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철덩어리가 움직인단 말야, 그것도 빠르게, 하고 참 놀라워했겠지요. 오래전에 나온 기차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을 테지요. 그래도 그것을 빠르다고 느꼈을 겁니다. 걷는 것보다는 편하고 빨랐겠지요. 지금은 아주 빠른 기차가 있군요. 한국에도 KTX가 생기고 시간 많이 지났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친척집에 갈 때 기차를 탔는데, 오랫동안 기차를 못 타 봤습니다. 제가 타 본 기차는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예요. 좀 빠르다는 새마을호도 못 타 보다니……. 비둘기호는 먼 곳에 갈 때 타지 않고 제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갈 때만 탔습니다.

 

 어딘가에 가는 게 즐겁겠지만 그저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설레지 않나요. 예전에 저는 그랬습니다. 친척집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기차를 탈 때는 좋았습니다. 떠날 시간이 되어 기차가 움직이면 늘 창 밖을 바라봤어요. 기차 안에서는 도시보다 시골 풍경이 더 잘 보여요. 아파트가 아주 안 보이는 건 아니지만. 기차 안에서 사 먹는 오징어도 맛있지요. 요즘은 그런 거 없을까요. 시간이 흘러서 바뀌었을 것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여기저기 날씨가 다르다는 말을 들으면 한국이 좁아 보이지만 넓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하는데, 기차를 생각하면 다시 한국이 별로 넓지 않구나 합니다. 오래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밤기차를 타면 날이 샜을 텐데, 이제는 그런 일 없겠지요.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에 간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걸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는 그게 없어져서 아쉬워 하겠지만, 지금은 지금 느낄 수 있는 맛이 있겠지요. 전 잘 모르지만 그런 게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끔 기차를 타면 설레도 늘 기차를 타면 아무 느낌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새로운 일이 일상이 되면 지루해지기도 하지요. 그것을 지루하게 여기기보다 즐기면 어떨까 싶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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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왔다.

 

 여자아이는 몇달 전부터 가게 앞에 와서는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고 친구와 함께 왔다.

 

 “선희야. 저 오렌지색 기타 어때, 멋있지.”

 

 “응, 뭐.”

 

 한쪽 아이는 어쩐지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희야, 잘 좀 봐.”

 

 “영주야, 너 저 기타 갖고 싶구나.”

 

 영주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면서 “응.” 하고 대답했다. 기타 좀 볼 줄 아네.

 

 “선희야, 내가 저 기타 이름도 지었어.”

 

 “뭔데?”

 

 “렌지야.”

 

 “그게 뭐야. 보이는대로잖아.”

 

 “그래도 어울리지 않아.”

 

 “…….”

 

 내 이름이 렌지라고. 괜찮네, 나쁘지 않다. 얼마전까지는 혼자 와서 그런 건 몰랐다. 영주는 늘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보고 눈을 빛내고는 했다. 영주가 나를 그렇게 봐서 조금 부끄러웠다. 영주가 나를 살까.

 

 “선희야, 얼마 뒤에 내가 렌지를 사면 우리 밴드 하자.”

 

 “뭐. 난 별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없어.”

 

 “키보드 적당히 치면서 노래하면 되잖아. 난 니 노래 좋아.”

 

 “학교에서 그런 거 하게 둘까?”

 

 “동아리는 안 되겠지만 취미로 하는 건데 그런 것도 못하게 하겠어.”

 

 “그러네.”

 

 둘은 잠시 이야기를 하고 가게 앞을 떠났다. 다음에는 언제 올까. 내가 그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 텐데. 내가 그렇게 쉽게 팔릴 일은 없겠다.

 

 여기는 악기 가게다. 주인 빛나는 악기를 사러오는 사람과 그 악기가 잘 맞는지 알아본다. 어쩌면 빛나는 우리 악기 마음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여기에서 자신이 악기를 고르는지 아는데 실제는 악기가 사람을 골랐다. 악기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보면 ‘나 저 사람한테 갈래.’ 하는 뜻으로 희미하게 빛을 내고 가기 싫으면 빛을 내지 않았다.

 

 예전에 몇 사람이 나를 사려 했을 때 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영주를 몰랐지만, 영주가 나를 본 뒤부터는 다른 사람한테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고 빛나는 손님한테 다른 기타를 보여주었다. 다행하게도 그 기타와 손님은 서로 마음에 들어했다.

 

 시간이 흘러도 영주는 좀처럼 나를 사지 않고 보기만 하고 갔다. 시간이 갈수록 영주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뭔가 잘 안 되는 걸까. 학생이어서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몇달이 흐르고 영주는 웃는 얼굴로 찾아왔다. 영주는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여기 앞에 있는 오렌지 기타 사려고 하는데요.”

 

 “아, 어서와요. 드디어 사러 왔네요.”

 

 “네?”

 

 “학생 예전부터 봤어요.”

 

 빛나가 영주를 본 적 있는가 보다. 봤으면 좀더 빨리 불러서 나를 보내주지. 영주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다니. 빛나는 영주한테 내 값을 많이 깎아주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깎아주시다니.”

 

 “기타 즐겁게 치세요.”

 

 “네, 잘 계세요.”

 

 영주가 나를 기타 넣는 것에 넣고 어깨에 메고 나가려 하자 빛나가 다가와서 작은 틈에 대고, “잘됐구나. 잘 가.” 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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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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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이 시집이 나오고 여러 해가 흘렀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 내가 그 시간을 다 느끼지 못한 걸까. 누군가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쓸지도 모르겠다. 난 뭉텅뭉텅 쓰는 것 같다. 계획이란 걸 잘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게 아니고 그냥 뭔가 해야지 하고 그걸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면 말기도 한다. 어쩐지 이렇게 살면 돈 많이 버는 것과는 멀어질 것 같다.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돈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 썼다. 성공은 돈 많이 버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다. 살아가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남이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바쁘게 살아도 그게 누군가한테는 사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천천히 느긋하게 사는 사람은 그게 자신한테 맞는 거겠지. 살아가는 걸 겨우 두 가지로 나눌 수 없겠다. 더 말해야 하지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나도 모르겠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11쪽

 

 

 

 난 알고 있었던가. 한강이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썼다는 걸. 아니 몰랐다. 이런 말은 들은 적 있다. 시를 쓰고 싶었지만 소설을 쓰게 됐다는. 이 말은 정말 한강이 했을까. 어쩌면 김연수가 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한강도 김연수도 시를 먼저 썼다는 걸 안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에 우연히 한강을 알고 소설을 여러 편 봤지만 그다지 잘 읽지 못했다. 지금 본다고 다를까 싶기도 하다.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 다시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소설가는 자기 일이나 자기 둘레에서 글감을 얻어 글을 쓸 것 같은데 한강은 어떨까. 꼭 가까운 사람 일만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민하게 잡아내는 걸지도. 나도 가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 걸 더 붙들고 있는 게 좋을까. 그러면 무척 힘들겠다. 작가는 어떤 일을 시나 소설로 쓰기도 한다. 그런 것은 써야 하지만, 써야겠다 마음먹기 힘들 것 같다. 잘못 쓰면 욕 먹겠지.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에서, 77쪽)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복기의 노래>, 80쪽

 

 

 

 괜찮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한다면 마음이 조금 놓일까. 일어나는 일에 따라 다르겠지. 슬픈 일은 ‘괜찮아’ 하면 안 되겠다. 그런 말할 사람 없겠구나. 슬픔에 빠진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하기보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면 나을지도.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그리 하라 하고,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하라고 하는 거지. 그러면 곁에 없어도 곁에 있는 것 같겠다. <회복기의 노래>를 가만히 보니 무엇이든 지나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뭔가 지나가야 나아지겠지. 아픔, 슬픔. 이런 것만 지나가는 건 아니다. 기쁜 일도 지나간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쉬울까. 언젠가 다시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좀 낫겠다.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질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저녁의 소묘5>, 137쪽

 

 

 

 처음에는 시를 썼지만, 얼마 뒤 소설을 쓰고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한강은 소설을 쓰고 스무해 만에 이 시집을 묶어냈다. 소설과 상관있는 시도 있을 텐데 내가 소설을 별로 못 봐서 어떤 시가 어떤 소설과 상관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시든 소설이든 그것대로 만나면 된다. <저녁의 소묘5>는 맨 마지막에 실린 시다. 분위기는 밝지 않지만,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은 나무라고 여긴 검은 나무는 살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신비로울 것 같다. 사람이, 자연이. 자연은 살려고 하는 힘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 사람한테도 그런 힘이 있을 거다. ‘살려는 힘’을 잃지 않기를.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다. 이것도 잊지 않으면 좋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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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흐리고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좋다. 흐리고 비가 와도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게 갑자기 생각났다. 비 오는 날 해는 구름에 가려 잠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런 걸 생각하니 재미있기도 하다. 왜 비 올 때는 이런 말 하기도 하잖는가. 해가 뜨지 않아 아쉽다, 아니 해가 보이지 않아 우울해, 그러던가. 어쨌든 흐린 날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생각은 잘못된 거구나.

 

 흐린 날이어도 좋을 때 있다. 그건 눈 오는 날이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써도 걷다보면 신발이나 옷이 젖지만, 눈 오는 날에는 괜찮다. 눈이 쌓였다 녹을 때는 신발이 젖기도 하지만, 그때는 눈이 덜 녹은 곳에 발을 디디면 좀 낫다. 난 눈 맞는 거나 눈 쌓인 길 걷는 거 좋아한다. 눈 밟는 소리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눈이 와서 조금 슬펐던 적 한번 있다. 큰 일은 아니고, 하늘에서 별똥별을 볼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새벽에 봐야지 했는데, 낮부터 흐리더니 새벽에는 눈이 내렸다. 지금도 그날 눈이 와서 아쉽게 생각하지만, 눈이 오지 않았다 해도 별똥별 못 봤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난 별똥별 한번도 못 봤는데, 그건 평소에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둘레가 어둡고 공기가 좋은 곳에 가야 하겠지. 한국에 그런 곳 있다고 하던데. 별똥별 못 봐도 가끔 별이라도 볼까 보다.

 

 아무리 내가 맑은 날을 좋아해도 늘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비가 내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비가 좀 오래 오지 않아 뭔가 푸석푸석한 느낌이 들면. 그건 다른 사람도 비슷할 것 같구나. 비가 내려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신기하게도 진짜 내리기도 한다. 늘 그런 건 아니다. 오랜만에 비가 온 건 내가 생각한 것과 상관없이 비가 올 때가 돼서였겠지.

 

 날씨를 삶에 비유하기도 한다. 날씨가 맑은 날과 비 오고 흐린 날이 있는 것처럼 삶도 좋은 때가 있고 안 좋은 때가 있다고. 늘 좋은 일만 있어도 그 기쁨이 덜할지도 모를 일이다. 안 좋은 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다.

 

 살면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찾아와도 마음만은 언제나 맑기를 바란다. 날씨는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자기 마음은 자신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척 아프고 슬프면 잠깐 거기에 빠져도 괜찮다. 오래 빠져있지 않는다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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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가장 먼저 지구를 생각해 볼까. 사람과 동, 식물 같은 목숨 있는 게 사는 곳이다. 지구에 목숨을 가진 게 살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 자세한 건 잘 모른다. 오래전에 지구에는 아주 커다란 공룡이 살았다. 사람이 나타나기 전 지구다. 가끔 공룡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그곳에는 식물이 참 많다. 어디든 숲이 우거졌을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육식공룡뿐 아니라 초식공룡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공룡이 사라진 건 정말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쳐설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언젠가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가 더 걱정이다. 지진, 태풍…….

 

 인류는 지금 바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만약 떠난다면 사람만 갈까. 책이나 영화에 나온 것처럼 다른 생물도 가져가야 할 듯하다. 그러면 우주선이 아주 커야겠다. 어쩐지 지금은 지구 자체가 우주선 같기도 하다. 사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고 늘 같은 곳을 돌지만. 지구를 좀더 생각하고 지구환경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 작은 일 하나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일회용품 덜 쓰기.

 

 

 

 

 

 

 

 

 신비로운 달이지만 이걸 과학으로만 보면 재미없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구나. 난 둥근달보다 아직 다 차지 않은 초생달이 좋다. 달력을 잘 보고 달이 차려는 건지 기우는 건지 잘 알아봐야겠구나. 기우는 건 기우는 것대로 괜찮다. 본래 우주가 그렇기는 하다.

 

 달에 토끼가 있다고 생각한 건 동양뿐일까. 서양은 달에 뭐가 있다고 상상했을까. 달의 여신, 이 말을 하니 세일러문이 생각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한다. 달의 뒷면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달의 뒷면을 상상하고 소설을 쓰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다니. 달의 뒷면 한번 봤는데 그렇게 멋지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걸.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누군가 말하지 않는 일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낫다. 아니 알아야 할 것과 그대로 둬야 할 것을 알아야겠구나. 어렵다.

 

 

 

 

 

 

 

 

 해는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빛이 지구에 닿는다. 아니 지금 거리가 가장 적당하다. 해와 지구 사이가 지금보다 더 가깝거나 더 멀었다면 지구에 목숨 있는 게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다른 별에 나타났을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난 몰랐겠구나. 아예 내가 없었을 테니 이런 생각 자체가 없었겠다. 어쩌면 해처럼 불 타는 별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은하를 벗어나면 해와 같은 게 또 있어서 어딘가에는 생물이 살지도. 있다면 그쪽은 그쪽대로 살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딱 맞는 거리를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도 딱 맞는 거리를 지키면 훨씬 좋겠다 싶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언젠나 거리 조절을 하려고 애써야겠지.

 

 

 

 ☆

 

 하늘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있는데 겨우 지구 달 해만 말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 지구는 목숨 있는 게 사는 곳이고 달과 해는 지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싶다.

 

 

 

 지구 : 달아, 해야 늘 거기 있어서 고마워.

 

 달 : 지구야, 그건 니가 거기 있어서야.

 

 해 : 난 지구 너랑 먼 곳에 있지만 언제나 널 생각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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