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새로 산 물건

며칠 쓰고 얼핏 보니

작은 흠집이 생겼다

 

처음 흠집을 보았을 때는

무척 마음 아팠지만

곧 잊었다

 

새 것은 한번만 써도 헌 것이 되고

새 것은 늘 새 것이 아니다

 

흠집이 하나 둘 늘고

시간은 더 많이 흘렀다

 

함께 보낸 시간 만큼 정든 물건

흠집 투성이여도 버릴 수 없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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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집

정든 학교

정든 동네

정든 친구를 떠나

 

어색한 집

어색한 학교

어색한 동네

모든 것이 어색한 곳으로 간다

 

그래도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

새로운 동네

새로운 이웃이

조금 설레게 한다

 

아쉬우면서도

마음 두근거리는 이사

 

새롭고 낯선 것도

시간이 흐르면

정들고 익숙해진다

 

그렇게 사는 거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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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가는 버스

오고 가는 사람을

쓸쓸하게 바라보던 정류장은

어느 날부터

오고 가는 버스

오고 가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정류장은 쓸쓸하지 않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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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차(커피) 마시는 시간은 없다. 책 읽을 때나 컴퓨터 쓸 때 마신다. 누군가는 차 마실 때도 그것에만 집중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나은 사람도 있고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도 있겠지. 난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별로 바쁘게 지내지 않아서. 차 마시는 데 집중하라는 건 일한 다음에 잠시 쉬라는 거 아닐까.

 

 무언가 일을 끝내고 잠시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도 있겠다. 그럴 때 기분 좋겠지. 차 마시면서 그때까지 자신이 끝낸 일을 보거나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릴 테니 말이다. 난 그런 시간 가져 본 적 거의 없다. 한번쯤 그렇게 해 봐도 괜찮을 텐데. 난 분위기 같은 거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런 게 마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자기 형편에 맞춰서 살지 않을까. 누군가 이런 거 어떨까 했을 때, 난 그렇게 못하는데 하기보다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게 좋다.

 

 차는 혼자보다 누군가와 마시면 더 좋을까. 누군가와 마주보고 마시는 건 그것대로 혼자 마시는 건 그것대로 괜찮다. 누군가와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겠지. 난 앞에서 말했듯 책 읽을 때와 컴퓨터 쓸 때 마셔서 늘 혼자다. 누군가를 만나고 차 마신 적 있던가. 한번도 없지 않겠지만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늘 혼자여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걸 잘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그 반대도 있겠지. 가끔 자기 처지가 아닌 것도 생각하면 좋겠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 다를 테지. 그렇다 해도 마음이 잘 맞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신기하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설까.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라면 만나고 이런저런 말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말 하지 않아도 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다. 차는 편한 사람과 마셔야겠구나. 차만 그런 건 아니다. 밥도 그렇다. 아니 차가 어색한 자리 분위기를 풀어 줄 것 같기도 하다. 차가 있기에 편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 자리에 있어본 적 없지만.

 

 

 

 홀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따스한 차 한잔

 어떠세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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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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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살면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을 텐데 만나지 못하다니. 어쩌면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간 적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방송 같은 데서도 한두번 정도밖에 못 보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뿐 아니라 몸이 편하지 않은 사람을 길에서 본 적은 별로 없다. 한국은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곳이고 바깥에 잘 내보내지 않는다고도 하던데. 학교 다닐 때 몸이 안 좋은 아이를 하나 본 적 있다. 소아마비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잘 못 썼다. 그랬지만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았다. 비장애인은 몸이 편하지 않거나 말을 어눌하게 하면 머리도 안 좋다 여긴다. 나도 그런 생각 아주 안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말하는 걸 배우기도 하지만 귀가 들리는 사람하고 다르게 말한다. 들리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말을 잘 못한다고 머리가 안 좋은 건 아니다. 갑자기 내가 말을 안 해서 말을 못한다거나 무언가를 잘 몰라서 귀가 안 들리느냐는 말 들은 게 생각난다. 정말이지 이 세상은 잘 모르거나 조금 느리면 모자라게 생각한다.

 

 예전에 한번은 정신이 이상한 척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것저것 하기 싫어서. 그러지 않았다 해도 지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구나. 비장애인도 무언가를 잘 못 알아들으면 업신여기기도 하는데 장애인한테는 얼마나 더할까 싶다. 그래서 밖에 잘 다니지 않는지도.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는 것뿐이지 다른 건 다 비장애인과 똑같다. 몸이 편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귀가 들리는 사람과는 다른 말을 쓴다. 이 부분은 귀가 들리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점자를 쓰지만. 그것 또한 알기 어려운 거구나. 수화도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문화다 생각하면 괜찮겠다. 그걸 다른 사람이 배우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아주 없지 않기는 하겠다. 얼마 안 되는 사람만 배우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 수화 가르친다는 곳 있었는데, 거기는 교회였다. 그것만 알고 배워본 적은 없다. 들리는 사람이 글로 말하는 것과 들리지 않는 사람이 글로 말하는 건 조금 다르겠지.

 

 귀가 들리지 않는 부부가 아이를 낳는다고 아이도 귀가 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부모와 똑같이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귀가 들리는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난 귀가 들리는 사람을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하는가 보다. 그런 사람은 한국에도 있겠지. 언젠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그런 사람 본 적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들렸다. 아기를 돌볼 때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아라이 나오토가 바로 코다다. 아라이는 어렸을 때 부모와 형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자라면서 부모와 형과 조금씩 멀어졌다. 아라이는 들리는 아이여서 부모가 자신보다 귀가 들리지 않는 형을 더 걱정하고 사랑한다 여겼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과 멀어졌던 아라이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수화통역사를 하기로 한다.

 

 일본은 수화가 한가지가 아니고 두가지인가 보다. 그것도 배워야 할 수 있지 그것도 배우지 못하고 집에서 식구만 아는 손짓 같은 것만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장애인도 배울 권리가 있다. 인권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그게 없는 건 아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이런저런 사람한테도. 난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아니지만 어쩐지 난 많은 사람쪽보다 얼마 안 되는 사람쪽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사람 느낌이 어떤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난 귀가 들리는 코다 마음도. 코다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고 여긴다. 그건 비장애인이 그렇게 보는 걸까. 아라이는 그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라이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한테 통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주는 도움도 있지만, 죄를 지었을 때도 수화통역사가 있어야 한다. 아라이는 부모가 귀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 사람이 쓰는 수화를 잘 알았다. 그 수화를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수화도 하나가 아니고 두가지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도 서로 말을 알아듣기 어렵겠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가끔 이런저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에도 그런 일 때문에 시설 이사장이 죽임 당하고 열일곱해가 지나고는 그 시설 지금 이사장이 죽임 당했다. 열일곱해 전 시설 이사장과 지금 이사장은 부자 사이다. 어떤 일은 바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사건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더 말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 말하는 건 아니겠구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과 비장애인을 잇는 건 코다겠다. 코다는 자신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인지 귀가 들리는 사람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겠지만 둘을 다 알아서 더 좋지 않을까.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누구든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이 소설을 보고 생각한 게 하나 있다. 그건 작가가 수화를 잘 아는 사람이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알까 하는 거였다.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가 자료나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이런 소설을 쓴 건 아닐까 했다.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지 않았다. 작가와 가까운 데 장애인이 있어서 관심을 가졌지만. 소설은 혼자 쓰는 거지만 세상에 사람이 있기에 쓰는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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