좋을지도 모르겠다. 고은 시인과 신경림 시인 시도 담겼다. 오랫동안 시 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두분은 오랫동안 시를 썼다. 시뿐 아니라 글은 한번 쓰면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는 재미를 알면 그렇겠구나. 나도 재미있게 쓰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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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 차가운 면이 있는가 하면 따스한 면도 있다. 사회는 서로 경쟁하게 하기도 하고, 서로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더 크게 볼 것인지 그건 자기 마음에 달린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도 자신이다. 옳은 답은 없지만, 누군가한테 아픔을 주기보다 힘든 사람 곁에 말없이 있어주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거짓과 참된 것이 뒤섞인

 

  거의 모든 거짓말

  전석순

  민음사  2016년 05월 10일

 

 

 

 

 

 

 

 

 

 

 

 

 

 

 난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런 말로 시작하다니. 거짓말 안 해 본 적은 없지만 일부러 거짓말 하지는 않는다. 난 거짓말 하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이야기.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일까. 남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말하는 건 별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뭐라 하면 좋을까 하고 거짓말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나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고 말한 사람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고 하는 거다. 그런 건 그냥 믿는 게 낫겠다. 이 소설을 보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다르다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실제로는 거짓말 자격증이 없지만, 거짓말로 먹고사는 사람은 있을 거다. 이건 사기를 말하는 건 아니다. 소설도 거짓말이다 하지 않는가. 소설가는 거짓말로 먹고사는구나. 그밖에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어떤 말에든 화내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마음속을 부글부글 끓어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겠지. 거짓 웃음을 웃어야 하는 사람도 많다. 연기자는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

 

 갑자기 참된 것과 거짓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은 여기에서도 한다. ‘나’는 거짓말 자격증 1급을 따려고 일을 하는데, 남한테 거짓말 친다 여겼는데 자신이 속고 만다.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고 치는 거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거짓말을 친다니 재미있기도 하다. ‘나’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거짓말을 하는 게 나오는데, 그것을 보니 난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거짓말도 하면 마음이 안 좋은데. 난 다른 사람이 싫어할 말뿐 아니라 좋아할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좋아할지 잘 모르는 건지도. 그것도 있지만 그런 말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좋은 말도 잘 못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겠다. 이건 거짓말 치는 것과 좀 다른가. 어린이는 자기한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고 거짓말 하기도 한다.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거짓말이 아닐 때도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소설 속에서는 거짓말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잘 구했다. 거짓말 자격증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까. 그건 어쩐지 감시 감기도 하다. ‘감사’라는 말도 있지만. 햄버거 가게라면 손님한테 인사하는 것부터 가게 청소는 잘 되었는지 위에서 하라고 한 걸 했는지. 그런 일을 백화점과 레스토랑에서도 하게 한다. 실제 그런 걸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 몰래 보러 다니는 사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뿐 아니라 ‘나’ 엄마도 거짓말을 친다. ‘나’ 엄마는 결혼식에 가서 가짜 친척을 연기했다. ‘나’는 까다로운 일 두가지를 해내면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으리라 여겼다. ‘나’가 거짓말을 잘 쳐서 남자와 소년이 ‘나’를 좋아하게 됐다면 ‘나’는 1급이 됐을까. 자신과 사귀는 사람이나 남편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 좀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런 사람 실제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짜 같으면서 진짜처럼 보이는 건 소설을 잘 써서일까.

 

 부모가 하는 거짓말은 속아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이 어려워도 그걸 아이한테 말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나’ 엄마가 하는 건 공갈보다 허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시간이 흐르고는 그것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좀 쓸쓸하게 여겼다. 차라리 엄마가 거짓말 치기를 바랐다. 나이 든 부모를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식구 이야기도 나오고 거짓말 치게 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소설을 다 읽으니 여기에는 거짓말과 참된 게 섞여있는 것 같았다. 소설은 거의 그렇기는 하다. 이 소설 재미있게 보이면서도 뭔가 서글픈 느낌도 든다.

 

 

 

 

☆―

 

 거짓말은 나쁜 아이가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친다. 있는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굳이 거짓말에 손댈 필요는 없다.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결국 거짓말을 치게 만드는 건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거짓말은 사랑해 달라고 보내는 삶의 첫번째 신호일지도 모른다.  (71쪽)

 

 

“늙었다고 잘 속는 줄 아니?”

 

“그럼?”

 

“잘 속는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기댈 곳 없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들이 어물쩍 거짓말에 기대는 거야.”  (150쪽)

 

 

 

 

 

 

 

     

 

     

 

                       

 

 

 

 

 

 

 

꽃과 사람

 

  기쁨의 정원

  조병준

  샨티  2016년 06월 30일

 

 

 

 

 

 

 

 

 

 

 

 

 

 

 

 몇해전, 이렇게 말했지만 아마 열해는 넘지 않았을까 싶어. 조병준 아저씨를 안 게. 아니 그것보다 먼저 책으로 알고 PAPER에서 글을 봤을 거야. 그 뒤에 병준 아저씨 블로그를 봤던 것 같아. 여기에도 그런 말 나오는데, 그건 블로그에 옥상에 핀 꽃 사진과 글 올렸다는 이야기야. 이 책 이야기 들었을 때 내가 떠올린 건 병준 아저씨 블로그야. 자주 가서 글을 보거나 댓글을 쓰지 못했지만 한때 알았어. 난 병준 아저씨를 기억해도 병준 아저씨는 나를 잊었겠지. 내 컴퓨터 즐겨찾기에는 여전히 병준 아저씨 블로그가 있지만. 이 책을 보니 지금은 블로그보다 다른 곳에 글을 쓰는 것 같아. 많은 사람이 하는 그거 있잖아, 얼굴책. 거기에 쓰는 게 더 편한 사람도 있는 거겠지. 지금도 거기에 이런저런 글을 쓸지도 모르겠어.

 

 예전에 오랜만에 병준 아저씨 블로그를 보았는데, 그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어. 다음에 봤을 때는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둘 다 봤는지 하나만 봤는지. 우연히 그런 소식을 알게 돼서 참 이상했어. 그 뒤에도 가끔 생각하기도 했어. 이제 책 나오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만 하고 블로그는 안 보고 병준 아저씨 잘 살겠지 했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병준 아저씨 몸이 안 좋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알면 그걸 바람이 알고 가르쳐 주는 걸까. 느낌이 있었다 해도 내가 지나쳤군. 그때 알았다 해도 내가 무언가 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저 병준 아저씨 몸이 나아지기를 바라기만 했겠지. 병준 아저씨한테는 좋은 사람이 많아. 친구 동생 조카……, 친구는 다른 나라에도 많아. 병준 아저씨는 여기저기 다니는 거 아주 좋아하거든. 예전에 서른살엔가 하던 일 그만두고 길을 떠났어. 그렇게 길을 나서고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 그게 《길에서 만나다》라는 책으로 나왔어.

 

 서른살 뒤부터 어딘가에 다니는 것이 병준 아저씨 삶이 된 것 같아. 한번은 인도 콜카타에 머물면서 봉사활동을 했어. 그건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에 담겨있어. 내 기억이 정확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예전에 블로그 글 보면서도 병준 아저씨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한번 떠나면 그걸 그만둘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병준 아저씨도 그런 사람이야. 나랑은 반대지. 난 어디 다니는 거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병준 아저씨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 지금까지 쓴 책은 거의 사람 이야기야. 여기저기 여러 나라에 친구가 있다니 대단해. 그런 거 아무나 할 수 없기도 해.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서로 잊지 않아. 이것도 부러운 점이야. 난 그렇게 못해.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겠지.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고 병준 아저씨는 옥상 뜰을 가꿔. 그게 엄청 넓거나 멋지지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뜰이었어. 단호박을 먹고 난 다음에 그 씨앗을 심다니,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아니 병준 아저씨는 식물을 예전부터 좋아했어.

 

 옥상에 만든 뜰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꽃뿐 아니라 채소도 있었어. 채소 기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여. 잡초가 끈길지게 나고 여러 벌레가 꼬였어. 벌레는 그런 거 잘도 알아내고 찾아오지. 사람이 식물을 먹기 좋게 길들인 게 아니고 식물이 사람을 길들였다고 해. 이 말 다른 책에서도 봤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 병준 아저씨는 채소를 기르면서 세계를 생각하기도 해. 생물은 여러 가지여야 하는데 많은 게 사라지고 사람이 먹는 것만 많이 기른다는. 이것도 맞는 말이야. 그것 때문에 지구는 오염되고 기온도 올라갔지. 잘사는 나라는 음식을 버리기도 하는데 못사는 나라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기도 한다니. 남는 거 버리지 말고 굶는 사람한테 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잘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모두 잘사는 건 아니잖아. 잘사는 나라에 사는 못사는 사람한테 남는 게 도움이 되겠지. 다른 나라 사람도 생각하면 좋겠어.

 

 채소에도 꽃이 핀다는 거 알아. 사람이 먹는 것은 거의 꽃을 피우지 못하지. 꽃이 피기 전에 다 거두니까. 채소에 피는 꽃도 잘 보면 예뻐. 그런 걸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식물을 기르는 것이 마음을 좋게 할 때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기도 할 거야. 병준 아저씨는 어디 갈 때면 옥상 뜰이나 식물을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는데 죽기도 했어. 그런 모습 봤을 때는 차라리 기르지 말지 했어. 부탁할 사람이 있으면 좀 나은 걸지도. 병준 아저씨가 다른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꽃이나 채소가 허전한 병준 아버씨 마음을 달래줬을 것 같아. 그러니 그걸 그만두지 못하는 거겠지. 병준 아저씨한테 꽃과 사람은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그곳에 있으면서 병준 아저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게.

 

 

 병준 아저씨 앞으로 몸 잘 챙기세요. 아프지 않아야 친구 만나러 가지요. 친구 만나고 돌아오면 그 이야기 또 들려주세요.

 

 

 

희선

 

 

 

 

☆―

 

겨울엔 조금 외롭고 쓸쓸해도 된다.

겨울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씨앗도 뿌리도 잠자는 시간엔

사람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늘어져도 된다.

쉬라고, 자라고 겨울이 오니까.

 

그렇게 쉬어야, 잘 자야

또 깨어나고 또 피어날 테니까.

겨울엔 조금 많이 외롭고 쓸쓸해도 된다.

그래야 기쁨의 봄이 오니까.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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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화서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2015년 09월 09일

 

 

 

 

 

 

 

 

 

 

 

 

 

 

 

 

 이 책은 이성복 시인이 시 창작 시간에 말한 내용을 아포리즘(간접 체험으로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형식으로 정리한 거예요. 아포리즘은 간접 체험으로 안 것을 말하는 것이라니, 이성복은 시인으로 오랫동안 시를 썼어요. 그러니 간접 체험뿐 아니라 자신이 시를 써 보고 알게 된 것을 말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시론’이라는 말 때문에 어려울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실린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알쏭달쏭 알듯말듯한 말도 있습니다. 이것을 본다고 바로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45

 

 시 쓰기를 겁내지 마세요. 자기 자신에게,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얘기하면 돼요. 다만, 말은 말이 반이고 침묵이 반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하려면 다른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26쪽)

 

 

 

 129

 

 세상에서 뜻 없는 건 하나도 없어요. 모든 미친 것들에게, 미치지 않으면 안 될 사연 하나씩 찾아주는 게 시예요.  (56쪽)

 

 

 

 278

 

 다친 새끼발가락, 이것이 시예요.  (108쪽)

 

 

 307

 

 시는 알고 쓰는 게 아니고, 쓰는 가운데 알게 되는 거예요.  (120쪽)

 

 

 

 380

 

 시 쓰기는 자기성장의 과정이에요. 시로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돼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쓰는 시 안에 다 있어요.  (145쪽)

 

 

 조금만 쓰고 그것을 말할까 하다가 이렇게 많이 옮겨 두었네요. 시 쓰기를 겁내지 마라 하지만, 어디 말이 쉽게 나옵니까.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도 없고, 무엇을 숨겨야 할까 싶기도 하고, 숨겨도 그것을 알까 하는 걱정도 하지요. 그건 그렇게 걱정할 게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시, 글은 쓰는 사람 것이라기보다 읽는 사람 것이라고도 하잖아요. 알듯 모를 듯하게 써야 하는군요. 그런 건 어떻게 쓰는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 건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고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뿐 아니라 소설도 아픈 것을 드러내요. 사람이 살면서 자기 아픔을 잘 들여다 볼까요. 그러지 않을 때가 많을 거예요. 때론 그 아픔에 묻히기도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척하겠지요. 그렇게 잊으려고 하는 것을 시나 소설을 보고 알기도 할 거예요. 그때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릴 것 같습니다. 울기와 웃기는 사람한테 중요한 거예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마음껏 울고 웃으면 마음속이 시원하기도 하잖아요. 울 때 더 그럴까요. 마음속에 남은 감정 찌꺼기를 눈물에 흘려보내는 것이겠습니다.

 

 

 268

 

 칠판을 다 지워도 그 밑에 글자 흔적이 남듯이, 우리 기억이 사라져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어요. 시는 남아있는 그 흔적을 옮겨 놓는 거예요.  (105쪽)

 

 

 

 384

 

 우리가 시를 쓰는 건 잊지 않으려고예요. 돌아가시기 전날 아버지 눈빛이 어떠했는지…… 꽃매미 날개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것도 내 삶이 무척 덧없기 때문이에요. 시는 이제는 기억도 못 하는 숱한 상처의 기록이에요. 그 속에는 내가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준 상처도 들어가 있어요.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보고 조심하지만, 벌써 내 구둣발 밑에 으깨어진 개미는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147쪽)

 

 

 시를 말하지만 시만 말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이든 칠판을 지운 흔적을 쓰고, 잊지 않으려고 쓰지요. 이건 역사와도 다르지 않군요. 역사는 써두지 않으면 잊어버리잖아요. 인류는 오래전부터 기록했습니다. 문자가 없을 때는 그림으로. 그림과 시는 닮았습니다. 그림에는 전체보다 부분만 담잖아요. 시도 그렇습니다. 시를 보고 여러 가지를 상상하기도 하는군요. 시에서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 해도 상상하면 괜찮겠습니다. 그게 시를 쉽게 편하게 만나게 하겠지요. 시 쓰기에서 시 만나기가 되었군요. 시 쓰기와 시 만나기에서 어떤 것이 먼저일까요. 어쨌든 시를 만나다보면 쓰고 싶기도 할 거예요. 그런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지, 말이 나오는 대로 써야 할지. 이성복은 여기에서 말이 나오는 대로 쓰라고 했군요. 생각은 나중에 하라고 합니다.

 

 시 쓰기와 시 만나기는 아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어디에나 있어요. 그것을 알아보아야 할 텐데요. 시 쓰기 시 만나기 둘 다 즐겁게 하면 삶도 즐거울까요.

 

 

 

 

 

 

 

 

 

 

 

 

시시한 것에서

중요한 것을 찾고

시시한 말로 시작해도,

끝은 시시하지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게

더 크고 소중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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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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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몇해 동안 내가 본 만화영화에 어떤 운동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테니스 축구 야구 수영 사이클 유도 미식축구 경기 카루타 그리고 권투. 기억을 더듬어 본 건 권투 만화가 있었나 해서다. 아니 사실은 권투도 봤다는 거 생각났다. 내가 본 건 만화책이 아닌 만화영화 그러니까 영상이다. 야구는 만화책도 하나 보지만. 어떤 건 재미있어서 여러 번 보기도 하고, 어떤 건 한번만 봐서 제목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운동 만화는 거의 소년만화다. 이건 일본에서 말하는 거기는 하다. 난 순정만화보다는 소년만화가 더 좋다. 이상하게 순정만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라는 거 보기가 힘들다. 그걸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삼각 사각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게 싫다. 여자든 남자든 왜 그렇게 마음이 쉽게 흔들리는지. 본래 사람 마음이 그럴지 몰라도. 운동이 나오는 만화는 그게 거의 없다(아다치 미츠루가 그리는 야구 만화는 순정만화에 가까운가). 그게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그게 중심이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넣는다. 운동하는 사람도 사람이니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귀다 헤어지기도 하겠지만, 운동하는 것을 더 그리겠지. 운동 만화라면.

 

 앞에서 쓸데없는 말을. 이런 거 말하는 거 좀 창피하다. 나만 그런 것 같아서. 많은 사람은 운동경기를 하는 거여도 누구와 누가 좋아하는 모습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게 보고 싶으면 만화가 아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괜찮겠구나. 영화나 드라마는 원작에 없는 것을 만들어 넣기도 한다. 예전에 우연히 권투 만화영화를 봤다. 일본에는 없는 만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못 봤을 뿐 더 많은 운동 만화가 있을 거다. 인파이터, 아웃파이터 잘 모르지만 내가 본 만화영화에 나온 하지메는 인파이터였던 것 같다. 생각나는 건 이 정도뿐이다. 권투하는 사람이 여럿 나오기도 했는데. 권투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는 사람도 있었다. 만화에서는 거의 꿈을 이야기한다. 졌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도 잘 나타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이기는 것만이 다는 아닐 텐데. 한국 사람이 권투 보기를 즐긴 적도 있는데 요즘은 별로 안 보는 것 같다. 지금도 권투하는 사람 있을까. 텔레비전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뭐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게 낫겠다.

 

 장태주는 어린 엄마한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학교에서는 보육원 아이들과 집안 형편이 안 좋은 아이들을 한반에 두었다. 정말 그런 학교 있을까. 에전에는 있었다 해도 지금은 없기를 바란다. 부모도 친척도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는 게 아이 잘못은 아닌데. 엄마나 아빠 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안 좋게 본다.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 정상일까. 부모와 살아서 더 힘든 아이도 세상에는 많다. 지금이니 이렇게 생각하지 어릴 때는 달랐을지도. 태주는 초등학생 때는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하기도 하는 힘없는 아이였는데, 같은 반 아이가 태주가 돌보던 새 알리를 죽여서 그 아이를 때렸다. 주먹을 쓰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도연합회 아이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간다. 그때 태주는 돈 있는 사람 힘을 느꼈다. 자신의 억울함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태주는 기대를 버렸다. 기대는 본래 하지 않았던가.

 

 소년원에서 태주는 잘 지냈다. 늘 감시 받는 건 마음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태주는 담임을 만나고 권투를 하게 된다. 담임과 누나 그리고 할아버지와 한동안 식구처럼 지낸다. 태주는 잠시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의 행복을 느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것을 지루하게 여길지 몰라도 그것을 몰랐던 사람은 그것도 좋게 여기겠지. 언제나 좋은 때는 짧다. 태주가 권투 선수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담임과 누나와 할아버지는 전과 똑같이 살았다. 태주가 돈을 많이 벌거나 권투 선수로 잘되는 것보다 자신은 자신 그대로면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늦고 말았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태주한테 큰 시련을 주다니. 태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태주한테 즐거운 때가 있었다는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때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거다. 부모 없고 돈이 없으면 불행할까. 앞에서 태주는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불길한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런 건 없다. 하는 것마다 안 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것을 좋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지만. 가끔 나도 운이 별로 없다 생각하면서 저런 말을 했다. 운을 바라지 않으면 낫겠지. 그러면 신기하게도 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부모 없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래도 난 그게 아주 안 좋다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와 같은 사랑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지만 누구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겠지. 세상에는 공평하지 않은 게 많다. 그런 것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은 자신대로 하면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른다 해도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사는 게 좋다. 태주는 인정받으려 했다가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 담임은 남의 질서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건 태주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래야겠다. 지금은 사람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게 많다.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잘 생각하고 정해야 한다. 나 한 사람 좋은 일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하기보다 나 한 사람이라도 하자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희선

 

 

 

 

☆―

 

 “때론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면 그게 가장 편한 것 같지만, 또 막상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면 명확히 제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휩쓸리게 돼. 문제는 그들이 세운 질서가 네가 바라는 질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거야. 너한테 무조건 불리하고, 너한테 무조건 억울한. 이해가 돼?”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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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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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들어갔다. 여덟해 뒤, 제1차 세계전쟁이 한창일 때 스토너는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강사가 되고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8쪽)

 

 

 앞에 쓴 것은 소설 맨 앞부분으로 이 소설을 짧게 정리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 삶은 참 짧은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짧은 말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겠지요. 저 말로 알 수 있는 건 윌리엄 스토너란 사람이 살았다는 것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기억되거나 잊히겠지요. 잊히는 사람이 더 많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고 살다 죽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다 죽는지 잘 모릅니다. 가까운 사람 삶이라고 다 알까요. 저는 잘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저 살아갈 뿐이지요. 소설을 보고 누군가의 삶을 알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아내기도 하겠지요.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니고 유난히 삶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엄청난 일을 겪고도 살아가요. 어떻게 그렇게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까 싶습니다. 운이 엄청 없어서 그런 건지 시대가 어지러워선지.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이 모두 거기에 휩쓸리는 건 아닐 거예요. 깊이 휩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덜 휩쓸리는 사람이 있겠지요.

 

 이 소설을 볼 때 잠깐 다른 소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대 때문에 여러 일을 겪은 사람 이야기였어요. 많은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도 있지만 한사람 삶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도 있어요. 한사람을 깊이 다룬다고 해도 그 사람 둘레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군요. 그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지요. 한사람은 아주 많은 사람과 이어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을 생각하고 살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이 자기 가까이에 있는 사람밖에 모르고 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왜 이런 말을 늘어놓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 소설에 나오는 윌리엄 스토너는 많은 일을 겪지는 않아요. 제1차 세계전쟁과 제2차 세계전쟁이 일어나기는 해도. 전쟁에 나간 미국 사람은 많았지만, 미국이 싸움터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지만, 그건 스토너가 사는 때는 아니예요. 그렇다고 스토너가 전쟁을 아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군요. 잠시 전쟁에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 하나는 전쟁에 나가 죽고 맙니다. 죽었지만 스토너는 그 친구를 생각해요. 그 친구가 죽지 않았다면 스토너가 다르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그 친구는 스토너와 마음이 좀 맞았는데.

 

 앞에서 이야기를 불쑥 꺼내고 말았네요. 스토너 부모는 농부였어요. 아버지는 스토너가 농업대학에서 공부를 한 다음에 농사 짓기를 바랐는데, 스토너는 문학을 좋아하게 되고 그쪽 공부를 합니다. 이런 건 오래전 한국을 생각나게 했어요. 한국 부모는 자식이 공부하고 농사 짓기보다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랐군요. 스토너는 대학에서 아처 슬론 교수를 만나고 자신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데 맞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다음에 스토너 삶에 들어온 건 이디스예요. 스토너는 왜 이디스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확실하게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이디스를 좋아하면 되겠지 생각한 건지, 이디스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느낀 건지. 그것보다 이디스가 확실하게 자기 마음을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요. 스토너가 이디스한테 결혼하자고 했을 때 이디스가 좀 이상했는데, 스토너는 그런 모습을 모르는 척한 것 같기도 합니다. 스토너는 흘러가는대로 산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디스하고 일이 그랬습니다. 결혼은 아무것도 모를 때 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결혼하고 별로 좋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토너가 살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스토너도 시대에 영향을 받았군요. 아니 스토너는 이디스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했지만 그게 오래 가지 않았어요. 겉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 걸 좋아한다고 느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토너는 결혼하고 한달도 안돼 그 결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아요. 그러면 헤어지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스토너는 참고 삽니다. 스토너한테는 일이 있었습니다. 몇해 뒤 딸이 태어나고 스토너는 딸한테 마음을 쏟아요. 스토너는 딸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디스가 딸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 했어요. 이디스는 참 제멋대로였어요. 그런 이디스도 안됐다고 생각해야겠지만. 이디스는 스토너 서재를 빼앗았습니다. 스토너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혼자였어요. 어떤 학생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영문학과 학과장(로맥스)하고는 사이가 영영 틀어집니다. 스토너는 로맥스가 미주리 대학에 왔을 때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는데, 로맥스는 왜 스토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토너는 마흔셋에 진짜 사랑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불륜이지만, 스토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디스하고 헤어지고 캐서린하고 떠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스토너는 그러지 않아요. 스토너와 캐서린이 자신 그대로기를 바랐습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는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떤 게 더 낫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스토너 삶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디스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딸 그레이스와도 멀어졌지만, 좋은 때도 있었어요. 그레이스가 이디스 때문에 힘들 때 스토너가 좀 도와줬다면 좋았겠지만, 스토너는 그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겠지요. 스토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했습니다. 짧았지만 사랑도 했네요. 그 정도면 잘 산 거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에서 교수가 되고 좋은 자리에 앉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좋은 건 아니죠. 이 소설을 쓴 존 윌리엄스도 스토너처럼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했을 것 같아요. 그런 삶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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