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人の門 (角川文庫) (文庫)
히가시노 게이고 / 角川書店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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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문

히가시노 게이고

 

 

 

 

 

 지금까지 살면서 이제 그만 만나야겠다 생각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 연락하고 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학교 다니기 전에 사귄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친구하고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어렸고 아주 먼 곳으로 이사해서 그랬구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어떻게 사귄 걸까.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귄 건 학교에서다. 학교 친구하고 오래 연락하고 살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은 나만 있었나 보다. 같은 학교나 같은 반이 아니면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 해도 한사람이라도 친구가 있다면 좋을 텐데, 난 그런 친구 사귀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는 친하다 여겼는데. 친구라는 이름으로 사귀는 사이라 해도 다 좋은 관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살인의 문》에 나오는 다지마 가즈유키(田島和幸)와 구라모치 오사무(倉持修)가 그렇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건 다지마뿐일지도 모르겠다.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이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 여겼다. 그런 마음인데 왜 다지마를 힘들게 했을까. 정말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친구가 나보다 잘살거나 잘하는 게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한다, 했던 것 같다. 친구가 잘해서 부러워한 적보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걸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친구와 친하면 걱정했다. 친구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까봐.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아직도 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 이 책은 이런 것과 별로 상관없다. 그냥 저런 게 생각났을 뿐이다. 다지마와 구라모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해졌다. 다지마 집은 어느 정도 살고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하지만 다지마는 집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 때 구라모치를 사귀었다. 구라모치는 자신도 아이면서 다른 아이를 어리다 여기고 사귀지 않았다.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자신과 비슷하다 여겼지만 그건 아니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두 사람이 알게 되고 좋은 친구가 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다르다. 구라모치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만나지 않는 게 나았을 거다.

 

 어렸을 때 집이 잘살아도 그게 오래 가지 않기도 한다. 다지마 집이 그랬다. 아파서 누워있던 할머니가 죽고 얼마 뒤, 동네에 다지마 집안 사람이 할머니한테 독을 먹여서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다지마 아버지와 어머니는 헤어진다. 다지마는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살기로 한다. 이때부터 잘못된 걸까.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는 술집 여자 시마코와 사귀다 시마코 애인한테 머리를 맞고 후유증으로 치과의사를 못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이 치과의사인 걸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그것을 못하게 되고는 술만 마시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땅을 팔고 다른 데 아파트를 지어 집세를 받고 살려 했다. 좋지는 않아도 아파트를 지었다. 그전에 다지마는 중학교를 옮겼는데 거기에서 괴롭힘 당했다. 괴롭힘 당하던 다지마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 생각한다. 그 아이들을 죽이기 전에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떠올렸다.

 

 중학생 때 다지마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독약으로 겁만 주고 끝났다. 그때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떠올린 까닭은 구라모치가 초등학생 때 다지마를 속여서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내기 오목두는 곳에 데리고 갔는데 구라모치와 내기 오목하는 사람은 아는 사이로 구라모치는 바람잡이였다. 그것뿐 아니라 구라모치는 다지마한테 저주의 엽서가 가게 했다. 구라모치는 왜 다지마한테 그런 걸 보냈을까. 다지마네 집이 잘살아서 그것을 부러워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초등학생 때는 그랬다 해도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괜찮게 살려 할 때마다 나타나서 다지마를 안 좋은 일에 빠뜨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다지마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나타나서 다지마가 좋아하는 여자아이 요코를 가로채고, 요코는 몇달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지마 아버지가 술집 여자 시마코 때문에 빚을 지고 아파트를 팔게 되고 다지마는 여러 친척집에 얹혀 살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지마는 기숙사가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되는데, 구라모치가 한번 만나자고 한다. 이때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싫어하고 미워하면서 왜 만났을까. 그 회사에서 다지마를 괴롭히는 선배가 있었다. 어쩐지 중학생 때와 비슷하구나.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만나려 한 건 요코 때문이었지만. 다지마가 구라모치한테 요코 이야기를 했을 때 구라모치는 요코를 나쁘게 말했다. 다지마는 거짓말이다 하면서도 그 말 조금 믿었나 보다. 구라모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해야겠다.

 

 구라모치는 다지마한테 자신이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일은 다단계 회사 바람잡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속였는데, 나중에는 안 좋은 일에 끌어들이다니. 다지마가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다단계 회사 설명회에 자신을 괴롭히는 회사 선배가 있어서 다지마는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의지할 부모가 없는 다지마는 구라모치한테 도움받지 않겠다 마음먹었는데, 구라모치와 살기로 한다. 다지마가 구라모치와 살기로 한 건 구라모치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함께 살아도 구라모치는 자기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다지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겠다. 다지마가 쉽게 일을 구하지 못하자 구라모치가 또 자기하고 같이 일하자 한다. 거기도 사기 치는 회사였다. 구라모치는 잘도 그런 일을 한다. 구라모치는 남을 속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다지마는 남을 속이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그만두지 못했다.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겠지. 때가 되자 윗사람은 돈을 가지고 달아났다. 다지마는 경찰한테 조사를 받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 말한다.

 

 몇해 동안 다지마는 가구 옮기는 일에서 파는 일을 했다. 이제 자리잡고 살겠다 했는데, 구라모치가 또 나타났다.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조금 마음에 둔 여자와 결혼했다. 그저 서로가 자기가 하는 일 하고 살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그때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일 기회를 엿보았다. 그것 때문에 구라모치를 자꾸 만나다 덫에 걸린다. 이번에는 여자였다. 다지마는 왜 몰랐을까. 책을 읽는 나도 그건 다 구라모치가 꾸민 일이라는 거 알겠던데. 다지마는 결혼에 실패했다. 다지마는 자기 삶이 엉망진장이 된 건 다 구라모치 탓이다 여겼다. 구라모치 때문에 죽은 건 요코만이 아니다. 그걸 생각하고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이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구라모치를 칼로 찔렀다. 구라모치는 목숨을 건졌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 식물인간이 되는 걸로 하다니. 다지마는 어떻게 마음을 풀어야 할까. 구라모치가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그거 정말일까 했다. 그것도 꾸민 거 아니야 생각하게 했는데.

 

 이것저것 많이 말했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을 보면서 구라모치가 속인 사람이 다지마뿐일까 했는데, 아니 속였다고 말하는 건 잘못된 건가. 구라모치는 말을 잘했다.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처음 죽이려고 한 중학생 때는 자신이 다지마한테 저주의 엽서를 보냈다고 말하고 미안하다 했다. 다지마가 구라모치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만날 때마다 다지마는 구라모치 말을 듣고 마음을 접었다. 다지마는 자신한테 뭐가 모자라서 구라모치를 죽이지 못할까 생각했다. 말을 들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지마가 구라모치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지마 가까이에 자주 있었던 것도 구라모치였다. 미워하면서도 구라모치하고 인연을 끊지 못한 건 다지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건 구라모치지만. 구라모치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다. 집이 두부를 팔았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은 돈을 아주 많이 벌 거다 했다. 그게 사기라니. 남을 속이고 그 돈을 빼앗는 건 좋은 일이 아닌데. 구라모치한테는 양심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하던가. 처음에는 사이코패슨가 했는데 소시오패스에 가깝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 썼을 때는 소시오패스라는 말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구라모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왜 다지마가 평범하게 사는 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는지. 다지마가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닌데,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친구라 생각해도 자신보다 행복해지는 건 볼 수 없었나보다.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닌데. 구라모치는 친구라는 것을 좀 다르게 생각한 것 같다. 구라모치가 그렇게 된 건 어렸을 때 만난 사람 때문일지도.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죽고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고 사람을 죽이는 건 어떤 걸까를 생각한 다지마도 좀 이상했지만 그건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지마는 이런저런 일을 겪고 평범하게 살려고 했는데.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아본 걸까. 구라모치가 다지마 앞에 나타난 건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는 것도 힘들 텐데. 구라모치는 다지마가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고 몇번이나 죽이려다 그만둔 걸 알았는지. 두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랬다면 다른 이야기가 됐겠다.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드는 건 왤까. 비뚤어진 구라모치 마음 때문일지도. 구라모치는 다지마를 자신이 바라는대로 만들고는 ‘그건 네가 결정한 거다’ 했다. 구라모치는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늘 만들어두었다.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힘들게 만든 건 어렸을 때 느낀 질투로 정리할 수 있을지. 구라모치 말을 듣는다 해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고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았겠다. 소설이어서 이렇게 쓴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 어딘가에는 구라모치 같은 사람 있을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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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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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여름이 오기 전부터 걱정했습니다. 지난해만큼 더운 여름일 것 같아서. 여름도 아닌데 여름 같았던 날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다 해야 할지 아주 더운 날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어요. 이건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별로 덥지 않은데 라디오 방송에서 ‘오늘도 참 덥습니다‘ 해서 바깥은 더운가 보다 했어요. 본래 저는 움직이지 않으면 열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더울 때는 저도 지내기 힘듭니다. 어렸을 때는 여름 좋아했는데, 언젠가 더워서 잠자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뒤로 여름을 좋아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덥습니다. 여름에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길을 걸으면 숨이 막힙니다. 여름에는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 않지요. 그래도 바람이 부는 게 더 낫습니다. 한여름 한낮에는 걷지 않는 게 좋겠지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어도 엄청 더울 때 걸으면 더위 먹을 겁니다.

 

 제가 이 시집을 처음 본 건 2003년이에요. 아니 어쩌면 그때 시집을 사고 바로 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과 《남해 금산》 이야기를 보고 관심을 가졌어요. 《남해 금산》이 두번째고 이게 세번째더군요. 첫번째 시집도 예전에 봤을 거예요. 그 시집이 어땠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그것도 다시 볼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 이건 전부터 다시 봐야지 생각하다가 이제야 봤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어떻게 봤는지 떠오르지 않지만, 이번에 볼 때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예전에 어떻게 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이 책 날개에는 ‘연애시말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시에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말을 쓸 것 같기도 한데 여기 담긴 시에는 그런 말은 별로 없어요. 무거운 느낌입니다. 이건 제 느낌일 뿐이지만(이런 말 가끔 하는군요). 무겁기는 해도 그게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예요. 연애시말법이라 해서 이성을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해요. 하나만 생각해도 괜찮을 텐데, 무언가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몰라 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산>, 24쪽

 

 

 

 섬과 섬이 만나 자식을 낳았다 끝없이 너른 바다를 자식 섬은 떠돌았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을 원망하면서…… 떠돌며 만난 섬들이 저마다 쓸쓸했고 쓸쓸함의 정다움을 처음 알았을 때 서둘러, 서둘러 자식 섬은 돌아왔다 어미 섬과 아비 섬이 가라앉은 뒤였다

 

-<섬>, 55쪽

 

 

 

 시가 어떻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는 자유롭게 봐도 괜찮겠지요. 시는 그것을 보는 사람 마음에 따라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도 그랬지 할 테고, 경험이 없다 해도 그것 자체로 봐도 괜찮겠지요. 숲, 나무, 강……. 이런 제목이 붙은 시가 좀 있습니다. 섬 하면 정현종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성복도 <섬>이라는 시를 썼네요. 어쩐지 쓸쓸하게 보이는. 시집 보고 쓸쓸함이 느껴진다는 말 자주 했군요. 실제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이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면 좋겠지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되면 조금 안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부모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지요. 남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으니 몰라도 된다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상상하면 되잖아요.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든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기다림>, 84쪽

 

 

 

 예전에 이 시집 봤을 때 이 시가 좋았어요. 그냥. 그때는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는가보다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길.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앞에서 나무를 봐선지, 나무가 사람을 기다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성복 시집에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이 시와 그 시집 상관없지 않겠군요. 그 시집에는 시집 제목과 같은 시가 있을지. 그 시집 생각하니 그것도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네요. 저한테 이성복 시집이 여러 권 있다니 신기하네요. 예전에 시 잘 몰라도 그냥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모르고 보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보다 잘 읽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앞으로 시를 봐도 그것을 잘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잘 못해도 괜찮겠지요. 시를 만나고 느끼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아주 더운 한여름 한낮에는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느낌 신기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때도 시간은 흐르고 여름도 갑니다. 여름이 끝나갈 때는 여름이 가는 것도 조금 아쉽겠지요. 여름이 끝날 때쯤 이 시집 한번 만나도 좋겠습니다. 늘 똑같은 것 같아도 사람은 철이 바뀌고 해가 갈 때마다 조금씩 자라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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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지음 / 돌베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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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잘도 흘러간다. 지구가 도는 것을 시간이 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세계 곳곳에서는 날마다 사람이 죽겠지. 그것뿐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겠다. 세상에 온 아이 모두 부모가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낳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낳은 아이도 있겠지. 부모한테 사랑받지 못해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게 꼭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닐지도. 그 아이를 따르고 좋아하는 동물도 괜찮겠다. 이상하게 난 무엇이든 다 가진 사람보다 무언가 모자란 사람을 더 생각한다. 내가 그 쪽이어서 그럴지도. 아니 부모가 있고 가진 게 많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겠지. 사람은 다 모자란 부분이 조금은 있을 거다. 살면서 그것을 채우려 하는 사람도 있고 끝내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꼭 채워야만 할까.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해도 나도 가끔 헛헛함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그게 사라질까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거짓말이다》를 보고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민간 잠수사 이야기를 조금 알았다. 그것은 소설인데 소설 같지 않았다. 이것 또한 그렇다. 조금은 실제와 다르게 썼겠지만 친구한테 구명조끼를 벗어주거나 친구가 살게 도와준 이야기는 정말일 거다. 사람은 큰일이 일어나면 자기 몸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 자신만 살려고 하는 사람도 조금 있지만. 세월호에서는 선장이나 선원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 사람들은 배가 위험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다니. 그렇게 말하기보다 차례를 잘 지켜 나오라고 하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에 부모한테 문자를 보냈다. 그때 아이한테서 문자를 받고 밖으로 나오라고 말하지 못한 부모 마음이 어떨지. 배는 본래보다 두시간 반이나 늦게 떠났다고 한다. 제시간에 갔다면 그런 일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은 아닐지도(배가 늦게 떠났다는 건 실제와 다를까). 벌써 일어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어떻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난 이렇게 책을 볼 때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하겠지만, 그때 아이와 식구를 잃은 사람은 그때부터 아직도 생각하겠다.

 

 이 책을 보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말하면 책을 보려다 주춤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래도 보기를 바란다.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일을 사랑으로 포장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시간이 흘렀기에 그럴 수 있었을까. 언젠가 세월호 참사를 그런 식으로 영화로 만들까. 그런 건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면 80년에 일어난 일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나 그밖에 예전에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들었구나. 그런 건 잘 만들어야겠다. 소설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남의 슬픔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할까 하는 마음과 그때 일을 많은 사람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마지막 소설 <소소한 기쁨>에 그런 작가가 나온다. 그 작가보다 편집자 소중과 소중이 맡은 다른 작가 이야기가 더 많지만. 소설에는 다른 이름으로 나오지만 세상을 떠난 작가는 신영복 님이 아닐까 싶다. 힘들다 해도 어떤 일은 써야겠지.

 

 그날 2014년 4월 16일에 배 안에서 일어난 일이 아주 없지 않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더 많다. 남은 사람 말이다. 살아 돌아온 아이, 배 안에서 시신을 모시고 나온 잠수부, 죽은 아이 부모, 할머니……. 목숨을 잃은 304명 한사람 한사람을 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2015년에 만난 시집 《엄마, 나야》를 보면서 꿈이 많았을 아이들이 죽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살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 심부름을 잘한 형수. 형수는 그림을 잘 그렸다. 할머니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형수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돈을 벌어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려 했다. 엄마하고만 살고 사진작가가 되려 한 재서, 어릴 때 헤어진 엄마를 수학여행 가기 전에 찾아가 만난 찬우. 정후 아버지는 여름방학에 정후와 여기저기 다니려고 했지만 정후와 함께 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정후 아버지는 여권에 출국도장이 찍힌 걸 보면 아직도 정후가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프게 들린 말이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 없을 뿐이지 정후는 지금도 세계 곳곳을 다니고 있을 거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고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그 일만 그런 건 아니구나.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일을 하고, 의심도 하기를. 마음 아픈 사람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해도 조금은 헤어리면 좋겠다. 사건 사고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다.

 

 

 

희선

 

 

 

 

☆―

 

 “사람은 모두 한 그루 나무란다. 저마다 자리에서 저마다 방식으로 자라는 나무. 이 나무가 결코 저 나무가 될 수 없고, 저 나무가 또한 이 나무가 될 수 없지. 그 둘을 하나로 만드는 모든 일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었어.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우리 둘!”

 

 실망하는 학생들을 보고 이렇게 살짝 희망도 주셨지요.

 

 “저마다 자리를 지키며, 저마다의 가지를 뻗고 꽃과 열매를 맺지만, 땅속 깊은 곳에선 두 나무 뿌리가 만나 인사 나누고 엉켜 평생을 보내기도 한단다. 내게 ‘사랑’은 땅속 그 뿌리들과 같아.”  (<제주도에서 온 편지>,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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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기억술사

 

  기억술사 2 : 처음이자 마지막   記憶屋 (2016)

  오리가미 교야   민지희 옮김

  arte(아르테)  2017년 04월 24일

 

 

 

 

 

 

 

 

 

 

 

 

 

 

 지난해(2016) 일월엔가 우연히 이 책을 알고 샀는데, 책을 좀 늦게 받았다. 내가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인터넷 책방에서 그렇게 여긴 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잘못할 수 있겠지. 한해 넘게 지난 일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한다니(뒤끝 있구나).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생각 안 좋을 테지만, 기분 안 좋은 일은 쉽게 잊지 못한다. 사람은 그런 면이 있다. 살다보면 좋은 일뿐 아니라 안 좋은 일도 일어나는데, 좋은 일은 그때가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것을 잊지 않으려면 적어두고 가끔 펴보라던데. 적어서 잘 기억할 수도 있지만 적어두었다고 마음 놓으면 적어둔 일을 잊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펴보라는 거구나. 올해부터는 그렇게 해볼까 하고 쓰기는 하는데 좋은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기쁘게 여기면 괜찮을지도. 그러면 날씨가 좋은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되고, 잠깐이라도 걸은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되겠지.

 

 이 책은 모두 세권이다. 첫번째는 좀 다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2권을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지난해에 내가 두번째를 읽지 않은 건 첫번째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두번째는 첫번째에서 시간이 흐른 뒤다. 그렇다 해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기억술사가 바뀐 건 아니겠지. 1권 마지막에는 기억술사가 누군지 나온다. 그것을 아는 건 책을 보는 사람뿐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모른다. 아니 잊는다고 해야겠다. 마지막은 정말 피해자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게 된 걸 잊고 싶지 않았을 거다. 기억을 지우는 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어했는데. 1권에서 기억술사를 찾으려 하고 찾아내고 그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여기 나오는 이노세 깃페이가 아는 것 같다. 1권에도 이노세가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잠깐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이노세는 자신이 알던 사람이 기억술사를 찾으려 한 일을 잊어버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기억술사를 조사했나보다. 열해나. 네해 전에 중학생 여자아이 넷과 중학교에 가까운 곳에 있는 빵집에서 일하는 남자 기억이 이상해진 걸 알고 이노세가 그 일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네해가 지난 다음에야 그때 중학교 보건 선생님과 중학생이었던 오사키 나쓰키를 만났다. 그건 기억술사가 다시 움직여서다. 나쓰키는 한달쯤 전에도 이노세를 만났는데 그것을 잊어버렸다. 나쓰키가 기억술사를 만난 걸까.

 

 나쓰키는 이노세가 예전에 자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쓰키 자신이 만든지도 몰랐던 가게 포인트 카드와 휴대전화기에서 기억술사를 알아본 흔적을 보고 그 말을 믿게 되었다. 나쓰키는 기억술사를 찾으려는 이노세를 돕기로 한다. 말은 확실하게 하지 않았지만 이노세가 나쓰키 친구 메이코가 기억술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나쓰키는 진짜 기억술사를 찾으려 했다. 나쓰키와 메이코는 친한 친구기는 한데 두사람이 나오는 건 적다. 중학생 때 이야기에 나오는구나. 나쓰키와 메이코가 중학생일 때 다른 한 친구가 안 좋은 일을 당하고 그걸 잊고 싶어했다. 그 아이는 우연히 기억술사를 알고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 자기 기억뿐 아니라 친구 기억까지. 중학생 때는 그런 일 더 힘들겠지. 어른한테 말하고 해결하는 게 좋았을 텐데. 어쩌면 창피한 마음이 커서 차라리 기억을 지우는 게 낫다 생각한 건지도. 나도 잠깐 그런 생각해봤다. 내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 있었던 일을 잊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를 대하는 걸. 그걸 상상만 해도 내가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다. 안 좋은 일을 잊어버리면 그때는 편할지 몰라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두려움이나 기분 나쁜 게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옅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독자 모델인 리나는 자신이 기억술사를 만나고 어떤 사람을 만난 기억을 지웠는데, 그게 어떤 건지 알려고 한다. 기억술사를 만나고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은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일조차 잊고 살기도 하는데 리나는 별났다. 같은 일이 되풀이 될 뻔했지만 리나는 두번째에는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리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그 사람을 만나고 기쁜 일도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이노세와 나쓰키는 기억술사를 만났다는 리나를 만나고 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한가지를 알게 된다. 그건 기억술사가 젊은 여자라는 거다. 기억술사가 누군지 중요하겠지만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아주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은 그것을 잊고 사는 게 낫기도 하겠지. 잊지 못해 아예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도 있구나.

 

 자기 뜻과 다르게 기억이 사라지면 싫을 것 같기도 하다. 잊어버리면 자신이 무엇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약하면서도 단단하기도 하다. 시련을 겪고 조금 자란다. 이건 사람뿐 아니라 우주 모든 것이 그렇다. 이 말 알지만 나도 안 좋은 일 별로 겪고 싶지 않다. 가끔 어떤 일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한다. 그래도 그것을 잊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게 바로 달라지기를 바라고 애쓰지 않는다(애쓴 적도 있던가). 그냥 내버려둔다. 이것은 잊어버리는 것과 같을까. 아니 아주 잊는 것과는 다를 거다. 시간이 가면 아주 조금은 바뀌겠지. 마지막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조금 괜찮았으면 좋겠다.

 

 

 

 

 

 

 

                    

 

                    

 

 

 

 

 

 

 

마음은 나타내야 한다

 

  기억술사 3 : 진실된 고백   記憶屋 (2016)

  오리가미 교야   유가영 옮김

  arte(아르테)  2017년 04월 24일

 

 

 

 

 

 

 

 

 

 

 

 

 

 

 “창피할 정도로 말로 하는 편이 좋아. 친구 사이란 어려워서 말이야. 어른이 되면 더욱 어려워지지. 일이나 인간 관계 같은 여러 굴레가 늘어나면 단지 좋아해서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는 적어져. 그래서 솔직하게 친구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게 돼.”  (38~39쪽)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157쪽)

 

 

 책이 세권이면 마지막까지 다 보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한권씩 읽고 나서 이런 말을 하다니. 1권과 2, 3권 이런 식으로 보면 괜찮을 것 같아. 첫번째로 끝났다고 말하기 애매해서, 이야기를 더 쓴 건 아닐까 싶어. 난 첫번째 것 뒷이야기가 더 알고 싶기도 했는데. 다음에 나쓰키와 메이코라는 이름이 나와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어. 그렇다고 기억술사까지 다르다니. 아니 기억을 지우는 힘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어. 3권 네번째에 나오는 <마지막 이야기 : 고백>을 보다가 어렴풋이 알았어. 확실하게 그렇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혹시 그렇지 않을까’ 했어. 확실하게 그 말이 나오고 그 생각이 맞았구나 했지. 첫번째도 그렇지만 두번째와 세번째도 기억술사를 찾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야.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찾기가 아주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아.

 

 이노세와 나쓰키는 요리사 마리야 슈 기억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어. 마리야 슈는 우연히 리나가 말하는 ‘기억술사’ 이야기를 듣고 조금 관심을 갖게 됐어. 마리야는 어렸을 때 요리 대회에 나가고 일등을 했는데, 거기에는 도가미 세이이치가 있었어. 마리야는 도가미가 한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여겼어. 그런데 누군가한테 밀려서 마리야는 도가미 음식을 엎어버렸어. 마리야가 그때 미안하다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열다섯해가 지나고 마리야는 어떤 파티장에서 도가미를 만나. 마리야는 거기에서 도가미한테 또 실수하는데 미안하다는 말보다 옷을 빨라면서 돈을 줘. 그냥 미안하다 말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도가미가 누구한테나 붙임성있게 말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어. 도가미는 뭐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고, 마리야는 이런저런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 난 마리야만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생각 많이 해서 마리야 마음 알 것 같기도 해.

 

 두 사람을 보니까 무엇이든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생각났어. 마리야와 도가미는 둘 다 요리하는 사람이야. 마리야는 도가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고 도가미한테 인정받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었어. 마리야는 어렸을 때 자신이 도가미 음식이 수수하다고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마리야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맛있다는 거였는데. 나중에 만났을 때 마리야가 편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마리야는 도가미한테 자기 마음을 말해. 마리야만 도가미한테 말하지 못한 건 아니기도 했어. 도가미는 마리야한테 옛날 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리야가 만든 요리 맛있다고 말해. 실력이 비슷한 사람도 서로 인정받고 싶어할까. 자신은 자신대로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가 인정해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 마리야가 왜 기억술사를 찾았는지 말하지 않았군. 마리야는 자기 기억이 아니고 도가미 기억을 없애고 싶다고 했어. 남의 기억을 멋대로 지우는 건 안 되지. 첫번째 책에는 그런 것도 나왔지만.

 

 나쓰키가 기억술사를 찾는 이노세를 도운 건 친구 메이코가 기억술사가 아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였는데, 나쓰키는 이노세를 그만 돕기로 해. 메이코가 기억술사라 해도 받아들이겠다면서. 이건 이노세한테 한 말은 아니군. 나쓰키와 친한 친구라 해도 메이코가 자주 나오지 않은 까닭을 깨달아야 했는데. 메이코가 기억술사가 아니다는 건 알았어. 나쓰키는 메이코한테 이노세하고 한 일을 말하고 메이코한테 기억술사인지 아닌지 물어봐. 그 사람 모르는 데서 알아보기보다 그 사람한테 바로 물어보면 되는데, 이렇게 말해도 그게 어렵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런 말 하면 상대가 싫어할지도 몰라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는 거겠지. 마리야도 자기 멋대로 생각했어. 1권에서 기억술사였던 사람은 그 뒤로 그만뒀어. 2권에 이름이 같은 사람이 나와서 헷갈렸는데, 한자는 다를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 기억을 지우는 힘이 있다 해도 그 힘을 쓰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봐.

 

 기억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은 걸까.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희미해지는데. 기억이 아주 조금이라도 없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모르면 별 문제없을까. 그건 기억이 사라진 사람보다 둘레 사람이 알아채더군요. 기억이 없으면 둘레 사람이 조금 슬퍼하겠어. 2, 3권에는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1권에는 그런 것도 나와. 슬프고 힘들고 부끄러운 기억도 자신이다 생각하면 괜찮겠지.

 

 

 

희선

 

 

 

 

☆―

 

 “기억을 지운다는 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에요. 그 기억이 당신 것이든 남의 것이든.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한부분을 지움으로 그 사람은 영원히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고요.”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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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0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꽤 오래 서로 서재 오가며 대화도 나누다가 친구한 사이죠. 제가 친구 추가했다가 혹 불편할까 싶어 취소했던 것도 같은데ㅎ;; 다짜고짜 친구 추가부터 하고 싫음 일언반구없이 취소하는(저도 아주 없진 않아요ㅎ;;;) 디지털문화에서 희선님과 그렇게 친구된 거 저는 마음 한편에서 참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성들여 대화를 하려는 희선님의 자세는 친구로 참 장점인 거 같아요.
마음 나눠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전합니다.

희선 2017-09-04 02:56   좋아요 1 | URL
이 말 칭찬처럼 들려서 기분 좋고 좀 쑥스럽기도 하네요 사실 저는 그런 거 별로 마음 쓰지 않아요 그걸 안 하면 어떤가 생각합니다 그런 걸 처음 만들었을 때는 다른 사람 블로그(서재)에 쉽게 찾아가게 하려는 거였을 텐데, 지금은 그 뜻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본래 그런 거기는 하네요 뭐든 처음 뜻과 조금씩 바뀌는 거... 그게 나쁜 건 아니겠지요 좋게 바뀌면 괜찮죠 여러 사람을 알고 여러 사람 글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글이 아주 많은 곳에서 읽을 걸 찾는 것보다 자신이 찾아둔 서재나 블로그에 바로 가는 것도 괜찮겠지요


희선
 

 

 

 

 글쓰기를 생각하다 예전에 제가 쓴 것을 읽어보니 유치하면서 재미있는 게 있더군요. 그걸 썼다는 건 기억하지만 자세한 건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쓴 것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그때는 거의 기억했는데. 술술 잘 읽힙니다. 제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끝이 어떨지 다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그런 것도 썼어요. 지금이라고 아주 새롭고 다른 걸 쓰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못 쓰는군요. 유치해도 쓰기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쓴 거여서 그런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신이 쓴 거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네요. 좀 유치해도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보다보면 벌써 끝일지도.

 

 

 

 

 

 

 

행복은 가까이에

 

 

 

 

 방값을 올려주지 않으면 그만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에 산 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좋은 방은 아니지만 방값이 싸서 오래 살았는데 옮겨야 할 때가 찾아왔다.

 

 정보신문을 뒤져보아도 좋은 곳은 없었다.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돈에 맞는 곳이 없었다. 방을 빼야 할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이 세상에 내 한몸 누일 곳이 없다니 무척 슬펐다. 정보신문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 아주 싼 방이 보였다.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집주인한테 전화를 하고 찾아가 보았다. 싼 방이어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는 달리 부자들만 사는 곳이고 이층집이었다. 겉만 멋지고 지하에 있는 방은 아닐까 했는데, 아주 좋은 방이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방, 정말 여기에 쓰여 있는대로 받으실 거예요?”

 

 “네, 그럴 거예요.”

 

 주인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이층집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다른 식구는 남자한테 집을 물려주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벌써 집이 있다니 부러웠다.

 

 “저기…… 내일, 아니 오늘 바로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꼭 지키세요. 밤 12시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말고, 다른 방 문도 열지 마세요. 그리고 저한테 할 말이 있으면 계단 옆에 있는 인터폰으로 하세요. 혹시, 밤늦게 들어오지는 않겠죠?”

 

 “날마다 이층에 계세요?”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네, 알았습니다. 다른 방에도 누군가 살아요?”

 

 “아, 네.”

 

 “그런데 12시 넘어서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12시 넘어서는 괜찮아요. 정각 12시만 아니면 됩니다. 이제 그만 물어보시죠. 자꾸 물어보시면…….”

 

 “아, 네 미안합니다.”

 

 짐은 조금밖에 없었다. 한곳에 오래 살았는데도 늘어난 것이 별로 없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밥은 거의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노트북 컴퓨터를 썼으니 짐이 없을만 했다. 이제는 뭔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주인 남자가 방을 빼라고만 하지 않는다면 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짐이 이것밖에 없어요?”

 

 “네, 하하.”

 

 “여기 열쇠 받으세요.”

 

 “제 집은 아니지만 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쉬세요.”

 

 “네, 아저씨도.”

 

 “아저씨라뇨? 제 이름은 김유진이에요. 이름으로 말하면 좋겠네요.”

 

 “그러죠.”

 

 “아가씨는 이름이 뭐죠?”

 

 “저는 민수영입니다.”

 

 “제가 말한 거 잊지 않았죠? 꼭 지키세요.”

 

 “네.”

 

 새로운 곳에서 사는 건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나는 늘 설렜던 것 같다. 전보다는 나아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곳도 좋은 곳이어서 그런지 무척 설렌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하지 마라 하면 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배가 아파 달려간 화장실에서 나온 시간은 정확하게 12시였다. 어디선가 ‘댕~ 댕~’ 소리라도 들릴 것 같았지만,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방에서 누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무척 놀라 화장실 문을 조금 연 채 밖을 내다보았다. 방에서 나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부엌을 보니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해서 할머니가 나온 방문을 열려고 했는데 잠겨 있었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본 건 도대체 뭐였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까 귀신이었을까? 할머니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밤에 한번 더 보기로 했다.

 

 낮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밤이 오기만 을 기다렸다. 11시 59분에 내 방을 나가서 12시에 부엌에 갔다. 정신만 차리면 괜찮다 생각하고 방문을 노려보았다. 12시가 되자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가 나왔다. 그렇게 무서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있는 부엌으로 왔다. 나를 보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웃어 보였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만난 뒤부터 낮에도 할머니가 보였다.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주인 남자한테 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쩌면 주인 남자는 알고 있는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게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귀신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알고 싶었다.

 

 밤 12시에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다. 금세 사라지지도 않았다.

 

 “아가씨, 나 안 무서워?”

 

 “하하,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 말할 수 있네요. 그동안 왜 한마디도 안 했어요?”

 

 “아가씨가 나한테 말을 안 해서 그랬지.”

 

 “아, 예.”

 

 할머니는 부엌 식탁에 앉기도 하고 차도 마셨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 이럴까?

 

 “할머니, 귀신 맞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왜 여기에 계세요? 다른 세계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 내가 이곳에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늘 집에만 있으니 찾을 수가 없구랴.”

 

 할머니한테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오랫동안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행복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새로 태어나면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살자는 약속을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할머니가 다시 태어났을 때 알아보지 못할까 싶어서…….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럼.”

 

 “왜 지금까지 찾으러 나가지 않았어요?”

 

 “내가 귀신이기는 해도 사람이 도와줘야 해. 누가 나하고 같이 가야 하거든.”

 

 “주인 남자분한테 부탁하지 그러셨어요.”

 

 “나도 여러 번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

 

 “그런데 할머니는 누구한테나 보이세요?”

 

 “그렇지는 않아.”

 

 남자는 할머니 증손자였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는데 남자한테는 보였다.

 

 다른 사람이 할머니를 볼 수 없었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퍼졌다.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만 남겨두고 모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남자는 자신이 남겠다고 했다.

 

 

 

 밤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자서 아침에 늦잠을 잘 때가 많았다.

 

 그런 어느 날 아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은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자다 점심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문을 여니 뭔가 떨어졌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었다. 그것을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층에는 한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올라갔다. 방문이 여러 개 있었다. 어느 방인지 몰라서 두리번거렸다.

 

 “여긴 무슨 일이죠?”

 

 “깜짝 놀랐잖아요.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저한테 할 말 있으면 인터폰으로 하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해요?”

 

 “네?”

 

 “이거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들어 보였다. 남자는 별거 아니다 했다.

 

 “저 혼자 여기 가라는 말씀이세요? 솔직히 말하면 저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같이 가면 안 돼요?”

 

 “…….”

 

 남자는 망설이다 말했다.

 

 “좋아요.”

 

 “그리고 한분 더 같이 가요. 유진 씨도 아는 사람인데…….”

 

 남자는 놀란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저는 할머니 소원 들어드리고 싶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다잖아요. 그리고 놀이공원이라면 할아버지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는 아이일 거 아니예요.”

 

 

 

 “할머니, 기쁘죠?”

 

 “그래. 아가씨 고마워.”

 

 “할머니 일 때문이지만 저도 기뻐요. 소풍가는 것 같아서.”

 

 놀이공원에 간다는 기쁨에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일층에서 나는 소리에 남자가 깨었는지 부엌으로 들어왔다.

 

 “뭐하세요?”

 

 “김밥 싸요. 조금만 하면 다 돼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런 거 뭐하러 싸요. 가서 사 먹으면 되는데.”

 

 나는 그냥 웃었다.

 

 하늘은 맑고 소풍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웃음 가득한 얼굴인데 남자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유진 씨, 좀 웃어요.”

 

 “…….”

 

 놀이공원은 사람으로 붐볐다. 할머니가 걱정스러웠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할머니도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에 나와서 그런지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할머니, 혼자 다니지 말고 저희하고 함께 다녀야 해요. 세상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어요.”

 

 “유진 씨, 여기 놀러온 거지만, 할아버지 찾으러 온 거기도 하잖아요. 할머니 혼자 다니고 싶으실지도 몰라요. 그렇죠, 할머니?”

 

 “맞아, 나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남자는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돕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있었을 거다. 혼자 그 커다란 집에 남은 것을 보면 말이다.

 

 “할머니, 돌아다니다 12시 30분에 여기에서 만나요. 유진 씨는 저하고 놀이 기구 타러가요.”

 

 할머니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남자와 나는 걸었다. 식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갑자기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저, 놀이공원에 처음 와봐요. 유진 씨하고 할머니한테 무척 고맙네요. 유진 씨도 할머니 걱정 많이 했지요?”

 

 “…….”

 

 “제 느낌인데, 오늘 여기에 할아버지 오셨을 것 같아요.”

 

 우리 앞에 회전목마가 나타났다.

 

 “유진 씨, 우리 이거 타요. 별로 무섭지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괜찮으니 수영 씨 혼자 타세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나는 남자를 끌고서 함께 회전목마를 탔다. 내 손을 뿌리치지 않을까 했는데 함께 타서 고마웠다.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만 탔다. 사람들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남자도 나와 비슷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할머니를 걱정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과 놀이기구 타는 사람을 보는데 할머니가 보였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였다. 그리고 희미하게 할아버지 환영도 보였다.

 

 “유진 씨, 저기 할머니 좀 보세요.”

 

 남자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할머니에게 가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봐요. 유진 씨도 할아버지 환영 보여요? 할머니 얼굴 좀 보세요. 무척 행복해 보여요. 할머니에게 시간을 드려야죠.”

 

 얼마 뒤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섯 살 남자아이를 찾는 거였다. 남자는 더 기다릴 수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할머니와 남자아이가 먼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할머니!”

 

 할머니는 밝게 웃었다. 남자아이 엄마 아빠를 찾아주라는 말을 하고는 조금씩 희미해졌다.

 

 “할머니…….”

 

 

 

 할머니가 떠나고 두 해가 흘렀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유진과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곧 아이를 낳을 거다.

 

 “유진 씨, 일층 보러 오늘 온다고 했어요?”

 

 “아마 그럴 거예요.”

 

 “좋은 사람이 오면 좋겠네요.”

 

 초인종이 울렸다. 유진이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 을 보고 우리 둘은 무척 놀랐다. 지난해 놀이공원에서 만난 남자아이 엄마와 아빠였다. 한 해 만에 만난 것이었는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만난 사람 같았다.

 

 “유진 씨, 아기가 나오려나봐요.”

 

 “그래요? 저기, 집 좀 부탁드릴게요.”

 

 병원에 갔지만 아기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웃고 배를 쓰다듬었다. 할머니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힘내. 곧 예쁜 딸을 만날 거야.”

 

 할머니 말처럼 딸이었고 아주 건강했다.

 

 “유진 씨, 아기 예뻐요?”

 

 “그럼요. 누구 딸인데.”

 

 “있죠, 저 할머니 만났어요. 어쩌면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난 걸지도 몰라요.”

 

 “정말 그럴까요?”

 

 “네.”

 

 유진과 나는 할머니가 우리 딸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남자아이 식구는 일층으로 이사오고, 남자아이는 딸아이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남자아이와 딸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보였다. 우리는 놀랐지만 곧 웃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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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02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선량한 사람들은 소설도 선량하게 쓰더라고요. 그걸 극복할 수 없어 작가 포기하는 사람도 꽤 있어요. 사이코패스 다루는 작가는 그럼 다 그런 성향이냐 하면 할 말 없지만 성향이라는 게 아주 무시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들죠. 그걸 어떻게 다스리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작가급이 되는 건지도요. 우리 모두 내 안의 악은 있겠지만요^^

희선 2017-09-04 02:44   좋아요 1 | URL
제가 아주 착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쓰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쓸 수 없는 거군요 책을 보고도 아주 안 좋고 나쁜 건 안 된다 생각하지를 않나, 책을 볼 때는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없는 나쁜 생각도 하고...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어둠과 싸우고 살겠죠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좋은 듯해요 생각하지 않으면 선을 넘고 말 테니...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