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때면 하루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쉽다. 하루를 잘 보내지 못해설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저 해가 질 무렵이 쓸쓸한 건지도. 어린왕자가 생각난다. 해 지는 모습을 여러 번이나 바라봤다는.

 

 얼마전 밤에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 해야 하는 게 있었는데 그걸 쉬고 라디오를 귀 기울여 들었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를 쓴 작가 송정림이 나와서였다. 난 그 책 한권밖에 만나지 못했다. 벌써 다섯번째가 나왔나 보다. 송정림은 밤 열신가 열한시에 자고 아침 다섯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사람은 어두울 때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는 게 가장 좋다고 하지만, 지금은 원시시대가 아니니 그것만이 옳은 건 아니겠지. 전기가 생기고 사람 삶은 바뀌었다(아니 불을 쓰고부털까). 송정림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건 글쓰기다. 날마다 쓸 게 생각날까. 송정림만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건 아니겠다. 작가는 다 날마다 어느 정도는 쓸 거다. 난 겨우 백일 정해 놓고 하면서 힘들다 여기는데. 날마다 쓸 게 바로 떠오르지도 않고. 며칠 전부터는 ‘오늘 하루 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하고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예전에 송정림이 작가가 된 이야기를 들으니 난 그렇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정림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쓴 건 언니 때문이었다. 언니가 한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 여겼다. 라디오 방송 작가였던 언니가 다른 곳에 가게 됐을 때 송정림은 라디오 드라마 한달치를 써서 언니한테 그 방송 PD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송정림은 학생 가르치는 일과 라디오 방송 작가를 여덟해나 했다.

 

 두 가지 일을 한 것보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된 게 대단하게 보였다. 무엇이든 애써야 할 수 있지 설렁설렁 하면 안 되겠지. 송정림은 자신이 할 수 있다 믿었다. 그런 마음도 중요하다. 난 지금 하는 걸 할 수 있다 믿고 해야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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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글자 공부를 했다. 학교에 다니기 전에 유치원에 다닌 사람도 많겠다. 지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둘 다 같은 말일까)에 다니겠구나. 난 유치원에는 다니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 전에 글자 공부 한 것 같은데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받아쓰기 잘 못한 걸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거의 그렇겠지. 1학년 때부터 맞춤법 잘 맞춰서 쓰는 아이 아주 없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부모가 학교에 데려다줄까. 난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만 엄마하고 가고 그 뒤부터는 혼자 다녔다. 지금은 무서운 세상이 돼서 아이 혼자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거겠지. 오래전에 본 드라마에서는 아이 혼자 집에 있는 것도 부모가 무척 걱정했다. 난 혼자 지냈는데. 뭐 하고 지냈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 혼자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나 보다.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집에 일이 생기고 5학년 때는 학교를 옮겼다. 그때 난 글씨 연습이라고 할까 그런 걸 했다. 어렸을 때 난 좀 바보였다. 이런 말 하면 좀 웃기지만 이것저것 분별하지 못하는 바보라기보다 누가 하는 말은 다 믿었다. 지금이라고 아주 달라진 건 아니지만, 다 믿지 않는다. 아니 어떤 말을 들었을 때는 믿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그건 그냥 한 말이구나’ 한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글씨를 예쁘게 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글씨 쓸 때마다 책속 글씨체와 비슷하게 썼다. 그 글씨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지금은 쓰기 어렵다. 쓰면 쓰겠지만 어색하다.

 

 학교에서 공책에 쓰라는 건 그 글씨를 썼다. 편지는 다른 글씨체를 쓰고 싶어서 바꾸기도 했는데 그것은 오래 쓰지 못했다. 그 글씨를 조금 기울려 쓰게 돼서. 기울여 쓴 지 오래돼서 다시 똑바로 쓰기 어렵다. 연습으로 쓸 때는 흘려쓴다. 난 흘려쓰는 글씨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내가 연습으로 쓴 걸 보고 공책이나 편지지에 쓰면 그 글씨가 안 된다. 그건 또 다른 글씨다. 내가 쓰는 글씨체는 서너 가지쯤 될까. 어떤 때는 내가 쓴 글씨가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왜 이렇게 못 썼지 한다. 글씨는 마음을 나타낸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마음이 조용하면 괜찮고 마음이 시끄러우면 잘 못 쓰는 건지도.

 

 편지 쓸 때는 기분이 아무렇지 않거나 좋을 때 쓰려고 하지만, 기분 안 좋을 때 쓴 적도 있을 거다. 글씨는 마음이 조용할 때 쓰는 게 낫다. 붓글씨는 쓰다보면 마음이 가라앉을지도. 글씨로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겠다. 글자도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글은 알아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나라 글자는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가.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림을 그려도 괜찮고 글씨를 써도 괜찮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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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건 어둠이 배경이기 때문이고

무대 위 사람이 빛나는 건 뒤에서 애쓰는 사람이 있어서다

누군가의 배경도 멋지지 않을까

빛을 내는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니 밝게 빛나는 별이 있는가 하면

약한 빛을 내는 별도 있다

사람도 비슷하다

형편에 따라

다른 사람이 빛나도록 받혀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 도움으로 자신이 빛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된다면 멋지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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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올리버 색스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이 말 며칠 전에도 했다. 올리버 색스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또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리버 색스는 이 자서전을 다 쓰고 2005년에 진단 받고 치료한 안구 흑생종이 간으로 전이된 걸 알았다. 처음에도 자신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생각했겠지만, 두번째로 들었을 때는 더 많이 생각했을 것 같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한테 남은 시간을 잘 보내려 했다. 암 치료 때문에 눈 한쪽이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한쪽만 보이면 다르게 보일까. 눈 한쪽을 가리고 보면 별로 다르지 않다. 눈을 가리는 것과 아주 보이지 않는 건 다를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는다고 해도 아주 보이지 않는 건 아니어서 그렇구나. 사람이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을 보는 건 아닌가 싶다. 눈꺼풀은 속에 또 있을까. 그걸 감아야 어둠속이라 하는데. 그건 만화영화에 나온 거다. 보통 눈꺼풀 말고 다른 눈꺼풀은 없을 거다.

 

 어린시절 이야기는 거의 없고, 제2차 세계전쟁 때 기숙학교에서 지낸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전쟁 때문에 부모가 형제들을 기숙학교에 보낸 걸까. 그때 별로 좋지 않았던가 보다. 올리버 색스는 기숙학교를 답답하게 여겼지만 어떻게든 지냈다. 셋째형 마이클은 기숙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던가 보다. 그 일 때문인지 마이클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올리버 색스는 형이 셋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의사였다. 마이클만 빼고 두 형 마커스와 데이비드도 의사였다. 올리버 색스 자신도 의사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공부를 했다. 1951년 옥스퍼드대학 칼리지에 들어갔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생물학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신경생리학을 고른다. 이건 과를 정하는 것에서 그렇게 됐다고 해야 할까. 의대에 다니면 어떤 것이든 다 배우고, 실습을 한 다음에 자신이 무엇을 전문으로 할지 정하겠지. 올리버 색스는 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한다. 그러면서도 연구를 하려고 했는데 그건 잘 안 됐다. 신경정신과와 정신과는 다를까. 우울증 같은 게 걸리면 가는 곳은 정신과일 것 같기도 하다. 사고나 약물 때문에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신경정신과에 갈 듯하다.

 

 영국 런던에서 나고 자랐지만 올리버 색스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영국에는 색스 의사가 많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그곳을 떠나야 했던 다른 까닭도 있었겠지. 올리버 색스가 동성애자라는 것도 영국을 떠나게 하는 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미국이라고 그때 동성애자한테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게 들켜서 화학거세를 당하고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리버 색스가 영국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선지 여기에선 그때 일을 편하게 말한다. 그때는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올리버 색스는 스킨스쿠버, 수영, 모터사이클을 좋아했다. 의사여도 여러 가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살아가는 게 괜찮겠지. 글쓰기도 있다. 미국에서 일해도 글은 영국 집에 가서 썼다. 미국과 영국 그렇게 멀지 않던가. 미국에서도 글을 썼겠지만 영국에서 더 편하게 쓰지 않았나 싶다. 올리버 색스는 과학뿐 아니라 문학도 좋아했다. 시를 많이 좋아한 것 같다. 시 쓰는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알고 지냈다. 올리버 색스 자신이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사람을 사귄 걸 보면 아주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책을 쓸 때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그렇게 자기 삶을 정리할 수도 있겠지. 자신이 쓴 책이 있어야 그럴 수 있지만. 처음에 쓴 책 《깨어남》은 나중에 영화로 만들기도 한다. 그때 올리버 색스는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고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다. 로빈 윌리엄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올리버 색스가 만난 사람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도 편지를 나누고 친하게 지냈는데, 스티븐 제이 굴드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에 아버지는 아흔넷까지 진료를 했다. 나이를 먹고도 할 일이 있으면 좀 나을 텐데. 일하는 사람 많지 않겠지. 하고 싶어도 못할 거다. 여기에 사진도 조금 실렸는데 그것을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사진이어서 그런 건지. 사진 속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건 아닌데.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생각나는 게 많은 사람은 좋겠다. 난 그런 게 없다. 이런 생각하니 좀 슬프구나. 난 지금까지 뭐 하고 산 건지.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아쉽게도 난 사람 얼굴 잘 기억하고 이름도 잘 기억하고 돈 계산도 잘한다. 이건 돈이 없으면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안다는 거다. 난 아무것도 아니고 소심한 사람일 뿐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보면서 나를 잠깐 생각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구나.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다리를 다쳤을 때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썼다.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기는 1000권이나 된다니. 올리버 색스는 글을 쓰고 마음을 정리했다. 난 책을 본 다음 그것을 쓰면서 정리하는구나. 이것도 괜찮겠지. 올리버 색스는 편지도 자주 썼다. 여행할 때는 부모님한테도 편지를 썼다. 지금은 편지 쓰는 사람 별로 없는데. 세상이 바뀌는 걸 본 느낌은 어땠을까. 올리버 색스가 어렸을 때지만 제2차 세계전쟁도 겪고 과학, 의학이 발달하고 많은 게 바뀌었다. 뒤돌아보면 많이 바뀐 걸 알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겠다. 나도 그렇다.

 

 책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책보다 인터넷에 글이 남을지도. 작가가 되지 않는다 해도 글을 쓰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이 말 여러 번 하는구나). 글쓰기는 누구보다 자신한테 좋은 거다. 올리버 색스도 그랬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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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좋은 말 못한다. 좋은 말이라기보다 남이 듣기 좋은 말이라 해야겠다. 말을 해야 안다고 하지만 말하기 힘든 것도 있지 않을까.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게 아닌데 말이다. 누군가는 말만 하고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한다. 이런 말 어쩐지 남의 뒷말 같구나.

 

 친하게 지내는 사람 앞에서는 평범하게 말하고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안 좋은 말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아주 나쁜 말은 아니다 해도 옆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별로다. 그 사람이 없다고 마음대로 말하다니. 그렇게 말하는 건 그 사람을 잘 아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말하고, 자신만 아는 사람이 가진 안 좋은 점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문제 있는 사람 이야기도 아예 하지 않는 게 나을까.

 

 말 많은 사람한테는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떠다닐 거다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될까. 난 어떤 일을 말로만 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좋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이것만 옳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을 할 때만은 그런 마음으로 한 것일 테니, 그 말을 거짓말이다 할 수 없겠다. 누군가 자신한테 하는 말을 듣고 기대하기보다 그런가 보다 하는 게 낫겠다. 어쩐지 이제 난 기대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기대하면 아쉬움도 커서.

 

 말뿐 아니라 글도 잘 생각하고 써야 한다. 이런 나 좀 답답할까. 말하거나 글을 쓰고 잘못했다 하기보다 어떤 말이 좋을까 생각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말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남한테 어떻게 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도 나 같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건 바랄 수 없는 일일지도. 어쨌든 난 좋은 말이나 글을 쓰고 거기에 맞게 살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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