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여기에서 책 빌리려면 어떻게 해야죠.”

 

 “처음 오셨어요.”

 

 “네.”

 

 안내하는 사람은 종이를 건네주고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대출증 만드는 일은 쉽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쉬운지 알았다면 더 빨리 오는 건데, 대체 나는 왜 대출증 만드는 걸 자꾸 미뤘을까.

 

 도서관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깨끗했다. 언젠가 들은 도서관은 거의 산꼭대기에 있다고 했는데, 언제 거기에서 이곳으로 옮긴 걸까. 그 도서관도 참 괜찮았을 텐데 못 가 봐서 아쉽다. 사람은 자신이 오래 산 곳이라 해도 잘 모른다. 그건 나만 그럴까, 난 언제나 가는 곳만 가고 다니는 길로만 다닌다. 어디 잘 다니지 않는 나한테 앞으로 다닐 곳이 생겼다. 그건 바로 도서관이다.

 

 어떤 책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도서관에 들어오면 오른쪽에 있는 책장 앞이다. 거기에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책이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 오른쪽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서 한번 올라가 봤다. 이 도서관은 일층은 따로 들어가고 이층과 삼층은 안쪽 계단으로 이어졌다. 위층을 한번 죽 둘러보고 내려와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책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아보았다.

 

 겨우 읽을 책 세권을 정하고 대출증으로 그것을 빌렸다. 책을 자주 빌려다 보면 읽고 싶은 책 빨리 정할 수 있을까. 아니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는지 그냥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앞으로는 도서관 안을 더 둘러보아야겠다. 그러면 혹시 아나 책이 먼저 나한테 말할지. 그런 책 만나고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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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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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아는 소설가지만 지금까지 책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벌써 아홉번째 책이더군요. 꾸준히 책을 썼군요. 이것보다 먼저 다른 걸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편소설에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여기 실린 소설 속 사람은 또 다릅니다. 소설 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 해도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어떤 소설이든 개인을 그린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누구 삶에든 힘든 점뿐 아니라 좋은 점도 있겠지요. 소설은 그런 걸 보게 해줍니다. 자기 삶과 다르다 해도 소설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겉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도 잘 보면 평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실린 소설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저와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군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단편 여덟편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나머지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얼마 뒤에 결혼할 두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있다 풀려나는 건데 어쩐지 무섭더군요. 그런 소설이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건 미야베 미유키 소설 《레벨 7》입니다. 그 소설에서 갇히는 두 사람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니 기억이 없어서 모르는 사이로 생각한 것일지도. 거기에서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편이어서겠지요. 이 소설 제목에 어울리는 건 <연금 생활자와 그의 아들> 같기도 해요. 여기 나오는 아들 ‘나’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햄릿’ 연극을 해요. 자신은 광대가 아니고 햄릿 왕자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햄릿은 왕이 아니고 왕자군요. 이 소설은 소설에서 본 이야기 같기도 하고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기다립니다. 그건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요. 오현종이 이런 이야기 처음 쓴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자신의 분신을 쓰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소설가라고 해서 그게 소설가 자신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은 소설가 이야긴가 보다 하겠지요. 그런 소설이 여기에는 세편 나옵니다. <부산에서>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호적을 읽다>예요. 한편 더 <약의 역사>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기 나오는 ‘나’는 영문학과지만. 영문학과라 해도 소설은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도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군요. 그래도 큰 상을 받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 강사 같은 일은 하지 않고 소설만 써도 괜찮겠습니다. <부산에서>는 소설가면서 시간 강사로 지내는 사람 이야기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안 좋게 보이지 않아요.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러가지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낫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는 신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는 아니고, 예심에 붙은 사람 이름을 보고 ‘나’는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름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가 좋아했는데 ‘나’가 소설가가 됐습니다. 이 소설은 지금보다 오래전 일을 떠올립니다. 예전 남자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다시 생각하는 건지도. <호적을 읽다>는 호적과 반대인 소설이 생각나게 했어요. 호적에는 그 사람 이야기는 없고, 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결혼하고 자식은 얼마나 있고 언제 죽었나 하는 게 몇줄로만 적혀 있지요. 소설가인 ‘나’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고 호적등본을 떼고 거기에 쓰인 것을 봅니다. ‘나’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고모를 생각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의 삶이군요.

 

 앞에서 이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이 다른 소설과 다르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도 좀 다릅니다. SF 같아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아버지를 죽이려고 아직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때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야기 떠오르는 거 있지요, <터미네이터>. 다행이라 할까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도 다른 세상이 생겼어요. 그건 평행우주예요.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데. 아니 여기서도 바뀌는 건 아니고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거군요. 평행우주는 어떤 결정을 하면 하나 생겨나는 거기도 하죠. 소설에는 나아지는 세상이 나타나도 우리 삶은 한번이고 지금 여기가 다예요. 안 좋은 쪽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겠지요. 그런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할 테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누면 서로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어느 사이든 그렇겠군요. <난장이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나게 했는데 그 소설이 조금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나’는 경비원 김씨가 죽은 일에 아주 잘못이 없을까요. ‘나’가 한 말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될까요.

 

 이 책에 담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조금 평범하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주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평범한 사람 이야기도 소설로 쓰면 다르게 보일지도. <약의 역사>에서 ‘나’와 섭은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나’가 아플 때면 섭이 약을 만들어주곤 했어요. 섭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나’는 기분이 안 좋겠습니다. 그 일로 아픈 마음은 어떤 약으로도 낫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

 

 긴 삶에서 몇만 가지 느낌을 겪어낸다 해도, 끝내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해도, 훗날 내가 죽은 뒤 남는 기록은 단 몇 줄일 뿐이다고 호적은 알려주었다. 만남과 헤어짐, 두려움과 외로움은 공식 문서로 기록되지 않는다. 문득 증조모의 생애처럼 내 삶도 건조하고 짧은 기록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삶도, 아주 멀리 있는 그의 삶도 결국에는 몇 줄로 남은 채 바스러질 시간이란 사실 또한. 할머니가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 속 이름들 역시 언젠가는 제적이란 두 글자와 함께 모두 검은 잉크 속으로 스며들어버릴 것이었다.  (<호적을 읽다>에서,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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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책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책읽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소설을 즐겨 읽고 가끔 시를 보았다. 누군가 나한테 지금까지 만난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다. 하루쯤 생각하면 재미있게 본 걸 쓸 수 있을지도. 아니 하루는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은 한번 보고 좋으면 여러 번 봤을지도. 내가 책읽기를 즐겁게 여기기는 해도 여러 번 본 책은 없다. 많은 사람이 《어린왕자》(생텍쥐페리)를 여러 번 보고,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고도 하던데, 난 여러 번 보고 싶은 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면 괜찮을까.

 

 오래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책을 읽기만 했다. 인터넷을 하면서 책을 보고 감상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줄거리도 짧게 썼는데 자꾸 쓰다보니 길게 쓰게 됐다. 지금은 좀 길게 쓰는 건 어쩌다 한번이고 비슷한 길이로 쓴다. 하지만 예전보다 글이 늘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읽기만 해도 괜찮겠지만, 느낌을 쓰면 읽은 책을 좀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좀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쓰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언제부턴가 조금 의문이 생겼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괜찮을까 하는.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별로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면 그때는 마음이 괜찮은데 시간이 흐르면 그걸 잊고 만다. 다시 생각하니 본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산 사람이기에. 득도한 얼마 안 되는 사람은 사람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겠지만, 보통 사람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둠과 싸워야 할 거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그 싸움에 지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읽기 글쓰기가 사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아도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주겠지. 누군가한테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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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쓰기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잠깐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편지를 한번도 써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처음에는 누구한테 편지를 쓸지 생각합니다. 떠올랐습니까.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자신이 쓰기에 좋은 펜이나 연필로 거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쓰세요. 편지지를 준비할 때 봉투도 준비해두면 좋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혹시 틀린 글자는 없는지 한번 죽 읽어보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을 수 있게 접으세요. 봉투 속에 편지를 넣은 다음에는 편지봉투가 열리지 않게 풀칠해서 잘 붙이세요. 저는 편지쓰기 전에 하는 건데, 그건 봉투에 우표 붙이고 주소 쓰기예요. 우표는 봉투 오른쪽 위에 붙이고, 왼쪽 위에 보내는 사람 오른쪽 밑에 받는 사람 주소 이름을 쓰세요(우편번호도 빼먹지 마세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반대로 써서 자신이 편지를 받는 사람도 있던데, 잘못 쓰지 않게 조심하세요. 주소 쓰기까지 다 하면 이제 편지를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세요. 편지는 사나흘 길게는 닷새뒤쯤 상대한테 갈 거예요.

 

 어때요, 그렇게 어렵지 않지요. 편지지에 하고 싶은 말 적을 때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때 편지 받을 사람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올 거예요. 편지 쓸 때는 자신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하면 상대가 좋아할까, 이런 생각. 편지라고 늘 좋은 말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못했던 말을 천천히 생각하고 적는 사람도 있겠지요. 어쩐지 그건 마지막 편지일 것 같습니다. 헤어질 때는 편지보다 만나서 말로 할 때가 더 많겠군요. 그때는 편지 같은 거 남겨두고 싶지 않겠습니다. 잠깐 쓸데없는 말을.

 

 먼 곳에 살아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한테도 편지쓰면 괜찮겠지요. 가까이 있다 해도 바로 건네지 않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색다를 겁니다.

 

 자, 지금 써 보세요.

 

 

 

희선

 

 

 

 

 

 

 

 

 

 

이 많은 우체통에서 진짜는 어느 것일까, 답은 왼쪽 맨 끝이다

(사진을 바로 앞에서 찍고 싶었지만 거기에 택배 배달차가 서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다른 우체통에 편지 넣으면 가지 않겠지, 편지 넣는 곳 막아뒀을 것 같다

예전에 우체통(우편함)에 있는 새를 비둘기라고 했는데 제비란다

제비가 흥부한테 박씨를 물어다 준 걸 생각하고 반가운 소식을 나타내려 했나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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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쓸 때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기도 하다. 난 혼자여서 아이한테 편지 써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못할 거다. 내가 편지를 쓰는 사람은 친구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마음속으로는 친구라 생각한다. 난 사람을 정말 못 사귄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물어보는 것에는 대답하기도 하지만. 글이라는 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때는 그때대로 혼자 지냈을까.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에 자기 아이한테 편지를 쓴 엄마가 나왔다. 아이한테 편지를 쓰고 그게 책으로 나와서였다. 그 작가 이름은 김정은이고 책은 《엄마의 글쓰기》다. 큰딸이 초등학교 6학년 열세살이었는데 말을 잘했다. 엄마 김정은은 일하느라 아이들과 따로 살다 몸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살게 됐는데, 아이들이 엄마를 서먹서먹하게 여겼다. 마침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서 김정은은 아이들과 함께 가서 아이들이 골라오는 책을 읽어주었다. 그걸 네다섯해쯤 했다고 한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요즘은 사춘기가 빨라졌겠지. 어느 날 첫째가 엉뚱한 말을 해서 김정은은 자신이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뒤로도 김정은은 아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써주는 엄마 좋을까. 난 좋을 것 같다. 처음에 그런 거 받으면 어색하겠지만. 말로 못하는 걸 글로 쓰면 차분하게 쓸 거다. 말은 한번 하고 나면 주워담기 힘들다. 말도 천천히 생각하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가 그렇던가, 이건 좋은 뜻이 아니다. 난 말을 잘하지 않아서 못하기도 하지만 하기 싫기도 하다. 글로 쓰는 말도 힘들고 말하는 건 더 힘들다.

 

 날마다 얼굴 보는 사람한테 편지쓰기는 좀 어려울까. 그래도 아이한테 쓰는 건 좀 다를 것 같다. 휴대전화기로 쉽게 보내는 문자메시지가 아닌 종이에 손으로 편지를 쓰면 쓰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좋을 거다. 부모가 쓴 편지를 받는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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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22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받을 땐 눈물나요. 맞춤법 틀린 것, 필체 그런 게 다 감동적이죠. 상황까지 엮이면 더.

희선 2017-09-23 01:07   좋아요 0 | URL
AgalmA 님은 어머님한테서 편지를 받은 적 있군요 처음에는 편지가 온 것만으로도 감동스럽고 눈물 나겠습니다 어쩐지 그럴 것 같네요 별 말 아니어도 눈물 나겠죠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