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갑자기 찾아와

 

누굴

무얼 그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벌써 지나가버린 시간이겠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기억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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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銀の墟 玄の月 第一券 十二國記 (新潮文庫)
小野不由美 / 新潮社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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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언덕 검은 달 1   십이국기

오노 후유미

 

 

 

 

 

 

 대국 장군 리사이가 경에 가고 경왕한테 대 기린인 타이키를 찾는 걸 도와달라고 한 이야기를 보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 시간은 그렇지만 타이키와 리사이는 경을 떠나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듯하다. 타이키는 《마성의 아이》에서 자신이 기린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이야기에서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게 해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리사이가 경으로 가서 다행이었다. 경왕인 요코가 봉래에서 태어나서 그런 거겠지. 안국 왕은 더 오래전 사람이지만. 안국은 기린뿐 아니라 왕도 봉래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안국에서 태어나야 했지만 식 같은 재해에 휘말려 난과가 봉래로 흘러갔다. 안국 왕은 왕이 되고 500년 가까이 지났다. 500년 동안 지루하지 않았을까. 왕은 그렇다 해도 백성은 살기 좋겠다.

 

 열두 나라가 있는 곳에서는 왕이 왕 자리에 있으면 그 나라는 안정된다. 왕이 없거나 왕이 길을 잘못 들면 나라에 요마가 나타나고 재해가 자주 일어나서 백성은 살기 어렵다. 왕이 왕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좀 낫겠지만, 그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왕은 길을 잘못 든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건 기한이 어느 정도나 될까. 대국은 기울어간다. 여섯해 전에 왕이 사라지고 왕을 돕는 기린도 사라져서. 하지만 왕이 죽었다는 걸 알리는 새 백치는 아직 울지 않았다. 리사이는 왕이 아직 살아있다 믿고 타이키와 함께 찾으려 했다. 그것도 둘이서만. 그렇게 하자고 한 건 타이키다. 바라는 일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해야지, 처음부터 다른 사람 도움을 받으면 그리 좋지 않겠지. 다른 나라 왕한테 도움을 바라면, 잘못하면 그건 죄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면 안 된다.

 

 여섯해 전 왕인 교소는 왕이 되고 여섯달 만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단지 아센이 교소를 치려했다고 짐작했다. 아센은 교소가 지방 도적이 일으킨 난을 정리하려고 떠나고 연락이 끊긴 걸 알고는 타이키를 죽이려 했다. 타이키는 아센을 믿고 친하게 지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서 무척 충격받았다. 그때 타이키는 뿔이 잘리고 자기 몸을 지키려고 식을 일으켜 봉래로 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렸다. 처음에 아센은 왕이 죽었다고 하고 자신이 임시 왕이 되었다. 얼마 뒤 의심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그런 사람을 죽이고 교소 부하와 교소를 따르는 사람도 죽였다. 군을 이끄는 장군은 부하들한테 어딘가로 달아나 몸을 숨기고 있다 언젠가 때가 오면 싸우자고 한다. 그런 사람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런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고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타이키와 리사이를 만났다. 그리고 함께 왕을 찾으려 한다.

 

 기린은 참 약해 보인다. 기린은 사령을 가지고 자기 몸을 지키지만 지금 타이키는 뿔도 없고 사령도 없다. 산시와 고우란은 어떻게 됐을까. 언젠가 나타나면 좋을 텐데. 여러 사람이 타이키한테 안전한 곳에 있으라 하니 타이키는 위험하다 해도 자신도 왕을 찾으러 간다고 한다. 타이키는 백성이 힘들게 지내니 자신도 힘든 일을 겪어야 한다고. 타이키는 기린다워진 듯도 하다. 자신이 할 일을 깨달아서겠지. 타이키는 빨리 왕을 찾으면 안 되느냐고 하다가, 리사이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리사이한테는 왕을 찾으라 하고. 그래도 타이키 혼자가 아니고 고료가 함께 갔다. 타이키가 간 곳은 왕궁이다. 하지만 아센은 만나지 못했다. 타이키는 대 백성이 이번 겨울을 버티게 도움을 주려면 궁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센은 자신이 왕 자리에 앉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센은 나랏일은 자기 밑에 사람한테 하게 하고 왕궁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아센은 아직 살아있을까. 왕이 됐지만 덧없어져서 일을 안 한 건지. 대는 관리가 일을 하기는 하지만 아주 기본만 했다. 백성이 어떻게 사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백성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알 텐데 그 사람들은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구나. 도관사원이 그런 일을 맡아서 했다. 궁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만 조금 거리가 생기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 나라가 있구나. 이건 다행이다 여겨야 할까. 여기에서는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웃나라에 쳐들어가지 못하니 말이다. 왕을 찾는 걸 도와주는 사람은 왜 교소는 지난 여섯해 동안 아무 움직임이 없었을까 했다. 정말 모를 일이구나. 교소는 죽지 않았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한 건지. 다쳤다 해도 여섯해나 지났으니 나았을 것 같은데.

 

 예전에는 타이키가 대로 돌아오고 왕 교소를 찾으면 바로 대가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그게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아센을 따르는 군대가 만만치 않다. 왕 자리는 피로 만들어졌다고도 하는데 교소가 자기 자리를 찾으면 죽은 사람 많겠다. 교소는 아센과 싸워야 한다. 아센이 그냥 물러서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아니 그건 모를 일인가. 아센을 따르는 사람이 끝까지 싸우려 할지도. 아센 밑에 있던 사람은 교소보다 아센이 왕에 어울린다 생각하기도 했다. 교소가 아센을 이기려면 아센이 가진 군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훈련이 잘된 병사로. 그렇게 만들려면 시간 걸리고 눈에 띌지도 모른다. 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세계는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르다. 왕은 그 나라 기린이 하늘 뜻에 따라 고른다. 고른다기보다 알아본다고 해야 할까. 아센은 타이키가 알아본 왕이 아니다. 타이키가 교소를 왕이라 하고 맹세했을 때 타이키는 자신이 잘못했다 여겼다. 교소한테는 왕기가 없었다면서. 왕기는 보이는 게 아니고 느끼는 거였는데, 그걸 타이키는 몰랐다. 타이키는 교소 앞에서 무릎꿇고 머리를 숙였다. 기린은 왕이 아닌 사람한테는 그러지 못한다. 그거야말로 교소가 왕이라는 증거다. 예전에 그걸 안 타이키는 무척 기뻐했는데. 이제 타이키는 그때와 다르게 어리지 않다. 아직 대를 잘 알지 못하지만 기린 본성은 있다. 그건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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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비 오고 흐린 날이었어

바람이 아주 세게 불어서

우산을 써도 비를 맞고

신발도 다 젖었어

 

밤에도 비는 그치지 않고,

멀리에서 빗물을 가르고

가까이 오는 차 소리 들으며 잠들었어

 

오늘은 하늘도 맑고 공기도 좋아

세상은 어제보다 깨끗하고 맑아

걷기에 좋은 날이야

 

나랑 같이 산책이라도 나갈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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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된 건 아니지만, 문 열고 스무해는 넘은 책방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에 있던 책방에서 사라진 곳이 거기만은 아니구나. 문을 닫은 곳보다 더 빨리 문 닫은 곳 여러 곳이다. 가끔 그 책방을 보면서 다른 곳은 없어져도 그곳은 있어서 다행이구나 했는데.

 

 난 어릴 때부터 책을 본 게 아니어서 책방 같은 데 잘 안 갔다. 언제 책방을 알고 가끔 가기도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누군가를 만날 때 책방 앞이나 책방에서 만났다. 그렇게 책방에서 사람 만나기로 한 건 나만은 아닐 거다. 이제는 어디에서 만날까. 커피 가게에서 만나려나.

 

 예전에 책방에 가도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냥 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책방에서 책을 마음대로 봐도 괜찮았구나. 눈치는 조금 봤지만. 인터넷이 생기고 책방보다 인터넷 책방에서 책을 사게 됐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서 어디나 책방이 문을 닫았겠다. 요새는 동네 책방이라고 하는 작은 책방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 문 닫은 책방에서 가까운 곳에 책방이 생겼다는데 난 한번도 못 가 보고 어딘지 잘 모른다. 말로 들었는 때는 아는 곳 같았는데. 언젠가 한번 거기에 가 보려 했더니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었다. 그 책방은 오래 가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많이 가고 책도 사기를. 책방 이름은 마리서사고 먼 곳에서 오는 사람이 들르기도 한단다.

 

 

  

   사진 : 마리서사 https://www.instagram.com/mariebookstore/

 

 

 

 책방 기억은 겨우 누군가를 만나려 한 곳이라는 것밖에 없구나. 문 닫은 책방에는 몇 번 안 가 봤다. 아니 지금 생각하니 한동안 거기에서 PAPER 샀구나. 그때는 책방이 여러 곳 있었는데 PAPER가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이건 좀 나중이던가. 거기에 몇 번 안 갔다고 생각했는데 한달에 한번 간 적 있구나. 책방은 집에서 멀다. 걸어서 30분에서 40분 걸린다.

 

 한번은 그 책방이 아닌 다른 책방에서 일 해 볼까 한 적 있다. 그때 말을 그렇게 안 해서 어떡하느냐는 말을 들어서 그만뒀다. 시간도 늦은 때까지였다. 일만 하면 되지 왜 말 안 하는 것가지고 뭐라 하는 건지. 그런 말 들은 게 한두번이 아니구나. 지금도 말 거의 안 한다. 안 좋은 기억이 하나 떠오르다니. 말 잘 못하는 내가 문제겠지. 다들 이상하게 여긴다.

 

 세상이 바뀌어도 그대로인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지금 있는 책방이라도 앞으로 문 닫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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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0-04-29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여기 마리서사 다녀왔어요. ^^
밤의 사진으로 보니 너무 분위기 있네요.

희선 2020-04-30 01:14   좋아요 0 | URL
구단 님은 여기 가 보셨군요 다른 시에서 여기 오셨을 것 같은데... 집에서 걸어서 한 15분에서 20분쯤 걸리면 찾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걸릴 것 같아서 안 찾아봤어요 제가 잘 안 가는 곳이기도 해서...


희선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문학과지성 시인선 508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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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시인 이름 알았을 때는 여자인가 했어요. 언제 남자라는 걸 알았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 책방에서 책소개에 나온 시인 사진을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밤에 10시가 넘어서도 라디오를 켜두었어요. 그날 마침 유희경이 나왔어요. 딱 하루 나오는 게 아니고 한주에 한번 나오는 거였는데 그 뒤에 챙겨 듣지는 않았습니다. 밤이어서. 예전에는 늦은 밤에 라디오 방송 듣고는 했는데, 지금은 컴퓨터를 쓰는군요. 요즘은 라디오 방송에서 시인 목소리 가끔 들을 수 있어요. 그렇게 목소리 듣기 전에는 시인한테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시인뿐 아니라 글 쓰는 사람 모두한테. 이제는 글 쓰는 사람도 그렇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해요. 다른 건 세상을 더 잘 보려 한다는 거겠지요. 글 쓰는 사람도 친구 만나면 사는 이야기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도 하겠습니다. 글 쓰는 건 일이어서 더 마음 써서 하겠지요.

 

 라디오 방송에 나온 시인이나 소설가는 말도 잘해요. 지금은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하더군요. 저는 말 잘 못해요. 할 말도 별로 없고. 그래도 쓰다 보면 할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바로 해야 하는 말이 아니어서 그렇군요. 유희경 시집 사고 바로 보고 싶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야 만났습니다. 제가 좀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시가 어떤 풍경 같기도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이야기라 해도 제가 알기 쉽게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시작과 끝은 없고 한 장면이 있는 듯해요. 다른 건 상상할 수밖에. 그런 걸 바로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네요. 시를 오래 바라보게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빨리 보기보다 어떤 풍경이고 어떤 이야긴지 천천히 봐야 그걸 조금이라도 그릴 텐데.

 

 

 

 아이가 돌을 던진다. 잔디 위를 굴러 비석에 부딪혔을 때 어떤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가족 중 몇몇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아이를 말리지 않는다

 

 아이는 재차 돌을 던진다 잔디 위를 굴러 비석에 닿는 돌은 또 다른 소리를 만든다 여전히 아이를 말리는 사람은 없다

 

 옆에서, 상복에 묻은 잔디를 떼어내던 여자가 한숨을 쉰다 한숨에도 어떤 소리가 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죽어버린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그는 이제 이 자리에 없다 이 자리에 없는 그도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듣지 못했고 어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겨울 볕은 아래로 아래로 굴러 내려가고 오늘은 뜨끈한 데가 있다 운다 울음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脫喪>, 14쪽

 

 

 

 조용한 가운데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이가 돌을 굴려 비석을 치는 소리 여자의 한숨 소리. 아이가 돌을 굴려 비석을 치는 건 조금 슬프게도 보입니다. 죽은 사람이 아이 아버지 같아서. 아이는 아버지가 죽은 걸 알지만 사람이 죽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돌을 굴리는 건 아닐지. 심심해서. 제목인 탈상(脫喪)은 어버이 삼년상을 마친다는 뜻이군요. 아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아이 아버지가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이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죽어서 여전히 슬퍼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나온 ‘나’는 누굴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시인일까요. 그렇겠네요.

 

 

 

꿈을 꾸었다

편지를 쓰다 마는

쓸 말이 없었는지

쓸 수가 없었는지

어지러워 펜을 내려놓고

바짓단을 걷어올린 강이

첨벙대는 소리를 듣다가

잠에서 깨어버렸다

커튼 틈으로 볕이 들고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악을 가둔 방──빛과 그림자>, 55쪽

 

 

 

 시에서 편지를 쓰는 꿈을 꾸어서. 저는 가끔 편지를 받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별로 안 꾸지만. 꿈속에서는 늘 편지를 못 봐요. 편지를 봤는데 봤다는 걸 잊어버린 걸지도. 이 시가 실린 곳을 폈다가 손에 묻은 볼펜 잉크를 책에 묻혔습니다. 조심해야 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안 좋아도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겠지요. 나중에 펴 보고 아쉽게 여길지도.

 

 

 

 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메말랐던 자리마다 소식들 닿아, 푸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당신에게서 꽃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오는 것만은 아니고, 오다 오다가 주춤대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이상토록 좋았다 가만할 수 없어 좋아서 의자가 삐걱대었다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열을 세면 꽃 지고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그저 좋았다

 

-<봄>, 112쪽

 

 

 

 기다리던 봄이 와서 기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열을 세면 여름이 올 것 같아 수를 세지 않는 건 귀엽게 보이는군요. 수를 세지 않아도 시간은 흐를 텐데,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람은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보다 따듯하고 꽃 피는 봄을 좋아하는가 봐요. 봄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겠네요. 봄은 올듯 말듯 하다가 어느 순간 곁에 와 있지요. 어느 철이든 그렇던가요. 먼저 왔던 철이 떠나기 아쉬워서거나 다음 철을 만나려고 주춤 거리는 걸지도.

 

 앞부분까지 쓰고도 볼펜 잉크 묻힌 거 생각했습니다. 저는 책을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해요. 책이 닳도록 여러 번 보는 사람도 있고 책에 무언가 적거나 밑줄 긋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책을 더 깊이 볼 수 있을까요. 책은 누군가 한번이라도 보면 헌 책이겠지요. 새 책 같은 헌 책, 이젠 헌 책이다, 하면 좀 나을지. 책 보기 전에 엄마가 시킨 거 안 해서 벌 받았나 봅니다. 앞으로는 귀찮아도 엄마 말 잘 듣도록 해야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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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9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