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ドキャプタ-さくら クリアカ-ド編(3) (KCデラックス なかよし) (コミック) カ-ドキャプタ-さくら クリアカ-ド編 (コミック) 6
CLAMP / 講談社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카드캡터 사쿠라 클리어카드 편 3

CLAMP

 

 

 

 

 

 

 일본에서 나오는 만화잡지에는 주간과 월간이 있다. 주간에 나오는 데 실리는 만화는 주마다 그리고 월간에 실리는 건 한달에 한번 그리면 되겠지. 주마다 나오는 잡지에 만화가 실리면 거의 쉬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달마다 나오는 잡지에 만화가 실린다고 시간이 많은 건 아니겠다. 만화 그리는 건 쉽지 않은 듯하다. 다른 것도 비슷하겠지만 만화는 원고를 그리기 전에 네임을 그린다. 어떤 이야기로 그릴지 먼저 대충 그리는 거다. 편집자가 그걸 보고 좋다고 하면 작가는 원고를 그린다. 원고를 그린 다음에도 편집자가 본다. 어느 작가나 그런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글이든 만화든 편집자는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편집자는 자신이 만든 책이 나오면 자랑스럽겠지.

 

 이 책은 6권까지 나왔다. 자주 안 나와서 보기로 한 거기도 하다. 자주라고 해도 석달에서 넉달이다. 석달 넉달이 빨리 안 갈 것 같지만 빨리 간다. 몇달 기다리기 싫으면 잡지를 봐도 괜찮겠다. 그러면 여러 만화를 볼 수 있겠구나. 난 그냥 책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한다. 일본에서 아직도 만화잡지가 나오는 건 그걸 보는 사람이 많아서겠지. 일본 만화는 세계 사람이 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화 하나로 끝나지 않기도 한다. 이건 예전에도 한 말이구나. 이건 소설로도 나왔다. 소설을 만화로 그릴 때도 있고 만화를 소설로 쓸 때도 있다. 그렇게 하는 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거다. 무엇보다 일본은 만화가 아주 많다는 느낌이 든다. 소설도 적지 않겠지만. 내가 보는 만화는 많은 것 가운데서 얼마 안 되겠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사쿠라와 토모요 반에 전학온 아키호는 다른 친구와도 잘 지낸다. 어쩐지 아이들이 다 착하다. 사쿠라와 토모요는 아키호와 아이들과 꽃구경도 갔다. 토모요가 노래할 때 아키호가 작게 따라 불러서 아이들은 아예 둘이 노래하면 어떠냐고 한다. 아키호는 토모요와 같은 합창부에 들어가기로 한다. 그 일을 떠올리고 사쿠라는 녹음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사쿠라는 오빠와 유키토와 함께 저녁 먹을 때 또 꿈속에 끌려간다. 이번에는 얼굴과 몸을 다 가린 사람 뒤에 시계가 보였다. 그건 무엇을 뜻하는지. 사쿠라가 샤오랑하고 토모요 집에 갔을 때 카드를 두장이나 만든다. 하나는 날 수 있는 플라이트고 다른 하나는 레코드였다. 사쿠라가 생각해서 레코드는 나타났을까. 다른 카드는 어떨지.

 

 

 

 

 

 

 일요일에 사쿠라와 토모요는 아키호 집에 갔다. 그곳은 예전에 에리얼이 살던 집으로 그전에는 크로우 리드가 살았다. 사쿠라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듯하다. 새로운 사람이 나온다. 아키호를 돕는 집사 유나 D 카이토다. 집사는 음식도 잘 만드는가 보다. 사쿠라는 아키호 집 서재에서도 카드 낌새를 느낀다. 그건 어디에나 타나나는구나. 아키호가 좋아하는 책 《시계 나라의 앨리스》에는 시계 그림이 있었다. 이건 사쿠라가 꿈쏙에서 본 시계와 비슷했다. 사쿠라는 그걸 보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사쿠라가 책을 펼쳐보니 알 수 없는 글자로 적혀 있었다. 아키호는 갖고 싶은 책이 있어서 일본에 왔다고 했다. 그 말 봤을 때는 《시계 나라의 앨리스》를 다 보는 건가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고 카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를 넣는 것은 책처럼 보인다. 사쿠라가 새로 만드는 카드와 아키호는 상관있다. 아직은 그것밖에 모른다.

 

 

          

 

 

 

 

 

 바로 한주가 지나고 다음 일요일이 왔다. 이날은 사쿠라가 샤오랑한테 어딘가에 가자고 한 날이다. 만화영화에서는 수족관에 갔는데, 본래는 식물원에 가는 거였다. 만화를 만화영화로 만들면 거의 같은데 조금 바꾸는 것도 있다. 사쿠라가 열심히 도시락을 쌌는데 카드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도 샤오랑은 달걀말이 먹고 맛있다고 했다. 이날 늦은 시간에 아키호가 사쿠라 집에 놀러 온 걸까. 그렇게 보이는데. 아키호는 사쿠라가 음식 만든 걸 보고 사쿠라한테 음식 만들기 알려달라고 한다. 카이토한테 해주고 싶다면서. 아키호 마음에는 카이토가 있구나. 사쿠라와 아키호가 즐겁게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는데 이상한 게 나타나서 아키호는 잠이 든다.

 

 이번에도 사쿠라는 카드를 여러 장 만났다. 카드가 다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쿠라 오빠 토야는 사쿠라를 보고 아직인가 했는데, 토야는 뭘 기다리는 걸까. 알 수 없는 게 많구나. 아키호가 가진 토끼 인형 모모는 그냥 인형이 아니다. 이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그런 건 인형처럼 보이는 케로 짱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몰랐다. 가진 힘이 달라설지도. 에리얼이 살던 집에 아키호가 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거다. 다음 권 빨리 만나야겠구나.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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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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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름은 몇해 전에 알았는데 책은 처음 만났다. 그동안 왜 만나지 못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마스다 미리는 만화뿐 아니라 산문(에세이)도 쓴다. 지금까지 그런 책도 나왔을 텐데, 책에 손이 아니고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우연히 내가 알고 괜찮다 여겼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해도 나도 좋아했을지도 모를 텐데, 그게 아니어서 쉽게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내 성격 조금 이상하구나. 아니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 이야기보다 자신이 알아보는 걸 더 좋아하는. 그렇다고 내가 무언가를 잘 알아보는 건 아니다. 남이 좋다고 해도 난 그게 왜 좋은지 모를 때 많다. 그리고 뭔가 좋아도 그게 왜 괜찮은지 잘 말하지 못한다. 말도 못하고 글로도 잘 쓰지 못한다. 그런 거 못하면 어떤가 싶다. 그래도 무언가를 뚜렷하게 말하거나 쓰는 사람 부럽다. 아니 난 나대로 모자라게 말해도 괜찮겠지. 나는 나다. 이 책에 이런 이야기 담긴 건 아닌데.

 

 마음이 안 좋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지만 그걸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마스다 미리는 아버지가 말기암이라는 걸 알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다. 부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자식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슬퍼하겠지. 그건 자식으로 부모한테 잘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런 마음이 클 것 같다. 자식은 부모한테 걱정시키지 않고 자기대로 살면 좋고 부모는 부모대로 살면 좀 낫지 않을까 싶다.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 못해준 걸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도 비슷하게 살 거다. 그러니 자기 삶을 잘 꾸려가는 게 좋겠다. 마스다 미리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마스다 미리 아버지도 나름대로 살았다. 이런 생각도 든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 삶을 다 알 수 없다는. 모른다고 해서 슬퍼할 건 없다. 나중에 아는 게 없다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그때그때 알려 하고 물어봐야겠구나. 알지만 나도 잘 하지 못하는구나.

 

 언젠가 아내가 죽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도 아내가 어딘가에 다니는 듯하다고. 돌아오지 못해도 어딘가를 다닌다고 생각하면 좀 나을지도. 죽은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기억에 살기도 하고. 죽은 사람과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은 더 그립겠지. 마스다 미리도 엄마나 동생과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거 함께 하지 않아서 미안하게 생각했다.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알아도 귀찮아서 모르는 척할 때도 있겠지. 모르면 어쩔 수 없지만 안다면 조금 들어줘도 괜찮을 듯하다. 우리도 언젠가는 영원히 떠난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좀 더 슬플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슬픔이 덜하겠지. 떠난 사람과 하지 못한 걸 생각하겠다. 어떻게 살든 아쉬움은 남을 거다. 덜 아쉬워하고 살면 좋을 텐데, 생각처럼 안 될 때가 더 많다.

 

 시간은 정말 잘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듯 사람도 간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함께 한 시간이 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살면서 안 좋은 일이 많았다 해도. 책이나 영화에서 늘 보던 사람이 죽어도 슬픈데. 그래도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빛난다. 죽지 않고 살아도 무척 재미없을 거다. 살았을 때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 그것 때문에 누군가 떠났을 때 더 슬플지라도. 어차피 누군가 떠나면 슬플 테니 좀 더 잘 하고 슬퍼하는 게 낫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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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할 때겠지

그리 좋아하는 게 아니어도

하다 보면 즐겁기도 해

그건 그때까지 몰랐던

즐거움을 알아서야

 

마음을 열고

잘 찾아보면

어떤 것에든 즐거움은 있을 거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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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이 하나 태어났어요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전에 연필로 글자 공부를 했는데

샤프펜슬이 생기고는 연필을 쓰지 않았어요

연필은 연필꽂이에 그대로 있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다른 아이가 연필을 보고는 쓰려 했어요

연필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힘을 냈어요

 

쓰면 쓰는대로 줄어드는 연필

이번 아이는 연필을 오래 썼어요

연필을 쓰다가 손에 쥘 수 없게 되자

아이는 연필을 볼펜 깍지에 끼어서 썼어요

 

제 할 일이 끝난다 해도

연필은 아이가 자신을 끝까지 써서 기뻤어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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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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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권 보는 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다니. 한주가 넘게 책을 보았다. 그건 하루에 한편이나 한편 반쯤 봐서 그런 거기는 하다. 처음에 천천히 봤는데도 집중이 잘 안 돼서 무슨 이야긴지 잘 알 수 없었다. 두번을 보려고 했는데 여섯편만 두번 봤다. 두번째 볼 때는 무슨 이야긴지 조금 알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는 알기 어려웠다. 단편소설은 왜 한번 봤을 때 알기 어려울까.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럴 때가 더 많다. 그것도 한국 단편소설은 말이다. 장편이라고 쉽지 않은 것도 있지만. 단편은 길지 않아서 여러 가지를 다 말할 수 없다. 아니 이야기에 따라 다른가. 단편이어도 한사람 삶을 다 담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아주 중요한 일만 써서 그런 거겠지. 사람 삶을 단편에 다 담기는 어려울 거다. 아니 내 삶은 그럴 수 있을지도, 별일이 없어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니 여기 담긴 <사연 없는 사람> 이야기가 떠오른다. 갑작스럽게 버스 사고가 나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쳤다. 신원이 분명한 사람은 여러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는데, 두 팔을 잘린 남자는 지문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었다. 남자 옷에는 명함이 한장 있었다. 경찰은 그 명함에 적힌 사람한테 전화를 한다. 하지만 P는 남자가 누군지 모른다. P는 나중에 남자 이야기를 지어낸다. 어쩌면 이야기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한테나 이야기가 있다. 그걸 남이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겠지.

 

 맨 뒤 작가의 말에서 지금까지 구병모는 작가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 편 나온다. 작가가 나오면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오토포이에시스> 세편을 작가 이야기로 봐도 될지. 하나 더 <사연 없는 사람>에도 작가가 나온다. <오토포이에시스>에서 작가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소설을 썼다는 말을 보았는데, 그런 일이 앞으로 더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쓰는 인공지능이 나오고 생각을 하면 사람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인공지능도 나올지 모르겠다.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동물도 생각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닐 거다. 본능이 더 앞설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에서는 작가가 글만 쓰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한다. 작가라고 해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을 거다. 여성 작가는 더하겠지. 결혼했다면 아내에 아이가 있다면 엄마 노릇도 해야 한다. 글 쓰기가 일이니 다른 것도 하면서 하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힘들겠지. 이상하게 작가는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 생각하는 듯도 하다. 생각은 조금 다르게 한다 해도 사는 건 아주 다르지 않을 거다.

 

 공동체라고 해서 다 좋을까. 구병모는 《네 이웃의 식탁》에서 실패한 공동체 이야기를 했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도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이 있고 정주 남편 이완은 시골학교로 가게 된다. 잠시 동안(네해)만 있으면 된다 생각하고 둘레에서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겠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실제 시골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거리가 아주 가깝다고 할까 가까이에 사는 사람 일을 다 알려고 한다고 할까.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아이를 기르는 데 많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다 좋지만은 않을 거다. 정주가 살게 된 곳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고 별거 아닌 말을 하기도 했다. 남편 이완은 작은 슈퍼를 하는 최씨가 안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정주한테 조심하라고 한다. 본래부터 살거나 그곳에서 살려고 했다면 정주가 마을 사람한테 먼저 다가갔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도 그저 환상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곳이 있다 해도 어디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기억에 남는 소설은 <미러리즘>이다. 이건 페미니즘 소설인 듯 싶다. 주사기 테러로 남자가 여자가 된다. 실제는 호르몬제로 남자가 여자가 되는 일은 없겠지. 남자가 여자가 되고 안 좋은 일을 겪는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남자라는 것만으로도 여자보다 나은 힘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여자가 그렇게 안 좋은 건 아니다. 아니겠지. 여자 남자 가르기보다 사람으로 대하면 좋을 텐데 싶다. 서로 다른 건 받아들이고. 해설을 보니 <웨이큰>을 보다보면 세월호가 생각나기도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 말을 보고 보니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로 그 일을 말하기도 하다니. 그걸 알아봤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구나. 다른 이야기도 잘 보면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 여성 엄마 그리고 작가 이야기를 한다. 이것도 해설을 쓴 사람이 한 말인데, 다시 여섯 편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작가기에 여성이나 엄마라는 걸 말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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